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야 아르디자는 J리그에서 그렇게 많은 관중을 모으는 팀은 아니다. ⓒ오미야 아르디자 공식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개인의 일탈 행위였습니다.” “저희는 책임이 없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많이 들어본 말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런 말을 쓰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K리그에서도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개인의 일탈 행위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느낄 것이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물론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다.

“30만 관중 돌파하자” 오미야의 야심

J리그 클럽 오미야 아르디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팀이다. 1969년 NTT 직장인 클럽인 NTT 간토 축구부로 창단해 1998년 동일본 전신 전화가 중심이 돼 18개 회사가 출자를 하고 주식회사로 설립됐다. 주로 J2리그에서 머물렀지만 2004년 J2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면서 1부리그 승격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오미야는 J리그 우승권 팀은 아니었고 가까스로 J리그에 잔류하면서 운영돼 오던 팀이었다. 사이타마시에 위치한 오미야는 우라와 레즈와 치열한 사이타마 더비를 펼쳤는데 늘 많은 팬을 거느리는 우라와에 압도당하는 분위기였다. 오미야는 J리그에서 그렇게 관중이 많은 팀이 아니었다.

우라와가 평균 3~4만 명의 관중을 끌어 모을 때 오미야는 1만여 명이 겨우 넘는 관중 동원에 그치고 있었다. 2008년 오미야의 평균 관중은 12,074명에 불과했고 이는 J리그 구단 중에서 가장 저조한 편에 속하는 성적이었다. 당시 J리그의 평균 관중수는 1만 9천여 명에 이르렀으니 오미야는 평균의 절반이 조금 넘는 관중 몰이에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오미야는 2009년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2009년 시즌 개막 직전 30만 관중 동원을 목표로 내걸고 장외룡 감독을 선임한 뒤 K리그에서 뛰던 마토와 박원재, 두두 등을 영입한 것이다. 관중수도 늘었고 가까스로 J리그에도 잔류했다.

오미야의 2009년 시즌은 극적이었다. 강등이 위태롭던 상황에서 시즌 최종전은 축제가 됐다. 시즌 최종전에서 잔류를 결정하며 30만 관중 돌파까지 이뤄내며 경사를 맞기도 한 것이다. 오미야는 2009년 안방에서 열린 17경기에서 301,038명을 동원해 경기당 평균 17,708명의 관중수를 기록했다. 목표였던 리그 잔류와 30만 관중 돌파를 모두 이뤄냈으니 오미야로서는 대만족인 시즌이었다. 그들은 2010년에는 장외룡 감독을 유임하며 더욱 더 선수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박원재를 K리그로 돌려보낸 오미야는 이호와 이천수, 안영학 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강화했다. 비록 성적 부진으로 장외룡 감독이 사퇴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도 2010년 관중수 역시 나쁘지 않았다.

우라와전 33,660명의 관중

J리그는 1993년 출범 이후 각 구단에 명확한 관중수 집계를 요구하고 있었다. 관중수 집계를 통해 마케팅 방향을 세우고 투명한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J리그는 매년 관중의 성별 분포는 물론 평균 나이까지 통계를 내 마케팅에 반영할 정도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을 추구했다. “관중의 평균 나이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니 젊은 팬의 유입을 증가해야 한다”는 분석을 할 만큼 J리그의 전략은 무서울 정도로 철저했다. 모든 경영과 전략은 투명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철학을 내세운 J리그는 1993년 출범 초기부터 각 구단에 실제 관중수를 제대로 집계해 통보하는 걸 의무화하고 있다.

2009년 관중수가 대폭 늘어난 오미야로서는 2010년 성적이 부진했음에도 준수한 관중 동원력을 자랑했다. 평균 관중이 15,000여 명에 이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오미야로서는 2010년 10월 2일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지역내 경쟁자인 우라와와의 사이타마 더비가 치러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미야의 홈 경기로 치러지는 이 맞대결에서 그들은 같은 연고지를 두고도 4만여 명에 이르는 관중을 동원하는 우라와의 관중 동원력에서도 지고 싶지 않았다. 경기가 열리는 사이타마스타디움은 우라와의 홈구장인데 이날은 오미야가 홈구장으로 사용됐다. 이날 오미야는 비록 1-2로 우라와에 패했지만 경이적인 관중수를 기록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이는 33,660명이라고 오미야 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오미야가 우라와 원정을 떠난 모습. 이 두 팀은 같은 연고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관중수는 확연히 다르다. ⓒ오미야 아르디자 공식 홈페이지

