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이 형. 여기 택배가 왔네요.” 수원FC 한 선수가 하늘 같은 선배 김한원에게 작은 택배 상자 하나를 건넸다. “어? 택배 올 데가 없는데. 누구지?” 김한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택배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보낸 이의 이름을 유심히 확인한 뒤 택배 상자를 뜯었다. 거창한 내용물은 아니었지만 김한원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짜식. 되게 로맨티스트네. 허허.” 도대체 택배 상자 안에 든 물건이 뭐였기에 늘 미소보다는 진지함이 어울리는 남자 김한원을 웃게 했을까. 도대체 이건 누가 보낸 물건이었을까. 지금부터 아무도 몰랐던 ‘진짜 사나이’들의 끈끈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낭만이라고는 단 1g도 없어 보이는 이들의 낭만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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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에 입대하며 축구선수로의 꿈을 포기했던 김한원은 그곳에서 운명같은 팀을 만났다. 바로 수원시청이었다. (사진=내셔널리그)

해병대 축구단 창단 무산과 김한원의 좌절

평범한 수비수였던 김한원은 대학 진학조차 쉽지 않았다. 2년제인 강원도 영월의 세경대에 진학한 것만도 그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김한원은 세경대를 졸업한 뒤 동국대로의 편입을 준비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선수 등록 기한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편입 시험에 관한 것도 잘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축구만 열심히 하면 형식적인 시험을 치러 편입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편입 시험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고 김한원은 결국 동국대 편입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그에게 갈 곳이란 없었다. 오로지 편입만을 바라보고 있던 이름 없는 대학의 무명 선수를 받아줄 대학도, 프로팀도 없었다. 자칫하면 축구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그런데 이때 한줄기 희망이 비쳐졌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열기가 일자 해병대에서 축구팀을 재창단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 4강신화 당시 박종환 감독을 도와 코치로 일했던 원흥재 감독이 지도자로 내정돼 있었고 창단 준비도 수월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어차피 마땅히 갈 곳도 없던 김한원은 2001년, 축구선수로서의 생활도 이어가며 군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해병대 입대를 선택하게 됐다. 그에게는 해병대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미 김한원은 해병대 축구팀 입단이 합의된 상황에서 해병대에 입대했는데 축구팀 창단이 전면 백지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그가 군대에서 나올 수도 없었고 결국 김한원은 포항으로 자대배치를 받아 해병대 일반 사병으로 2년 동안 군복무를 하게 됐다. 사실상의 은퇴나 다름없었다.

상륙과 유격, 공수 등 특수훈련을 소화하면서 포항 시내 하수구 안을 박박 기고 구정물도 원 없이 마시며 군 생활을 하던 김한원에게 축구선수로의 꿈은 더 이상 없었다. 김한원 스스로도 당시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축구선수로의 꿈은 완전히 접었었죠.” 하지만 이때 그에게 운명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원시청 김창겸 감독이 포항으로 하계 전지훈련을 왔는데 해병대 연합팀 소속으로 과거에 공 좀 차던 해병대원을 소집해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맡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대학 시절까지 선수로 활동했던 김한원도 해병대 대표로 나서게 됐다. 그런데 김창겸 감독 눈에는 수원시청 선수들보다도 김한원이 더 들어왔다. 검게 그을린 피부로 최전방에서 수원시청 수비수들을 농락하던 김한원을 보고 반한 것이다. 그 선수의 이름을 물었더니 주변에서 정보를 수소문한 이의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김한원이라고 하네요.”

