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글랄과 페르세폴리스의 '테헤란더비'가 펼쳐지는 아자디 스타디움의 모습. ⓒ에스테글랄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다.” 2009년 이란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 원정을 떠난 한국 대표팀을 향해 이란 미드필더 자바드 네쿠남이 한 유명한 말이다.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대결은 늘 이렇게 원정팀의 지옥과도 같은 경기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부담스러운 이란 원정을 하루 앞둔 슈틸리케호의 선전을 기원하며 과연 아자디스타디움이 얼마나 원정팀에는 공포의 대상인지, 왜 이란은 안방에서 그토록 강한지 분석해 봤다. 아자디스타디움의 모든 걸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단 시계를 1971년으로 돌려야 한다.

남성의 전유물 된 아자디 스타디움

1971년 이란은 종합운동장 하나를 완공했다. 3년 뒤 열릴 테헤란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한 것이었다. 무려 1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의 이름은 리자 팔레비 이란 국왕의 또 다른 이름인 아리야메르에서 따와 아리야메르 경기장으로 붙여졌다. 사실 12만 명이나 수용하는 종합운동장을 만들 필요성은 그다지 없었지만 팔레비 왕조는 세력 과시용으로 이렇게 초대형 경기장을 건설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이 경기장은 해발 1,273m의 고지대에 위치했고 주변에는 축구 연습구장과 역도, 수영, 배구장이 포함돼 있었다. 이 경기장은 이란의 전통 있는 프로축구팀으로 ‘왕관’을 뜻하는 타지(Taj) 구단과 페르세폴리스의 홈 경기장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타지는 왕실에서 후원하고 있었고 페르세폴리스는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팀이어서 이 둘의 테헤란 더비도 이때부터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1979년 이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친미 독재 왕정이었던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휘두르는 신정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루홀라 호메이니를 위시한 원리주의 세력은 혁명을 일으켜 팔레비 왕조를 추방시키고 정권을 잡은 후 곧바로 이 경기장 이름부터 바꿨다. 12만 군중이 운집하는 이 초대형 경기장의 이름이 팔레비의 또 다른 이름인 아리야메르로 불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꾼 이름이 바로 ‘자유(Azadi)를 뜻하는 아자디 스타디움이 됐다. 그렇다. 이 경기장은 많은 원정팀들이 지옥을 경험한다는 바로 그곳 아자디 스타디움이다. 이슬람 혁명 이후 왕실의 지원을 받던 타지 구단은 ’독립‘을 뜻하는 이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게 됐는데 그 팀이 바로 지금의 에스테글랄이다.

‘자유’를 뜻하는 경기장이지만 아자디 스타디움은 이때부터 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게 됐다. 이슬람 혁명 전까지는 남녀 평등을 실천하고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자유로웠던 이란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길에서 연인이 손을 잡거나 애정표현을 하면 종교경찰이 다가와 결혼여부를 조사할 정도로 엄격한 도시가 됐다. 여자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없고 거리에 나설 때 히잡이나 차도르로 온 몸을 꽁꽁 감싸고 다녀야 했다. 버스에는 한 가운데 분리대가 설치돼 여자는 뒷문으로 타고 내려야 한다. “남성들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예 여자는 아자디 스타디움 출입을 금지키셨다. 아자디 스타디움에는 호메이니와 알리 하메네이 등 종교 지도자들의 사진이 크게 걸렸다. 이때부터 아자디 스타디움은 거친 남성들이 응원과 야유를 쏟아내는 남성들의 전유물이 됐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이란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아자디 스타디움

