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스포츠니어스 | 김재학 기자] 한국 시간 25일 저녁 전 세계의 야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릴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특급 투수인 호세 페르난데스가 보트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92년생의 어린 나이에도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발돋움하며 말린스와 메이저리그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던 투수였기에 그의 사망은 뭇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기구했던 어린 시절부터 촉망받는 유망주를 지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좌절을 겪으며 그는 더욱 성장했고 강해졌다. 기구한 운명을 살다 간 호세 페르난데스의 일대기를 정리해본다.

3번의 탈출, 그리고 밟은 자유의 땅

유년 시절 산타클라라에서 야구를 즐겼던 어린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호세 페르난데스는 쿠바에서 나고 자라며 야구를 동경했던 소년이었다. 페르난데스의 유년 시절 의붓아버지인 라몬 히메네즈가 의료봉사를 위해 베네주엘라로 건너갈 계획을 세웠으나 그의 가족들이 망명할 것을 우려한 쿠바 정부는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이후 히메네즈는 쿠바 정부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고 13번의 탈출 시도 끝에 홀로 미국으로의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남겨진 페르난데스와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가 있는 미국땅으로 가기 위해 국가 경계선을 넘는 시도를 3번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쿠바 수용소에 수감되며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결국 페르난데스와 가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4번째 시도를 했고, 해안 경비대의 감시와 뱃멀미 등 힘든 환경을 극복하며 미국땅을 밟는데 성공했다.

우연에서 인연으로, 영원한 은사를 만나다

유년 시절 산타클라라에서 야구를 즐겼던 어린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미국에 도착한 페르난데스는 비록 야구를 좋아하긴 했으나 공을 던지는 자세와 쥐는 법 등 기본조차 없는 백지 상태였다. 이 때 한 명의 야구 코치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바로 같은 쿠바 망명자 출신이던 올란도 차이니였다.

차이니는 페르난데스에게 기본적인 체력 운동부터 자세 교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가르쳤고, 페르난데스는 이내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특급 유망주가 됐다. 이후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가는 대신 프로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했고, 1라운드 14순위-계약금 200만불이라는 높은 기대를 받으며 마이애미 말린스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마이너에서 메이저까지 올라간 기간, '1년' 

유년 시절 산타클라라에서 야구를 즐겼던 어린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으레 많은 유망주들이 그렇듯 페르난데스 역시 가장 낮은 위치인 싱글A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2012년 싱글A 무대에서 14승1패-158탈삼진 등 당장 눈에 띄는 기록 외에도 마이너리그 전체 1위에 해당하는 '이닝 당 출루 허용률'을 기록하며 괴력을 보이며 그는 곧장 하부리그를 건너뛰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2013년 메이저리그 입성 후 곧바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것은 물론, 전반기에 18경기를 소화하며 5승5패 104.2이닝을 소화하며 2.75의 평균자책점과 103개의 탈삼진을 챙기는 등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루키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소속 구단 유일의 올스타로 선정됐고, 올스타 브레이크가 지난 후에는 더욱 상승된 기량을 보이며 해당 시즌을 마칠 때 12승6패/평균자책점 2.19/이닝당 출루허용률 0.98 등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손꼽힐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더불어 평생에 한 번 밖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내셔널 리그 신인왕 자리를 무난하게 손에 넣었음은 물론 해당 시즌 사이영상 후보에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이며 말린스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페르난데스는 불과 20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의 수많은 투수들이 꿈꾸기도 힘든 기록들을 남겼던 것이다.

절망적인 부상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페르난데스

유년 시절 산타클라라에서 야구를 즐겼던 어린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2013시즌을 훌륭하게 마무리한 페르난데스의 앞날은 승승장구 할 것으로 보여졌다. 어린 나이와 압도적인 구위, 그리고 불행한 유년 시절을 이겨낸 그의 앞날이 장밋빛임을 모든 팬들은 믿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불과 21살의 나이에 그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투수에게는 가장 끔찍한 부상이라는 팔꿈치 인대, 그것도 토미존 부상을 당한 것이다. 시즌 개막 후 4월 한 달간 최상급의 투구를 보이며 가장 유력한 사이영상 후보로 점쳐졌던 그에게는 너무나도 큰 악재였다. 결국 2013년 5월을 끝으로 그의 시즌은 조기에 마무리 됐다.

투수에게 가장 절망적인 부상이라는 토미존은 내측 인대 손상을 뜻하는데, 치료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이후 재활이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부상이다. 이로 인해 토미존 부상과 수술은 투수에게 있어 최악의 부상이자 최후의 희망이라는 말이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는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상을 당하며 시간이 많이 남게 된 그는 2015시즌이 시작하기 전 자전거로 여행을 다니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주기도 했다.

만개한 기량, 그래서 더 안타까운 그의 죽음

유년 시절 산타클라라에서 야구를 즐겼던 어린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풀 시즌이 바로 올 해, 2016시즌이었다. 그는 부상의 악몽에서 완연히 벗어난 모습을 보였고, 기록과 투구는 그 어느 때의 누구보다도 빛났다. 기록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는데, 최소이닝 탈삼진 200개 역대 2위 기록과 400이닝 500탈삼진 등 금자탑을 달성하며 가장 유력한 사시영상 후보로 점쳐졌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수많은 팬들에게 더욱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어떤 사람의 죽음이든 무게감이 다를 순 없으나, 그의 죽음은 어처구니 없게도 '팀의 배려'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부상에서 복귀한 투수를 등판시키기 위해 구단은 페르난데스에거 하루 휴식을 줬고, 그 휴식날 그는 친구들과 보트를 타러 갔다가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것이다.

"if you were given a book with the story is your life, would you read to end?"

유년 시절 산타클라라에서 야구를 즐겼던 어린 호세 페르난데스 ⓒ 마이애미 말린스 공식 홈페이지

호세 페르난데스가 지난 해 9월 남긴 인터뷰의 일부다. "만일 당신의 삶 전체가 적혀있는 책을 받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의 결말까지 읽을 것인가?"라는 의미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비극적 삶을 망라할 수 있는 인터뷰가 되고 말았다.

페르난데스의 죽음에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구단은 물론 전 세계의 야구팬들이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SNS가 그의 여자친구인 카를라 멘도사가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사진이었다는 점이다.

유년 시절부터 세계 최고 무대의 1선발 자리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했기에 더욱 믿기지 않는 그의 죽음, 안타깝게도 그의 인생이 담긴 책의 결말은 형용할 수 없을만큼 슬픈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kjh0998@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