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징계는 과연 타당했을까. ⓒ전북현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심판에게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명목으로 돈을 건넨 혐의가 포착돼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된 전북 스카우트 A씨에게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지난 12일 부산지법 재판부는 A씨에 대한 3번째 공판을 열었고 검찰은 A씨에 징역 1년, 심판 B와 C씨에게 각각 징역 4개월에 추징금 200만원, 징역 4개월에 추징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아직 재판부의 선고는 내려지지 않았지만 A씨는 심판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한 상태다. 검찰은 이 돈이 부정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A씨는 용돈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구단 스카우트가 사비로 심판을 매수했다?

이제 프로축구연맹으로 공이 넘어 왔다. 차일피일 미루던 해당 사건의 징계를 논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A씨의 1차 공판 때부터 징계 날짜를 조정했던 연맹으로서는 오는 28일 열리는 선고 공판 이후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북은 스카우트 A씨의 개인적인 행동이라는 입장이고 연맹 역시 리그 흥행 구단인 전북에 중징계를 내리기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승점 삭감 및 벌금 등의 조치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권에 가장 근접한 전북이 내년 시즌 승점 10점을 감점 당하더라도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고 벌금 몇 푼은 우스울 수준이다.

나는 전북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일개 스카우트가 전북 구단에 배정된 심판들에게 뒷돈을 찔러줄 만큼 독단적인 일을 했을 리는 만무하다. 팀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승패와는 큰 연관이 없는 스카우트가 자칫하면 콩밥 먹을 각오를 하고 개인적인 행동을 했다는 건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축구계 관계자 D씨는 “구단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부산지검에서는 “구단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고 전한 바 있다. 스카우트 A씨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심판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검찰은 정황상 전북 구단이 개입했을 것이라고만 추측할 뿐 어떠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실제로 A씨가 사비로 개인적인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북 구단 역시 프런트 관리 소홀의 책임을 져야 한다. 후임이 잘못하면 분대장이 징계를 받고 소대장이 책임을 지고 중대장도 불이익을 받는다.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은 함께 져야 한다. 스카우트의 개인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그게 K리그를 위태롭게 흔드는 범법 행위였다면 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구단 또한 당연히 책임이 있다. A씨가 전북 구단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구단 명함을 들고 다니는 직원 신분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가 음주운전이나 도박을 했으면 개인 일탈일 수 있어도 구단과 관련한 비리를 저지른 순간 이는 개인 일탈이 아니다.

K리그는 언제까지 꼬리만 자를 텐가

우리는 지금껏 꼬리 자르기만 해왔다. 2011년 승부조작 사건 당시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선수들에게만 징계를 내렸을 뿐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진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관리 소홀 책임을 져야 할 연맹이 승부조작 가담자에게 징계를 내리는 입장이었다. ‘제대로 선수들을 계도하지 못한 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해당 구단 프런트가 사퇴를 하건, 연맹 담당자가 사퇴를 하건 해야하는데 그저 연맹 총재가 사과하는 걸로 그들의 잘못은 모두 씻겨 나갔다. 연맹에서 관리하는 선수들 수십 명이 승부조작으로 쇠고랑을 찼지만 당시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가 나서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뿐 연맹에서 책임을 지고 직위에서 물러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 해에도 마찬가지였다. 경남FC 안종복 대표이사가 재임 시절 심판들을 매수해 유리한 판정을 요구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안종복 대표이사는 2년 동안 네 명의 심판에게 무려 19번이나 지속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 22명의 K리그 주심 중 네 명이나 매수됐다는 사실은 선수들의 승부조작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안종복 대표이사가 구속됐고 돈을 받은 심판 네 명 중 두 명은 구속, 두 명은 불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연맹에서 심판을 관리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분명히 이들을 임명하고 관리하는 책임자가 있을 텐데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만 처벌받는 걸로 일은 무마됐다. 심판위원장이 책임을 통감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마땅한 일 아니었을까.

이번 사건도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스카우트 A씨가 모든 걸 안고 가는 모양새다. 전북 구단은 물론 연맹의 그 누구도 이 문제와 관련해 책임을 지지는 않을 것 같다. 프런트를 관리하는 전북 구단이나 이런 전북 구단 및 심판들을 관리해야 하는 연맹 모두 스카우트 A씨의 개인 행동이라고 몰아 세우는 게 서로를 위해 좋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사격하다 내가 총구를 돌렸다는 이유로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을 돌았던 우리 분대장은 참 불쌍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연대 책임에 대해 뼈저리게 배웠는데 정작 이 사회는 꼬리 자르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전북에 승점 삭감이나 벌금 등 가벼운 징계가 내려지고 연맹은 이를 처벌하는 입장으로만 쏙 빠져 나간다면 참 분통이 터질 것 같다.

