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몇 년 전, 대만을 여행했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겨울에 가면 정말 따뜻하고 좋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 친절한 사람들은 매력적이었다.

그곳에서 친해진 가이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스포츠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당시 대만의 영웅이라 불리던 야구선수 왕치엔밍 얘기를 신나게 하던 그는 '대만 축구는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급격히 낯빛이 어두워졌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는 그의 답변은 압권이었다. "대만은 축구 정말 못해요. 여자축구가 남자축구보다 셀 걸요?"

오늘 소개할 선수는 바로 '남자축구보다 센' 대만 여자축구 선수다. 미쉘 파오. 중국어로 파오 신수안이라 발음하는 이 선수는 현재 대만과 일본에서 동시에 관심을 받는 여자 축구선수다. 대륙을 넘나들며 여자 축구계의 주목을 받아온 그녀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미국, 유럽, 아시아를 넘나든 준비된 유망주

1992년생인 파오는 대만에서의 추억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4살 때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그녀는 미국인의 삶을 살았다. 파오가 대만인인 것을 일깨워주는 것은 부모님의 존재였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탓인지 그녀는 중국어로 쉽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부모님의 입을 빌리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교 다니며 축구를 즐겼던 파오는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잠재력을 인정받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퍼다인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신입생 시절부터 돋보이는 선수였다. 약 1년 간 수비수(우측 풀백)로 활약한 이후 미드필더를 거쳐 공격수로 전향해 공·수 양면에서 특출난 활약을 보여줬다. 파오는 대학 재학 기간 동안 4번의 All-WCC first team(대학 올스타)에 선정됐는데, 이는 페퍼다인 대학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미국 여자축구계의 입장에서는 대형 유망주가 등장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탁월한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꾸준히 NWSL(미국 여자축구리그) 구단 스카우터들이 주시하는 선수였다. 결국 파오는 2014년 드래프트에서 스카이블루FC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는 더 험난한 도전을 선택했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리그 중 하나인 NSWL 구단에 지명 받았지만, 파오는 이를 거부하고 스웨덴의 빗셰 GIK에 입단한다. 그녀는 "미국은 높이와 힘을 중시하지만, 스웨덴은 기술 중심의 축구를 하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는 스웨덴에서 생각보다 부진했다. 3시즌 동안 19경기 3골에 그쳤다. 미국과는 다른 축구 스타일과 생활 환경이 그녀에게 부담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2015년 한국 광주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여자 축구 대표팀에 선발된 것이다. 당시 대만은 한국, 체코, 아일랜드와 A조에 속해 있었다. 비록 대만 대표팀은 3경기에서 2무 1패를 기록, 조 3위로 예선 탈락했지만 파오는 아일랜드전에서 전반 36분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뜨리며 조국에게 귀중한 승점 1점을 안겨줬다.

이후 그녀는 유니버시아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3세의 나이에 성인 대표팀에도 승선한다. 그녀의 첫 데뷔 무대는 2016 리우 올림픽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이었다. 요르단전에 출전한 파오는 팀의 2번째 골을 터뜨리며 아시아 여자축구계에 젊은 유망주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스웨덴 시절의 파오 ⓒ wikipedia

두 개 대회를 치르며 파오는 대표팀의 떠오르는 스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소속팀에서의 불안정한 입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일본 나데시코 리그(여자축구리그) 2부 팀인 노지마가 그녀에게 입단을 제의했다. 그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만날 기회가 더 늘어나고, 대표팀 소집을 위해 장시간 비행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진다는 것이 컸다. 게다가 일본과 대만은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적응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파오의 판단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팀을 옮기니 펄펄 날기 시작했다. 나데시코 리그 데뷔 시즌인 2016년 그녀는 9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2위를 기록 중이다. 소속팀도 리그에서 11승 1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2부리그에 등장한 '괴물 외국인 선수'로 그녀를 주목하고 있다. 나데시코 리그 버전의 아드리아노(FC서울)인 셈이다.

파오가 다른 선수에 비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23세의 어린 선수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녀는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 장차 대만을 넘어 아시아의 대표 스트라이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축구 볼모지' 대만, 파오는 구세주가 될까

맨 처음 언급한 가이드가 말해준 그대로 대만은 축구 불모지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49년 중국에서 벌어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에서 패한 장제스와 그를 따르는 이른바 외성인(外省人)들이 들어오면서 축구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비록 홍콩 출신 선수들로 구성됐지만 1954년과 58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대만 축구 역사의 하이라이트였다.

문제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대만의 외교력이었다. 국제 정세와 마찬가지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외면 받기 시작한 대만 축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며 경쟁력이 약화됐고, 1990년 들어서 야구가 다시 한 번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국민들에게도 큰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른바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대만의 여자축구는 남성들에 비해 활성화 되어있다. 탄탄한 전국 리그를 갖추고 있고, 꾸준히 국제 경험을 쌓고 있다. 이는 대만축구협회의 전략적인 판단이 있었다. 경쟁이 치열한 남자축구보다는 여자축구에서 경쟁력을 쌓는 것이 세계 축구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여자축구의 저변 확대와 시스템 구축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하지만 근래 대만 여자축구는 국제대회에서 상당히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이라는 아시아 4강에 번번이 막히고 있다. 대만 내에서 여자축구, 더 나아가 대만 축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파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 중요하다.

FIFA 랭킹 183위(남자축구)와 38위(여자축구)의 나라 대만. 야구의 엄청난 인기에 밀려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축구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르네상스를 다시 재현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만을 넘어 아시아를 뒤흔들 준비 중인 당찬 여성이 있다. 대만 축구와 파오 신수안의 도전을 응원해본다.

[사진 = 파오 신수안 ⓒ 파오 신수안 SNS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