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항저우 그린타운은 결국 올 시즌 중국 슈퍼리그에서 강등되고 말았다. ⓒ항저우 그린타운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홍명보 감독이 또 다시 시련을 겪고 있다.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그린타운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은 지난 달 30일 옌볜 푸더와의 홈 경기에서도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결국 2부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선수 시절 ‘축구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고 지도자로서도 올림픽 동메달을 따내는 등 상승세를 타던 홍명보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와 각종 논란에 이어 프로 무대에서도 강등을 경험하는 등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항저우와 2년 계약을 맺은 홍명보 감독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홍명보 감독이 이렇게 지도자로 실패를 맛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한때 영웅의 몰락은 참으로 씁쓸하다.

황선홍과 최용수, 그리고 홍명보

나는 홍명보 감독을 비판해 왔다.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의 편법이 있었고 홍명보 감독이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선수 선발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홍명보 감독을 그렇게 곱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늘 조명받지 못한 선수들이나 하부리그, 어려운 환경을 주목하려고 하는 나에게 ‘슈퍼 엘리트’이면서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아가며 지도자로 승승장구하던 홍명보 감독이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일 리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홍명보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했고 숙고 끝에 선택한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그린타운의 강등도 막지 못했다. 하지만 특혜를 받던 ‘슈퍼 엘리트’의 추락이 고소하다는 생각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이다.

처음부터 그가 지도자로 제대로 된 단계를 밟았다면 이렇게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홍명보 감독을 미워했다기보다는 ‘슈퍼 엘리트’에게 특혜를 주는 세상이 미웠고 이름값 만으로 승승장구하는 불합리한 세상이 싫었던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홍명보에게 열광했던 내가 그를 인간적으로 싫어할 이유도 없다. 생각해보니 나는 선수 시절 그의 팬이었다. 나는 우리의 축구 영웅이 이렇게 지도자로 여러 번 실패하는 일이 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차두리도 마찬가지고 박지성도 마찬가지다.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지도자 생활을 하며 어렵게 선수 시절 이뤄놓았던 걸 깎아먹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홍명보 감독의 안타까운 행보를 되짚어보려 한다.

최용수와 황선홍, 그리고 홍명보. 선수 시절 경력과 인지도를 비교해 보면 막상막하일 텐데 그래도 홍명보 감독의 대표팀 기여도와 인지도가 더 높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최용수 감독은 중국 슈퍼리그에서도 정상을 노리는 장쑤 쑤닝을 지도하고 있고 황선홍 감독은 K리그 클래식에서도 정상급인 FC서울 감독을 맡고 있다. 최용수 감독은 올 시즌 슈퍼리그에서 광저우 헝다에 이어 팀을 리그 2위에 올려 놓았고 황선홍 감독은 FC서울을 이끌고 FA컵 우승과 리그 우승이라는 2관왕을 노리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하고 경질이냐, 유임이냐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과는 참 많이 다르다. 선수 시절 경력과 인지도에서는 전혀 뒤질 것 없는 이가 감독으로서는 가장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으니 참 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 중학생 시절 공부 지지리도 안 하고 오토바이만 타고 다니던 내 친구가 지금 파주에서 짬뽕집으로 대박이 나 외제차를 타고 저택을 짓고 잘 살고 있어 그 심정을 내가 잘 안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일 뿐이다.

황선홍 감독은 2군 코치부터 시작해 현재는 K리그에서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포항스틸러스

그래서 단계를 밟는 게 중요하다

이 차이가 지도자로 얼마나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최용수 감독의 정장 차림보다는 흔히 말하는 ‘추리닝’ 차림이 더 친숙하다. 2006년 FC서울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 은퇴하고 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가 감독 옆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팔짱을 끼고 입술을 물어 뜯으며 서 있는 모습을 굉장히 오래 봐 왔기 때문이다. 그가 보좌한 감독만 해도 이장수 감독을 비롯해 세뇰 귀네슈, 넬로 빙가다, 황보관 감독 등이다. 이중에 누군 성공했고 누군 실패했고 또 누군 성적을 떠나 선수 관리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코치 생활을 하다가 2011년 4월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나자 그제야 감독대행이 됐고 무려 8개월 만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프로팀 코치로 이미 겪을 만큼 다 겪고도 시기를 기다려 마침내 프로팀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 FC서울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황선홍 감독은 어땠나. 2003년 은퇴한 그는 곧바로 전남 2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무려 3년 만에 수석코치가 됐다. 당시 전남 선수에게 전해 들은 일화가 있는데 재미있어서 소개하려 한다. 허정무 당시 전남 감독은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이상 새벽 훈련도 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천하의 황선홍’ 코치도 새벽에 훈련 지도하는 건 귀찮았던 모양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에 창밖으로 손을 쭉 내밀어 보더니 옆에 있던 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단다. “아, 이 정도 비 오면 훈련해야겠지? 5분만 더 기다려볼까?” 결국 황선홍 코치는 더 쏟아지지 않는 비를 원망하며 새벽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평소에 표정 변화도 없고 늘 차가워만 보이던 황선홍 감독도 이렇게 날씨를 원망하며 싫은 새벽 훈련을 시켜야 했던 귀여운(?) 시절도 있었다. 선수로는 얻을 만큼 다 얻은 그가 이렇게 2군 코치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았다는 건 연기로는 이미 끝판왕을 깬 최민식이 조연출부터 다시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다.

