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나이티드 조성환 감독은 하루아침에 수석코치로 내려앉았다. ⓒ제주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걸 알았고 삼자대면을 하게 됐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여자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두 명 다 만날 거야. 그러니 그렇게 알아.” 이때부터 나와 다른 남자친구와 그녀의 이상한 연애가 시작됐다. 이거 무슨 말도 안 되는 막장 드라마 스토리냐고 반문할 이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K리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한 팀에 감독이 두 명씩 있는 구단이 졸지에 세 개나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제주유나이티드와 전남드래곤즈, 부천FC 등에서 지도자 최고 자격증인 P급 라이선스를 갖춘 새 감독을 선임하며 기존 감독들이 수석코치로 강등된 것이다. 그렇지만 수석코치로 강등된 이들을 단순한 수석코치로 바라보는 선수들은 없다. 감독만 두 명인 셈이다.

볼수록 민망한 ‘한 벤치 두 감독’

내년부터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려면 감독이 P급 라이선스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 세 팀 기존 감독은 P급 라이선스 없이 A급 라이선스만으로 지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이런 ‘한 벤치 두 감독’이라는 촌극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K리그 클래식 그룹A에 속한 제주와 전남, FA컵 4강에 올라있는 부천 등은 혹시 내년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얻게 되더라도 P급 라이선스를 보유한 감독이 없으면 이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실제로 지난 주말 K리그에서는 이 감독들이 굉장히 난처한 모습으로 벤치를 지켜 보는 이들까지도 민망하게 했다. “감독님”하고 부르면 돌아보는 이들이 둘이란 얘기다. 수석코치로 강등됐지만 여전히 감독 같은 기존 감독도 민망하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벤치에 앉게 된 신임 감독도 민망하다.

일단 구단의 처사가 잘못됐다. P급 라이선스를 보유하지 않은 감독을 선임한 건 애초부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AFC 챔피언스리그에만 나가지 않으면 P급 라이선스보다 한 단계 아래인 A급 라이선스만 가지고도 충분히 팀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AFC에서 오래 전부터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 중의 하나로 감독의 P급 라이선스를 명시해 놓았는데 이를 무시한 건 구단의 명백한 잘못이다. 이건 기존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신임 감독의 자존심에도 먹칠을 하는 일이다. 경기 종료 후 감독 기자회견을 의무적으로 하는데 늘 여기에 초대 받다가 이제는 경기가 끝나면 쓸쓸히 돌아가야 하는 전임 감독들은 무슨 죄인가. 두 명의 감독 중 누구를 비춰야 할지 몰라하는 카메라 감독들은 또 무슨 죄인가. 구단 스스로 이 잘못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내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행정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미 차근차근 준비해 AFC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갖췄는데 K리그는 이런 ‘한 벤치 두 감독’이라는 촌극이 2016년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K리그 챌린지 부천이 P급 라이선스를 보유한 감독을 미리 선임하지 못한 건 잘못이지만 사실 부천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눈앞에 둘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제도적으로 K리그 구단들이 아무런 결격 사유 없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일을 처리했어야 한다. 일본하고 비교하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오늘은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에 비해 얼마나 후진적인 행정에 그치고 있는지 확실하게 비교해보려 한다.

일찌감치 시작된 일본의 S급 라이선스 제도

일본축구협회는 AFC의 P급 라이선스와 동등한 조건을 갖춘 S급 라이선스를 만들었다. 이 체계를 제대로 갖춘 건 우리보다 20년이나 먼저인 1996년부터다. 1995년까지는 2주간의 집중 수업을 통해 S급 라이선스를 발급해 S급 라이선스 보유자 69명을 배출한 일본축구협회는 1996년부터는 보다 더 확실하고 세밀한 체계를 갖췄다. C급에서 B급, A급 지도자를 거치면서 일정 기간의 점수를 따야 S급 라이선스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S급 라이선스 발급도 막 해주질 않았다. 1996년에는 23명의 S급 라이선스 합격자가 나왔고 1997년에는 단 18명이 합격했을 뿐이다. 2008년이 되어서야 최초로 S급 라이선스 수강자 전원(24명)이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다. 매년 20여명 남짓한 감독들만이 S급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다. 어른들이 보통 “기술 배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런 기술은 배워놓으면 언제든 써먹을 기회가 있다.

