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레니 감독이 서울이랜드를 떠나면서 이제 K리그에는 단 한 명의 외국인 지도자도 없는 상황이 됐다. ⓒ서울이랜드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과거 K리그 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장에 가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외국인 감독이 말을 하면 그걸 통역이 전달하는 일은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0년 인천유나이티드의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세르비아어로 이야기를 하면 이걸 영어로 통역하는 이가 따로 있었고 그걸 영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통역해야 해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오늘 좋은 경기를 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아주 형식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데도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것만큼 새로운 경험도 없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축구 지도자의 철학과 그들이 바라보는 K리그에 대한 시선은 무척이나 신선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도자는 소통을 하는데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신선했다.

K리그에서 명맥 끊긴 외국인 지도자

하지만 이제 더 이상 K리그 기자회견장에서 지루한 통역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K리그에 외국인 감독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을 보유하고 있던 K리그 챌린지 서울이랜드FC가 마틴 레니 감독과 작별하고 박건하 감독을 선임하면서 K리그 무대의 외국인 감독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K리그 클래식 12개 팀과 K리그 챌린지 11개 팀 등 총 23개 팀이 모두 한국인 감독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는 전세계 어느 리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K리그는 적어도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폐쇄적인 리그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인 지도자들이 모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리그의 다양성을 놓고 봤을 때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야기다.

리그의 다양성을 놓고 봤을 때 외국인 감독에게 문을 활짝 열지 않고 있다는 건 K리그가 한 번은 곱씹어야 할 문제라는 거다. 단순히 레니 감독이 떠나면서 지도자 전원이 한국인으로 채워졌다는 걸 따지는 게 아니다. 레니 감독 이전부터 K리그는 외국인 지도자에게 굉장히 인색한 리그였기 때문이다. 1부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이 얼마나 환영받지 못하는지부터 한 번 따져볼까. K리그가 승강제를 실시하기 전인 2011년 대구FC에 부임했던 모아시르 감독이 가장 최근에 K리그 1부리그를 경험한 외국인 감독일 정도다. 최강희 감독을 대신해 감독대행 역할을 수행했던 파비오 코치는 논외로 한다면 승강제 실시 이후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로 나뉘면서 1부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는 단 한 명의 외국인 감독도 서질 못했다.

K리그 챌린지에서도 페트코비치(경남)와 알툴(강원), 레니(서울이랜드) 등을 빼면 하부리그 신설 후 활약했던 외국인 감독이 없다. 이 셋도 팀에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모두 성적부진으로 팀을 떠나야 했다. 이들이 오가기 전인 2011년에도 K리그에는 외국인 감독이 전무했다. 그나마 K리그에 영향을 끼친 외국인 감독의 마지막 흔적이라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포항스틸러스를 맡았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나 2007년부터 2009년까지 FC서울을 이끌었던 세뇰 귀네슈 감독 정도라는데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혹시 이견이 있다면 맨 밑 내 이메일 주소로 A4용지 10장 분량의 반론을 제기해 달라. 그러면 친절히 우리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하겠다. 페트코비치와 알툴, 레니 감독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2009년 이후 무려 7년 동안 제대로 된 외국인 지도자가 구사하는 축구를 경험하지 못한 셈이다.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을 이끌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포항스틸러스

중국과 일본, 34팀 중 16팀이 외국인 감독

그렇다면 주변 리그의 상황은 어떨까. K리그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J리그부터 살펴보자. J리그는 1부리그 18개 팀 중 6개 팀이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있다. 그 국적도 다양하다. 요코하마 F마리노스는 프랑스 출신 에릭 몽바에르 감독을 믿고 있고 수석코치 또한 프랑스인이다. 우라와레즈는 미하일로 페트로비치(세르비아)를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보스코 주로프스키(마케도니아)와 마시모 피카덴티(이탈리아)를 감독으로 앉힌 나고야 그램퍼스와 사간 토스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나 사간 토스는 브루노 콩카와 지안루카 코기 코치 또한 이탈리아 출신이다. 유럽 출신 감독만 있는 건 아니다. 비셀 고베는 브라질 출신 넬시뉴 감독을 선임했고 쇼난 벨마레는 대한민국의 조귀재 감독이 맡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남미 대륙의 감독이 골고루 선임돼 있다. 1/3이 외국인 감독이고 나머지 2/3이 내국인 감독이다.