아자디 스타디움의 거친 분위기

축구에 대한 열정과 거친 응원,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관중수 때문에 아자디 스타디움은 늘 사건 사고로 몸살을 앓았다. 2003년 11월 이란과 북한의 2004 아시안컵 예선 경기 도중에는 대형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이날 경기는 격앙돼 있었다. 북한이 이란 교체 선수가 출전 정지를 받은 무자격 선수라며 항의하기도 했고 후반 9분 페널티킥으로 북한이 먼저 실점하며 분위기는 좋지 않게 흘러갔다. 북한 선수들이 흥분하자 결국 첫 골을 넣고 2분 뒤 한 관중이 화를 참지 못하고 경기장에 폭죽을 던졌고 북한 소학철이 파편에 눈 부위를 맞아 크게 다친 것이다. 격분한 북한 코치진이 선수들을 경기장 밖으로 불러내 퇴장했고 이들은 결국 심판의 경기 재개 요구에도 불응한 채 경기장을 떠났다. 아자디 스타디움이 얼마나 거칠고 통제되지 못한 곳인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뿐 아니다. 지난 2005년 3월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일본과의 경기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치를 땐 일본 관중 네 명이 이란 관중이 던진 병과 동전 등에 의해 머리에 부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사고는 이 경기에서 또 터졌다. 이날 경기에서 바히드 하세미안이 두 골을 넣으며 일본을 2-1로 제압해 흥분한 이란 관중은 경기 종료 후 한꺼번에 출구로 몰렸고 결국 압사 사고가 발생해 6명이 죽고 31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는 이란에 3만 스위스프랑(당시 약 2,500만원)과 함께 “관중수를 5만명 이하로 제한하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04년 한국과 이란의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 당시에는 관중의 폭동에 대비해 경기 시작 한 시간 30분 전에 관중 입장을 완료시키기도 했다.

이란 대표팀 경기에서만 이런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또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 5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피루지 애슬레틱(이란)과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와의 C조 조별리그 경기 중에는 관중 200여 명이 집단 폭력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이란 관중이 “사우디에 죽음을”이라는 거친 구호를 외치면서 폭력 사태가 번진 것이다. 당시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 진압을 도운 사우디 정권에 대한 불만 표시였다. 이 폭력 사태로 두 명이나 중상을 입었고 경기는 거친 분위기 속에서 가까스로 마무리됐다. 2009년 5월 AFC가 발표한 AFC 챔피언스리그 관중 103만 명 중 무려 22만 명이 아자디 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하는 페르세폴리스와 에스테글랄 팬이었을 정도로 아자디 스타디움의 관중몰이는 대단하다.

아자디 스타디움의 금기가 깨지다

‘금녀의 구역’이던 아자디 스타디움에 여성 관중이 공식적으로 처음 입장한 건 놀랍게도 한국 여성들이었다. 2004년 3월 올림픽 대표팀의 아자디 스타디움 원정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에서는 붉은악마 여성회원의 원정 응원을 놓고 이란을 설득했다. 이란 종교경찰이 “여성은 절대 아자디 스타디움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경하게 반대했지만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 FIFA와 AFC에 서한을 보내는 등 이란을 압박했다. 당시 피터 벨라판 AFC 사무총장 또한 “FIFA에는 관중 차별 조항이 없다”면서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이란 고위층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당시 붉은악마 이란 원정 응원단 150명 가운데 여성 44명은 “반드시 히잡을 착용하고 경기 도중 이를 벗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는 약속을 하고 경기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금녀의 구역’이던 아자디 스타디움에 여성 관중이 처음으로 공식 입장하는 순간이었다. 2005년 3월 일본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 때도 이런 방식으로 일본 여성 응원단의 입장이 허용됐다.

그리고 3개월 뒤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또 하나의 금기가 깨졌다. 이란 여성들이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으로 아자디 스타디움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 때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한 이벤트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20여 명의 여자 축구 선수들과 여성 축구기자를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초청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 운동가들이 “우리도 즐길 권리가 있다. 자유는 내 권리, 이란은 내 조국”이라고 외치면서 경기장 앞에서 시위를 펼쳤고 결국 5시간의 충돌 끝에 100여 명의 여성이 경기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에 대해 보수적인 남성들은 “정치인들이 선거의 승리를 위해 여성들에게 굽히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아자디 스타디움의 역사를 새로 써야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자디 스타디움은 여전히 남성들의 거친 응원과 야유가 넘쳐나는 곳이다. 여성은 이후에도 여전히 경기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한국전을 앞두고 비가 쏟아져 예상보다 적은 3만여 명의 관중이 입장하는데 그치자 이란 측은 경기 시작 직전 전격적으로 무료 입장을 선언하며 9만여 명의 ‘남성’ 관중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당시 네쿠남은 경기 직전 이런 말을 했었다. “경험이 무척 많은 박지성이라도 아자디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생소할 것이다. 10만 명을 상대로 경기한 경험이 없는 한국팀에는 지옥이 될 것이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특별하다. 한국은 대기실에서 나오자마자 분위기에 압도당할 것이다. 진정한 외로움이 무엇인지 맛보게 될 것이다.” 과거 아자디 스타디움에 섰던 한 축구인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아니. 우리 팀 동료들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관중이 야유를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경기였어.”

