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006년 국내에서는 굉장히 생소한 이란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의 이름은 '오프사이드'였다. 이름만 들어도 축구 냄새가 팍팍 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다.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경기지만 이란의 여성 팬들은 경기장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른다. 이란의 여성들은 축구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녀들은 경기장 안에 잠입하기로 결심하고 모험을 감행한다. 이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바로 '오프사이드'다.

오프사이드의 장르는 코미디와 드라마다. 여성들이 축구장에 잠입하는 과정을 위트 넘치게 그린다. 하지만 막연히 웃기만 할 수는 없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웃음 속에서는 차별받는 이란 여성들의 현실이 그려지고 있다. 이란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여성이 축구 경기장에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주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타며 '이란의 현실 고발 영화'라는 평가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개봉된 지 10년이 지났다. 한국의 축구팬들은 곧 다가올 이란과의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란의 치졸한, 한편으로는 찌질하다 싶을 정도의 홈 텃세와 그 동안 서로 엮여왔던 다양한 사건사고들은 이란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앞서 얘기했던 영화 '오프사이드'에 관한 얘기다. 자갈 잔디밭, 케이로즈 감독의 주먹감자 등에 묻혀 우리는 정작 반드시 바라봐야 할 이란의 치부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바로 억압받는 이란 여성의 인권이다. 그들은 동등한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축구 경기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믿는 종교 율법으로 인해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영화 '오프사이드'가 세상에 공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란은 변한 게 없다. 지금부터 한 번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여성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다? 이슬람 혁명으로 시작된 억압

이란이 처음으로 여성들의 경기장 출입을 금한 것은 1979년이었다. 전국의 종교지도자들이 국왕에 반대해 궐기했고,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란 국왕이 기독교 위주의 서방 세계에 정신이 팔려있다"며 반정부투쟁에 나섰다. 결국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완성됐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세속주의에 물든 이란을 다시 이슬람 국가로 되돌리겠다며 말도 안되는 규정들을 만들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여성의 경기장 출입이다. 그들이 밝힌 이유도 코미디다. 이슬람 율법 상으로는 여자가 외간 남자의 맨살을 보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남성 팬들의 외설적 행위로부터 보호하겠다'라는 궁색한 이유를 댔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네가 짧은 치마를 입으니까 그런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수준의 한심한 이야기다.

이후로 수십 년 동안 이란의 경기장에는 여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란 여성들이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려고 해도 종교경찰이 그들을 단속했다. 경기장에 진입하다가 적발되는 여성들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가게 된 여성은 <스포츠니어스>의 김현회 대표가 칼럼에서 말했듯이 한국 여성들이었다. 2004년 3월 아테네 올림픽 최종예선 이란 원정경기에 한국 여성들은 한국, 그리고 세계 축구계의 노력 끝에 아자디 스타디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히잡을 착용해야 하는 등 쉽지 않았지만 이란 축구의 역사에서는 상당히 주목 받을 만한 사건이었다.

이후 원정 여성팬들은 아자디 스타디움에 입장 가능했지만, 이란 여성들은 여전히 경기장 출입이 금지됐다. 아무리 보수적인 이란 사회라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영화관에 남녀 동반 입장을 허용하는 등 일부 규제가 완화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대해서는 유난스러웠다. 영화 '오프사이드'에서 주인공 소녀들은 말한다. "도대체 왜 우리를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거야? 영화관은 되는데?"

버스를 타고 경기를 보러가도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경기장 앞까지다 ⓒ 영화 '오프사이드'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이란 여성들의 인권을 위한 시위가 전개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여성 인권 운동가 다리아 사파이는 올림픽 배구 경기장에서 '이란 여성들을 경기장에 출입하게 해달라'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쫓겨났다.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정치적인 구호이기 때문에 퇴장 시켰다"고 말했지만 "이는 정치적인 구호가 아닌 성 차별 해소를 위한 구호다"라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국제 스포츠계 역시 성 차별주의적인 이란의 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 배구다. 국제배구협회(FIVB)는 2014년 11월 "이란 정부가 여성의 스포츠 참여권 차별을 철폐할 때까지 이란에서 국제대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이란 정부는 여성 스포츠 관람 금지 종목에 배구를 추가했고, 배구를 보러가는 여성 관중에게 '창녀'라고 부르는 등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 쯤 되면 할 말이 없다.

