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희망고문 : 상대방에게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게 하여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우리는 꽤 자주 희망고문을 당하며 산다. 집 근처 '1등만 6번'이라는 명당에서 1,000원 주고 로또 한 게임 샀을 때, 짝사랑하던 여자가 뜬금없이 "밥 한 번 먹자"고 할 때, 새벽에 술먹고 카톡으로 "ZANI…?"라고 보내고 나서 아직 1이 지워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조만간 잘 될 것이라고 슬그머니 자위한다. 물론, 현실은 그게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고문'의 끝이 좋지 않을 경우 남 탓을 종종 한다. 로또가 안되면 그 편의점 밑에 수맥이 흐를 것이라 생각하고, 짝사랑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그 날 갔던 '김X천국' 순두부찌개의 MSG 맛을 탓하고, 카톡의 1이 결국 지워지지 않았을 때 쓸데없는 짓을 하게 만든 술을 탓한다.

2016 현대 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가 '희망고문'으로 가득하다. 팀 당 6-7 경기가 남으며 리그가 막바지로 치닫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조금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 위한 혈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시즌에 비해 K리그 챌린지의 순위 경쟁이 더욱 치열한 느낌이다. 고양 자이크로와 충주 험멜을 제외하고 모든 팀들이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다들 희망이 가득하다. 이유는 당연하다. 11개 팀 중 9개 팀이 K리그 챌린지 모든 구단의 염원인 '승격'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승, 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서 먼 팀이 현실성 없이 '남은 경기 전승해서 승격하겠다'와 같은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도 아니다. 각 팀마다 확률은 다르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팀들이 승격을 위한 최소한의 순위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평준화된 리그의 수준이 불러오기도 했지만 행정적인 부분도 한 몫 했다. 바로 '아직 올 시즌 승격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는 팀들 중 대부분은 승격에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항상 '희망고문'의 끝이 좋지 않았던 내 인생을 돌아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만든 연맹의 행정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모든 상황의 중심, 안산

현재 확실한 것은 아산으로 연고지를 옮길 무궁화 축구단(경찰청)이 클래식에 갈 일은 없다는 것이다. 7월 21일 열린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는 승격권 승계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무궁화 축구단이 올 시즌 승격 자격을 얻을 경우 새로 창단되는 안산 시민구단의 승격 여부를 다시 논의하겠다고 결정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만일 올 시즌 K리그 챌린지 우승컵을 안산 무궁화가 들어올렸을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일단 현재 안산에 자리잡고 있는 무궁화 축구단은 아산으로 연고이전하기 때문에 클래식에 올라올 수 없다. 그리고 무궁화 축구단이 따낸 승격권은 안산 시민구단이 승계할 것인지, 다른 팀에게 주어질 것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이사회가 아직 언제 열릴 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안산이 올 시즌 승격 자격을 얻으면 안산 시민구단의 승격 여부를 차후 이사회를 통해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연맹은 밝혔다. '안산이 올 시즌 승격 자격을 얻으면'이라는 말은 안산이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 논의하겠다는 이야기다.

현재 안산 무궁화는 2위 부천과 승점 6점 차를 유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 안산, 부천보다 한 경기를 덜 치른 대구와 강원이 1승을 더 거둔다면 승점 차는 4점까지 줄어들 수 있다. K리그 챌린지 우승컵의 최종 향방이 마지막 라운드에서 결정될 수도 있다.

누가 최선을 다하는 안산 무궁화에게 돌을 던지랴 ⓒ 안산 경찰청 제공

안산의 시민구단 창단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승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무궁화 축구단의 모습은 박수 받을 일이다. 비록 이러한 상황이 안산으로 인해 시작됐지만 그들은 잘못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안산 시민구단에 부여될 수 있는 승격권을 "새 구단은 2부리그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말로 사양할듯 하니 수많은 K리그 챌린지 구단들에게 '희망'을 전파한 셈이다.

직행 승격권,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가장 초미의 관심사는 직행 승격권의 향방이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안산 시민구단이 가져갈 수도, 2위가 가져갈 수도, 아니면 플레이오프를 통해 직행 승격권의 주인공을 가릴 수도 있다. 물론, 직행 승격권을 없앨 가능성은 낮다. K리그 챌린지 모든 구단의 목표는 '승격'이기 때문이다.

현재 안산을 추격하고 있는 구단은 부천, 대구, 강원 정도다. 이들의 목표는 일단 안산을 추월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안산과의 승점 차가 최소 4점, 최대 6점인 상태에서 남은 6경기를 치르게 된다. 쉽지 않지만, 못할 것도 없다.

