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북으로 간 안데르센, ‘동화’냐 ‘아오지’냐

북한 안데르센 감독
쌀 10포대, 아니 10억 원이 넘는 돈을 받고 '입북'한 안데르센 감독. ⓒ안데르센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북한 축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5월 노르웨이 출신 요른 안데르센 감독을 선임했다. 놀랄 만한 일이다. 폐쇄적인 북한에서 외국인이 떡하니 대표팀 벤치에 앉게 됐다는 건 김정은이 다이어트를 해 스키니 바지를 입는 것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물론 사실은 아니지만 경기에서 지면 아오지 탄광에 보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북한 대표팀은 어째서 이 이방인을 감독으로 앉혔을까.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노르웨이에서, 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북한으로 떠난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안데르센은 정말 ‘종북’일까. 모든 게 미스터리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 축구의 외국인 감독 선임 과정과 상황에 대해 공개하려 한다.

외국인 감독과 미국으로 간 북한 대표팀
안데르센 감독 영입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체르나이 팔 감독부터 언급해야 한다. 헝가리 출신으로 1950~60년대 활약했던 체르나이는 은퇴한 뒤 1977년 프랑크푸르트 수석코치를 거쳐 바이에른뮌헨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2년 동안 이곳에서 수속코치 생활을 한 체르나이는 1979년 로란트 줄러 감독 후임으로 팀을 맡게 됐다. 파울 브라이트너와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를 앞세운 체르나이는 6년 만에 바이에른뮌헨을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고 UEFA컵까지도 들어올렸다. 체르나이는 4년 동안 바이에른뮌헨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당시 이미 최고의 스타 반열에 오른 게르트 뮐러의 행동이 건방지자 그를 과감히 기용하지 않을 정도로 체르나이 감독의 ‘포스’도 대단했다. 하지만 1983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체르나이는 이후 떠돌이 신세가 됐다.

그리스 PAOK를 비롯해 벤피카(포르투갈), 도르트문트(독일), 페네르바체(터키), 프랑크푸르트(독일), 영 보이즈(스위스), 헤르타 베를린(독일)에 이르기까지 8년 동안 무려 7개 팀을 전전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바이에른뮌헨에서의 명성도 점점 잃어 갔고 지도자로서의 은퇴를 눈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이때 체르나이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 1991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봉 50만 달러에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지도원 동지가 돼 주시겠습네까.” 그 팀은 바로 북한 대표팀이었다. 60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유럽 무대에서도 지도력을 잃어가던 체르나이는 곧장 북한의 제안을 수락했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헝가리 출신이라 북한에 대한 거부감도 적었다.

북한 내에서도 외국인 감독 선임에 대한 논쟁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당시 북한 대표팀 단장은 “축구 실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1991년 6월 북한은 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 대한민국 성인 대표팀의 첫 외국인 감독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부임한 게 1994년 7월이니 북한의 인사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북한은 체르나이 감독 선임 이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임 넉 달 만에 미국 전지훈련을 갈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체르나이 감독이 이끄는 북한 선수단은 그렇게 1991년 10월 15일 워싱턴 땅을 밟았다.

체르나이는 무늬만 감독이었다?
당시 경기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미국의 심장부에서, 그것도 구기종목으로는 두 나라 사이에 열린 첫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워싱턴 하늘에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걸렸고 경기 시작 직전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진 것도 충격 그 자체였다. 이날 경기장에는 1만 6천여 관중이 몰렸고 대한민국 교포들도 500여 명이 넘게 모여 북한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건 이 경기에서 체르나이 감독이 이끄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적지에서 2-1 승리를 거뒀다는 점이다.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이 이끄는 미국은 이전까지 9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지만 결국 북한에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북한 축구가 그만큼 강했다는 의미다. 체르나이 감독의 축구가 성공적으로 북한에 안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점점 북한 고위층의 간섭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대표팀 윤명찬 코치가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체르나이 감독은 객원 코치에 가까운 고문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선수들에게는 윤명찬 코치를 비롯한 내국인이 직접 작전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무늬만 감독인 체르나이를 대동한 북한은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단 1승을 거두는 데 머물며 탈락하고 말았다. 체르나이 감독은 도하에서 곧바로 고국으로 돌아갔고 외국인 감독 선임을 주장했던 단장과 코치 등은 중징계를 당했다. 단장은 책임을 지고 노동자로 신분이 내려갔고 윤명찬 코치 또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1999년 탈북해 한국행을 선택했다. 체르나이 감독도 고국으로 돌아가 소프론을 1년간 맡은 이후 축구계를 떠났다.