여성 팬들과 셀카 찍으면 경고 받는 선수들

여성의 박해는 단순히 경기장 출입에 한하지 않는다. 이란은 축구 선수들이 이란 여성들과 셀카를 찍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슬람 율법이 남녀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수 마저도 금지하는 이란 사회에서 둘이 함께 셀카를 찍는다는 것은 '하늘이 노할 일'이다.

2015 AFC 아시안컵이 열릴 당시 이란 선수들은 호주에서 이란 여성들과 셀카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에 본국에서 구설수에 올랐다. 우리나라 여성 팬들이 손흥민, 기성용 등 인기 선수들과 셀카를 찍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프로 선수들에게 팬들과의 사진 촬영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반드시 응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에서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호주는 이란이 아니기 때문에 이란 여성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복장으로 경기장에 출입하고,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선수들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란 축구협회는 이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여성 팬들과 사진을 찍은 선수들은 협회로부터 경고를 받아야 했다. 이유 역시 기가 막히다. "여성들이 나중에 이 사진을 국가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선수들이 자신들을 성희롱 했다고 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자국 여성들을 잠재적인 '꽃뱀' 취급하는 셈이다.

'성적지상주의'에는 여성 이용하는 이란의 이중적 잣대

흥미로운 것은 여자가 축구를 보거나 한다는 사실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보수 국가 이란이 여자 축구 선수들을 포함해 여성 스포츠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란 여성들이 스포츠 선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눈물겹다. 나 같았으면 정말 '더러워서 때려쳤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하는 모든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야 한다. 스포츠로 국위선양을 하라는 건지 이슬람 율법을 홍보하라는 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결혼한 여성이 선수로 계속 뛰기 위해서는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란의 여자축구 간판 스타 니루파 아달란은 남편이 출전을 허락하지 않아 2015 AFC 여자풋살챔피언십에 나갈 수 없었다. 다른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왜 출전을 허락하지 않았는 지 이유를 알면 기가 막힌다. 7살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과 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경기 대신 입학식에 가라고 요구한 것이다.

버스를 타고 경기를 보러가도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경기장 앞까지다 ⓒ 영화 '오프사이드'

긴 팔, 긴 바지에 히잡까지 씌워놓고, 출전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양심상 성적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란은 성적까지 바란다. 여자 축구에서 '성적 지상주의'가 촌극을 빚어내기도 했다. 여자 축구 경기에 무려 8명의 남성을 출전시킨 것이다. 물론, 이들은 쉽게 남성임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성전환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전환 수술이 합법인 이란에서 성을 바꾼 선수가 경기에 나가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정이었다. 갓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이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2년 간 안정기를 거쳐야 한다. 이란 축구협회는 안정기 없이 이들을 곧바로 경기에 출전 시켰다. 완전히 여성이 되지 못한, 남성의 신체 기능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경기에 나간 것이다. 이는 이란 축구협회 징계위원장인 모즈타바 샤라피의 발언으로 전 세계가 알게 됐다.

이란, 절대 축구 강국이 될 수 없다

꾸준하게 여러 인권 단체와 스포츠계는 이란에게 개선을 요구했다. 우리가 봐도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이란 정부의 답은 언제나 "여성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법안들을 개선하겠다"였다. 그리고 10년 이상이 지났다. 언제나 말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란 원정 경기가 있을 때 분노한다. 치졸한 홈 텃세와 항상 약올리는듯한 그들의 행위를 보며 전의를 불태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분노해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이란 여성들에 대한 이란 사회의 후진적인 모습 아닐까?

버스를 타고 경기를 보러가도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경기장 앞까지다 ⓒ 영화 '오프사이드'

이란의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슬람 혁명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서방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이 믿는 종교와 율법에 의해 족쇄가 채워졌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들은 생활 전반에서 억압받는 중이고 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이슬람 율법을 존중하지 않고, 그들 고유의 문화에 대해 간섭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는 모두가 동등하게 가져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이슬람 문화는 존중 받아야 하지만 인간이 보편타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는 아무리 이슬람이라고 해도 침해할 수는 없다.

곧 이란전이 열린다. 약 8만 명에 달하는 남성 관중들이 가득 차 일방적인 응원을 보낼 것이다. 한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홈 텃세와 이들의 응원을 견뎌내야 한다. 아시아의 강호 이란이기에 더욱 어렵다. 하지만 밖에서 축구 경기를 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란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절대 축구 강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이란전과 이 여성들의 이야기는 크게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이란과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것 만큼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당연하게 즐기고, 자연스럽게 관심 갖는 이 축구라는 것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를 포함한 세계의 도움만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경기장으로 향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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