김창겸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엄청나게 빨랐어요. 제대하면 곧바로 데려오자고 생각했죠.” 수소문 해봤더니 그는 군 제대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김창겸 감독은 김한원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제대하고 갈 곳 없으면 꼭 나한테 연락하그래이.” 그리고 1년 뒤 김한원은 해병대를 제대하고 수원시청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프로팀에서 철저하게 외면 당해 더 이상 갈 곳 없어 은퇴까지도 생각했던 이 해병대 현역병은 결국 김창겸 감독이 내미는 손을 잡고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김창겸 감독과 김한원의 인연은 이렇게 2004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김한원은 수원시청 입단 2년 만에 17경기에 나서 14골을 넣으며 내셔널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원시청은 김한원의 대활약 속에 2005년 K2 전기리그 우승에 이어 K2선수권 대회 우승까지 일궈냈다. 불과 1년 반 전만 하더라도 축구의 꿈을 접었던 해병대원의 극적인 반전이었다. 김한원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잠시 다른 팀에서 활약했던 걸 빼면 무려 9년 동안이나 수원FC(수원시청)에 몸을 바친 살아있는 레전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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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은 숭실대학교에서 축구를 하다 돌연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축구화가 아닌 전투화를 신은 그는 해병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김원일이 축구 접고 해병대로 간 이유는

김원일은 숭실대학교 2학년인 2007년 축구선수의 꿈을 사실상 접고 군 입대를 선택했다.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그는 빨리 군대에 다녀와 실업팀이나 알아보자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다른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해 군 입대를 미룰 때까지 미루다 상무나 경찰청에 가는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어차피 대학생 신분인 그를 상무나 경찰청에서 받아줄 리도 없었다. 결국 김원일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포항으로 배치 받았다. 하지만 막상 군대에 가니 제대하고 실업팀을 준비하겠다는 그의 꿈은 불가능해보였다. 보트를 매고 바다에 나가고 새벽에 경계근무를 서고 고된 훈련을 받으니 축구에 대한 희망이 싹 사라지고 만 것이다. 포항에서 근무하는 해병대는 포항스틸러스 경기를 단체 관람하기도 하는데 김원일은 해병대 일원으로 스틸야드를 5번이나 찾았지만 그라운드에서 몸을 푸는 동료들을 보고도 단 번에 달려가 아는 척을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까지 축구를 했던 김원일은 해병대에서도 알아주는 실력파였다. 군 생활 동안 연대 대표와 사단 대표로 뽑혀 숱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해병대 1사단 대표로 ‘선진강군! 한마음대축제 하이원 2008 군대스리가’에 나선 김원일은 전반전만 뛰고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끌기도 했고 작전사와 우승을 놓고 격돌한 경기에서도 승리를 일궈냈다. 그는 군 생활 동안 축구로 숱한 휴가증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에게 축구란 그저 해병대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이미 2년 동안 전문적인 훈련을 하지 못한 김원일이 다시 복귀해 축구선수로의 꿈을 이어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조그마한 차이만으로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경쟁 세계에서 김원일은 이미 한참 뒤쳐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원일의 꿈은 이제 해병대를 제대하면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를 더 이상 받아줄 팀도 없어보였다.

말년휴가를 나간 김원일은 곧바로 숭실대학교로 찾아갔다. 윤성효 감독에게 “그동안 건강하게 군 생활을 잘 했다”는 뜻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윤성효 감독은 김원일에게 뜻밖의 말을 꺼냈다. “다시 함께 축구를 해보자. 짐 싸들고 숙소로 들어와.” 이미 언론을 통해 축구선수 출신 현역병이 ‘군대스리가’를 평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윤성효 감독은 김원일의 부모까지 찾아와 “아들이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결국 해병대 생활 내내 한쪽 가슴에 쌓아두었던 축구에 대한 그리움은 김원일을 움직였다. 그가 달콤한 말년휴가를 포기하고 곧바로 숭실대학교 축구부로 합류한 것이다. 동료들에 비해 2년을 허비한 그는 이때부터 이를 악물고 오로지 훈련에만 집중했다. ‘해병대 정신’을 앞세워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체력도 부족하고 기술도 예전 같지 않았지만 죽어라 노력했다.

2009년 1월 해병대를 만기 전역한 김원일은 숭실대에서 계속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 말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제출한 김원일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 후 하루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았기에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아 낙담하고 있던 차에 김원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포항스틸러스 6순위, 김원일 지명’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군 생활을 했던 바로 그곳, 포항에서 다시 그를 선택한 것이었다. 사실상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해병대에서 2년의 청춘을 보낸 김원일은 이렇게 다시 축구선수가 돼 포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고 그는 2013년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영웅이 됐다.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한 포항에서 그는 여전히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 중이다.