그들의 관중수는 조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챈 J리그 연맹 측에서 곧장 조사에 들어갔다. 오미야가 발표한 관중수가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는 더 많게 발표됐기 때문이다. J리그 연맹 측은 곧바로 오미야에 증거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와타나베 세이고 오미야 사장을 불러 조사했다. 처음에는 부인하던 와타나베 사장도 결국에는 J리그 연맹에 관중수 조작에 대해 시인했다. “집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부정확한 관중수였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J리그 연맹은 오미야의 과거 경기 관중수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J리그 한유 히데유키 사무국장은 당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러면 관중수 통계의 근간이 흔들립니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알고 봤더니 오미야 측은 의도적으로 관중수를 부풀렸다. J리그 연맹 측은 관중수를 집계할 때 경기장 게이트를 통과한 관중과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는 VIP, 휠체어 관전자 등을 합계하도록 명시했다. 규정상 선수 가족과 행사 관계자 등은 경기장 게이트를 통과해 집계에 포함해야 하는데 오미야 측은 선수 가족과 행사 관계자를 정식 게이트로 입장시키지 않은 채 허술하게 관중수를 집계한 것이다. 여기에 구단 직원 두 명이 눈대중으로 관중수를 부풀려 발표했다는 사실이 조사를 통해 알려졌다. 오미야는 관중수가 목표에 이르지 못할 경우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고 팬들이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해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33,660명이 입장했다고 발표했던 우라와전의 실제 관중수는 29,575명이었다. 4,085명을 더 부풀린 것이었다. 오미야는 진상 조사가 열린 당일 곧바로 공식 사과했다. “J리그의 신뢰를 깨 죄송합니다. 전국의 팬과 스폰서, 언론, 다른 J리그 구단 등 J리그에 관련된 모든 분들에게 큰 폐를 끼친 것을 사과드립니다. 지속적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신속하게 보고하겠습니다.” 오미야는 공식 집계 자료가 남아있는 2007년부터의 관중수를 전부 조사했고 J리그 연맹 측은 오미야뿐 아니라 다른 J리그 구단의 관중수 조작에 대해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오미야가 2007년부터 조금씩 관중수를 부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0만 명 관중을 돌파했다던 2009년에도 사실은 48,610명의 관중은 조작된 것이었다.

오미야가 우라와 원정을 떠난 모습. 이 두 팀은 같은 연고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관중수는 확연히 다르다. ⓒ오미야 아르디자 공식 홈페이지

오미야가 말한 진실, 그리고 눈물의 사죄

오미야는 2007년 11월부터 3년 동안 58차례 경기에서 11만 1,737명이 더 입장했다고 발표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그리고 조사 시작 2주 만에 오미야의 와타나베 사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수많은 기자가 모여든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관중수 조작 사실을 인정합니다. 팬들을 배신했습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습니다.” 관중수 부풀리기에 가담한 직원 두 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와타나베 사장까지도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와타나베 사장은 눈물을 훔치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솔직하게 말했다. “직원 두 명만 공식 관중수를 집계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직원들도 J리그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습니다. 함께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와타나베 사장의 사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미 사장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닷새 뒤 다시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놀라웠다. 2010년 10월 19일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 그가 10월 24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홈 경기장에 나타나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석고대죄한 것이다. 그는 관중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비록 저는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오미야는 깨끗한 구단을 목표로 신뢰를 회복할 것입니다.” 전 사장의 눈물에 경기장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이날부터 오미야는 관중수를 세분화 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날 일반 관중은 10,672명이었고 VIP는 51명, 휠체어 입장자는 17명으로 총 관중수는 10,740명이었다. 더 이상 투명할 수는 없는 완벽한 집계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미야는 곧바로 공식 홈페이지에 모든 잘못을 털어 놓았다. 관중수를 부풀린 방식을 고백했고 그러면서 매년 몇 명의 관중을 허위로 발표했는지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2007년 11월부터 발표된 그 해 공식 관중수 27,710명 중에 실제 관중수는 23,020명이었고 부풀린 관중수는 4,690명이라고 고백했다. 2008년에는 실제 관중수가 179,456명이었는데 25,809명을 부풀려 205,265명으로 발표했다고 밝혔고 2009년에는 301,038명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252,428명의 실제 관중에 48,610명을 부풀렸다고 알렸다. 2010년에도 199,549명이 입장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32,628명을 부풀렸고 원래 관중은 166,921명이었다고 고백했다. 수치의 근거도 댔다. 경비 업무 위탁처에서 수령한 관람객 일람표를 근거로 들었다고 명확히 밝혔다.

