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동남아 선수에 대한 편견, ‘쯔엉에게 사과합니다’


인천 쯔엉
인천유나이티드가 쯔엉을 영입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마케팅용 선수'라는 인식이 강했다.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나는 동남아시아 선수가 K리그 무대에서 성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과거 칼럼을 통해서도 이런 내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K리그 무대에서 동남아시아 선수가 대성공을 거두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주말 인천유나이티드 쯔엉의 활약을 보고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마케팅용 선수인줄로만 알았던 베트남 출신 쯔엉이 인천 중원을 이끌며 펄펄 날았기 때문이다. 오늘 칼럼을 통해 동남아시아 선수의 성공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던 내 의견이 경솔했다고 사과하고 싶다.

쯔엉은 지난 주말 광주FC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K리그 클래식 데뷔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5개월 만에 치른 두 번째 경기이니 부담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인천은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여서 쯔엉이 공격적인 능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쯔엉은 이날 경기에서 사실상 MOM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중원에서부터 공을 차단하고 공격적인 패스로 활로를 풀어가는 역할까지 했다. 심지어 오른발과 왼발 모두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고 약점으로 지적되던 몸싸움도 영리한 공간 확보로 이겨냈다. 두 팀 중 어느 한 팀을 응원한건 아니지만 “동남아 선수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 나는 쯔엉이 멋진 플레이를 펼칠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레 콩 빈
‘베트남 축구 영웅’ 레 콩 빈은 J2리그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콘사도레 삿포로

레 콩 빈의 J2리그 실패, 동남아 축구의 한계?
내가 동남아 선수는 K리그 무대에서 무조건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 건 아니다. 나에게도 논거는 분명했다. 일단 동남아 최고 수준의 선수가 K리그에 진출했을 때를 가정했다. 포르투갈에 진출하며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고 2004년 골든볼을 수상하는 등 베트남 축구 최고 선수로 우뚝 선 레 콩 빈은 베트남 골든볼을 3회 수상 했고 베트남리그 최고 이적료 기록도 세웠다. 여기에 잘 생긴 외모는 물론 유명 가수와 결혼해 상품성까지 갖췄다. 그런데 레 콩 빈은 2013년 J2리그 콘사도레 삿포로에 진출한 뒤 9경기에 나서 두 골을 넣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일왕배에서도 두 골을 넣었지만 상대는 일본 대학팀이었다. 그렇게 ‘베트남 축구 영웅’ 레 콩 빈은 J2리그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콘사도레 삿포로는 ‘인도네시아의 이니에스타’라는 스테파노를 다시 한 번 영입했다. 네덜란드인 어머니와 인도네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파노는 네덜란드 1부리그 FC위트레흐트에서 뛴 적도 있는 선수라 많은 기대를 모았고 “개인적으로는 올 시즌 10골을 넣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그 역시 J2리그에서 12경기에 나선 채 팀을 떠나야 했다. 콘사도레 삿포로는 또 다시 ‘인도네시아의 신성’이자 잘 생긴 외모로 트위터 팔로워수가 무려 4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끄는 이르판 바흐디무를 영입했다. 하지만 그는 이전 소속팀인 반포레 고후에서 한 시즌 동안 딱 한 경기에 나선 게 전부인 그는 콘사도레 삿포로에서도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자기들끼리 ‘영웅’이니 ‘이니에스타’니 별명을 붙여도 이름 없는 그들은 ‘그냥 J2리거’와도 경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말레이시아 U-23 대표 출신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완 자크 하이칼 완 누르와 나지룰 나임 체 하심은 일본 아마추어리그인 JFL FC류큐로 이적했지만 2013년 시즌 완 자크 하이칼 완 누르는 두 경기에 나선 게 전부였고 나지룰 나임 체 하심은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다. 반대로 2008년 인도네시아 아레마 말랑에서 21경기에 나서 15골을 기록하며 인도네시아 축구를 평정한 카메룬 국적 공격수 에밀 음밤바는 대구에 와 7경기 출장 무득점에 그치며 6개월 만에 퇴출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씨밤바, 아니 음밤바는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메시 놀이’를 또 했다. 이미 ‘최고의 스타’ 레 콩 빈이 J2리그에서도 실패한 이상 그 어떤 선수도 K리그와 J리그, 중국 슈퍼리그 등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게 사실처럼 보였다. 동남아 최고 수준의 선수가 더 큰 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레 콩 빈의 실패 이후 더 적어졌다. 전교 1등이 서울대에 떨어졌는데 전교 10등이 서울대를 노리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인천 쯔엉
쯔엉은 R리그(2군경기)에 주로 나서면서 한국 무대에 적응했다. ⓒ인천유나이티드

내가 범했던 논리의 오류는 무엇이었을까
그러면서 내가 주장한 건 더 있다. 레 콩 빈이 J2리그에 진출할 당시 연봉이 2억 5천만 원 수준이었는데 이 돈이면 성공이 불명확한 동남아 선수를 영입하는 것보다 차라리 브라질 지역 리그 득점왕을 데려오는 게 훨씬 안전했기 때문이다. 모든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동남아 선수를 데려오는데 2~3억 원을 쓸만한 K리그 구단은 없다. 그리고 단순히 연봉 뿐 아니다.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려면 연봉은 물론 집과 자동차, 통역 등까지 마련해줘야 한다. 여기에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올 경우 생활비는 더 든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라면 국내 선수 두 명의 몫을 해줘야 하는데 백업에 불과한 선수에게 이런 막대한 지원을 해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수적인 금액을 포함하면 동남아 최고 선수를 1년 쓰는데 3억 원 이상이 든다. 연봉 2억 5천만 원의 레 콩 빈도 실패했는데 이 돈 이상을 받을 만한 동남아 선수도 없을뿐더러 이 돈이면 차라리 더 안정적인 브라질 선수를 영입하는 게 더 낫다. 더군다나 아시아 쿼터 한 장을 동남아 선수로 채우는 것보다는 호주 출신 선수를 영입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정적이다.

