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만큼이나 별 볼 일 없던 친구가 있었다. 안경을 쓰고 여드름이 많았던 그 친구는 심지어 나보다도 키가 작았다. 거기에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당당했다. 옆 여학교에서 가장 예쁘다는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자신감이 넘쳤다. 감히 찔러 보지도 못할 만큼 대단히 예쁘고 인기도 많았던 그녀에게 수차례 애정 공세를 펼치고 고백을 한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이 녀석의 고백을 거절했지만 그래도 이 녀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녀석을 보며 늘 이렇게 말했다. “못 올라갈 나무지만 그래도 네 용기 하나 만큼은 대단하다.” 그런데 얼마 전 연락이 끊겼던 이 녀석이 결혼한다면서 오랜 만에 연락을 해왔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결혼 상대가 바로 그때 그녀였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서도 진심을 담아 구애한 끝에 7년 만에 교제에 성공했고 결국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말 인생은 모르는 거다.

전북의 슈퍼스타 영입, 현실 가능성은?

전북이 최근 선수 영입과 관련해 여러 소문에 휩싸여 있다. 그런데 소문만으로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K리그에서는 통 들을 일이 없던 이름이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디에르 드록바, 판 페르시, 페르난도 토레스 등에게 영입 의사를 타진했기 때문이다. 국내 축구 칼럼을 쓰는 나도 몇 년 만에 처음 타자로 쳐보는 이름들이 전북의 영입 대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신선하다. 세계적인 스타가 이렇게 국내 구단의 영입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신기하다. 이건 마치 <삼시세끼 어촌편>에 세계적인 쉐프 고든 램지가 나오거나 <뮤직뱅크>에 머라이어 캐리가 나오는 것만큼의 충격적인 이야기다. 녹색 유니폼을 입은 토레스는 만재도에서 유해진이 잡아 오는 노래미로 고든 램지가 매운탕을 끓이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물론 실제로 일어나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일 테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이번 영입이 실제로 이뤄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슈퍼리그에 슈퍼스타들이 몰리기도 하는 상황을 비춰본다면 드록바나 판 페르시, 토레스 등도 주급만 맞을 경우 동아시아 무대에 오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전북이 이들이 요구하는 주급을 지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현대자동차 광고 출연 등으로 주급의 상당 부분을 메워주는 방법도 있지만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동아시아는 생소한 판 페르시와 토레스 등이 이런 도박과도 같은 결단을 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지만 만약 이들이 동아시아로 온다면 그건 K리그보다는 중국 슈퍼리그일 확률이 더 크다. 여기에 이미 외국인 선수 자리에 레오나르도와 루이스, 우르코 베라 등을 채운 전북으로서는 외국인 선수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레오나르도는 에이스로 등극했고 루이스와 베라 등과도 한 시즌을 더 갈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전북의 슈퍼스타 영입은 쉽지 않다.

디디에 드록바도 영입했던 중국의 자금력을 K리그가 이길 수 있을까? ⓒ 상하이 션화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지금껏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은 여기까지다. 전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슈퍼스타 영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게 그저 허무맹랑한 꿈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설마 그런 대단하신 분들이 미천한 K리그에 오시겠느냐”는 이들도 있다. K리그 구단이 세계적인 축구 선수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이걸 좀 비틀어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들을 찔러라도 볼 수 있는 용기를 다른 그 어떤 구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K리그 구단은 물론 타 프로스포츠에서도 세계적인 스타에게 영입을 타진할 만큼의 야망은 없지 않은가. 타 프로스포츠를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KBL에 코비 브라이언트가 오거나 프로야구에 잭 그레인키가 올 일은 없지 않은가. KBL이나 프로야구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K리그 클래식의 전북이 이렇게 세계적인 스타 영입을 타진할 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더군다나 축구는 전세계적으로 시장이 가장 큰데 나는 전북이 야망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북의 야망은 끝이 없다