오미야가 우라와 원정을 떠난 모습. 이 두 팀은 같은 연고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관중수는 확연히 다르다. ⓒ오미야 아르디자 공식 홈페이지

오미야의 재발 방지 대책과 J리그의 중징계

자체 진상 조사 후 문제점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J리그 연맹의 관중수 집계 기준이 있는데 우리는 그걸 공유하지 않았고 입장 게이트를 통과해야하는 선수 가족과 이벤트 관계자 등을 입장 게이트로 유도하는 운영 체제의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특정인이 공식 관중수를 결정하는 구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재발 방지 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후반 30분까지 경비 업무 위탁처에서 수령한 입장 일람표 및 VIP 좌석 배치도, 스카이박스 좌석표를 운영 본부에 명시하고 여러 구단 직원의 확인을 거쳐 구단 대표에게 보고한 후 최종 수치를 발표하기로 했고 입장 게이트를 열기 전에 경기장에 오는 이벤트 관계자 등이 이벤트 종료 후 경기를 관전을 할 경우 일단 입장 게이트 밖으로 나가 다시 입장하도록 사전 공지 및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정확한 집계를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관중이 경기장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입장하는 경우 집계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입장 게이트와 재입장 게이트를 따로 설치하는 방안까지도 마련됐다. 중복 집계를 피하기 위한 묘수였다. 이에 대해 J리그 연맹도 강경하게 대응했다. 오히가시 가즈미 J리그 연맹 회장은 성명을 통해 오미야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 일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중을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J1리그와 J2리그 36개 구단의 노력을 짓밟는 행위다. 오미야는 J리그의 신뢰를 실추시킨 만큼 책임이 크다.” 결국 J리그 연맹은 사건을 감지하고 50여일도 채 되지 않아 오미야에 2천만 엔(당시 한화 약 3억 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이는 2008년 5월 서포터스의 폭행사건을 막지 못한 우라와에 내려진 제재금과 똑같았는데 J리그 역사상 최다 금액이었다.

오미야가 우라와 원정을 떠난 모습. 이 두 팀은 같은 연고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관중수는 확연히 다르다. ⓒ오미야 아르디자 공식 홈페이지

우리도 오미야와 J리그 같을 순 없었을까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는 누구와 달리 오미야는 사장이 두 번이나, 그것도 한 번은 직접 경기장을 찾아 사죄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진상조사에 제대로 협조도 하지 않은 누구와 달리 오미야는 자체적인 조사를 통해 부풀렸던 관중수를 팬들에게까지도 고백했다. 또한 “구단 차원의 개입은 없었다”는 누구와 달리 오미야는 추후 완벽한 재발 방지 대책까지 세워 공개했고 4개월이나 질질 끌며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누구와 달리 J리그는 사건 감지 50여일도 채 되지 않아 “타 구단의 노력을 짓밟았다”는 강력한 질타와 함께 과할 정도의 징계까지 속전속결로 내렸다. 사안은 우리가 더 심각한데 그들은 고작(?) 관중수 몇 명 부풀렸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퇴를 했고 고개를 숙였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약속했고 중징계를 내렸다.

많이 비교가 되는 일이다. 과연 우리가 오미야와 J리그처럼 대응할 수는 없었을까.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고 그게 의도적인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면 금방 또 대중의 마음도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따끔하게 처벌하는 것도 잘 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개인의 일탈 행위였다”고 피해만 가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와타나베 오미야 전 사장의 눈물을 통해서 우리가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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