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재신임을 받았다. 그는 과연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서강대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온통 시리아의 침대축구에 대한 비난 뿐이다. 어제(6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말레이시아 세렘반 툰쿠 압둘 라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에서 0-0으로 득점 없이 비기자 시리아의 노골적인 침대축구에 대해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시리아가 후반 내내 경기에 대한 의지도 별로 없이 꾀병을 부리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중동의 침대축구를 많이 경험해 봤지만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언론에서도 온통 시리아의 비매너 플레이를 성토하고 있다.

하지만 침대축구 해법은 단순하다. 한 골만 넣으면 다 죽어가던 시리아 골키퍼도 살릴 수 있다. 그런데 슈틸리케호에는 그런 ‘명의’가 없었다. 전부터 칼럼을 통해 수도 없이 강조한 것 같다. 상대의 비매너 플레이를 지탄할 게 아니라 침대축구의 원인을 제공한 우리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지저분하게 축구해서 승점 1점 따고 좋아하는 시리아를 보며 ‘우리가 더 깨끗한 축구를 했다’고 정신 승리할 것도 없다. 우리가 못 한 건데 그럼에도 모두들 시리아만 탓한다. 정말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그러는 건가. 지금부터 침대축구 한탄 말고 정말 중요한 문제였던 슈틸리케 감독의 ‘20인 엔트리’나 돌아보자. 우리는 지금 침대축구라는 엉뚱한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내가 못해 망친 시험을 컴퓨터용 수성사인펜 때문이라고 핑계 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슈틸리케호의 ‘20인 엔트리’

시리아의 침대축구에 대한 한탄은 해봤자 우리 손해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문제점을 살펴봐야 한다. 한국이 이번 중국-시리아 2연전에서 보여준 문제의 핵심은 ‘20인 엔트리’에서 출발했다. 규정상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23명의 선수를 선발할 수 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파격적으로 20명 만을 뽑았다. 그러면서 쿨하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경기를 뛰는 건 선발 11명과 최대 교체 선수 3명까지 14명이다. 20명 엔트리면 충분할 것이다. 멀리까지 날아와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돌아가는 선수들도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는 이 20명의에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기성용(스완지),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 등 막 시즌이 시작해 아직 컨디션이 100%가 아닌 선수들을 명단에 올렸다. 심지어 기성용은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와 체력도 온전하지 않았다.

20명의 엔트리는 훈련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 경기를 앞두고 두 팀으로 나눠서 치르는 자체 연습경기도 온전히 소화할 수 없다. 규정상 꼭 뽑아야 하는 골키퍼가 세 명이었고 필드플레이어는 17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3명이 꽉 차도 모자랄 엔트리를 20명만 선발한 슈틸리케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 이상했다. 트라브존스포르로 임대 이적한 석현준의 팀내 적응을 위해 그를 제외했는데 그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최전방 공격 자원으로는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과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선발됐지만 이중 황희찬은 이제 갓 올림픽 대표팀에서 뛴 어린 선수로 A매치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정통 스트라이커 자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지동원과 황희찬밖에 최전방에 세울 선수가 없었다. 사실상 즉시전력감은 지동원 뿐이었다.

풀백 자원도 의문투성이다. 측면 전문 요원은 이용(상주상무)과 오재석(감바오사카) 뿐이었다. 그나마 중앙을 소화하는 장현수(광저우R&F)가 오른쪽에 포진한 이용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왼쪽은 오재석이 아니면 대체할 선수도 없었다. 사실 오재석은 소속팀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오른발을 주로 쓰는 오른쪽 풀백으로 더 적합한 선수다. 이런 선수 선발을 과연 배려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지난 아시안컵 때처럼 선수들이 단체로 감기몸살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우리가 월드컵에 자주 나가니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너무 손 쉽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월드컵 예선에서 배려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본다. 선수단 전원을 경기에 내보내겠다는 건 재미로 공차는 조기축구회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한국은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결국 0-0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AFC 공식홈페이지

