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김융희 기자] 이제는 시원한 해설과 재치있는 입담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명 해설가이자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이끈 행정가였던 故하일성(67) 씨가 우리 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이별이기에 가족, 지인, 야구 팬들 까지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체육교사에서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하일성

하일성은 1949년 육사 9기 출신의 직업군인 아버지와 백화점에서 일하는 '신식여성'인 어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자랐다. 소위 인텔리 부모님 밑에서 공부 잘하는 부잣집 외아들로 자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린시절을 외가와 친구집 대여섯 군데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그이기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가정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성동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64년 하일성은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1967년 야구 특기생으로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했지만 고된 훈련과 부상으로 일찍이 선수생활을 마쳤다. 그 후 군에 입대해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군 복무를 마친 그는 남은 공부를 마치고 교원 자격증을 취득해 서울 환일고등학교의 체육교사로서 교직에 몸을 담았다.

1979년 KBS 배구 해설위원이던 오관영이 평범한 체육교사였던 하일성을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추천했다. 왕년에 야구도 했었고 재치있던 입담도 가졌던 그였기에 제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야구와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1982년 KBS 스포츠국 야구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해설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굳혔다.

그에게 찾아온 시련

해설위원으로 주가를 한창 올리던 중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일년 340일 이상 함께하던 술과 하루 4갑의 흡연으로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3번의 수술과 공황장애, 우울증의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금연에 성공하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돌아온 하일성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24년간 몸 담았던 해설직을 떠나 제11대 KBO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며 야구 행정가의 길로 뛰어 들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에 공헌하며 국가대표 야구단 단장으로서 야구계에 크게 이바지했다. 특히 하일성은 "죽을 때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단장'으로 불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을 만큼이나 그 때의 기억을 인생 최고의 순간이고 여겼다.

인터넷 등으로 중계 문화가 달라지면서 하일성은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주로 프로야구 스타 출신 해설위원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결국 그는 2014년을 끝으로 국내 프로야구 중계계를 떠나게 됐다.

야구계를 떠난 하일성은 야구계가 아닌 곳에서 여러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 지난 7월 아내인 A 씨가 음주 상태로 운전을 하면서 사고가 났고 옆에 있던 그 역시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또한 지인의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 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해당 아들이 결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하지 못하자 지인이 사기 혐의로 고소를 한 것이다.

"야구 모른다"던 그는 '야구 밖에' 몰랐다

하일성은 여러 일들로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하일성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을 살았던 그가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게 많은 야구 팬들을 슬픔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제는 그의 구수한 입담을 들을 순 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야구 몰라요' 라는 말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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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하일성 ⓒ YTN 방송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