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016 중국 슈퍼리그(CSL)가 종료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중국은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AFC 챔피언스리그(ACL)의 영향과 '축구굴기'로 인해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CSL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최용수, 이장수 등 한국인 감독 다수가 CSL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지휘하고 있는 팀이 어떤 성적을 거두는 지도 관심있게 지켜본다. 올 시즌은 박태하의 연변, 이장수의 창춘이 호성적을 거둔 반면 항저우 그린타운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홍명보 감독은 강등의 쓴 잔을 들이켜야 했다.

CSL이 종료 되면서 한국 팬들은 홍명보 감독의 강등 사실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 축구팬들은 이보다 더 관심을 갖는 이슈가 있다. 새로운 지역 더비를 내년 시즌부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톈진 타이다와 톈진 취안젠의 '톈진 더비'다. 중국은 이미 광저우, 상하이에서 지역 더비를 볼 수 있지만 새로운 더비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수원FC가 승격에 성공해 처음으로 '수원 더비'가 성사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이 톈진 더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두 팀의 얽히고 얽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경기 한 번 하기 전부터 두 팀은 갈등을 빚어왔다. 내년 시즌 CSL 최고 흥행 카드 중 하나인 톈진 더비에 얽힌 이야기를 중국 축구 전문가 김덕용 씨와 함께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축구특별시' 톈진, 그들의 심장 톈진 타이다

먼저 톈진 타이다(天津泰达)라는 팀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1956년 톈진 축구팀이 창설되면서 이 팀의 역사는 시작된다. 약 60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CSL의 명문 구단 중 하나다. 1989년에는 팀을 세 팀으로 나누어 1부리그, 2부리그, 3부리그에 나눠 참가시키는 등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톈진은 지금도 ‘축구특별시’라고 부를 만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톈진 타이다의 홈 구장 테다 풋볼 스타디움 ⓒ Craighong

많은 사람들은 이 팀을 톈진 테다라 부르기도 한다. 타이다와 테다 모두 맞는 말이다. 타이다는 중국어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고, 테다는 톈진 경제기술 개발구(Tianjin Economic and Technology Development Area)의 영문 약어인 TEDA를 발음한 것이다. 여기서는 현지 발음에 맞게 타이다로 표기하고자 한다.

60년 동안 이 팀은 3회 우승을 기록했다. 모두 CSL이 창설되기 전이다. 1983년 중국 갑A리그 우승이 그들의 마지막 리그 우승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톈진 타이다는 중국 프로축구 최정상에 올라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 톈진 시민들과 함께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팀으로 자리 잡았다. 연고이전이 빈번했던 중국 프로축구에서 이 팀은 한결같이 톈진을 지켰다는 것도 한 몫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95년부터 97년까지 톈진 산싱(삼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 삼성의 중국 법인이 톈진 팀을 스폰했다. 이는 국내 기업이 처음으로 중국 축구 팀을 후원한 사례로 남아있다. 현재는 톈진 타이다 그룹 등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소유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여튼 이 팀은 우승은 못하지만 이름값 하나는 인정받는 그런 팀이었다.

톈진 타이다 스폰한 기업, 알고보니…헉!

평화롭던(?) 톈진에게 잡음이 일어난 것은 2015년이었다. 톈진 타이다는 2015년부터 취안젠(权健)이라는 기업과 네이밍 스폰서를 체결하고 '톈진 타이다 취안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다. 취안젠이라는 기업은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취안젠을 주목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꽤 많다.

취안젠 그룹은 중국 직소판매 부문에서 4위를 기록하고 있는 꽤 큰 기업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취안젠 그룹을 통해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주로 화장품, 의약품, 생활용품 업체들이 취안젠 그룹과 MOU를 맺고 중국 시장에 자사 제품을 납품한다. 한 기업의 경우 취안젠과 손을 잡은 이후 기업의 총 매출 중 수출 매출의 비중이 약 3배 가까이 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취안젠이 CSL에 뛰어든 이유는 다른 기업과 여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안젠에게는 CSL에 참여해야 할 또 다른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기업의 이미지 쇄신'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취안젠은 중국 내에서 직소판매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직소판매'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알고 나면 굉장히 쉽다. 직소판매를 쉽게 풀어 말하면 네트워크 마케팅, 나쁘게 말하면 '다단계'다. 취안젠은 이른바 '다단계 회사'였던 것이다.

톈진 타이다의 홈 구장 테다 풋볼 스타디움 ⓒ Craighong

우리나라도 그렇듯 다단계 회사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하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취안젠은 직소판매를 통해 많은 부를 쌓았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이미지 역시 함께 쌓았다. 이를 개선할 좋은 방법이 바로 CSL 구단에 스폰서십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스폰서십 참여로 기업 이미지 개선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지만 취안젠에게는 중요한 목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업계 수위를 탈환하는 것이었다. 톈진 타이다의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취안젠은 단순히 스폰서십으로는 업계 수위 탈환이라는 목표까지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래서 이 기업은 스폰서십을 넘어 톈진 타이다를 소유하려는 야망을 드러낸다.

'다단계 회사가 감히?' 좌절된 취안젠의 꿈

만일 톈진 타이다가 갑부 구단주 한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구단이었다면 취안젠의 인수는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톈진 타이다는 쉽게 인수할 수 있는 구단이 아니었다.