시리아전 후반, 교체 투입할 선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슈틸리케호는 상대의 침대축구 때문에 경기가 꼬인 게 아니라 엔트리 선발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일단 석현준을 제외한 건 크나큰 실수였다. 소속팀 적응을 배려할 만큼 월드컵 아시아예선은 만만한 대회가 아니다. 이건 슈틸리케 감독이 너무 이 치열한 경쟁을 얕봤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정말 석현준을 배려하고 싶었다면 그를 대체할 만한 정통 공격수를 뽑았어야 했다. 위급한 순간마다 단순한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김신욱이라는 좋은 카드가 있는데 이걸 버리고 갈 이유는 없었다. 누굴 빼고 누굴 넣으라는 것도 아니다. 세 명이나 엔트리를 더 채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김신욱은 데리고 가야할 선수였다. 혹은 최근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주영도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명 만을 선발한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전에서 후반 21분 이재성 대신 황희찬을 투입했고 9분 뒤에는 구자철을 권창훈으로 교체했다. 이게 어제 경기 교체 투입의 전부였다. 급한 상황에서 단조롭게 공격할 수 있는 김신욱도 없었고 풍부한 경험으로 후배들을 이끌어 줄 박주영도 없었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둔했던 지동원을 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풀타임을 소화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엔트리를 20명으로 축소하면서 이날 교체 투입된 권창훈을 빼면 미드필드 교체 자원이 정우영(충칭리판) 한 명 뿐이었다는 점이다. 최근 좋은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는 김보경(전북현대)을 데려갔더라면 중원 이곳 저곳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누굴 빼라는 게 아니다. 세 명이나 빈 자리에 김보경을 넣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측면 수비도 마찬가지다. 전반전에 좋은 활약을 펼쳤던 오재석은 후반 들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나타냈다. 하지만 오재석이 포진한 왼쪽 측면에는 아예 교체 자원이 없었다. 어차피 남는 자리인데 부상 여파가 있거나 대표팀에서 보여준 게 아직은 없는 홍철(수원삼성), 고요한, 고광민(이상 FC서울) 등도 좀 데려갔으면 안 됐나. 그랬더라면 후반 막판 측면이 헐거워지는 걸 선수 교체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완벽히 마음에 드는 오재석 대체자가 없더라면 일단 한 명은 더 데리고 갔어야 한다. 나이트클럽 즉석만남 때도 ‘보험’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다. 전술적인 변화도 주지 못한 채 교체 카드 한 장은 써보지도 못하고 날렸다는 건 20명의 엔트리조차 허술하게 뽑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남은 세 자리를 채워도 달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슈틸리케 감독은 23명이 정원인 버스에 20명 만을 탑승시키고 떠나버렸다. 내가 손 흔드는 걸 봤는데 모르는 척하고 떠나버린 참 야속한 기사님이다.

한국은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결국 0-0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AFC 공식홈페이지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게 만들었다

황의조(성남FC)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인 시기 또한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원래는 손흥민을 중국전과 시리아전에서 모두 활용하려다가 소속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국전에만 출전시키고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내려진 뒤 급하게 황의조가 시리아전에만 차출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2연전을 펼치는데 23명까지 채울 수 있는 엔트리를 20명으로 채웠고 그중 한 선수가 중간에 빠지니 다른 선수로 부랴부랴 이 선수의 빈자리를 메웠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처음부터 황의조도 선발해 23명을 제대로 돌렸으면 안 될 만한 이유가 있었나. 선발 과정 중간에 석현준의 차출을 포기하는 변수가 있었지만 이 변수와는 별개로 20명의 엔트리에 들어갈 선수를 ‘교대로’ 넣을 필요는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어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참고로 우리와 맞붙었던 중국은 23명의 엔트리를 선발해야 하는데 한국에는 25명이 입국했다. 이들은 경기 전까지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경쟁을 한 뒤 최종적으로 23명을 뽑았다. 결국 두 명의 선수는 한국까지 와 벤치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중국은 25척의 배로 싸우는데 우리는 스스로 배를 20척으로 줄여서 싸웠다. 비록 이기기는 했지만 이런 바보같은 선택을 ‘셀프’로 할 이유는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에게 배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했지만 선수들이 경쟁해서 밀려 좌절감을 맛보지 않게 하는 게 배려라고 할 수는 없다. 경쟁이 없는 스포츠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경기에 나서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벤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여기에도 끼지 못한 선수는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하는 게 결국 스포츠다. 그런데 배려라는 이유로, 다 뛰게 해주겠다는 이유로 선발 명단을 줄이는 건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둔 순간, 파주트레이닝센터는 엄청난 긴장감에 휩싸였다. 26명의 소집 선수 중 23명은 짐을 싸 남아공으로 가고 나머지 세 명은 그 짐을 들고 그대로 집으로 가야하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미리 최종 엔트리를 선발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경쟁을 유도한 허정무 감독의 판단이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PD 뺨을 후려칠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서바이벌이었다. 그런데 이 잔인한 선택의 순간, 허정무 감독은 아주 작은 배려를 했다. 다 같이 짐을 싸서 외출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특정선수 세 명만 짐을 싸 파주트레이닝센터를 나가면 그들이 느낄 상실감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는 다들 짐을 챙겨 외출을 나갈 때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세 명에게만 살짝 탈락 통보를 했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밀리고 탈락 통보를 받은 세 명은 동료 23명과 함께 짐을 챙겨 들고 외롭지 않게 파주트레이닝센터를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은 배려를 해야 했을까

이 정도 배려라면 감독이 경쟁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배려 아니었을까. 그런데 스스로 20명 만을 선택해서 경쟁도 유발하지 않고 더군다나 포지션별로 취약점이 있는데도 그대로 밀고 나간 건 슈틸리케 감독의 명백한 실수였다. 설령 당장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선수들이라도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하며 경험을 키우고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더라면 조금 더 이번 2연전이 순탄하지 않았을까. 나는 여전히 슈틸리케 감독의 팬이다. 한국 축구가 위기에 놓였을 때 그는 멋지게 한국 축구를 구해냈고 이전까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지도자였다. 그래서 이번 판단 실수가 더 아쉽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가 없었으면 한다. 또한 다시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이번 시리아전과 같은 졸전이 끝나면 상대의 침대축구에 대한 한탄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을 더 신랄하게 비판하고 반성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시리아가 침대축구를 하건 말건 우리만 골 펑펑 잘 넣으면 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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