1993년 체르나이 감독이 떠난 뒤 북한 축구는 아예 국제 무대에 얼굴도 내밀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하향세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체르나이 감독은 황금 시대가 끝나가던 바이에른뮌헨을 다시 정상으로 올려 놓은 경험 많은 지도자였다. 하지만 전권이 없던 체르나이 감독은 결국 북한 축구를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개방과 적극적인 지원을 선언하며 파격적으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던 북한은 이때부터 아예 문을 닫아버렸고 그들이 다시 국제 무대에 나서기까지는 무려 12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사이 세계 축구는 성장했고 북한은 오히려 퇴보해 있었다. 체르나이 감독을 파격적으로 선임하며 미국 전지훈련까지 떠나던 북한은 더 이상 없었다.

북한 안데르센 감독
‘복지의 천국’ 노르웨이에서 살다가 ‘인권의 사각지대’ 북한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아마 이 남자가 처음일 것이다. ⓒ안데르센 홈페이지

대북제재, 스포츠에도 제약 생겼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기까지 북한은 44년이 걸렸다. 2010년은 북한 축구에 있어 영광스러운 한해였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북한은 또 한 번 좌절하고 말았다. 3차예선에서 2승 1무 3패 3득점 4실점하며 아예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으며 다시 세계 무대에 호기롭게 도전하던 북한의 상승세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경기에서 2-1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 막판 6분 동안 내리 두 골을 내주며 필리핀에 통한의 2-3 패배를 당했고 결국 우즈베키스탄에 최종예선 진출 티켓을 내준 것이다. ‘체육 강국’을 선언한 김정은으로서는 영 체면이 서지 않는 결과였고 결국 김창복 감독은 경질됐다.

북한은 대북 제재로 스포츠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지난해 칠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낸 북한 미드필더 최성혁은 지난 3월 이탈리아 프로축구 명문 피오렌티나 산하 프리마베라(청소년팀)와 계약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는 첫 북한 축구선수가 됐다. 하지만 두 달 뒤 이탈이아 의회가 최성혁의 피오렌티나 입단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위반한 게 아닌지 검토해 달라며 대정부 질의서를 발송했다. “북한이 중국이나 홍콩 등 제3국을 거친 우회 송금 방식으로 대북 경제 제재를 피해 선수들의 월급을 갈취하고 있지 않나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고 결국 이에 부담을 느낀 피오렌티나는 최성혁을 방출해 버렸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U-17 월드컵 주역이었던 정창범과 이철성 등 이탈리아 진출을 노리던 동료들도 꿈을 접어야 했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해외 지도자를 데려오는 것 뿐이었다. 최성혁을 비롯한 어린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거절 당하기 전부터 북한은 외국인 감독 영입을 추진했다. 이미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상황에서 2019년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예선을 준비해야 하는 북한은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체르나이 감독 이후 무려 23년 만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한 것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인 탓에 김정은의 특별 지시가 내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북한이 처음 원한 건 독일인 감독이었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대다수 지도자들이 북한으로 가길 꺼려했고 여론에 대한 부담도 느꼈기 때문이다. 연봉은 파격적인 조건이었지만 북한까지 가 모험을 걸고 싶어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북한의 눈에 들어온 한 지도자가 있었다. 바로 요른 안데르센이었다.

북한 안데르센 감독
“동무. 웃으라우.” ⓒ노르웨이언론 VG 홈페이지 캡처

북한 대표팀 수장 된 노르웨이 출신 감독
노르웨인 출신이지만 1993년 독일 시민권을 획득한 감독이었으니 안데르센은 북한이 원하던 지도자 중에 한 명이었다. 안데르센은 1990년 프랑프푸르트에서 뛰며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리그 득점왕에 오른 스타 출신이었다.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활약하면서 27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기도 한 안데르센은 은퇴 이후에는 스위스 루체른 유소년 팀을 시작으로 독일 마인츠 등을 거치며 지도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지난 해에는 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감독을 맡았는데 여기에서 황희찬을 지도하기도 했다는 일부 국내 언론 보도도 있었지만 황희찬이 속한 팀은 오스트리아 최강인 레드불 잘츠부르크였고 안데르센 감독이 이끌던 팀은 2부리그의 최약체 팀이었다. 안데르센 감독은 선수 시절 경력이 화려했지만 지도자로서는 그리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독일 출신 지도자들이 모두 북한 감독직 제안을 거절한 상황에서 북한은 안데르센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무려 10억 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했고 체르나이 감독 시절과는 다르게 대표팀 운영의 전권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북한은 지난해 11월 개인 에이전트를 통해 안데르센 감독과 접촉했고 독일 뮌헨에서 네 차례 만났다. 안데르센 감독은 처음 이 제안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유럽 무대에서 그리 경쟁력이 없던 안데르센 감독으로서도 고액 연봉을 받으며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제안은 거부할 수 없었다. 여기에 전담 운전기사와 개인 비서, 통역사 등도 북한 측에서 모두 지원하기로 했다. 안데르센 감독은 지난 4월 중순 북한의 제안을 수락했고 5월 1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고려항공으로 평양에 입국했다. 가족은 모두 고국에 두고 홀로 북한으로 들어간 것이다. 계약기간은 일단 올 12월 31일까지로 정했다.