첫 번째로 톈진 타이다는 소유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스폰서십을 제외하고도 톈진 테다에게 투자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기업이 많았다. 현재 알려진 기업만 톈진 타이다 그룹, 톈진 타이다 투자회사, 톈진 개발구 건설 그룹, 북방 국제신탁 투자회사, 개발구 국유자산경영공사가 있다. 취엔지엔이 구단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기업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설득한 다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일일이 인수해야 했다.

두 번째로는 이미 뿌리깊게 박혀 있는 취안젠의 기업 이미지가 문제였다. 취안젠이 구단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톈진 지역 사회에서는 당연히 논란이 됐다. 다단계 회사가 지역의 자존심인 톈진 타이다를 인수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톈진 체육회는 취안젠의 구단 인수를 공식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다단계 회사에게 중국 축구 역사의 산 증인이자 '축구 특별시'라 불리는 톈진의 대표 구단을 넘겨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돈보다 지역의 자존심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취안젠이었다. 취안젠은 자신들이 톈진 타이다를 인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톈진 타이다 인수에 대비해 국가대표 미드필더 쑨커(孫可)를 120억 원 가량의 이적료를 주고 장쑤 슌티엔에서 톈진으로 데려오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톈진 체육회는 취안젠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면서 동시에 기존 취안젠의 네이밍 스폰서, 그리고 순커의 영입까지 모두 거부했다. 취안젠은 김칫국을 잔뜩 들이켜놓고 낙동강 오리알이 될 신세에 처해졌다. 동시에 순커의 앞날도 예측할 수 없었다.

분노로 가득 찬 취안젠은 여기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톈진 타이다를 대신해 테다의 지역 더비 클럽, 톈진 송지앙(天津松江)을 인수해 톈진 취안젠(天津权健)으로 구단 명을 변경했다. 그리고 쑨커는 타이다와의 분쟁 끝에 본인의 요청에 따라 원 소속팀인 장쑤 슌티엔에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장쑤에서 잔여 시즌을 마무리하고 2016 시즌 톈진 취안젠으로 복귀해 팀의 승격에 보탬이 된다.

'와신상담'한 취안젠, 복수의 날이 다가온다

이제 취안젠의 목표는 분명해졌다. 자신들을 내친 톈진 타이다에 대한 복수다. 하지만 팀을 인수할 당시 톈진 취안젠은 2부리그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CSL에서도 명문 구단 중 하나로 인정받는 톈진 타이다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안젠은 최대한 빨리 CSL에 승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일단 테다와 동등한 리그에서 뛰어야 복수의 기회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택한 해결책은 다른 중국 프로축구의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스타 플레이어 영입'이었다. 취안젠 그룹의 재력을 바탕으로 이들은 막대한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

감독부터 거물을 영입했다. 브라질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 등을 역임했던 룩셈부르고가 톈진 취안젠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과 함께 "파투와 카카를 영입하겠다"고 포부를 밝혀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실제로 그의 말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세비야 출신의 파비아누, '제 2의 메시, 네이마르, 호빙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제우바니우, 코린티안스의 자드손을 데려와 전력을 갖췄다.

호화 멤버를 꾸린 톈진 취안젠은 승승장구했다. 6라운드까지 4승 2무를 기록하며 선두를 기록했다. 이 기세로라면 승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내리막을 타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6경기 연속 무승(2무 4패)을 기록하며 8위로 미끄러졌다. 톈진 취안젠의 승격 플랜이 어긋난 것이었다.

톈진 타이다의 홈 구장 테다 풋볼 스타디움 ⓒ Craighong

구단 경영진은 결국 감독 교체라는 카드를 뽑아 들었다. 룩셈부르고 감독은 부임 1년도 되지 않아 팀을 떠나야 했다. 그를 대신한 것은 이탈리아의 전설 파비오 칸나바로였다. 그는 광저우 헝다에서 떠난 이후 1년 만에 다시 명예회복의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다행히 칸나바로는 선수단을 빠르게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감독 부임 후 첫 경기인 신장 쉐바오를 1-0으로 꺾으며 산뜻하게 출발한 칸나바로 호는 이후 쾌조의 6연승을 달리며 강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승격을 향한 경쟁은 치열했다. 최종 라운드까지 가서야 승격이 결정됐다. 톈진 취안젠은 광동 메이저우를 3-0으로 꺾고 승점이 같았던 2위 구이저우, 3위 칭다오 황하이를 골득실차로 제쳤다. 갑급 리그 우승컵과 함께 CSL 승격권을 획득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팀의 맞대결 뿐이다. 2017 CSL에서 두 팀이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취안젠은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설움을 그 자리에서 폭발시킬 것이고, 타이다 역시 톈진의 맹주 자리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치열하게 맞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 더비는 언제나 흥행 카드가 될 수 밖에 없다. 같은 연고지를 가진 두 팀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으니 관심도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이것 또한 중국 축구의 발전 요소다.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 만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자연스럽게 축구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은 CSL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기도 하지만 톈진 타이다와 취안젠의 스토리텔링은 한국 축구, 그리고 K리그에도 많은 점을 시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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