K리그에 부는 정강이 보호대 제작 열풍

김한원과 김원일은 해병대 현역병 출신으로 축구계에서는 희귀한 이들이다. 상무나 경찰청에 가야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 인물들이다. 2년 동안 축구를 잊고 오로지 군 생활에만 전념해야 했고 그것도 군대 중에서 가장 고되다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으니 이들의 선택을 정신 나간 행동이라고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보란 듯이 기적의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기수 차이가 많이 나고 같은 팀에서 함께 한 적이 없어 친분이 없던 김한원과 김원일은 지난 2013년 12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됐다. 해병대 출신 선수들을 소개하기 위한 인터뷰를 통해 이 둘은 처음 인사를 나눴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지닌 이 둘은 그렇게 서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사이가 됐다. 5살 차이가 나고 워낙 무뚝뚝한 이들이라 평소에는 서로 살갑게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이 둘은 이후에도 서로를 응원해 주는 든든한 해병대 선후배로 남았다.

올해 7월 K리그 클래식 선수들 사이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정강이 보호대를 제작하는 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스포츠 용품점에 파는 일반적인 정강이 보호대가 아니라 자신의 원하는 메시지나 그림을 새겨 넣는 특별한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수들은 저마다 정강이 보호대에 가족의 이니셜을 새겨 넣기도 하고 특별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선수들이 나만의 정강이 보호대에 집착하는 이유는 획일화 된 유니폼을 입고 뛰는 축구 경기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원일도 과거 팀 동료였던 이명주로부터 특별한 정강이 보호대를 선물 받았다. 김원일만을 위한 정강이 보호대에는 그의 등번호와 이름, 그리고 포항 엠블럼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신기한 정강이 보호대를 선물 받은 김원일은 이명주에게 곧바로 물었다.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어디에다가 주문하면 돼?”

인터넷을 통해 제작 주문을 받는데 본인이 직접 디자인을 다 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김원일은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야.” 무뚝뚝한 김원일이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제가 평소에 K리그 챌린지를 즐겨봐요. K리그 클래식보다도 내용면에서는 훨씬 더 재미있을 때가 많거든요. 특히 수원FC 경기를 자주 봤고 (김)한원이 형이 뛰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어요.” 김원일은 김한원만을 위한 특별한 정강이 보호대를 제작해 선물하기로 했다. 영문 이름을 쓸까, 수원FC 엠블럼을 박을까, 아니면 'GO FOR WIN' 같은 메시지를 담을까 여러 번 고민하던 김원일은 자신의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생각해 냈다. 바로 ‘GO CLASSIC’이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는 선수에 대한 진심이었다. 김원일은 김한원이 반드시 K리그 클래식으로 오길 바라는 마음을 정강이 보호대에 담았다. 그리고 김한원이 등번호와 영문 이름, 수원FC 엠블럼과 함께 'I AM LEGEND'라는 글귀도 추가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무명의 노장 선수일수도 있지만 수원FC에는 전설과도 같은 선수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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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이 해병대 선배인 김한원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정강이 보호대. (사진=카본신가드)