내 주장은 여기까지였다. 캬, 논리 한 번 기가 막혔다. 막 레 콩 빈 같은 선수 예시도 들고 뭐 사람들이 잘 들어본 적도 없는 완 자크 하이칼 완 누르와 나지룰 나임 체 하심도 나오고 이것저것 논리는 거창했다. 마치 데니우손의 현란한 개인기 같았다. 연봉으로 따져도 도저히 K리그 시장에서 먹힐 만한 동남아 선수는 없었다. 레 콩 빈급의 선수가 더 있지도 않을뿐더러 있어도 3억 원씩을 쓸 구단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쯔엉이라는 만21세의 베트남 선수가 K리그 클래식에서 성공적인 경기를 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쯔엉이 지난 광주전에서 펄펄 나는 순간 내 완벽했던 주장은 무너지고 말았다. 역시 축구를 글로 배운 사람의 한계인 것 같다. 데뷔전 이후 R리그 무대에서 뛰며 ‘동남아 선수는 K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내 주장의 실패 예시를 하나 더 늘여줄 것 같았던 쯔엉은 거칠기로 유명한 K리그 무대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으며 대활약을 펼쳤다. 이 자리를 통해 내 주장을 실력으로 깬 쯔엉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동남아 선수는 다 K리그에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는 걸 쯔엉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부터 내 논리가 잘못된 걸까 따져봤다. 그랬더니 내가 범한 오류는 ‘동남아 최고 스타가 K리그 무대에 온다면’이라는 가정에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어린 선수를 영입해 육성하는 전략이라면 내 논리를 무너트리는 선수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만 21세의 나이에 R리그를 거치며 경쟁에서 이겨나가는 동남아 선수가 있다면 이 선수는 레 콩 빈처럼 이미 동남아 최고의 반열에 오른 뒤 도전하는 선수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식의 접근이라면 K리그 챌린지 수준의 팀에서도 충분히 쯔엉과 비슷한 사례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나는 느끼게 됐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레 콩 빈 이상의 스타가 나올 수 없으니 그만한 성공을 K리그에서 거둘 선수도 없다고 생각한 내가 부족했다. 이래서 故하일성 해설위원이 이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었나보다. “아, 축구 몰라요. 베트남, 역으로 가네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다.

인천 쯔엉
쯔엉은 지난 광주FC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인천유나이티드

쯔엉이 보여준 동남아 선수의 가능성
나는 동남아 선수들의 영입을 가정하면서 또 하나의 오류를 범했다. 바로 최고 연봉이었다. K리그에 올 선수들을 레 콩 빈 연봉인 2억 5천만 원 기준으로 예상했고 평가했다. 하지만 쯔엉의 연봉은 3천만 원 수준이다. 다른 외국인 선수 연봉의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별도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과 달리 쯔엉은 숙소도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 내국인 선수들과 함께 구단 숙소를 쓰며 자동차도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 쯔엉은 가끔은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이 팬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K리그 선수들 중에도 대우가 열악한 2군 선수 정도의 대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연봉 3천만 원을 받는 선수에 대한 기대치는 낮을 수밖에 없는데 쯔엉이 1년에 한두 경기만 잘해도 이미 연봉은 뽑는 셈이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한 거 없이 돌아간 반도나 핑팡 같은 선수에 비하면 이미 쯔엉은 지금 K리그를 떠나도 인천이 본전 이상 뽑은 거다.

레 콩 빈을 기준으로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K리그에 올 일도 없을뿐더러 와도 그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는 내 주장은 쯔엉이 3천만 원의 연봉을 받으며 광주전에서 맹활약하는 동안 완벽히 무너졌다. 물론 나도 내 주장을 완전히 굽히고 싶지는 않다. 얍삽하지만 주장을 살짝 이렇게 바꾸겠다. ‘동남아 스타급 선수들이 좋은 대우를 받으며 K리그에서 가성비 좋은 활약을 할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를 저렴하게 영입해 오랜 시간 적응기를 두고 키우면 성공 가능성이 그래도 더 높아진다.’ 얍삽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과거 내 주장이 틀렸기 때문이다. 쯔엉은 영입 당시 프런트와 감독의 의견 충돌로 K리그에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이후에도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R리그에서 경쟁력을 키운 좋은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쯔엉은 5개월 전보다 더욱 성숙한 플레이로 인천 팬들에게 인사했다. 특히나 정확한 패싱력을 갖춘 쯔엉이 인천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파이터형 선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인천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타겟맨 케빈과 쯔엉의 호흡도 기대한다.

물론 한 경기 반짝했던 걸 수도 있다. 쯔엉이 임팩트 있는 모습을 더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고 광주전이 ‘인생 경기’였을 수도 있다. 완벽히 그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보여준 것도 많이 없고 풀타임 활약하는 모습도 보지 못해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쯔엉은 광주전 한 경기만으로도 기대를 갖기에 충분한 플레이를 선보였고 나는 동남아 선수에 대한 선입견을 가졌던 걸 꼭 칼럼을 통해 사과하고 싶었다. ‘기쯔엉용’, 아니 쯔엉이 앞으로도 동남아 선수들의 편견을 깨주는 역할을 해주길 응원한다. 내 주장에 오류가 많다는 걸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마지막으로 핑계 한 번만 더 대겠다. “아, 축구 몰라요. 베트남, 역으로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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