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첫 메달을 안겨준 정보경(25, 안산시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수식어는 '작은 거인'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도 선수고, 은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붙은 이 단어가 정보경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포츠니어스'가 정보경을 직접 찾아갔다. 리우 올림픽 이후 그녀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만,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정보경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몇 가지 키워드와 함께 그녀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1. 정보경은 겸손하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정보경의 이름은 수많은 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 속에서나 존재했다. 하지만, 며칠 새에 많은 것이 변했다. 그저 한 명의 여자 유도 선수는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되어 돌아왔고, 그 차이는 엄청났다. "크게 변한 건 없어요"라며 겸연쩍게 웃던 정보경도 올림픽 이후의 일들을 되짚으며 자신의 주변에 생긴 변화를 실감하는듯 했다.

"예전에는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이제는 몇 분이 알아보시는 정도? 사실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바로 알아보시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알아보시는 분들도 저한테 '정보경 맞죠?'라고 하기 보다는 '정보경 맞는 거 같은데…'하면서 그냥 가세요. 엄청난 변화는 아니지만 리우 올림픽을 다녀오니까 변한 것 같기는 해요. 신기하다고 해야할까?"

"올림픽에 나가기 전에는 저를 잘 모르셨던 분들이 올림픽을 통해서 저를 알게 되시고, 또 저를 실제로도 알아보세요. 뿌듯해요. '내가 리우에 가서 뭘 하긴 했구나' 싶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 단 며칠 만에 정보경의 위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게 고마움을 표할 뿐이었다.

#2. 정보경은 울보다

리우 올림픽에서 정보경은 '눈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결승전에서 패배한 이후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하염없이 오열했다. 덕분에 경기 후, 그리고 귀국한 이후 그녀는 그 '눈물'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정보경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아쉽고 미안해서"였다.

또다시 눈물 얘기를 꺼내기는 조심스러워 "그 때 울었던 이야기는…"이라고 말 끝을 흐리자 잠시 망설이더니 오히려 "사실 저는 그 이후에 더 울었어요"라고 고백했다. "제 경기가 끝나고도 울었지만, 유도 대표팀 동료들이 경기할 때마다 눈물이 났어요. 지금까지 고생했던 걸 서로 아니까 경기가 끝나면 울 수 밖에 없더라구요"

이것이 정보경이 리우에서 남긴 가장 강렬한 추억이었다. 리우에 도착하자마자 경기를 준비해야 했고, 자신의 경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귀국해야 했기에 별 다른 특별한 기억이 없다고 말한 그녀였지만 리우에서 흘린 눈물은 그녀의 올림픽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이쯤 되면 '울보' 맞는 것 같다.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리우의 추억 ⓒ 정보경 제공

평소에는 눈물 흘릴 일도 없었고, 가뜩이나 리우에서는 체중 조절로 인해 몸 속 수분이 말라가던 정보경이었지만 4년 간의 고생은 그녀의 눈에서 세차게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소중한 은메달을 획득했고, 국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원하는 금메달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 아닐까.

#3. 정보경은 욕심쟁이다

정보경은 욕심이 많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남자 유도선수들을 주로 비추던 카메라들을 대회 끝나고 나서는 나를 향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해 현실로 만들었고, 평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고 싶어한다.

귀국 후 그녀는 여러 곳에 불려갔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를 방송에서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주변에서 CF 안들어오냐고 묻는다"던 정보경의 방송 나들이는 어땠을까? "제가 방송을 딱 두 개 나갔어요. 대담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 방송에 이렇게 제대로 출연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으면서 힘들기도 하더라구요".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리우의 추억 ⓒ 정보경 제공

"유도같은 경우는 경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간이 굉장히 짧아요. '팍'해서 '빡'하면 끝나는 경기가 많아요. 그런데 방송같은 경우는 녹화 시간이 굉장히 길더라구요. 이 부분이 조금 힘들었어요. 방송에 나가보니 운동이 좀 더 적성에 맞기는 하지만 불러주시면 긍정적으로 나가려고 해요".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방송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의 꿈도 스케일이 다르다. 대통령과 건물주다.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대통령인데 너무 현실성이 없잖아요. 그래서 1차적으로 건물주가 되는 걸 목표로 잡았어요. 슬슬 현실로 만들 준비를 해야죠". 내친 김에 '스포츠니어스'가 이전하게 된다면 월세를 놓을 생각 없냐고 슬쩍 물어보니 "저야 좋은데… 벌써 세들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요"라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아직 정산이 안되서 건물주의 꿈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요"라며 농담을 던진 정보경이지만, 지금은 건물주보다 유도 선수로서의 욕심이 더 커보인다. 아직 유도를 통해 이루어야 할 꿈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아직 금메달을 꿈꾸며 물들였던 노란 머리를 바꾸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4. 정보경은 20대 소녀다