아자디 스타디움은 이란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아자디 스타디움

‘47승 11무 3패’, 아자디는 원정팀의 무덤

아자디 스타디움 원정 경기에서는 텃세도 상상을 초월한다. 원정팀에 맨땅이나 다름 없는 훈련장을 제공하기도 하고 무려 숙소에서 한 시간 반 이상 떨어진 외곽 지역의 훈련장을 제공하는 건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선수단 이동 차량에 경찰 호위를 제공하는 건 A매치 관례지만 이란은 상대팀에 이런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경우도 잦다. 원정팀 라커룸에는 비가 새기도 한다. 이렇게 10만 명에 달하는 남성들이 거친 분위기 속에서 상대팀에 야유를 퍼붓고 텃세까지 부리는 와중에 치악산 비로봉(1,288m)에 견줄 만큼 고지대에 위치한 아자디 스타디움에서의 경기는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축구에 열광하는 이란 국민의 특성에 원정팀에 대한 텃세까지 더해지면서 이란 원정은 가장 가기 싫은 경기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 아자디 스타디움이 주는 압박감은 엄청났다. 한국은 지금껏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러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2무 4패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란 대표팀은 2004년 10월 10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0-2로 패한 이후 지금까지 치른 61차례의 경기를 통해 무려 47승 11무 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2009년 3월 28일 사우디와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1-2로 패하기 전까지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무려 32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나가기도 했고 이후에도 막강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껏 2004년 독일전 이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치른 61경기 중 승리를 따낸 나라는 사우디를 포함해 우즈베키스탄과 기니 뿐이다. 한국은 2004년 3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이천수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따내기는 했지만 이는 올림픽 대표팀의 경기였을 뿐 A매치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을 이끌던 김호곤 감독은 아자디 스타디움에 적응하기 위해 1,885m의 고지대에 위치한 중국 쿤밍에서 전지훈련을 할 정도였다. 선수들이 코피를 흘릴 만큼 혹독하게 고지대에서 아자디 스타디움에 대한 적응을 해야 했다. 2009년 남아공월드컵 예선 이란 원정을 앞둔 허정무 감독도 쿤밍 전지훈련을 계획했지만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과 겹쳐 결국 제주도에서 2주간 합숙훈련을 하고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떠났다. 당시는 해외파가 그리 많지 않았고 K리그도 시즌이 끝난 뒤 대표팀 합숙훈련에 협조할 때였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을 기대할 수도 없다. 당시에는 2주간 합숙훈련을 하고 6일 전에 이란에 입성했지만 이번 슈틸리케호는 카타르전 사흘 전에 소집됐고 이란에는 경기 시작 이틀 전에 도착했다. 엄청난 부담감과 불리함을 안고 싸워야 하는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이란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아자디 스타디움

이란의 자신감이 가장 큰 적이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안전과 관람 편의를 위해 관중석을 축소했다. 1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던 경기장에 좌석을 설치해 2003년에는 규모가 9만 석으로 줄었고 2012년부터는 8만 4천석으로 또 다시 수용 인원을 줄였다. 현재에는 관중석을 더 설치해 공식 수용 인원은 78,000여 명이다. 이전까지는 긴 계단에 관중이 서로 끼어 앉으면 12만 명까지도 수용하던 경기장이 이제는 어느 정도 관람 편의를 갖춘 것이다. 하지만 수용 인원이 줄었다고 해서 아자디 스타디움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그들은 홈 팬들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고 있고 거기에 한국 팀을 향한 텃세도 여전하다. 한국이 공을 잡거나 이란 선수와 충돌하면 거친 목소리의 남성 수만 명이 야유를 한다. 경기가 열리는 바로 다음 날이 시아파 종교 지도자 추모 기간이라 분위기는 차분하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그들을 결코 간과해서도 안 된다.

또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하면 절대 지지 않는다는 그들의 자신감이다. 2004년 이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47승 11무 3패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란 선수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자디 스타디움에만 서면 원정팀이 작아진다고 믿고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에 이란은 안방에서 47승 11무 3패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낼 수 있었다. 비록 수만 명의 야유를 받으며 경기를 펼쳐야 하지만 슈틸리케호가 주눅 들지 않고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다. 결국에는 자신감의 싸움이다. 언젠간 한 번 눌러줘야 후배들도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이번이었으면 좋겠다. 자신감을 갖고 슈틸리케호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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