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수원삼성 선수들의 충성심은 왜 사라졌을까


수원 염기훈
염기훈은 수원삼성의 전설이 돼 가고 있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몇몇 수원삼성 선수들의 태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원 선수 몇몇이 팀에 대한 애착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거나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선수들이 누군지 찾아내기 위한 ‘네티즌 수사대’도 가동됐다. 하지만 누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자기 관리가 부족했는지 찾아낼 필요도 없다. 지금 수원삼성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져 있다는 점이 중요한 거다. 어느 한 명에게로 화살을 전부 돌릴 사안이 아니다. 몇몇 수원선수들에게 들어보니 이 점 만큼은 확실하다. 그냥 팀 전체가 개판 오분전이라는 말이다.

이젠 K리그의 양대산맥 된 전북과 서울
명문 구단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선수들의 충성심을 끌어 올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현재 K리그 클래식에서 최고의 구단은 누가 뭐래도 전북현대일 것이고 두 번째로는 FC서울일 것이다. 다른 모든 걸 떠나 이 팀 선수들이 얼마나 충성심이 높은지를 살펴보면 그 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연봉을 깎고서라도 남아 있고 싶은 팀이라면 그 팀은 성공한 팀이다. 독자들 앞에서 속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느냐’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가오’ 있는 구단이어야만 명문 구단 축에 들 수 있는데 현재 K리그 클래식에서는 전북현대와 FC서울 정도가 선수들의 무한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명문 팀이다.

먼저 전북현대를 살펴볼까. 이동국은 중동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을 제시했는데도 전북에 남았다. 1년에 로또 1등을 한 번씩 맞을 정도 이상의 금액을 거절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전북에 남는 게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최강희 감독에 대한 예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동국 뿐일까. 심지어 에닝요와 루이스 같은 외국인 선수들도 해외에서 뛰다가 “전북이 그립다”며 연봉을 대폭 줄이고 복귀하기도 했다. ‘원클럽맨’ 최철순이 거절할 수 없는 거액을 제의받지 않는 이상 다른 K리그 팀으로 이적하는 일도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북에서 뛰는 선수들은 자신들이 K리그 최고 구단에서 뛴다는 자부심이 엄청나다. 돈을 더 주는 팀이 있어도 전북에 남겠단다.

FC서울은 전북과는 조금 다른 충성심이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은 중국으로 떠난 김주영이라고 생각한다. 김주영은 경남 시절 서울과 수원이 영입을 놓고 경쟁을 펼치다 수원 쪽으로 이적이 기울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며 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학창시절부터 서울 경기를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이 팀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품었기 때문이다. 연고 이전 문제는 논외로 치고 서울 만큼 어린 선수들에게 뛰고 싶은 목표를 갖게 하는 구단도 없다. 다른 팀 선수들도 언젠가 한 번은 뛰고 싶은 팀이라면 당연히 그 안에 속한 선수들의 충성심은 볼 것도 없다. 박주영과 데얀이 국내로 돌아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울 구단과 계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어린 선수들에게 “나중에 커서 서울에서 뛸래? 수원에서 뛸래?”라고 한 번 물어볼까. 수원 갈비를 미친 듯이 좋아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이 전자일 것이다.

서울 데얀
데얀은 FC서울로 복귀하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꼭 FC서울과 함께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FC서울

수원 선수들의 충성심이 대단하던 그 시절
전북은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비록 해외 구단에 비해서는 부족한 연봉이지만 전북에서 뛴다는 건 국내에서 가장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니 그들의 충성심과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반면 서울은 기성용과 이청용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데뷔해 지금은 잉글랜드 무대를 누비는 이 둘을 바라보며 서울의 어린 선수들은 동경심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서울을 자의적으로 떠나야 할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건 더 큰 구단으로 옮길 때 뿐인데 그들은 국내에서 서울보다 더 큰 구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유럽 빅리그나 중동의 대단한 이적 제안이 아니면 살기도 좋고 대우도 나쁘지 않고 경기장도 좋고 경기력도 좋은 서울에 남는 게 낫다는 거다. 서울 선수들이 충성심을 버리고 전북이나 수원으로 이적할 이유가 딱히 없다.

그렇다면 수원을 살펴보자. 수원도 과거에는 엄청난 충성심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했다. 그때는 수원이 지금의 전북이었고 지금의 서울이었다. 막대한 영입 자금으로 국내에서 잘하는 선수들을 싹쓸이했으니 지금의 전북 부럽지 않았다. 조원희는 수원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했고 신영록도 터키 무대를 밟았으니 지금의 FC서울 못지 않은 해외 진출 성과도 냈다. 물론 조원희와 신영록은 해외 무대를 경험한 뒤 국내로 복귀할 때 당연히 수원을 택할 정도로 애정이 넘쳤다. 국내로 돌아올 거면 수원으로 오는 게 속된 말로 가장 ‘가오’가 사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말까지도 수원은 가고 싶은 팀 1위였고 가장 선수 대우를 잘 해주는 팀 1위였고 팬들의 열정도 뜨거운 팀 1위였다.

2006년을 떠올려 보자. 논란 끝에 대전시티즌에서 수원으로 이적한 이관우는 서울과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골을 뽑아낸 뒤 수원 서포터스석으로 달려가 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이 팀에 충성심을 다하겠다’는 의미의 멋진 표현이었다. 팀에 오자마자 팬들에게 경례를 할 정도로 수원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의 충성심은 엄청났다. 심지어 염기훈은 전북 시절 구단 동의 없이 수원 이적을 추진하다 미운 털이 박혀 울산으로 강제 트레이드 되기도 했고 결국 돌고 돌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수원은 선수라면 뛰어보고 싶은 팀”이라는 말을 남겨 여전히 전북 팬들에게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수원 유니폼을 입는 건 모든 선수들의 꿈이었고 이 팀에 한 번 들어온 선수는 절대적으로 충성했다.