선배를 향한 후배의 특별한 선물

직접 디자인한 정강이 보호대를 기다리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반 정강이 보호대보다 최대 6배 이상 비싼 정강이 보호대였지만 김원일은 존경하는 선배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김원일은 지난 8월 마침내 해병대 대선배이자 존경하는 축구인인 김한원에게 이 정강이 보호대를 선물했다. “수원FC 경기를 볼 때마다 (김)한원이 형의 플레이에 감탄사가 나와요. 우리 나이로 35세인 형이 원래 포지션인 공격수가 아닌 자리에서 팀을 위해 뛰는 모습이 대단히 존경스럽거든요. 사이드백으로도 나왔다가 중앙 수비로도 나왔다가 팀이 원하는 포지션이라면 어디든 소화해 내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꼭 (김)한원이 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은데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김원일은 혹여라도 김한원이 시즌을 치르는데 방해가 될까봐 따로 연락도 하지 않고 수원FC 숙소 주소를 알아내 택배로 정강이 보호대를 보냈다. 마치 팬이 선수에게 선물을 보내듯 일방적인 전달이었다. 제대로 수원FC 숙소까지 이 택배가 전달됐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한원이 형. 여기 택배가 왔네요.” 수원FC 한 선수가 하늘 같은 선배 김한원에게 작은 택배 상자 하나를 건넸다. “어? 택배 올 데가 없는데. 누구지?” 김한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택배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보낸 이의 이름을 유심히 확인한 뒤 택배 상자를 뜯었다. 거창한 내용물은 아니었지만 김한원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짜식. 되게 로맨티스트네. 허허.” 김한원이 열어 본 택배 상자 안에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김한원만을 위한 특별한 정강이 보호대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보낸 이 이름에는 ‘김원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해병대 후배랍시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한참 어린 동생이 보내온 선물에 김한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원일이가 저를 생각해 선물을 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더더군다나 그렇게 특별한 정강이 보호대를 선물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저만을 위한, 또 제 꿈을 위한 선물에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때부터 김한원은 평소 착용하던 정강이 보호대를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이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8월 이후부터 출전한 모든 경기에서는 원일이가 선물한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했어요. 의미도 너무 좋잖아요. 이제 은퇴를 앞둔 나이인데 K리그 클래식 무대를 다시 한 번은 꼭 밟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정강이 보호대에 K리그 클래식 승격을 향한 염원이 담겨 있으니 더 뛸 맛이 났습니다.” 김한원은 이 정강이 보호대를 하고 김원일이 말했던 것처럼 사이드백이건 중앙 수비수건 팀이 원하는 포지션에 들어가 늘 최선을 다했다. K리그 전체를 통틀어 단 두 명뿐인 해병대 출신 선수들 간의 끈끈한 우정은 이렇게 무뚝뚝하면서도 달달하게 이어졌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온 이 둘은 수백 마디 말보다도 이렇게 서로를 챙기는 작은 행동 하나로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이 둘은 나이 차이도 있고 같은 팀에서 뛰어본 적도 없지만 서로의 특별한 사연을 세상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특별한 선물과 함께 한 승격의 순간

사실 김한원에게는 해병대 제대 이후 또 한 번의 좌절이 있었다. 수원시청에서 내셔널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펄펄 날던 시기에 그는 K리그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2006년 인천유나이티드에 입단해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으로 이적했지만 두 시즌 동안 14경기 출장에 그치고 만 것이다. 공격 포인트는 단 하나도 없었고 결국 김한원은 K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한 채 다시 수원시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한원에게 수원FC라는 팀이 승격 자격을 얻어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가는 건 대단한 의미였다. 다시 한 번 K리그 클래식 무대를 밟아보고 은퇴하고 싶다던 김한원으로서는 수원FC의 승격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올 시즌 어느 포지션이건 상관하지 않고 팀이 원하는 곳에서 26경기나 뛴 것도 이 때문이다. 팀을 위해 헌신하면서 수원FC를 이끌고 반드시 K리그 클래식에 입성하고 싶었고 그라운드에 선다는 것 자체로도 얼마나 이게 소중한 건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지난 5일 부산구덕운동장에서 열린 부산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후보 명단에 김한원을 포함시켰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어느 포지션이고 가리지 않고 뛰는 김한원은 교체 요원으로 활용 가치가 높았고 만약 수원FC의 승격이 유력해지면 팀을 위한 레전드에게 이 승격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후반 36분 임성택이 첫 골을 뽑아내자 조덕제 감독은 김한원의 투입을 지시했다. “한원아. 그라운드로 나가라.” 이미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둔 수원FC가 2차전에서도 앞서는 유리한 상황이 되자 이 팀에서만 무려 9년을 뛴 팀 내 최고참을 경기에 내보내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김한원은 그라운드에 투입될 준비를 하면서 정강이 보호대를 챙겼다. 승격이 유력한 이 상황에서 그가 챙긴 정강이 보호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GO CLASSIC.’ 해병대 후배 김원일이 선물했던 그 정강이 보호대의 메시지가 현실로 이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김한원은 이 정강이 보호대의 글귀를 손으로 한 번 어루만진 뒤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결국 경기는 후반 막판 자파의 한 골을 더 보탠 수원FC의 승리로 끝났고 승격의 영광도 수원FC가 누리게 됐다. 인천과 전북에서 이미 한 번 좌절을 겪었던 김한원도 다시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 되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김한원은 역사적인 승격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우리 팀이 K리그 클래식으로 한 번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만 품고 있었는데 이게 현실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내셔널리그와 K리그 챌린지를 거쳐 K리그 클래식까지 올라가게 된 수원FC의 김한원은 구단의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구단에서도 이런 김한원에게 예우를 다할 예정이다. 비록 35세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내년 시즌에도 그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올해도 각종 포지션에서 26경기에나 나서며 헌신한 김한원을 향해 조덕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의 레전드인데 K리그 클래식에서도 함께 해야죠. 오랜 시간 뛰지는 못해도 후배들에게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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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원은 이제 K리그 클래식으로 간다. 해병대 후배 김원일의 바람처럼 말이다. (사진=수원FC)

