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언’ 박세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 TOP7


1998 US여자오픈 우승 당시 맨발의 투혼을 보여주는 박세리 ⓒ 유튜브 중계 캡처

[스포츠니어스 | 한현성 기자] 박세리(40)가 오는 10월에 열리는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경기에서 선수로써 마지막 무대를 가진다. 이젠 진짜 박세리를 보내줘야 할 때인가 보다. 박세리와 함께 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7가지의 순간들을 내 마음대로 정해봤다. 물론 최고의 순간은 다들 이 글을 읽기 시작하기 전부터 머리 속에 떠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TOP 7 : SBS < 아빠를 부탁해 > 출현

예능에 출연하는 박세리 ⓒ SBS 방송 캡처
예능에 출연하는 박세리 ⓒ SBS <아빠를 부탁해> 방송 캡처

박세리가 그의 아버지 박준철 씨와 함께 아빠를 부탁해 TV프로그램에 고정멤버로 중간 합류했다.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박세리는 매 회마다 다큐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줬다. 하지만 우린 박세리에게 애초에 빵빵 터지는 웃음을 기대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강인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거 같았던 골프 선수로써 박세리의 모습 대신 때로는 외로워 하는 모습의 박세리, 때로는 배고파 입 가득 음식을 집어 넣는 인간냄새 풍기는 박세리의 모습을 매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TOP 6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구 (2014)

세월호 추모 리본을 모자에 단 박세리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인스타그램
세월호 추모 리본을 모자에 단 박세리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인스타그램

2014년 4월 29일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가 있었다. 이 날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한국인의 밤(Korean Heritage Night)’ 행사를 준비했고, 박세리는 이 날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랐다. 마운드에 오른 박세리의 모자에는 ‘세월호 추모’를 위한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현장의 리포터는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미국 팬들에게 박세리가 달고 나온 노란리본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박세리가 던진 공은 포수에게 완전히 전달되지 못 하고 굴러갔지만, 박세리가 보여준 그 감동은 먼 대한민국까지 완전히 전달됐다.

TOP 5 : KDB 대우증권 클래식 우승 (2012)

9년만에 국내 무대 우승을 한 박세리 ⓒ KLPGA 공식 홈페이지
9년만에 국내 무대 우승을 한 박세리 ⓒ KLPGA 공식 홈페이지

박세리가 오랜만에 국내 대회로 돌아와 우승을 했다. 2003년 MBC X-Canvas 여자 오픈 우승 이후 9년 4개월 만이다.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가장 맏언니였던 박세리는 최나연과 같이 그녀의 골프를 보고 자란 ‘세리 키즈’들과 경쟁을 해야했다. LPGA에서 최연소 기록만 갈아치운 박세리는 이 날의 우승을 통해 KLPGA 투어 최고령 우승이라는 그녀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록도 세울 수 있었다.

TOP 4 : 최연소 메이저 대회 4승 (2002)

박세리는 2002년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98년 두 개의 메이저 대회, 2001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이어 4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을 최연소의 나이로 이루어냈다. 이 당시 박세리의 나이는 만 24세의 나이였으며, 1960년 미국의 미키 라이트가 만 25세의 나이에 세운 LPGA 최연소 메이저대회 4승 기록을 깨는 순간이었다.

TOP 3 : 2016 리우올림픽

박세리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박세리는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리우로 떠났다. 박세리는 선수들보다 먼저 리우에 도착하여 코스를 분석하고 선수들이 연습을 하는 동안은 선수들 옆에서 박수를 이끼지 않고 치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결과 박인비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박세리는 박인비를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박인비는 인터뷰에서 금메달의 가장 큰 공을 리우에서 잠자리와 먹거리까지 모두 챙겨준 감독 박세리에게 바쳤다.

TOP 2 : LPGA 명예의 전당 (2007)

명예의 전당 오를 당시 소개된 박세리의 어린시절
명예의 전당 오를 당시 소개된 박세리의 어린시절

박세리가 LPGA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박세리는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아시아인 최초의 선수일 뿐 아니라 최연소 선수였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메이저 대회와 투어에서 우승을 거머줘야함과 동시에 한 시즌 최소 10개 대회를 출전하면서 10년동안 선수생활을 해야 한다. 2000년 이후 최근까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는 박세리를 포함해 단 세 명에 불과하다. 박세리는 명예의 전당 입회자격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수많은 역경과 슬럼프를 딛고 일어나야 했다. 명예의 전당만큼은 박세리도 힘들지 않겠냐는 주변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박세리는 박세리답게 보란듯이 목표를 이루고 말았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날 박세리는 “아버지는 제게 큰 꿈을 가지라 하셨고, 오늘 그 꿈이 이뤄졌습니다” 라며 기뻐했고 우리도 함께 기뻐했다.

TOP 1 : 박세리가 양말을 벗은 순간 (1998)

1998 US여자오픈 우승 당시 맨발의 투혼을 보여주는 박세리 ⓒ 유튜브 중계 캡처
1998 US여자오픈 우승 당시 맨발의 투혼을 보여주는 박세리 ⓒ 유튜브 중계 캡처

1998년은 IMF 한파로 인해 우리 국민들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역경 가운데 작은 삶의 활력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넘어지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와중에 먼 땅 미국에서 들려온 박세리의 1998 U.S 여자오픈 우승 소식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우승을 하는 과정들이 우리 국민들과 닮아 있어서 더 그랬던 것일까. 박세리는 해저드에 빠진 공을 치기 위해 골프화와 양말을 벗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대조되는 하얀 발과 연못에서 힘든 샷을 끝내고도 웃으면서 나온 박세리는 국민들에게 ‘우리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라는 메세지를 전달해줬다. 많은 사람들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힘든 순간이면 ‘끝내 이기리라~’의 음악과 함께 그 때의 박세리를 종종 떠올리며 힘을 얻곤 한다.

박세리의 골프인생을 지켜 봐온 것만으로 우린 그녀에게 감사하다.

han2some@spo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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