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최철순은 아드리아노의 그림자까지 지웠다


전북 최철순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전북현대의 ‘모히칸 3형제’는 무시무시했다. 김신욱은 네 골 모두에 관여했고 레오나르도는 두 골을 뽑아냈다. 로페즈 역시 1골 1도움으로 펄펄 날았다. 전북은 어제(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이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4-1 대승을 따냈다. 원정 2차전 경기가 남아있지만 전북은 결승으로 가는 8부능선을 넘었다. 모두들 이 공격수들의 활약을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에 가려 덜 주목받는 선수가 있다. 오늘은 공격 포인트와는 거리가 멀지만 서울전에서 숨은 MVP로 꼽기에 충분한 최철순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장윤호 나온다” 최강희 감독의 연막작전
전북에는 김신욱과 레오나르도, 로페즈, 이동국, 에두, 한교원 등 막강한 공격 자원이 있다. 서울 역시 아드리아노와 데얀, 박주영, 윤주태 등 K리그를 쥐락펴락 하는 공격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공격 대 공격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였지만 이 승부를 지배한 건 다름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 최철순이었다. 엄청난 공격수들이 총동원된 경기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활약을 집중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나는 반드시 그래야겠다. 많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지만 어제 경기에서 가장 빛났던 건 최철순이기 때문이다. 최철순은 서울 공격의 핵인 아드리아노를 완벽히 지워버렸다. 나는 아드리아노가 경기에 나왔는지도 한참 뒤에 알았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경기 하루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막작전을 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장윤호의 출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포백 수비 앞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가 중요하다. 이호는 부상 중이고 신형민은 갓 제대해 챔피언스리그 선수 등록을 하지 못했다. 장윤호는 나이가 어리지만 장점이 많고 이런 경기를 통해 더 성장할 수 있다. 선배들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선발로 나서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프로 2년차 장윤호는 실제로 8강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는 물론 지난 8월 서울과의 맞대결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친 바 있다. 당연히 장윤호가 이번 서울전에도 나올 것으로 보였다.

장윤호가 경기에 나서 막아야 할 건 상대 미드필드진의 패스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서울의 공격 옵션인 아드리아노였다. 아드리아노가 어떤 선수인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만 무려 12골을 넣으며 득점 랭킹 단독 선두를 내달리고 있고 K리그 클래식에서도 정조국(16골)에 이어 13골로 득점 랭킹 2위에 올라있는 아시아 최정상급 공격수 아닌가. 데얀이나 박주영 등을 막는 것도 버겁지만 아드리아노 한 명만으로도 전북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아드리아노를 봉쇄할 역할을 할 선수가 필요했고 최강희 감독은 경기 하루 전 장윤호의 출전을 공언하며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의 말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장윤호가 있어야 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풀백 요원 최철순이 서 있었다.

J리그 득점 1위 우사미를 지워버린 최철순
깜짝 카드였다. 최강희 감독이 변칙적인 전술로 상대 에이스를 묶을 때 쓰던 바로 그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전북과 감바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최철순은 측면 수비가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상대 공격의 핵인 우사미 다카시를 완벽하게 봉쇄한 적이 있다. 혹시 이 칼럼을 우사미가 클릭하려고 하거든 주변에서 말려주길 바란다. 그때 일을 떠올리고 우사미가 스마트폰을 던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J리그 25경기에서 16골을 뽑아내며 리그 득점 랭킹 1위에 올라있던 우사미는 이 경기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울상을 한 채 돌아가야 했다. J리그 득점 랭킹 1위도 최철순의 찰거머리 수비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선수가 되고야 말았다. 이날 최철순은 우사미가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까지도 따라갈 기세였다.