그 어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이 세계적인 스타 영입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전북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직접 페르난도 토레스의 에이전트를 만나 영입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고 올 시즌에는 에두가 중국으로 떠나자 디디에르 드록바와의 계약을 타진하기도 했다. 판 페르시를 영입하기 위해 원소속팀인 페네르바체 측에 몸값을 문의한 적도 있다. 최강희 감독이 직접 세계적인 스타 영입에 대한 중요성을 정의선 구단주에게 역설했고 구단 측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전북의 이런 행보는 가속화되고 있다. 심지어 정의선 구단주는 최강희 감독에게 손흥민 영입에 대한 의사를 묻기도 했다. 물론 손흥민의 전북 이적은 가능성이 극히 적은 이야기지만 이런 발상 자체만으로도 전북의 구단 운영 마인드를 잘 알 수 있다. 어차피 지금 전력만 유지해도 내년 시즌 역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일 텐데 전북은 그래도 더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영입이 성사되고 말고는 나중 문제다. 일단 이렇게 엄청난 그림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전북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사실 전북은 올 시즌 에두가 떠난 뒤에 영입 없이 버텨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동국이 건재했고 여러 공격수들이 서로 에두의 빈자리를 십시일반으로 채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전북은 에두가 떠나자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베라와 이근호를 영입했다. 물론 베라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편이 맞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이미 충분히 강한 경기력에 누수가 생기자 고민을 멈추지 않고 전력을 수혈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토레스나 판 페르시, 드록바가 오지 않더라도 전북은 내년 시즌에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데 그럼에도 이런 영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전북의 그릇을 보여주는 일 아닐까. 물론 이렇게 자꾸 찌르다 보면 결국에는 세계적인 스타의 영입이 실제로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평생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우리는 안 될 거야”라고 투덜거리는 이들과의 격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진다.

실현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영입 의사 타진 자체가 전북과 K리그, 더 나아가 한국 프로스포츠사에서는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만 생각하면 제자리걸음일 뿐이지만 전북은 제자리걸음에 그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토레스와 판 페르시, 드록바가 전북의 영입 제안을 받고 코웃음을 쳤어도 전북의 이런 야망만큼은 큰 점수를 받아야 한다. 도대체 이 팀은 지금도 강한데 얼마나 더 강해지고 싶은지, 그 큰 그림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 죽겠다. 더군다나 판 페르시와 토레스, 드록바 등이 K리그 구단 영입설에 오르는 일은 지금까지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이제는 이런 세계적인 선수들에게도 입단을 타진할 만큼, 나름대로 진지하게 언론보도가 쏟아질 만큼 전북이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면 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세계적인 선수를 “영입하네” “못하네”로 갑론을박했단 말인가. 또한 K리그 시장이 위축돼 연쇄적으로 선수들이 중국과 일본으로 팔려 가는 상황에서 전북이 없었으면 K리그는 지금 초상집 분위기였을 것이다.

전북의 야망에 박수를 보낸다

슈퍼스타들의 영입을 타진하는 것만으로도 전북의 야망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이건 절대 누군가로부터 조롱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해 보지도 않는 이들은 그냥 평생을 그렇게 패배 의식에 사로 잡혀 살면 된다. 대신 이렇게 야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이에게 조롱을 보내거나 손가락질 할 자격은 없다. 나처럼 고등학교 때 퀸카에게 차일 게 겁나 입 다물고 살던 사람은 늘 그렇듯이 이렇게 쓸쓸하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면 된다. 대신 나 같은 사람들은 다들 못 올라갈 나무라고 쳐다보지도 못할 때 보란 듯이 용기를 내 우리 동네 최고 퀸카를 쟁취한 내 친구 같은 이들의 행복 같은 건 넘볼 수 없다. 그냥 “나는 안 될 거야. 감히 걔가 나와 만나주겠어?”라고 투덜거리는 이들은 우리 동네 최고 퀸카와 행복하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이들을 평생 부러워나 하면서 살면 된다. 세계적인 퀸카, 아니 선수들에게 녹색 유니폼을 입히기 위해 야망을 품은 전북은 그 마인드 자체로도 점점 더 큰 구단이 돼 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런 야망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