2006년 말 전남과 결별한 황선홍 코치는 2007년 곧바로 영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뭐 10개월 여의 길지 않은 연수 기간 동안 엄청난 걸 배워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2군 코치에서부터 성인 팀 수석 코치, 해외 유학 등의 과정을 거쳤다는 건 그가 얼마나 차근차근 지도자로서 준비를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황선홍 감독은 2008년 부산아이파크 감독으로 취임해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팀을 2010년 FA컵 준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2011년부터는 포항으로 옮겨 FA컵 2년 연속 우승과 2013년 K리그 클래식 우승을 기록하는 등 지도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물러난 뒤 K리그 클래식에서 2위를 내달리고 있는 FC서울 감독직을 맡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지금 K리그 무대에서 가장 선수들이 뛰고 싶어하는 팀의 감독이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며 제발 비가 더 쏟아지길 바라던 2군 코치가 아니라 데얀과 아드리아노, 박주영이 포진한 팀의 감독이다.

황선홍 감독은 2군 코치부터 시작해 현재는 K리그에서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포항스틸러스

‘지도자’ 홍명보는 첫 출발이 너무 화려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반대였다. 이미 몇 번 언급했으니 지도자 자격증 취득 과정의 편법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나는 오늘 그의 자격이나 지도력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2004년 미국 LA갤럭시에서 은퇴한 그는 지도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1년 만인 2005년 곧바로 대표팀 코치직을 맡았다. 2006년 핌 페어벡 감독이 선임되자 대표팀 수석코치로 승격했고 2007년에는 U-23 대표팀 수석코치로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더니 2009년에는 곧바로 U-20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미 전임 조동현 감독에 의해 상당 부분 완성된 팀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U-20 대표팀을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진출시켰고 곧바로 이 선수들을 그대로 이어받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감독까지 맡았다. 하지만 홍명보호는 UAE와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허용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승부차기를 준비하면서 골키퍼까지 바꾸는 전술을 쓰다가 한 방 얻어맞은 것이다.

이후 상황은 잘 알 것이다. 홍명보 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엔트으리’ 논란 등으로 얼룩진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참패를 경험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그래도 홍명보 감독을 옹호하자면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 초청으로 러시아 안지에서 코치 연수를 시작한 홍명보 감독을 굳이 성인 대표팀 감독으로 앉힌 건 협회의 의지였다. 처음에는 협회의 제안을 홍명보 감독이 고사했지만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시한부 감독을 맡았던 최강희 감독마저 떠나고 아무도 대표팀 사령탑에 앉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이다. 결국 그는 월드컵에서 참패했고 이후 중국 슈퍼리그에서 부활을 노렸지만 팀의 2부리그 강등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항저우 그린타운이 다른 중국 빅클럽처럼 막 돈을 펑펑 써가면서 운영하는 팀이 아니라 유망주 육성에 집중하는 팀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선수 시절에는 가장 앞서 나갔는데 지금은 홍명보 감독이 황선홍 감독이나 최용수 감독보다는 지도자로 훨씬 더 많은 좌절을 겪고 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시작된 건 지도자로서의 첫 출발부터였다고 생각한다. 황선홍 감독이나 최용수 감독이 2군 코치와 플레잉 코치로 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할 때 홍명보 감독은 너무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한 팀에서 무려 5년 넘게 코치 생활을 한 최용수 감독은 결국 이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과정까지 함께하며 정점을 찍었다. 2군 코치로 시작한 황선홍 감독도 차근 차근 단계를 거치며 리그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이런 모든 시기를 생략한 채 성인 대표팀 코치로 시작해 금방 대표팀 수석코치에 오르고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곧바로 성인 대표팀 감독까지 역임했다. 출발부터 화려했고 너무나도 거창했지만 결국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때 프로팀에서부터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게 참으로 안타깝다.

