[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야구의 신이 집필한 드라마의 결말은 '시카고 컵스 우승'이었다.

3일(한국시간) 미국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MLB) WS 7차전 시카고 컵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에서 시카고 컵스가 8-7로 승리, 108년 만에 '염소의 저주'를 깨며 염원하던 WS 우승컵을 차지했다.

WS 사상 첫 리드오프 홈런, 앞서나가는 컵스

7차전 답게 명승부가 펼쳐졌다. 1회 첫 타자부터 컵스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7차전 첫 타자로 등장한 덱스터 파울러가 클리블랜드의 선발 투수 코리 클루버를 상대로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쏘아올렸다. WS 7차전 리드오프 홈런은 사상 최초다.

컵스의 홈런에 맞서 클리블랜드는 작전으로 맞불을 놓았다. 3회말 크리스프의 2루타로 공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클리블랜드는 페레즈의 희생번트로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이후 산타나의 깔끔한 우전 안타로 크리스프를 홈으로 불러들여 동점을 만들었다.

1-1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컵스는 다시 앞서나갔다. 1사 1, 3루 상황에서 러셀의 희생 플라이를 틈타 3루 주자 브라이언트가 홈으로 뛰어들었다. 포수 페레즈가 먼저 송구를 받았으나 브라이언트는 절묘하게 다리를 포수 사이로 집어넣어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콘트라레스가 중전 2루타를 터뜨리며 남은 한 명의 주자까지 불러들였다.

5회초에는 하비에르 바에즈가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점수를 벌렸다. 결국 클리블랜드의 에이스 코리 클루버는 5실점한 채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기세가 오른 컵스는 2아웃 이후 브라이언트의 볼넷과 리조의 우전 안타를 묶어 5-1까지 달아났다. 우승컵의 향방이 컵스 쪽으로 기우는 순간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클리블랜드, 기적의 8회말

하지만 경기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승리를 예감하며 긴장이 풀린 탓일까? 컵스는 안일한 플레이로 2점을 헌납했다. 클리블랜드는 5회말 2사 이후 산타나의 볼넷과 포수 실책을 묶어 2, 3루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레스터의 투구가 포수 로스의 마스크를 맞고 튕겨져 나갔고, 그 사이에 클리블랜드의 모든 주자가 홈을 밟았다.

벼랑 끝에 몰렸던 클리블랜드, '기적의 8회'를 연출했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컵스의 실책성 플레이로 클리블랜드가 흐름을 뒤집는듯 했으나, 컵스는 곧바로 이를 만회했다. 5회말 실점의 주범으로 꼽히던 데이빗 로스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6회초 1사 이후 맞이한 타석에서 앤드류 밀러의 4구를 받아쳐 129m 중월 솔로 홈런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실수를 완벽하게 만회하는 한 방이었다.

벼랑 끝에 몰린 클리블랜드는 8회 기적을 만들어냈다. 브랜든 가이어의 적시 2루타로 한 점을 만회했고, 2사 이후 상황에서 라자이 데이비스가 동점을 만드는 좌월 투런 홈런을 날렸다. 절망하던 클리블랜드 팬들은 믿기지 않는다는듯이 환호했고, 리글리필드에 모여있던 컵스의 팬들은 다가오던 우승컵이 다시 멀어지자 좌절했다.

승부 갈린 연장…시카고 컵스 우승!

승부가 원점이 되면서 양 팀은 9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먼저 컵스에게 기회가 왔다. 9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1루 주자 제이슨 헤이워드가 도루를 시도했고 공이 뒤로 빠진 사이에 3루까지 진루했다. 1사 3루 상황에서 컵스는 외야 뜬공만 쳐도 득점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하비에르 바에즈가 쓰리 번트 아웃으로 어이없이 물러났고 덱스터 파울러의 안타성 타구는 프란시스코 린도어의 호수비에 의해 막혔다.

클리블랜드 역시 점수를 내지 못하며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다. 이 와중에 변수가 생겼다. 빗줄기가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잠시 순연된 것이다. 한창 경기 중이었던 양 팀이었기에 비는 큰 변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수포가 걷히며 경기가 재개됐지만 양 팀의 흐름은 끊길 수 밖에 없었다.

비는 컵스의 편이었다. 10회초 컵스가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슈와버가 안타를 치고 알모라로 교체됐고, 알모라는 브라이언트의 중견수 플라이를 틈타 과감히 2루까지 진루하는데 성공했다. 클리블랜드는 리조를 고의4구로 거르고 조브리스트와의 승부를 택했다. 하지만 조브리스트는 좌익선상 2루타를 날리며 알모라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벼랑 끝에 몰렸던 클리블랜드, '기적의 8회'를 연출했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컵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러셀이 고의4구로 진루하며 1사 만루 상황이 된 상황에서 몬테로 역시 안타를 치며 한 점을 더 보탰다. 2점 차 리드를 허용한 클리블랜드는 10회말 공격에서 2사 이후 라자이 데이비스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가했지만 컵스의 마지막 투수 마이크 몽고메리가 마지막 타자 마이클 마르티네즈를 잡아내며 108년의 흑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 끝에 결국 저주와 저주의 맞대결은 끝나고 말았다. 와후 추장의 저주는 남게 됐지만 108년 동안 이어진 염소의 저주가 결국 2016년에 와서야 깨지고 말았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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