심지어 감바 하세가와 겐타 감독도 충격을 받았다. “측면 수비수 최철순이 오늘 우사미의 맨투맨으로 나올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하세가와 감독은 “그 부분에서 기세에 눌렸다. 전반전을 그렇게 밀리고 우사미가 후반전에는 공을 편하게 받으려고 측면을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건 최철순이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처음 서본 것이었고 프로에 입문해 맨투맨 수비로 누군가를 막아본 것도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놀라 자빠질 사실 하나가 더 있다. 최철순이 우사미를 전담마크해야 한다는 건 경기 전날도 아니고 당일 통보됐었다. 최철순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특유의 찰랑거리는 직모를 휘날리며 “누구든 일대일에서는 막을 자신이 있다. 감독님이 지시하셨으니 그대로 수행했다”고 뭐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밝혔었다. 감바 입장에서 더 화가 나는 건 이날 경기에서 우사미가 경고까지 받아 경고누적으로 2차전에는 나오지도 못했다는 거다.

최강희 감독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최철순 카드를 쓴 건 한 번 더 있었다. 바로 지난해 9월 열린 서울과의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였다. 이날 경기에서 최강희 감독은 최철순에게 딱 하나만을 주문했다. “아드리아노를 막아라.” 말 잘 듣는(?) 최철순은 또 다시 상대 공격의 핵인 아드리아노를 악착 같이 막아냈다. 사실 이날 경기에서 최철순은 수비형 미드필더도 아니고 중앙 수비수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그저 아드리아노가 있는 곳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은 아드리아노에게 어떻게든 공을 연결시키기 위해 몰리나와 윤주태를 후반 시작과 동시에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결국 0-3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풀타임을 소화한 아드리아노는 슈팅 두 개를 날리는데 그쳤고 파울만 5개를 범했다. 최철순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리고 최철순은 다시 원래의 포지션인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돌아갔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전북 최철순
우사미를 완벽히 봉쇄한 최철순은 아드리아노까지도 지워버렸다. ⓒ전북현대

최철순은 아드리아노의 그림자까지 지웠다
1년이 흐른 뒤 다시 서울과 만난 전북은 또 다시 최철순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파격 전술을 꺼냈다. 1년 전 우사미와 아드리아노를 완벽 봉쇄했던 최철순에게 또 다시 아드리아노 수비를 맡긴 것이다. 경기 하루 전 장윤효의 선발을 시사했던 최강희 감독의 허를 찌른 한 수였다. 좌우 측면에는 이미 박원재와 김창수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최철순이 중원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측면에 공백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최철순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아드리아노를 완벽히 봉쇄했다. 아예 이석현이나 주세종으로부터 아드리아노에게 가는 패스를 차단해 버렸고 여기에 이재성과 김보경 등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공을 전달하는 역할까지도 완벽히 수행했다. 전반전에 레오나드로와 로페즈가 골을 기록하며 3-0으로 크게 앞서 나갔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지만 더 주목해야 할 사실 하나는 놓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거다. ‘아드리아노 슈팅 수 0개.’

포백 수비 바로 앞에서 패스를 끊고 아드리아노의 개인기를 차단하니 서울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드리아노는 최전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답답한 나머지 중원까지 내려왔지만 최철순은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공간이 없으니 아드리아노는 중거리슛도 때리지 못했다. 전북 입장에서도 중후방에 든든한 최철순이 버티고 있으니 공격수들이 수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전북이 네 골을 몰아치며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최철순이 든든하게 후방을 지키면서 아드리아노를 완벽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아드리아노는 90분 동안 슈팅 한 개를 날리는데 그쳤고 결국 경기는 전북의 4-1 대승으로 끝났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압도적인 득점력을 선보이고 있던 아드리아노는 그렇게 최철순에 의해 경기장에서 그림자까지도 완벽히 지워지고 말았다. 이건 최강희 감독 지략의 승리였고 최철순의 승리였다.

축구에서 골 넣은 선수만이 주목받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어제 최철순의 활약이 김신욱이나 레오나르도, 로페즈 못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최투지’라는 별명답게 최철순은 한 번 막기로 한 선수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 바로 어제 경기가 그랬다. 초호화 공격수를 앞세운 팀들의 맞대결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수비형 미드필더 최철순을 이 경기의 MVP로 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최철순은 그렇게 최강희 감독이 지시를 내리면 뭐든지 다 지워버린다. 우사미도 지우고 아드리아노도 지우고 원하는 건 다 지우는 ‘지우개 같은 남자’ 최철순이 내 아픈 사랑의 기억까지도 지워주면 안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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