그렇다면 중국 슈퍼리그는 어떨까. 16개 팀 감독 가운데 무려 12개 팀 감독이 외국인이다. 루이스 스콜라리(광저우 에버그란데)와 펠릭스 마가트(산둥 루넝), 스벤 예란 에릭손(상하이 상강), 그레고리오 만사노(상하이 선화), 마누엘 페예그리니(허베이 화샤 샹푸)처럼 당장 유럽 빅리그로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세계적인 명장이 대거 리그를 장악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홍명보 감독(항저우 그린타운)과 박태하(옌벤 푸더), 최용수(장쑤 슌톈), 이장수(창춘 야타이), 장외룡(충칭 리판) 등도 중국 슈퍼리그에서 활약 중이다. 외국인 감독이 너무 많아 내국인 감독이 설 자리가 없다는 고민을 할 정도로 중국 슈퍼리그는 다양한 지도자들의 무대가 됐다. 3/4이 외국인 감독이고 나머지 1/4을 중국인 감독이 맡고 있는 상황이다. 과할 정도로 외국인 감독이 많다.

그나마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지 않은 4개 팀 중 전통적으로 중국인 감독을 중용하는 팀은 랴오닝 훙윈과 허난 젠예 정도다. 랴오닝 훙윈은 2008년 베르너 로란트 감독 이후 계속 중국인 감독을 선임했고 현재에도 마린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허난 젠예도 2012년부터 줄곧 중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중이다. 스자좡 융창은 야센 페트로프(불가리아) 감독을 경질한 뒤 중국인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고 있고 베이징 궈안도 알베르토 자케로니(이탈리아) 감독이 사임한 뒤 중국인 수석코치 시에 펭에게 감독대행을 맡기고 있으니 이 팀들 역시 조만간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우리가 중국 슈퍼리그를 바라볼 때면 세계적인 명장 몇 명의 몸값이 얼마인지에만 관심을 갖지만 사실 이렇게 다양한 대륙의 다양한 지도자가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을 이끌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포항스틸러스
니폼니시와 비츠케이, 그리고 파리아스

K리그에는 유독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으로 꼽힐 만한 외국인 지도자들이 별로 없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유공 코끼리와 부천SK를 이끌었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러시아)이나 1991년 21경기 무패 신기록을 세우며 대우로얄즈를 K리그 최고 구단으로 우뚝 세워 놓고 감독상을 수상한 비츠케이(헝가리) 감독 정도가 떠오른다. 외국인 지도자에게 기회 자체를 그리 많이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외국인 명장을 기억 속에 담을 수도 없었다. 최근 기억을 놓고 본다면 파리아스, 귀네슈 감독 정도가 기억에 남을 외국인 감독일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예 외국인 감독을 리그에서 볼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스콜라리 같은 세계적인 명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 돌아가면서 해먹는 이 바닥에 새로운 인물 한 명이 등장해 바람 좀 일으켰으면 하는데 우리는 아예 외국인 감독에는 관심이 없다.

 

