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마만큼 센타링을 잘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고정운은 ‘크로스’보다 ‘센타링’이 더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천안일화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얼마 전 한참 어린 후배로부터 아재 소리를 제대로 들었다. 후배의 음원 사이트에 <호랑나비>가 담겨 있는 걸 보고 “뭐 이런 노래를 듣느냐”고 하자 “요새 가장 핫한 노래”라면서 들려주는 것 아닌가. 순간 김흥국의 <호랑나비>를 떠올린 나는 이 힙합 음악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자 그 후배가 나에게 아재란다. 아재와 ‘안 아재’를 구별하는 여러 방법도 있단다. 그만큼 자신이 아재인지에 대해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서 축구팬들 중 아재와 ‘안 아재’를 구별할 수 있도록 아재인 내가 오늘 칼럼을 준비했다. EBS가 원래 KBS3TV였다는 걸 아는 이들은 내 칼럼을 볼 필요도 없이 아재이니 살짝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란다.

센터링이면 아재, 크로스면 ‘안 아재’

이청용이 측면에서 공을 올리면 ‘크로스’지만 왠지 고정운이 측면을 치고 들어가다 공을 올리면 이건 ‘센터링’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또한 아재들 사이에서는 ‘센터링’보다 ‘센타링’이라고 쓰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요즘도 가끔 ‘크로스’를 ‘센터링’이라고 표기하는 기자들이 있는데 아마도 이런 기자들은 만년필 펜촉에 잉크를 찍어 원고지에다가 기사를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뒤 이걸 비둘기를 통해 송고하는 게 분명하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축구 중계를 보다가 추가 시간이 주어지면 아버지가 “추가 시간 몇 분 줬어?”라고 하지 않고 “로스타임 몇 분 줬어?”라는 말씀을 하셔도 당황하지 말자. 우리 아재들은 아직도 ‘추가시간’보다는 ‘로스타임’이 편하다.

“부산에 있는 프로팀은?”

부산아이파크는 부산을 대표하는 프로팀이다. 그런데 가끔 아직도 이 팀을 ‘부산아이콘스’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아재다. 나 역시 아직도 가끔 ‘부산아이콘스’라는 말이 무심코 나올 때도 있다. 여기에서 할배로 넘어가는 이들은 이 질문에 아주 당당하게 ‘대우로얄즈’를 꺼내며 그때의 추억에 잠길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만약 이 질문에 ‘부산교통공사’라고 답변하는 이들이 있다면 아재와 ‘안 아재’ 여부를 떠나 진정한 골수팬으로 인정하고 박수 한 번 쳐주자. 또한 성남에 있는 프로팀 이름을 성남FC라고 하면 ‘안 아재’, 성남일화라고 하면 ‘살짝 아재’, 그냥 일화라고 하면 완벽한 아재다. 광주상무, 아니 상주상무도 마찬가지다.

“‘축구 게임’하면 떠오르는 게임은?”

‘안 아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답변은 다양할 것이다. ‘피파’나 ‘위닝일레븐’, ‘풋볼매니저’ 등이 ‘안 아재’의 전형적인 답변이다. ‘안 아재’에서 아재로 넘어가는 이들은 아마도 ‘강진축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불현 듯 ‘세이부축구’를 입 밖에 냈다면 이 사람은 100% 아재다. ‘안 아재’들이여, ‘세이부축구’를 언급한 아재 유력 용의자가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시라. “혹시 그 게임에서 골 잘 넣는 비법이 있나요?” 그렇다면 아마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구석에서 공 올려서 헤딩으로 넣으면 돼.” 이 답변을 하는 이가 있다면 100% 아재가 확실하다. 참고로 ‘세이부축구’에서는 수비수의 백패스도 골키퍼가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잡는다. 또한 아재들은 ‘게임’이라는 단어보다는 ‘오락’이라는 단어를 더 차지게 잘 쓴다.

백패스를 골키퍼가 손으로 받았다고 동네 오락실에서 중학교 형에게 끌려가 맞았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참 가슴 아픈 ‘오락’이다.

“기억에 남는 한일전은?”

