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리어트] 결국 망한 스타리그, 결코 남 일 아니다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기에는 너무나도 씁쓸하고 충격적이다.

14년 간 명맥을 유지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이하 스타리그)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18일 성명서를 내고 “지속적인 참가 팀 수 축소와 선수 부족, 리그 후원사 유치 난항,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 등으로 인해 더 이상 프로리그를 유지할 수 없는 동력을 찾기 어렵다고 판단, 스타리그의 종료를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과거 스타리그는 한국의 대표 프로리그 중 하나였다. 한국 스타리그는 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팀 단위 e스포츠 리그였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던 선수들이 팀으로 묶이면서 ‘게임단’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여기에 기업들의 후원과 팬들의 관심이 겹쳐지면서 제대로 된 프로리그로 성장했다.

지금은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임요환, 홍진호 등이 스타리그를 통해 전설이 됐고, 부산 광안리에서 열리던 스타리그 결승전은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들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TV를 보며 듣던 캐스터와 해설가의 찰진 중계는 스타리그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스타리그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리그의 폐지가 아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e스포츠협회는 스타리그 운영을 종료하면서 여러가지 이유를 댔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프로 스포츠 리그에 가장 치명적인 존재, ‘승부조작’이었다.

스타리그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0년이었다. 이미 2008년부터 사설 도박 사이트에서는 스타리그에 대한 베팅이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었다. 돈이 걸리는, 이른바 수익성이 확인된 리그에 검은 손길이 다가가는 것은 어찌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고 결국 대형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마재윤, 진영수 등 유명 선수가 가담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이후 흔들리는 스타리그의 모습은 ‘승부조작 여파’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에게 더더욱 충격이었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스타리그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STX Soul, MBC게임 히어로, 위메이드 폭스 등이 해체됐고 e스포츠 전문 방송사인 MBC게임마저 폐국됐다. 특히 게이머들을 위해 창단됐던 공군 ACE의 해체는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이 쯤 되면 정신 차리고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협회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또다시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5년 뒤인 2015년 스타크래프트2 경기에도 승부조작이 발생한 것이다. 프로게이머를 포함해 게임단 감독, 전직 e스포츠 기자 등이 피의자로 기소됐다. 두 번의 승부조작 사건은 스타리그에 심각한 타격을 안겼고, 결국 ‘리그 운영 종료’라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승부조작 방지 교육
승부조작 방지 교육도 꺼져가는 리그를 살릴 수 없었다 ⓒ 한국e스포츠협회 제공

나는 무엇보다 스타리그가 운영을 종료한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정말로 승부조작으로 인해 리그가 망가지고, 결국 사라지는 국내 첫 사례가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승부조작 및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러 프로 스포츠 리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껏 ‘승부조작하면 구단이 망하고 리그가 망하고 스포츠가 망한다’고 열심히 외쳐왔지만 “우리나라 스포츠는 망하지 않던데? 지금도 이미 망한 리그인데 더 망할 게 어디 있겠어”라고 반문한다면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승부조작을 했다고 선수나 구단에 엄청난 중징계(물론, 바깥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이야기다)를 준 것도 아니고, 리그가 통째로 없어지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옆 나라 대만에서는 프로야구 승부조작이 터지고 나서 리그 폐지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대만 프로야구의 케이스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이러다 리그 망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는 동안 스타리그가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궁금하다. 다른 프로 스포츠 단체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제발 그저 포털 사이트 클릭하다가 순위권에 관련 소식이 올라온 것을 보고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곧바로 다른 기사를 클릭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스타리그의 해체는 그들에게 ‘다음은 너희다’라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예고장과도 같다.

단순히 '교육' 만으로 해결될 사안이었다면,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 ⓒ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제공
단순히 ‘교육’ 만으로 해결될 사안이었다면,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 ⓒ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제공

축구, 야구 등 종목을 떠나서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한 프로 스포츠 단체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대처를 해왔다. 수사와 처벌은 검찰이 하고, 단체는 그저 선수 제명만 시키고 기자회견을 열어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늦어도 몇 년 뒤, 빠르면 몇 달 뒤 똑같은 일을 마주한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해놓고서 학습 효과는 제로에 가까운 셈이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일반인, 즉 팬들이 더욱 비분강개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들은 라이벌 팀을 눌러 버리려고, 평소에 꼴 보기 싫은 선수 매장 시키려고 강력한 징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승부조작은 도려내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 온 몸에 퍼지는 암세포와도 같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침은 자신들이 아끼는 팀, 그리고 선수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절규다.

스타리그의 사례는 명확하게 승부조작의 결말은 참담한 비극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어느 프로 스포츠보다 탄탄한 팬층을 자랑했다. 축구장, 야구장 안가본 사람 찾는 것보다 PC방 안가본 사람 찾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한 팬층을 바탕에 두고도 스타리그 종사자들은 승부조작의 유혹에 빠졌고, 결국 이것은 팬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팬들이 외면하니 기업 입장에서도 팀을 후원할 이유가 없고, 리그를 살리자는 공감대 역시 형성하기 어려웠다.

e스포츠협회가 리그 운영 종료를 선언하면서 스타리그에 참여했던 7개 팀 중 5개 팀이 해단한다. 이제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은 소속팀의 보호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알아서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일부 선수들은 개인 방송을 하거나, 다른 종목으로 전환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더라도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이제는 한국 프로 스포츠 모두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스타리그가 승부조작으로 망했다. 그리고 팀이 없어지고, 리그가 없어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스타리그가 없어진 e스포츠 업계의 앞날은 곧 승부조작을 겪었던 다른 종목의 앞날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 프로 스포츠에 닥칠 비극은 이제 시작일 지도 모른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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