프로축구연맹은 과연 전북에 어떠한 징계를 내릴까. ⓒ전북현대

전북은 강력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

전북에는 강력한 징계가 내려져야 한다. 바로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이다. 스포츠계에서 심판 매수는 승부조작 못지 않은 악질 범죄다. 스카우트 개인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걸 믿지도 않지만 정말 개인의 일탈이었다고 해도 전북이 책임져야 한다. 심판에게 용돈 좀 찔러주는 게 관례이고 다른 팀도 다 그랬는데 전북만 재수 없게 걸렸다고 생각할 것도 없다. 재수가 없는 건 재수가 없는 대로 뒤집어 쓸 일이다. 걸렸으니 처벌 받는 게 맞다. 승부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심판에게 돈까지 찔러 줬으니 이건 변명의 여지 없이 중징계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더군다나 초대형 구단 전북이라 봐주면 더욱 안 된다. 전북이 K리그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있으니 더더욱 일벌백계 해야 한다. 개인적인 행동으로 구단 프런트가 심판에게 뒷돈을 제공하면 구단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경남은 안종복 대표이사가 심판을 매수한 혐의로 벌금 7천만 원과 승점 10점 감점의 징계를 당했다. 이 가벼운 징계부터가 잘못됐다. 형평성을 들어 전북도 승점 감점과 벌금 정도로 이 사건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경남은 대표이사가 직접 심판 매수를 주도했지만 전북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스카우트가 자기 월급으로 심판에게 용돈을 준 것이니 경남 이상의 징계를 내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형평성을 논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 심판 매수가 고작 승점 감점과 벌금 몇천만 원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번 기회에서라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경남의 가벼운 징계 때부터 잘못됐지만 만약 이번에도 경남의 사례를 들어 비교적 가벼운 징계에 그친다면 후에 또 다른 팀이 부정을 저질러도 이 가벼운 수준에서 징계를 논해야 한다.

리그 스폰서이자 축구계를 휘어잡은 현대라서 봐주면 안 된다. 경남 사례를 들면서 형평성 때문에 가벼운 징계를 내려서도 안 된다. 항간에 떠돌던 심판의 용돈 개념이라고 징계에 미온적이어서도 안 된다. 리그를 이끄는 구단이라 강등을 면해줘도 안 된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했을 때 어떠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지만을 가지고 이번 사안을 논해야 한다. 그게 리그를 선도하는 전북이건 꼴찌를 다투는 팀이건 달라서는 안 된다. 프로축구연맹 상벌 규정에도 클럽 운영 책임자나 임원 및 직원이 심판 매수 등 불공정 유도행위 및 향응을 제공하면 하부리그 강등이나 1년 이내의 자격정지,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 1억 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 경고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게 돼 있다. 똑같이 학창시절에 담배를 피우다가 걸렸는데 나는 10대를 때리고 모범생이고 반장이던 친구에겐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하던 그 학생과장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전북도 징계 받고 연맹도 책임지길

나는 전북 구단을 좋아한다. 막대한 투자를 하고 그에 따른 스토리를 만드는 팀인데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들도 많고 최강희 감독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재 재판 중인 스카우트 A씨와도 진솔하게 소주잔을 기울인 적도 있다. 사견임을 전제로 다른 구단 모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A씨는 술김에도 메모를 해 놓을 만큼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배신감이 더 크다. 아무리 호의적으로 보는 구단이라고 하더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 거대 구단 눈치를 보며 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는 소위 축구 언론들도 그러면 안 된다. 그건 언론이 아니라 구단 홍보대사다. 왜 이토록 중대한 사안에 대해 “전북 강등”을 외치는 언론이 하나도 없나.

전북 입장에서도 이 부끄러운 역사는 털고 가는 편이 미래를 위해 낫다. 승점 삭감이나 벌금 등 가벼운 징계로 이 사안이 마무리 되면 전북은 20년이 지나도 ‘매수 구단’ 소리를 피할 수 없다.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가 다시 깨끗하게 시작해도 1,2년 안에 원래 자리로 돌아올 만큼 전북은 능력 있는 구단 아닌가. 무겁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강등이라는 징계가 언젠간 전북의 부끄러운 역사를 털고 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충성심 높은 선수들이 많은데 한 시즌 정도 K리그 챌린지에 있다고 해 그들이 곧바로 팀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한 시즌이면 따끔하게 받고 털어낼 죄를 어설프게 수십년씩 끌고 가지는 말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벌을 받아야 이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없다. 가뜩이나 심판 매수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여기에 연맹이 가벼운 징계를 내려 비호(?) 받는 것처럼 여겨지면 전북은 평생 ‘공공의 적’이 된다.

연맹에서도 이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누군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승부를 조작하고 심판을 매수해도 처벌을 받는 건 당사자 뿐이다. 선수들을 계도하지 못한 죄, 심판들을 관리하지 못한 죄에 대해서는 연맹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들은 늘 누군가에게 벌을 주는 역할만을 해왔다. 그들 역시 관리자로서 다하지 못한 의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과감하게 전북에 K리그 챌린지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내리고 관리에 소홀했던 스스로에게도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 심판 매수라는 큰 죄를 일벌백계하지 않고서는 리그에서 정의를 논할 수 없다는 걸 연맹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으면 좋겠다. 심판을 매수한 구단은 전북이 아니라 전북 할애비라도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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