일본축구협회의 목표는 이 독자적인 S급 라이선스가 AFC가 인정하는 P급 라이선스로 공식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AFC는 일본축구협회의 독자적인 라이선스 발급이 영 마땅치 않았다. 월반 자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일본축구협회는 A매치에 2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나 J리그에서 2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에게 B급 라이선스 획득 자격을 줬고 곧바로 이후 S급 라이선스에 도전할 수 있는 월반 규정이 있었다. 그런데 AFC가 이를 문제 삼았다. 여기에 더해 2008년경 J리그는 월반 혜택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S급 라이선스를 획득한 젊은 40대 지도자들의 경기력이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월반으로 S급 라이선스를 얻은 이들이 강등 위기에 처하는 등 부진한 경기력에 머물렀고 한 유명 선수는 S급 라이선스에 여러 번 탈락하는 등 월반 시스템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유명한 선수였어도 체계를 밟지 않으면 지도자 중 최상의 레벨의 자격증을 발급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축구협회는 2008년부터는 아예 월반 제도를 없앴다. 아무리 이름을 날렸던 선수라도 반드시 B급에서 A급을 거쳐 S급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J리그 지도자들의 질적 향상을 노리면서 AFC로부터 S급 라이선스를 P급 라이선스로 인정받기 위한 방안이었다. “난 자상한 사람이 좋다”고 여성이 자기 이상형을 이야기하자 갑자기 의자를 빼주고 가방을 들어주면서 그녀의 이상형에 가까운 조건을 충족시키려는 셈이었다. 여기에 AFC는 일본축구협회의 S급 라이선스 취득 과정의 커리큘럼을 면밀히 관찰했고 이에 만족했다. 그러면서 일본축구협회는 그렇게 AFC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며 S급 라이선스를 AFC의 P급 라이선스로 인정받았다. 한국은 국내에서 발급받은 A급 라이선스가 AFC A급 라이선스로 인정받을 뿐 그 이상의 단계는 없다. 우리나라 운전 면허증으로 웬만한 나라에서는 다 운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축구 감독 자격증으로는 AFC에서 최고 지도자로 인정을 못 받는 거다.

장외룡 감독은 일본에서 S급 라이선스를 받은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이다. 장외룡 감독 외에 윤정환 감독과 조귀재 감독도 일본 S급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J리그에는 설 수 없는 A급 감독 라이선스

J리그는 아예 S급 라이선스, 혹은 AFC의 P급 라이선스에 상응하는 자격증이 없으면 감독을 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다보니 P급 라이선스가 아니고 A급 라이선스만 보유하고 있어도 감독을 할 수 있는 K리그처럼 갑자기 주먹구구식으로 ‘한 벤치 두 감독’을 선임하는 촌극을 막았다. 물론 J리그는 라이선스 발급 규정을 만들면서 과도기를 겪자 유예기간을 뒀다. 그냥 “오늘부터 이렇게 합시다”가 아니었다. 물론 그 와중에 편법 아닌 편법도 있었다. 1999년 재일교포 3세 이국수 감독이 도쿄베르디 신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P급 라이선스가 없었다. 그러자 도쿄베르디는 마츠 히데키를 신임 감독으로 앉히고 이국수 감독에게는 ‘총감독’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실질적으로는 이국수 감독이 팀을 이끌었지만 그에게는 J리그 팀을 이끌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뒤 이번에는 1998년 이미 S급 라이선스를 획득한 장외룡 감독이 선임됐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국수 총감독이 실질적인 감독이었다.

하지만 이국수 총감독의 도쿄베르디 생활은 2년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J리그에서 S급 라이선스 없이도 총감독으로 팀을 지휘할 수 있는 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편법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이국수 총감독은 팀을 떠나야했다. 그는 이후 아마추어 팀에서 임시 지도자 역할을 맡았고 B급 라이선스도 2005년이 돼서야 땄다. 일본에서는 S급 라이선스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고 할지라도 아예 프로팀을 맡을 수가 없다. 반대로 S급 라이선스만 따면 이걸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P급 라이선스의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다. AFC가 일본의 S급 라이선스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출신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감독은 일본에서 S급 라이선스를 따고 요코하마 FC 감독으로 활약한 뒤 호주 시드니FC로 가 P급 라이선스와 동등한 대우를 받기도 했다.