K리그는 이상하리만큼 외국인 지도자에게 폐쇄적이다. 모아시르나 페트코비치, 알툴, 레니 감독 등의 예를 들며 외국인 지도자가 K리그에서 유독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전력이 약한 시,도민구단이나 신생팀 감독이었다. 빅클럽에서 경험을 제대로 갖춘 외국인 지도자를 모셔와 실패한다면 변명이 될 수 있겠지만 시,도민구단의 외국인 지도자 사례를 드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에두나 데얀, 레오나르도 같은 수준의 외국인 선수가 활약한다면 리그에 이 정도 수준의 지도력을 갖춘 외국인 감독이 서너 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K리그 클래식 12개 팀, K리그 챌린지를 포함한다면 23개 팀 모두 한국인 감독이 이끌고 있다는 건 다양한 축구를 보고 싶은 팬들의 바람을 채우지 못하는 일 아닐까. 중국과 일본의 1부리그에는 절반 가까운 34팀 중 16팀이 외국인 감독인데 왜 우리는 단 한 명도 외국인 감독이 없는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외국인 지도자가 성적을 보장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K리그가 너무 한국인 지도자들만 중용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이다. 한국인 감독이 경질된 뒤 지도자 경험이 부족한 한국인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다가 결국 그 자리를 마찬가지로 경력이 떨어지는 한국인 감독이 대신 차지하는 일이 무한반복 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이 위기의 순간 등장해 지금껏 살아남은 이는 광주FC 남기일 감독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독자들 중에도 ‘저 분이 지금 프로팀 감독을 맡을 인물인가’라는 의문이 강하게 드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외국인 감독이라고 다 옳다는 말이 아니라 ‘감독 시장’을 조금 더 넓히자는 거다. 리그에 한국인 감독도 있고 브라질 감독도 있고 유럽 출신 감독도 있으면 얼마나 좋나. 파리아스와 귀네슈 감독 이후로 K리그에서는 외국인 지도자의 명맥이 끊긴 것이나 다름 없다.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을 이끌고 2005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포항스틸러스

다양한 지도자들이 어우러지는 리그를 기대한다

취재를 하면서 K리그에서 감독을 지낸 몇몇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한결 같이 “다들 밥그릇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한다”면서 익명을 요구했다. A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구단에서는 그래도 상황에 따라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 감독을 더 좋아한다. 구단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는 한국인 감독이 있겠는가.” 이해관계가 부족한 외국인 감독은 독단적인 행동으로 수뇌부를 피곤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했다. 현재 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B감독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시,도민구단들은 구단주의 말이 곧 법이다. 구단주의 정치색에 따라 온전했던 감독 목숨도 날아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외국인 감독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서, 성적도 못 내고 경력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강단 있는 외국인 지도자에게 우직하게 팀을 맡기기에 K리그에는 사공이 너무 많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난 C감독은 “K리그에는 기다림이 부족하다”고 했다. C감독은 “적어도 한 감독이 팀을 만드는데 3년이 걸리는데 성적이 최우선인 K리그에서는 3년을 기다려줄 구단이 없다”면서 “선수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 감독보다는 그래도 단기간에 팀을 파악하고 정비할 수 있는 방편으로 한국인 지도자를 선임하는데 급급하다. 중국도 성적 지상주의는 비슷하지만 걔네들은 돈이 많으니 위약금을 물고 또 명장을 데려올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안전하게 한국인 감독을 선임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대화를 나눠본 지도자들 모두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K리그에서 외국인 명장이 등장할 확률은 높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 명장으로 꼽히는 김학범 감독도 성남FC에서 일방적인 경질 통보를 받는 마당에 외국인 감독이 이 척박한 K리그 땅을 개척해 살아남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리그에 속한 지도자들이 다양해져야 한다. 한 팀을 10년 넘게 이끌어 오는 감독도 있어야 하고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한 뒤 프로 무대에 뛰어든 실력파 감독도 있어야 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내공 있는 감독도 있어야 하고 할아버지 감독과 형님 같은 감독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외국인 감독도 K리그에 몇 명쯤 있다면 리그가 더 풍성해질 것이다. K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성적을 낸다고 만족할 게 아니라 이제는 조금 더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그로 성장했으면 한다. 어차피 성적을 내는 건 몇몇 구단뿐인데 그 구단을 보며 “외국인 감독은 필요없다”고 할 일은 아니다. 자그마치 34년이나 된 리그에서 내세울 만한 외국인 명장이 여전히 니폼니시와 파리아스 뿐이라는 건 아쉬운 대목 아닌가. K리그 기자회견장에서 감독들이 말을 할 때 포르투갈어도 들리고 영어도 들렸으면 좋겠다. 귀네슈 감독이 떠나면서 함께 사라진 FC서울의 아리따운 통역사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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