‘안 아재’들은 이 질문에 숨도 쉬지 않고 이렇게 답할 것이다. “2012 런던올림픽 3,4위전 한일전이죠. 캬, 그때 정말 대단했어요.” 하지만 우리 아재들의 답변은 다르다. 아재들에게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는 한일전은 1997년 펼쳐진 도쿄대첩이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는 기억 못해도 당시 이민성이 슈팅을 때리는 장면은 리플레이로 우리 머리 속에서 지금도 재생되고 있다. 아마 우리 아재들에게 최고의 한일전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이 도쿄대첩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참고로 이 시대를 산 아재라면 농구에서 자유투가 주어질 때 친구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원 앤드 원이야?” 이거 참 언제적 ‘원 앤드 원’인가.

“MBC ESPN 좀 틀어봐라”

‘안 아재’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직도 MBC SPORTS+는 입에 붙질 않는다. 아재들에게는 MBC ESPN이 입에 더 짝짝 달라붙는다. 신승대 캐스터가 MBC ESPN에서 PSV 에인트호벤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중계해줘야 할 것만 같다. 참고로 나는 얼마 전 전화 통화를 하다 친구에게 MBC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는 걸 “빨리 11번 틀어봐”라고 했다가 아재 소리를 들어야 했다. SBS가 이제는 5번에서 나와도 나에게 SBS는 영원한 ‘6번’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아재와 ‘안 아재’를 구별할 수 있다.

백패스를 골키퍼가 손으로 받았다고 동네 오락실에서 중학교 형에게 끌려가 맞았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참 가슴 아픈 ‘오락’이다.

“‘RONALDO’는 어느 나라 선수인가요?”

나에겐 아직까지도 ‘RONALDO’는 ‘호날두’가 아니라 ‘호나우두’가 익숙하다. 아무리 호날두가 유럽 무대를 평정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활약해도 그렇다. 역시 ‘RONALDO’는 노란색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앞머리는 깻잎처럼 하고 이를 내밀며 헛다리짚기를 해야 한다. “‘RONALDO’는 어느 나라 선수인가요?”라는 질문에 우리 아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연히 브라질이지.” 이 답변 뒤에는 “포르투갈”이라는 대답을 한 ‘안 아재’들을 향해 우리의 호나우두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역시나 ‘RONALDO’ 옆에는 가레스 베일보다 히바우도가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참고로 김주성이 어떤 종목 선수냐는 질문에 농구선수라고 답변을 한다면 아재이고 축구선수라고 답변을 한다면 할배다.

고등학교 팀 이름을 잘 들어보라

구자철과 김형범, 김영후 등 이름 있는 선수들을 키워낸 보인고를 아재들은 아직도 이렇게 부른다. “아, 그 보인상고?” 이뿐 아니다. 포항스틸러스의 유소년을 길러내는 고등학교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재들은 이렇게 말한다. “포철공고가 참 뽈을 잘 차. 걔네들이 포항아톰즈, 아니 포항스틸러스로 가는 거잖아.” 하지만 이제 포철공고에는 축구부가 없다. 포철공고가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포철공고 축구부가 아예 포철고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또한 야구에서는 명문인 선린인터넷고가 마찬가지다. 아무리 선린인터넷고라고 해도 아재들에게는 박노준이 치고 달리던 선린상고가 입에 더 짝짝 붙는다. 아재들 입장에서는 포철공고 축구부와 선린인터넷고 야구부는 어딘지 모르게 강해 보이질 않는다. 포철공고라고 해야 기가 막히게 패스 플레이를 해서 골을 넣을 것 같고 선린상고라고 해야 알루미늄 배트에 공이 맞는 ‘깡’ 소리가 청명하게 제대로 날 것만 같다.

김현회 칼럼을 보러 오려면?

아재는 아직도 네이트에 들어가 ‘김현회의 골 때리는 축구’가 올라오지 않았는지 찾아보지만 ‘안 아재’는 차원이 다른 뉴스, 스포츠니어스로 들어와 편하고 즐겁게 칼럼을 읽고 욕을 한다.

나도 이젠 아재다. 아니라고 부인할 수가 없다. IT기술이 언제 이렇게 발전했는지 이제는 스마트폰의 기능도 모르겠다. 최신곡으로 삐삐 인사말 녹음을 그렇게도 잘 하던 내가 이제는 핸드폰 기본 벨소리에 배경 화면도 처음 샀을 때 그대로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재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누구나 다 아재가 된다. 오늘도 나는 당당하게 ‘세이부 축구’를 한 판하고 호나우두 스페셜 영상을 찾아본 뒤 8.15 콜라를 한 잔 하면서 텔레비전 리모콘으로 11번을 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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