‘축구 영웅’의 현재가 안타깝다

물론 ‘대표팀 전문 감독들’도 있다. 하지만 대표팀은 팀을 구성하고 기획하는 연속성이 떨어진다. 과거 최강희 감독도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프로팀에서 같이 선수들과 땀 흘리고 1년 내내 함께하는 게 대표팀을 맡는 것보다는 훨씬 더 보람 있다.” A매치를 앞두고 잠깐 발을 맞춰본 뒤 경기에 나서는 대표팀과 1년 내내 조직적으로 돌아가는 프로팀은 운영 자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프로팀 감독은 대단하고 대표팀 감독은 덜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프로팀에서 차근 차근 단계를 거치면 다른 감독에 비해 훨씬 더 전술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때론 심리적으로나 유리한 게 많다는 의미다. 비록 2016 리우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프로팀에서 많은 걸 경험하고 성과를 냈던 신태용 감독 같은 인물이 대표팀으로 올라가는 게 맞다. 그런 면에서 홍명보 감독은 너무 높은 곳에서 출발했고 제대로 된 단계를 거칠 수 없었다.

홍명보 감독이라는 이름은 서글프게도 한국 축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전술적인 역량이나 지도자 경력 자체도 부정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8강 진출도 제대로 못하던 올림픽 무대에서 동메달 획득이란 건 엄청난 성과였고 한국 축구사의 축제와도 같은 일이었다. 또한 그의 경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홍명보 감독의 전술적인 역량도 아주 낮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약팀을 리그에 잔류시키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는 해도 단순히 항저우의 강등을 막지 못한다고 해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로서는 끝났다고 할 것도 아니다. 홍명보 감독은 지도력 이외에 B급 리그 발언이라던지, 땅을 보러 다녔다던지하는 구설에 올랐고 본인 스스로 “소속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선수를 발탁하겠다”고 해놓고 벤치 신세였던 박주영을 선발하는 등 편애 논란으로 더 문제가 됐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앞장서서 비판했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홍명보 감독이 자신감을 가지고 일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감독의 전술적인 역량 자체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다.

한국 축구의 보물과도 같은 홍명보 감독이 차근 차근 프로팀에서 지도자로 자리를 잡았어야 했다고 믿는다. 그랬으면 지금쯤 홍명보 감독이 국내 무대에서는 이룰 걸 다 이루고 대표팀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가정이지만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선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들은 지도자가 된 뒤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지만 황선홍, 최용수, 홍명보, 박지성, 안정환, 차두리 같이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올랐던 선수들은 프로팀 2군 코치부터 시작해도 어지간하면 다 좋은 시기에 감독으로서 기회가 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 그 즈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홍명보 감독은 너무 높은 곳에서 시작했고 그곳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더 아플 수밖에 없다.

황선홍 감독은 2군 코치부터 시작해 현재는 K리그에서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포항스틸러스

‘소모품’이 홍명보, 협회도 책임있다

홍명보 감독에게 어쩌면 중국 2부리그에서의 감독 경험은 제대로 된 지도자로서의 첫 경험일 것이다. 만약 그가 항저우 그린타운에서 연임하게 된다면 내년이 대단히 중요하다. 홍명보 감독도 어느덧 지도자 생활이 10년이나 됐는데 아이러니한 건 그가 지금까지 올 시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이적시장이라는 걸 경험해 봤다는 거다. 항상 대표팀을 맡아왔고 있는 선수들만을 써왔고 장기적으로 조직력을 키워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험이다. 또한 만약 팀에서 경질된다면 개인적으로는 J리그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 국내 무대에서는 ‘실패한 감독’이라는 낙인이 찍혀 부담이 크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수 시절 두터운 신임을 얻었던 J리그에서의 입지가 조금은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로서 살아나는 건 항저우를 다시 일으켜 세우거나 J리그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금의환향하는 것 말고는 없다. 고양자이크로를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키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홍명보 감독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아마도 2014년 브라질월드컵 참패 이후보다 지금이 더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이제는 프로 무대에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 이대로 포기해 버리면 더 이상 지도자로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고 그때 가서 축구 행정가로 방향을 바꿔도 볼 품이 없어진다. 또한 다시는 이렇게 한국 축구의 영웅이 지도자로서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홍명보 감독 스스로도 처음부터 너무 욕심이 커 높은 곳에서 시작했고 협회는 한국 축구의 영웅을 소모품 취급해 버렸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던 그에게 감독을 떠넘겨 버린 건 협회였다. 나도 과거 자격증 논란이나 선수 선발 과정 등에서 홍명보 감독을 비판했지만 홍명보처럼 위대한 선수가 중국 2부리그에서 감독을 한다는 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시작부터 잘못된 일은 쉽게 되돌릴 수가 없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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