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전북 현대의 징계 수위가 드디어 결정됐다. 그리고 더 큰 혼란과 반발을 가져왔다.

9월의 마지막날,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전북의 징계가 결정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30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전북 스카우터의 심판 매수 건에 관해 전북 구단에게 승점 9점 감점, 제재금 1억 원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전북의 강등을 주장했지만 사실 나는 전북이 강등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전북의 강등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고, 상벌위원회가 열리기 전 경남의 징계가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볼 때 전북이 강등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일 줄은 몰랐다.

결과적으로 전북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징계였다. 승점 9점을 감점해도 전북은 당당히 리그 순위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제재금 1억 원을 내야 하지만 K리그 클래식 우승 상금 5억 원을 감안한다면 전북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한다. 마치 사탕 열 개 물고 있는 아이를 따끔하게 혼낸다고 겨우 하나 뺏은 꼴이다. 그 하나도 4개월 동안 질질 끌면서 말이다.

이번 징계는 중징계다? 제대로 헛다리 짚은 연맹

연맹의 설명에 따르면 전북의 징계는 경남보다 더 무거웠다. 경남보다 비교적 가벼운 사안이지만 전북이라는 구단이 가지고 있는 K리그, 그리고 한국 축구의 대표성 등을 감안해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고 연맹 상벌위원회는 설명했다.

이 설명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전북이 '리딩 클럽'이 아니었다면 경남보다 훨씬 더 가벼운 징계를 내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전북이 K리그의 '리딩 클럽'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상벌위원회에서도 리딩 클럽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징계 결과가 나오기를 많은 사람들은 기다렸다. K리그를 선도하는 팀인 만큼 징계는 2015년 경남FC에게 주어진 징계보다 더 무거워야 한다는 의견 또한 많았다. 하지만 연맹 외부의 생각과 상벌위원회의 생각의 괴리감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경남은 올 시즌 승점 10점 감점 징계를 받았다. 전북보다 1점 더 깎였다 ⓒ 경남FC 제공

이는 스포츠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법리적 판단에만 의존한 결과다. 심판 매수에 대해 재판부가 법적인 판단을 내릴 때는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연맹 상벌위원회는 재판부가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판단 역시 해야 하지만 리그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는 미래를 고려한 읍참마속의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연맹 상벌위원회라는 곳은 그래도 되는 곳이고, 그래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포청천이 되려고 하다보니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

K리그, 그리고 프로 스포츠에서 '심판 매수'는 해당 리그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리그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리그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 사안의 경중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리그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행위라면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게다가 프로 스포츠는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안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없다. 대중들의 인식은 경남과 전북이 똑같은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일일이 어째서 전북이 경남보다 더 가벼운 사안이고, 알고보면 전북이 중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다니지 않는 한 둘 다 똑같은 '심판 매수'일 뿐이다.

아직 연맹 상벌위원회는 사안의 경중을 따지는 것을 보니 위기 의식이 별로 없어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다. 더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확실하게 K리그의 공정성 훼손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선수 승부조작 사태 이후 지금까지 연맹의 행보는 그저 사건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한, 땜질 처방의 연속인 것으로 보인다.

외로운 전북 팬들은 누가 보듬을 것인가

무엇보다 이번 징계로 가장 상처받을 사람들은 바로 전북의 팬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구단이 일으킨 사건에 침묵하지 않았다. 반드시 발본색원하고 강한 징계를 달라고 주문했다. 심지어 많은 팬들이 '강등 당해서 제대로 털어내고 다시 시작하자'란 의견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뜨겁게 응원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렸다. 전북의 모든 상대팀이 그들을 향해 조롱 섞인 걸개를 걸고 구호를 외쳐도 굴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갈 때 마다 자존심에 상처가 나고, 굴욕을 당해도 그들은 기다렸다. 확실하게 징계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고, 연맹과 구단이 이번 사건을 확실하게 털어내기를 바랐다.

경남은 올 시즌 승점 10점 감점 징계를 받았다. 전북보다 1점 더 깎였다 ⓒ 경남FC 제공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끝났다.