‘진짜 사나이’들의 낭만은 이런 거다

이제 김한원은 김원일의 바람처럼 K리그 클래식으로 간다. 지금도 김원일의 특별한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김한원은 김원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군대 선임이라고 신경써주니까 고맙죠. 우리 입장이 비슷하잖아요. 힘들게 다시 일어서서 다시 운동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걸 이겨내고 저렇게 K리그 클래식 팀에서 원일이가 주전까지 하는 걸 보면 선배로서 참 대견해요. 거기다가 저한테 마음을 담은 선물까지 보내서 응원하는 모습에 저도 큰 힘을 얻었습니다. 부산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때 교체 투입을 준비하면서 정강이 보호대의 ‘GO CLASSIC’이라는 메시지를 보며 울컥했습니다. 이제 원일이의 메시지처럼 K리그 클래식에 가게 됐어요. 아마도 원일이의 특별한 선물 때문에 저에게 큰 행운이 찾아온 것 같아요.” 김원일은 이 하늘 같은 해병대 선배를 너무나도 닮고 싶어 한다. “나이가 있는데도 팀을 위해 어떤 역할이건 주어지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한원이 형의 모습을 저도 꼭 닮고 싶어요.”

이 둘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힘들었던 시절을 잘 안다. 그래서 더 이 둘의 관계는 특별하다. 포항 시내를 박박 기고 구정물을 들이마시며 축구를 포기할 뻔했던 김한원과 김원일은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나 그라운드에 섰다. 그리고 먼저 K리그 클래식이라는 큰 무대에서 기다리던 후배는 선배를 위해 특별한 응원을 보냈고 선배는 후배가 있는 그 높은 곳으로 다시 올라섰다. 군대에 가면 운동선수 생활은 끝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더군다나 운동선수가 상무에 가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막군’(현역병)으로 입대하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것처럼 받아 들인다. 한창 나이 때 공 대신 총을 잡고 2년 동안 생활한다면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은 K리그에서 보란 듯이 일어섰다. 선배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쓸 줄 아는 후배가 있다는 점과 그런 후배의 응원을 받아 은퇴를 앞둔 나이에도 다시 K리그 클래식 무대에 서게 된 선배가 있다는 점은 K리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가 알아야 할 멋진 스토리 아닐까. 해병대 현역병 출신으로 K리그 무대를 누비는 단 두 명뿐인 이 특별한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내년 시즌에도 계속될 것이다. 김원일의 바람대로 K리그 클래식에서 말이다. 김한원과 김원일, 이 진짜 사나이들의 낭만은 죽지 않았다.

footballavanue@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