20대.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나이다. 정보경은 이런 생각을 오직 유도 만을 바라보며 꾹 참았다. 그래도 그녀의 '버킷 리스트'에는 꽤 여러가지가 들어있다.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괌이랑 하와이 중에 어느 곳이 더 괜찮을까요?"라며 눈을 반짝이던 정보경. 하지만 연애 이야기가 나오자 급격히 낯빛이 어두워졌다. "남들은 다 잘 하는 것 같은데 저만 아직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한숨에서 솔로의 내공이 느껴졌다.

내친 김에 이상형을 물어봤다. "방송에 나가서는 박서준 배우가 이상형이라고 했어요. 정말 박서준 배우의 팬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는 박서준 배우 같은 분에게도 끌리지만, 약간 듬직한 곰같은 사람에게도 끌리거든요. 조진웅 배우 같은 스타일이랄까…"라며 골똘히 고민하는 정보경과 '연애는 박서준, 결혼은 조진웅' 정도로 정리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정보경은 유도 선수라는 거친 이미지와 달리 소녀 같은 모습도 가지고 있다. 리우 올림픽에서 사온 기념품 이야기를 할 때는 국가대표가 아니라 처음 배낭여행을 다녀온 20대 여성 관광객의 느낌이 진하게 풍겨졌다.

"제가 선수촌에 있는 기념품 매장에서 인형 몇 개랑 가방에 열쇠고리처럼 걸 수 있는 인형을 샀어요. 손바닥 반 정도 크기? 그런데, 생각보다 이게 비싼 거에요. 예상 외의 지출에 놀랐죠. 그래도 샀어요. 문제는 공항에 갔더니 선수촌에 있는 것과 같은 기념품 매장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공항이 훨씬 싼 거에요! 일명 바가지를 썼어요". 이번 인터뷰 중에서 정보경이 가장 억울함을 토로한 순간이었다.

계속해서 정보경을 20대 소녀라고 소개했지만, '20대 여성은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 매력도 존재한다. 바로 그녀의 취미 '낚시'다. 은메달 획득 이후 그녀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취미까지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그래서 이 사실이 알려지자 본의 아니게 '프로 낚시꾼'으로 오해 받은 적도 있다고. "그냥 근처에서 배 타고 가는 낚시를 즐겨요. 거기서 인솔하시는 분이 '자 내리세요!' 하면 낚싯대를 내리고 한참 지켜보다가 '자 올리세요!' 하면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데 물고기가 잡혀 있으면 그저 기쁜 수준이에요"

다른 강태공들처럼 낚시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보경에게 낚시는 고되고 바쁜 일상 속에 쉼표를 찍어주는 소중한 취미일 것이다. 조만간 그녀는 지인들과 또다시 낚시를 갈 예정이라고. 틈만 나면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떠나는 20대 소녀라니, '삼시세끼 어촌편'은 진지하게 정보경의 게스트 섭외를 고려하는 것이 어떨까.

#5. 정보경은 유도 선수다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유도 선수 정보경보다는, 인간 정보경의 모습이 더욱 궁금했다. 그래서 경기 자체나 선수 생활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그녀의 진솔한 속마음과 뒷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정보경은 어쩔 수 없는 유도 선수였다.

"저희 유도가 사실 비인기종목이다보니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려요. 올림픽에서 보내주신 것만큼 늘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 해주시면 한국 유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시즌과 비시즌이 따로 구분되지 않는 종목이에요. 항상 운동을 하고 있어요. 언제나 유도를 즐기실 수 있으니 많은 성원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정보경이 남긴 말은 유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지만 그녀는 결국 유도를 제일 사랑한다. 예능인 정보경, 일반인 정보경, 낚시꾼 정보경보다는 유도 선수 정보경이 그녀에게는 제일 잘 어울리는 옷이다.

2016 리우 올림픽은 이미 끝났다. 항상 그래왔듯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정보경이 흘렸던 눈물의 감동, 그리고 올림픽에서 느꼈던 환희를 조금씩 지워나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국 유도 역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또다시 유도 선수 정보경을 만날 때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사진 = 정보경 ⓒ MBC 방송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