전북의 팬들은 이번 사건에 관련해 아무런 죄가 없다. 오히려 심판을 매수했다고 추정되는 경기에 돈을 주고 참석해 뜨거운 응원을 보낸, 일종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이제 전북의 팬들은 '매수 구단의 팬'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적어도 연맹이 강한 징계를 줬다면 그들이 "그래도 우리는 깔끔하게 털었고, 죄도 달게 받았다"고 항변할 수 있었다. 연맹은 아무런 죄가 없는 그들이 조금이나마 떳떳해질 수 있는 권리마저 뺏어갔다. 게다가 전북이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팬들의 배신감과 실망감은 더 커졌다. 연맹에게 치이고, 구단에게 배신 당하고, 다른 팬들에게 지지받지도 못한다. 전북의 팬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후 전북 팬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질듯 하다. 계속해서 조롱을 당하며 전북을 응원하던가, 다른 팀을 응원하는 속칭 '팬고이전'을 하거나, 아니면 미운 정마저 없어진 전북과 K리그를 더 이상 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전북 팬들의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달랑 사과문 한 장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신뢰 무너진 K리그, 팬들은 '호갱님'이 아니다

전북 팬들의 상처와 더불어 무서운 것은 K리그가 스포츠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K리그에서 신뢰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벌써부터 일부 팬들은 '이 정도 승점 삭감과 제재금이면 매수 할 만 하다'면서 이른바 '우승계'를 들자는 자조섞인 농담을 하고 있다.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연맹은 계속해서 승부조작과 관련된 징계들에 대해 '중징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팬들부터 동의하지 않는다. 발빠른 팬들은 벌써 계산기를 두들겨봤다. 심판을 매수하는 비용과 징계로 인한 제재금을 합산한 금액보다 우승 상금과 ACL 출전으로 받는 돈이 더 많다는 결론을 내놨다. 다시는 승부 조작을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보다, 걸리지만 않으면 심판을 매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어느 누가 공정한 경기를 한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리그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심판의 판정 하나에 선수들이 어떻게 승복하고, 팬들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연맹이 그저 '믿으라'고 한다고 이들이 심판을 믿고, 연맹을 믿을 리 없다.

서로가 믿지 않고, 리그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 지는 이웃 나라를 살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대만 프로야구가 이렇게 무너졌다. 1995년 처음 승부조작이 발생한 대만 프로야구는 확실한 징계를 내리기보다는 사건을 축소하고 덮기에 바빴다. 이는 곧 더욱 큰 승부조작 스캔들로 이어졌고, 뒤늦게 구단 해체 등 철퇴를 가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결국 대만 제일의 프로 스포츠인 대만 프로야구는 4개 구단으로 운영되는, 초라한 규모의 리그로 전락했다.

경남은 올 시즌 승점 10점 감점 징계를 받았다. 전북보다 1점 더 깎였다 ⓒ 경남FC 제공

K리그 역시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니, 이렇게 될 가능성이 이제는 조금씩 보이고 있다. 경남의 승부조작 사건 때도 '비교적 가벼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전북이라는 구단의 무게감은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커지게 했다. 비판의 세기가 더 커졌다는 것은 팬들의 실망감과 상실감 역시 더 커진다는 의미다.

K리그 팬들은 충성심이 높은 편이다. 구단이 열악하면 함께 발벗고 나서고, 구단의 희노애락을 함께한다.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 구단이 없어지면 구단을 다시 만들었고, 팀이 형편 없을 때 투덜대면서도 경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K리그 팬들이 충성심이 높다고 '호갱님'인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공정하게 경쟁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다. 그들은 각본에 의해, 돈에 의해 짜여진 '쇼'를 원하지 않는다. 팬들이 원하는 스포츠가 점점 쇼로 변질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그들은 결국 떠나게 될 것이다.

스포츠가 스포츠로 남기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까지 팬들은 연맹을 믿어왔다. 경남 사건이 터졌을 때 연맹은 "심판 판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다지는 절체절명의 기회로 삼고 K리그와 대한민국 축구를 성원하시는 모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팬들은 믿어줬다. 그리고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팬들의 믿음에 대해 연맹 상벌위원회는 어떤 대답을 내놓았는가?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비슷한 징계를 줬다. 더 이상 팬들에게 '믿어달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연맹에게는 없다.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서 이제는 행동하라

연맹이 발표한 전북의 징계 내용을 보면서 느낀 점은 '무엇을 위한 징계'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리그의 발전도 아니고, 전북의 발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팬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겠다'면서 더 질질 끌었으면 어땠을까란 부질 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연맹의 이번 결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내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전북의 심판 매수 건에 관한 연맹 상벌위원회는 종료됐다. 전북이 벌금 1억 원과 함께 승점 9점이 감점되는 것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중징계 아닌 중징계로 서로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떠나보내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를 계기로 심판 매수의 심각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맹은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야 한다. 아직까지 많은 팬들이 아우성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K리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말 뿐인 '믿어달라'를 지금까지 그대로 믿어준 팬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축구로 먹고 살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연맹의 행동을 촉구한다. 절대로 모든 구성원들이 돈으로 축구를 더럽히는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정말 실질적이고 무거운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구단 해체라고 해도 리그를 살릴 수 있다면, 찬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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