누가 최선을 다하는 안산 무궁화에게 돌을 던지랴 ⓒ 안산 경찰청 제공

하지만, 이 팀들은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2위에게 승격 직행 티켓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기대감은 무궁화 축구단이 승격하지 못한다는 결정이 내려질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2위에게 승격권을 부여하지 않았을 때다. 안산 시민구단이 승격권을 가져가거나 다른 방법을 택할 경우, 2위 팀은 분명 상실감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의 경우 생기는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연맹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플레이오프 경쟁은 더 요동친다

K리그 챌린지가 '희망고문'으로 가득한 이유는 플레이오프도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직행 승격권의 향방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플레이오프의 진출 기준 및 진행 방식 역시 결정되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어디까지 주느냐에 따라서 K리그 챌린지 판도가 심하게 뒤흔들릴 수 있다.

만일 5위에게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진다면, K리그 챌린지는 더욱 치열해진다. 현재 4위 강원(승점 56)과 5위 부산(승점 49)의 승점 차는 7점으로 꽤 벌어져있다. 하지만, 5위 부산부터 8위 안양(승점 43)까지 승점 차는 6점이다. 남은 경기 수를 감안한다면 상황에 따라서 경남(승점 40) 역시 5위를 차지하기 위한 플레이오프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고양과 충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구단이 승격을 노릴 수 있는 셈이다.

누가 최선을 다하는 안산 무궁화에게 돌을 던지랴 ⓒ 안산 경찰청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각 팀의 전략은 차이가 생기게 된다. 서울 이랜드와 안양은 다득점에서 부산, 대전에게 8골 이상 차이가 난다. 각 팀의 성향에 따라 다득점을 통해 최소 동일 승점을 노릴 것인지, 아니면 최대한 승점 3점을 노리는 전략으로 승점에서 우위를 점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기존처럼 4위에게만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천, 대구, 강원이 플레이오프 진출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고, 나머지 팀들은 최대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상위권 팀들의 몰락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단 한 장의 플레이오프 진출 티켓으로 인해 최소 3팀, 최대 5팀이 영향을 받게 된다. 한 장의 향방이 결정되면 각 팀의 순위 전략은 크게 변할 수 밖에 없다. 중상위권 팀들은 맹렬하게 상위권을 추격할 것인지, 아니면 5위 자리를 노려야 할 것인지 결정하게 되고, 중하위권 팀들은 잔여 경기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연맹,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

사실 안산 시민구단이 승격권을 승계하면 모든 것은 깔끔해진다. 하지만, 실제로 안산이 승격권을 승계한다면 연맹 입장에서는 승강제 실시 이후 처음으로 창단 팀을 클래식에 데뷔시키는 것이고 안산 입장에서는 예산도 넉넉하지 않은 신생 구단이 클래식 무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안산 제종길 시장이 새 구단은 챌린지에서 시작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리 이에 대한 부분을 결정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애초에 군경팀의 연고이전은 예견된 일이었다. 각 지자체의 창단을 유도하기 위해 군경팀은 연고지가 새 구단을 창단할 시 다른 곳으로 연고이전한다. 상무가 광주에서 상주로, 이제 무궁화 축구단이 안산에서 아산으로 옮긴다. 게다가 군경팀은 K리그 챌린지에서 강팀에 속한다. 조금 더 세밀하게 고민했다면 이에 대한 규정이 미리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K리그 챌린지가 처한 상황은 전 세계 프로축구에서도 찾기 힘든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 역시 감안해야 한다. 군경팀을 놓고 연맹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결정의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린 연맹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누가 최선을 다하는 안산 무궁화에게 돌을 던지랴 ⓒ 안산 경찰청 제공

하지만, 이제는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33라운드 시작 전에 결정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37라운드까지 진행됐다. 이사회의 말대로 우승의 향방이 결정되고 나서 논의한다면 리그가 끝나고 나서야 플레이오프와 승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리그 종료 이후 승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결정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반발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각 구단을 위해서라도 빠른 결정은 필요하다. 계속해서 '희망고문'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재 K리그 챌린지 대부분의 팀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오직 승격 만을 바라보며 뛰는 팀들이다. 그들에게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빠르게 제시해야 구단들도 이에 맞게 움직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K리그 챌린지는 정말 재미있다. 한 경기에 따라 순위가 요동치는 리그 테이블을 바라보면 K리그 클래식 못지 않은 치열함이 느껴진다. 이는 분명히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는 승격에 대한 희망을 모두가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무의미한 '희망고문'은 안된다. 남녀관계에서도 깔끔한 선긋기가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이제는 교통정리를 해야한다. 각 구단과 팬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명확하고 공정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두가 동의할 만한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흥행까지 보장된다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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