평양에 도착한 안데르센 감독은 영문도 모른 채 승용차에 올랐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곳은 우리가 알고 있던 허름한 북한이 아니었다. 외국인들과 최고위 북한 간부들만 묵는다는 평양 최고급 호텔인 고려호텔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45층 규모의 어마어마한 호텔이었다. “이제부터 여기에서 생활하시라요.” 안데르센 감독은 고려호텔 30층에 묵으면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특권까지도 누리게 됐다.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안데르센 감독은 평양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안데르센 감독은 곧바로 북한 국내리그 경기장을 돌며 선수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감독이 왔다는 소식에 기존 국가대표들도 깜짝 놀랐다. J2리그 V바렌 나가사키에서 뛰는 리영직은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거짓말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랐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기대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외국인 감독을 향한 북한의 달라진 시선
북한 축구 관계자들도 안데르센 감독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안데르센은 몹시 침착한 사람이다. 훈련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자세하게 훈련 내용을 소개해 주고 왜 우리가 이 훈련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그를 믿는다. 일단은 단기 계약이지만 계약은 매번 갱신될 것이다. 우리도 감독이 1년 만에 대표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북한에는 이미 세르비아 출신의 모로 브라니슬라브 감독이 여자 배구 대표팀과 4.25 여자 배구단 감독직을 맡고 있어 외국인 감독에 대한 거부감도 덜했다. J리거가 많은 북한은 안데르센 감독을 위해 J리거 정보를 대거 수집해 주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북한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고 이후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대표팀 코치로도 활약했던 재일본조선인축구협회 김광호 부회장이 이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J리그에서 뛰는 북한 선수 18명의 자료를 평양에 있는 안데르센 감독에게 보내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북한도 나름대로 외국인 지도자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어느덧 통역 없이도 영어로 안데르센 감독과 선수들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도 이뤄졌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해외 전지훈련도 치렀다. 지난 8월 말레이시아로 날아가 이라크와 두 차례 비공개 평가전을 치렀고 중국 상하이에서도 아랍에미리트연합과 평가전을 통해 격돌했다. 폐쇄적이었던 북한 축구가 많이도 변한 것이다. 이라크와의 첫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고 두 번째 맞대결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한 북한은 UAE전에서도 2-0 완승을 챙기는 등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 두 팀 모두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오른 팀이니 북한의 선전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비록 베트남에 2-5로 패했지만 이후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 뼈아픈 패배를 선사한 필리핀을 상대로도 적지에서 3-1 완승을 챙기는 등 북한의 분위기는 좋다.

지금까지 안데르센 감독 부임 이후 북한은 만만치 않은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3승 1무 1패의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안데르센 감독은 해외 원정 경기를 다녀온 뒤 북한축구협회의 세심한 배려에 한 번 더 놀라기도 했다. 원정 경기를 떠나기 전 “잔디 상태가 아쉽다”고 하자 훈련장의 잔디를 완벽히 보수해 놓았기 때문이다. 체르나이 감독 시절과는 달리 북한이 외국인 감독과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의 전지훈련도 계획 중이고 북한 선수단은 말레이시아 해외 평가전 당시 휴양지를 방문하기도 하는 등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경기 기회가 적어 불만”이라는 안데르센 감독의 요구에 따라 북한축구협회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A매치를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북한 안데르센 감독
말레이시아 원정경기를 떠나 휴양지에서 휴식을 즐기는 안데르센 감독과 북한 선수들의 모습. 대천 해수욕장 아니다. ⓒ노르웨이언론 VG 홈페이지 캡처

‘동화’냐 ‘아오지’냐, 북으로 간 안데르센의 운명은?
물론 안데르센 감독을 비판하는 시선도 많다. 한 노르웨이 축구계 인사는 공식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한 전체주의 국가에서 직업을 갖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안데르센이 많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든 정부의 축구감독을 수락하다니 믿기 어렵다.” 페데르 에게네스 국제엠네스티 노르웨이지부 사무총장도 “안데르센 감독이 북한으로 간 건 폐쇄적인 북한 정권을 위해 일한다는 뜻이다.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안데르센 감독은 이에 대해 반박했다. “북한은 그저 국제축구연맹의 한 회원국일 뿐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없다. 내가 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축구를 하러 온 것이다.”

안데르센 감독은 그다지 잘 알려진 감독이 아니다. 유럽 무대에서도 지도자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북한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북한은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걸 단순히 한 감독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일로 봐서는 안 된다. 20여년 만에 외국인 감독에서 문호를 개방한 북한이 이번 결과에 따라 또 다시 문을 닫을지 아니면 개방으로 갈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과연 안데르센과 북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안데르센이 북한에서 ‘동화’를 쓸 수 있을까. 아니면 안데르센이 ‘아오지 탄광’으로 가게 될까.

footballavenue@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Syra2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