현재 울산을 이끌고 있는 윤정환 감독도 J리그에서의 지도자 생활 덕분에(?) 일찌감치 S급 라이선스를 따야했다. 2008년 사간도스에서 은퇴한 뒤 코치 생활을 시작한 윤정환은 2010년 수석코치 겸 감독대행직을 수행했지만 곧바로 정식 감독이 되지 못했다. S급 라이선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곧바로 1년간의 감독대행직을 수행하면서 S급 라이선스를 땄고 2011년 사간 도스의 정식 감독이 될 수 있었다. 만약 K리그처럼 P급 라이선스, 혹은 S급 라이선스 없이도 감독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었더라면 윤정환 감독은 부랴부랴 집중해서 이런 자격증을 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엄격한 J리그의 규정 때문에 윤정환 감독은 ‘한 벤치 두 감독’이 등장한 K리그에서도 P급 라이선스를 뽐내고 있다. 빠른 년생이 판매 제한 나이에 걸려 슈퍼에서 담배를 사지 못할 때 혼자 당당히 신분증을 내밀고 담배를 사던 만19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윤정환 감독이 아마 그런 심정 아닐까.

장외룡 감독은 일본에서 S급 라이선스를 받은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이다. 장외룡 감독 외에 윤정환 감독과 조귀재 감독도 일본 S급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준비했나

지난 2014년 12월 일본에서 놀라운 보도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K리그 포항스틸러스를 이끌던 황선홍 감독이 팀을 떠나 J리그 세레소오사카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였다. 이때 황선홍 감독은 “포항과 나를 흔들지 말라”고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는데 사실 황선홍 감독은 이때 J리그에 갈 수도 없는 자격이었다. 이때 황선홍 감독은 S급, 혹은 P급 라이선스가 없는 상황이어서 J리그 감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 언론들은 “황선홍 감독이 S급 라이선스가 없다. 협상 교섭이 도중에 파탄났다”고 밝힌 바 있다. 황선홍 감독은 영입 제안이 오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영입 제안 여부를 떠나 황선홍 감독이 당시에는 일본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J리그의 S급 라이선스에 대한 규정은 엄격하다. 바그너 로페스 또한 감바 오사카 감독을 맡을 뻔하다가 S급 라이선스가 없어 아예 물거품이 된 적도 있다. 참고로 황선홍 감독은 당시 대한축구협회에서 여는 P급 라이선스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현재에는 이 P급 라이선스를 획득한 상황이다.

일본과 다르게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 구단은 감독 라이선스와 관련해 제도적으로 준비가 전혀 되질 않았다. J리그가 1993년 출범 당시부터 이 문제에 공을 들였고 지금까지 매년 20명 안팎의 S급 라이선스 지도자를 배출하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발급하는 S급 라이선스를 무려 462명이 따 그들의 지도자 풀이 넓어지는 동안 우리는 고작 95명의 P급 라이선스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그쳤다.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를 포함한 프로 무대에서는 23명의 감독 중 단 11명만이 P급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A급에서 P급 라이선스로 넘어가는 시기만 2년이 걸리고 P급 라이선스 연수는 국내에서 1차로 3주간 교육을 마친 뒤 해외에서 실시하는 2·3차 교육까지 마쳐야 하는데 연수를 마치더라도 라이선스 발급은 내년에나 가능해 감독들이 바로 이를 취득할 수도 없다. 여기에 프로와 아마추어 등 지도자 수를 적절히 분배해 1년에 20명 남짓만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프로 감독들이 대거 이에 도전할 수도 없다.

전혀 이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두 명의 감독이 존재하게 만든 구단의 잘못도 크다. 이미 2007년 AFC에서 공표하고 2010년 이를 수정해 2017년부터 P급 라이선스를 가져야 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설 수 있다고 일찌감치 밝혔는데 K리그 구단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시즌 도중 3주 동안 유럽으로 연수를 가야하는 상황에서 코치가 팀을 비우고 P급 라이선스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데 멀리 봐서 P급 라이선스를 위해 시즌 도중 이탈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는 일본의 S급 라이선스와 마찬가지로 P급 라이선스를 인정받을 수 있는 독자적인 과정도 개발하지 못했다. 지도자 강습회만 열어줄 게 아니라 일본처럼 보다 편리하게 라이선스를 딸 수 있는 행정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 크다.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모두의 잘못이다.

남은 시즌 동안 한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명의 감독을 보는 일은 당사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민망한 일이다. 앞으로도 남은 경기에서 한 벤치에 두 명의 감독이 앉아 있는 모습은 여자친구와 그녀의 또 다른 남자친구, 그리고 내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다. 팝콘을 집으려다 또 다른 남자친구와 손이 맞닿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이런 막장드라마가 실제로 벌어진 책임은 협회와 연맹, 구단 모두에 있다. 우리도 시간될 때 자격증 열심히 따 놓자. "기술 배워서 자격증 따 놓으라"는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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