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그렇게 홍보에 열을 올렸던 MBC는 이번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앞두고는 스포츠뉴스에서 대표팀 소식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MB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월드컵과 올림픽만 되면 대한민국을 들먹이며 태극전사와 감동, 눈물, 환희, 영광을 논하던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6일) 한국과 시리아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이 열리는 날인데 지상파 방송 3사의 스포츠뉴스에서는 시리아의 ‘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인데 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태극전사 운운하던 양반들이 다들 어디로 숨은 건가. 약속이나 한 듯 시리아전을 외면한 지상파 방송 3사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상파 3사의 노골적인 ‘시리아전 지우기’

어제 8시 SBS 스포츠뉴스를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스포츠 첫 소식으로 김인식 감독이 WBC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다는 소식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바로 내일 열리는 경기인데 그래도 시리아전이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당연히 두 번째 소식은 시리아전이 나올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두 번째 뉴스는 너무 엉뚱했다. 여자야구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서 기적의 6강행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들의 땀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과연 이 소식이 지상파 스포츠뉴스의 두 번째 꼭지를 장식할만한 것인지에는 의문이 들었다.

세 번째 소식이 마침내 축구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런던에서 BBC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과 시리아전에 대한 뉴스가 아니라 잉글랜드가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극적으로 결승골을 넣고 힘겹게 첫 승을 했다는 잉글랜드인에게는 아주 기분 좋을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러더니 SBS 스포츠뉴스는 황당한 내 입장은 아랑곳 않고 끝이 나 버렸다. 대한민국이 나가는 월드컵 예선이 바로 하루 전인데 대한민국 방송사에서 이건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잉글랜드의 월드컵 예선 첫 승에 아주 신이 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우리 엄마가 나한텐 밥을 주지 않고 내 친구한테만 밥을 차려주면 이런 기분일까.

MBC도 마찬가지였다. 뉴스데스크 스포츠뉴스 첫 소식은 메이저리그 오승환이 장식했다. 그리고는 KLPGA 박성현이 대기록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두 번째로 방송됐다. 이건 당장 급한 뉴스도 아니었다. 그리고는 한국 패럴림픽 선수단이 공식 입촌했다는 짧은 영상을 남긴 채 스포츠뉴스는 막을 내렸다. 이후 우리의 아리따운 임성은 캐스터가 웃으며 날씨 소식을 전했지만 그녀도 내 기분을 위로할 수는 없었다. MBC의 세 꼭지 보도 중 사실 박성현에 대한 보도는 며칠 뒤에 내보내도 되는 아이템이었다. 당장 하루 뒤가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첫 원정경기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한국과 시리아의 월드컵 예선을 철저하게 숨겨야만 했을까. 이쯤 되면 노골적이다.

언제부터인가 뉴스는 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가 되고 말았다. ⓒKBS

수신료 받는 KBS는 그러면 더 안 된다

그래도 KBS는 믿었다. 매달 꼬박 꼬박 내가 수신료를 내고 있는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말처럼 수신료의 가치를 감동으로까지 전할 필요는 없고 그저 비중 있는 소식을 적절하게만 잘 보도해주면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KBS도 ‘역시나’였다. KBS 스포츠뉴스에서는 김인식 감독 선임, 패럴림픽 입촌 기사를 내보내더니 갑자기 수원FC 소식을 보도했다. 누가 봐도 이 상황에서는 시리아전 소식이 나와야 하는 게 맞는데 엉뚱하게도 이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수원FC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KBS가 전한 여덟 꼭지의 스포츠뉴스 중 시리아전 관련 보도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내 수신료는 ‘리우올림픽 스타 시구 열풍’ 소식 취재에 쓰였나보다.

이렇게 약속이나 한 듯 지상파 방송 3사가 당연히 보도되어야 할 시리아전 보도를 피한 이유는 무척이나 옹졸하다. 이 경기 중계권을 종합편성채널인 JTBC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중계권을 얻지 못했다고 국민들에게 최대한 시리아전을 노출시키지 않기로 한 것이다. 평소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던 방송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쏙 빼놓는다는 건 옹졸하다는 표현 외에는 딱히 어울린 만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종합편성채널과 사이가 왜, 얼마나 좋지 않은지는 시청자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자기네들이 사이 안 좋다고 뉴스로서의 가치가 가장 큰 소식에 대해 침묵한다는 점이 중요한 거다.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3사가 벌였던 싸움을 들여다 보면 더 황당하다. 당시 SBS가 월드컵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자 KBS와 MBC가 들고 일어났다. 쉽게 말하면 “너희들 혼자 월드컵 중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때 KBS와 MBC가 주장한 게 바로 ‘보편적 시청권’이다. 이는 국민적 관심이 되는 스포츠 경기 및 행사에 대해 많은 시청자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리다. 여기에 ‘보편적 시청권’이라함은 국민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했다.  KBS와 MBC 입장에서는 “SBS가 국민 전체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 수단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니 너희만 월드컵 중계권에 욕심 부리지 말고 중계권을 나눠갖자”고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언제부터인가 뉴스는 자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가 되고 말았다. ⓒKBS

중계권 있을 때만 ‘월드컵 채널’인가

‘보편적 시청권’은 지상파 방송 3사가 종합편성채널 등 자신들보다 덩치가 작은 이들을 찍어 누르는 무기가 됐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볼 때 모든 국민이 함께 손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사이 좋게 봐야한다는 아주 배려심 깊은 주장을 꺼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지상파 방송 3사 빼고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국제 이벤트에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 거대 방송사의 이기적인 욕심이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참 뜻도 아름다운 말로 포장돼 있다. 자기들이 하면 ‘보편적 접근권’이고 종편에서 하면 제아무리 월드컵 최종예선이라고 해도 삐쳐서 뉴스 한 줄 안 내보낸다. 뉴스가 언제부터 자기들 입맛에 따라 제단하고 포장하는 것이었나.

지상파 3사가 그렇게 부르짖는 ‘보편적 시청권’과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보자. 그들은 자기들이 불리할 때는 “국민적 관심이 되는 스포츠 경기는 모든 국민이 알고 보고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치르는 첫 원정경기는 모든 국민이 알 수 없도록 아예 뉴스에서조차 지워버렸다. 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인가. ‘보편적 시청권’처럼 어려운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월드컵 최종예선 정도 되면 당연히 스포츠 뉴스 중에서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뉴스 아닌가. “이천수 해설위원을 앞세운 JTBC에서 오늘 밤 9시에 시리아전을 단독 중계하니 많이 봐달라”고까지 원하는 것도 아니다. 손흥민이 토트넘으로 돌아갔고 황의조가 긴급수혈 됐고 이런 식의 간단한 보도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월드컵에 '보편적 시청권'이 있다면 이번 시리아전도 '보편적 알권리'라는 게 있는데 지상파 방송 3사는 이걸 어겼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소식을 전하며 애국심을 유도하고 호들갑 떨던 이들이 이제는 A매치가 열리는 데도 보도 한 줄 안 하고 싹 돌아섰다. 늘 있던 일이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실망스럽다. 언제부터 뉴스가 회사 입장 대변하고 자기들 불리하면 임의적으로 편집하는 수단이 됐나. 마지막으로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지상파 방송 3사의 슬로건을 소개한다. 아마 그들 스스로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부끄러운 줄 잘 알 거다. ‘웰컴 투 브라질(KBS)’, ‘월드컵 채널 SBS’, ‘월드컵은 MBC’. 정작 중요한 월드컵 최종예선은 스포츠뉴스에 보도 하나 하지 않으면서 그들은 과연 2년 뒤 또 얼마나 축구를 사랑하는 척하며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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