전북 이동국
이동국의 중동의 거액 이적 제안도 뿌리치고 전북에 남았다. ⓒ전북현대

지금의 수원은 어떠한가
그런데 지금의 수원은 어떤가. 선수들의 속마음을 일일이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자신보다 팀이 위대하다고 믿고 헌신하는 선수는 최고참인 곽희주와 이정수, 염기훈 정도뿐이다. 다른 어린 선수들도 당연히 수원에서 주전으로 계속 뛰고 싶고 팀 성적도 좋길 바라겠지만 수원의 충성심을 대표하는 선수는 이 셋이 다인 것 같다. 연봉을 확 낮추거나 거액의 이적 제안을 거부하거나 은퇴 직전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올 만큼 수원에 충성하는 선수들은 곽희주와 이정수, 염기훈 정도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은퇴가 아니라면 아마 수원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돼도 팀에 남아 승격에 힘을 쏟지 않을까. 이 셋의 충성심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다. 수원에는 좋은 이적 제안이 오면 떠날 선수들, 강등되면 떠날 선수들이 넘쳐난다. 앞서 언급한 셋을 제외하면 전북처럼 다른 팀으로부터 더 좋은 제안을 받아도 거절하거나 서울처럼 국내 다른 팀에 갈 거면 남아 있겠다고 할 만한 선수는 거의 없어 보인다.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이적하는 선수를 나쁘게 볼 생각은 없고 이건 프로의 세계에서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팀에 남겠다는 선수가 많은 팀이 결국엔 잘되는 팀 아닐까. 이미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수원 유니폼만 입고 있다고 수원 선수는 아니다. 적어도 K리그에서 충성심이 가장 높은 선수들을 보유했던 수원이 불과 몇 년 만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팀으로 변했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염기훈이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까지도 가려고 했던 팀이 수원인데 말이다.

충성심이 사라진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이다. 윤성효 감독 재임 시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제대로 된 우승 타이틀 한 번 가지고 오지 못했으니 선수들 스스로 ‘최고의 팀에서 뛰고 있다’는 자부심이 무뎌졌다. 여기에 데려오는 족족 신기하리만치 실패하는 외국인 선수들도 수원 선수들을 힘 빠지게 하는 요소였다. 전북은 에닝요와 루이스, 레오나르도 등이 거쳐 가고 서울은 데얀과 아드리아노, 몰리나 등이 거쳐 가는 동안 수원은 핑팡과 반도, 디에고, 로저, 일리안, 이고르 등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미 최고의 외국인 선수는 전북과 서울이 쓸어 가고 있는데 수원 선수들이 자신들의 팀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구단 지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정원 감독은 구단에 투자를 더 해 달라고 싸우지도 못한다.

수원 곽희주
수원은 곽희주처럼 충성심 넘치는 선수가 더 많이 있어야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수원삼성

다 뜯어고쳐야 충성심도 돌아온다
그러는 사이 K리그 내에서 압도적이었던 서포터스 또한 급격히 줄었다. 공을 수비진에서 돌리면 “공격하라 수원”을 쩌렁쩌렁하게 외치던 관중이 줄어드니 선수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기에 달려드는 모습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수원 2군 선수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운영 주체가 변경됐고 아무리 투자가 줄었다고 해도 살림이 팍팍해진 건 구단이지 선수들이 아니다. 수원 선수들의 그 대단하던 충성심이 사라진 건 누구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지원을 받고도 성적을 못 낸 전임 감독과 투자를 줄인 구단, 한숨 나오는 외국인 선수들만 줄줄이 영입한 프런트, 결국엔 등을 돌려버린 팬들, 없는 살림이라고 구단에 쓴소리를 못하는 현 감독, 이래도 그만이고 저래도 그만인 선수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지난 18일 수원은 10명이 뛴 전북과도 1-1 무승부에 머물렀는데 충성심과 투쟁심이 대단한 전북의 노장 선수들에게 압도당한 한판이었다.

수원의 최대 라이벌은 누가 뭐래도 서울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수원과 서울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 같다. 나는 이 상황이라면 4~5년 뒤 수원은 서울을 따라갈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수원맨’ 곽희주와 이정수, 염기훈이 은퇴하고 서울은 유럽 생활을 마무리한 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이청용과 기성용이 복귀했다고 상상해보자. 어린 선수들이 이 두 구단을 바라보는 인식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날 것이다. 유럽에서 명예롭게 돌아온 선수들을 환대해주는 팀에 속한 선수들은 충성심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쯤 수원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수원이 지금처럼 계속 헛발질만 하고 있을 때를 가정하고 하는 이야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북 선수들이 “수원으로 보내달라”고 징징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전북 선수들은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는 자체로 대단한 자부심을 느낄 뿐 수원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청용과 기성용을 배출한 서울을 보며 어린 선수들은 ‘나도 저런 선수가 되려면 서울에 가야한다’고 인식한다. 이 틈바구니에서 수원은 그동안 뭘했고 앞으로는 뭘할 것인가. 전북처럼 최고의 선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줄 것인가. 아니면 이청용과 기성용 같은 선수들을 배출해 동기부여를 해줄 것인가. 어느 한 명에게만 이 잘못의 화실을 돌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수원 선수들의 충성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수원을 다시 충성심으로 가득한 구단으로 만들 것인지, 그저 갈비가 맛있는 동네로 놔둘 것인지는 수원 구단 스스로의 의지에 달렸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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