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는 지난 2011년 승부조작 파문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다. 당시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 60여명은 영구 자격 박탈 등 중징계를 받고 축구계를 떠났다. 이들 중 가담 정도가 약한 이들은 징계에서 풀려 복귀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아예 축구계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선수들 개개인의 상황이야 안타깝지만 이런 단호한 징계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징계 및 처벌과 관련해 한 가지 이상한 점도 있다. 잘못을 저지른 선수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건 당연하다고 치자. 그런데 왜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이들 중에는 아무도 책임을 진 사람이 없을까. 하물며 회사에서 업무 실적이 안 좋으면 책임지는 윗선이 있고 군대에서도 후임병이 사고를 치면 관리 감독 소홀로 선임병까지도 처벌을 받는데 말이다. 그런데 당시 프로축구연맹의 그 누구도 승부조작과 관련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평소에 아무리 승부조작의 위험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교육을 선수들에게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일이 터졌으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게 프로축구연맹 총재건 사무총장이건 응당 그래야 했다. 하물며 경기위원장이라도 옷을 벗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연맹은 그저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에게만 철퇴를 내렸을 뿐 그들은 이 엄청난 스캔들에서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 나갔다. ‘우리들’이라는 입장에서 놓고 봤으면 연맹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지만 연맹에서는 승부조작 가담자들을 ‘너희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고는 선수들만 친 게 아니라 연맹도 같이 친 건데 말이다. 연맹에서 관리하는 선수들 수십 명이 승부조작으로 쇠고랑을 찼지만 당시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가 나서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뿐 연맹에서 책임을 지고 직위에서 물러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충격적인 심판의 비리 혐의 구속

그런데 이번에는 K리그에서 심판 매수 혐의가 터져 나왔다. K리그 전체가 아닌 특정팀의 사건이긴 하지만 경남FC 안종복 대표이사가 재임 시절 심판들을 매수해 유리한 판정을 요청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안종복 대표이사는 2년 동안 네 명의 심판에게 지속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이들 중 죄질이 무거운 두 명은 구속됐으며 나머지 두 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안종복 대표이사는 2년에 걸쳐 19번이나 이들 심판들에게 뒷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고 이들 심판들 역시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22명의 K리그 주심 중 네 명이나 매수됐다는 사실은 선수들의 승부조작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K리그 팬이라면 늘 봐왔던 익숙한 얼굴들이 유리한 판정을 대가로 뒷돈을 받아 챙겼다는 건 엄청난 배신이다. 더군다나 이들 중에는 고등학교 지도자까지도 겸하는 심판도 있었으니 개탄할 일이다. 쉬쉬하며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는 다른 심판들까지 이번 심판 구속 사태로 인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검찰 측에서도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는 심판도 많이 있었다. 그런 심판들이 있어 축구에 희망이 보이고 K리그가 전체적인 비리에 휩싸였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안종복 대표이사가 뒷돈을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접근했고 아예 이런 걸 거부하는 심판들에게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전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심판계 전체가 썩은 게 아니라 이들 중 상당수는 지금도 투명하게 자신이 가진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모든 심판을 손가락질 해서는 안 된다. 네 명의 심판을 제외한 나머지 심판들 대부분은 돈 몇 푼에 휘둘릴 만큼 도덕적으로 지저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아니 오히려 로비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대쪽 같은 심판이 많다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K리그에는 대쪽같은 심판 역시 많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런데 연맹의 대처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지난 승부조작 사태 때보다도 오히려 더 소극적이다. 처음 심판 매수 보도가 터져 나왔을 때는 “몇몇 심판 개인 비리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논란이 된 판정을 다시 분석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심판들이 구속된 뒤에도 연맹의 태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사과문을 통해 “큰 실망감을 안겨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도 “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에 입각하여 엄격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오히려 “심판 판정의 공정성 유지가 축구발전의 중요한 토대라는 인식 하에 심판 판정의 신뢰도를 높이고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난 3년간 컴퓨터 배정 등 심판 운영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그 결과, 해마다 평균 K리그 전임심판 46명 중 12명을 교체했고 그 교체 비율은 매년 약 25%에 이르고 있다”며 연맹의 노력을 강조했다.

연맹도 책임져야 한다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갈 모양이다. 혐의가 입증된 이들만 처벌 받는 걸로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연맹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연맹은 일부 심판들이 뇌물을 받으면서 일으킨 논란의 판정을 가려내지 못했다. 검찰 측에서도 “정상적인 심판도 오심을 저지를 수 있고 매수된 심판들 역시 승부조작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판정을 찾아내기란 어렵다.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듯 이들 심판들이 일부러 경남에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걸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연맹에는 사후 분석 시스템이 있다. 매 경기가 끝나면 심판 판정을 다시 하나 하나 분석해 선수들에게 사후 징계를 내리기도 하고 심판 판정도 따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2년 동안 허튼 짓을 하기 위해 돈을 받은 심판 판정 하나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건 명백한 연맹의 잘못이다. 선수들에게는 사후 징계를 잘만 주고 감독들은 심판 판정에 토를 달면 징계를 내리면서 왜 뒷돈을 받고 판정을 내리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 많은 눈이 잡아내질 못했나. 꼭 승부조작이나 편파판정을 했다는 게 아니라 수천만 원을 꿀꺽 해놓고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내리기 위한 아주 작은 의심의 소지라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둘째, 연맹은 심판들을 물갈이하면서도 도덕성이 떨어지는 두 명의 심판과는 올 시즌에도 함께했다. 연맹 스스로 전임심판 교체 비율이 매년 약 25%에 이른다고 홍보 아닌 홍보를 했지만 25%가 아니라 90%를 교체하면 뭐하나. 그 남은 10%에 뒷돈 받아먹는 심판이 있다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여기에서 중요한 건 심판 교체 비율이 아니라 왜 그 교체 비율 25% 안에 비리로 얼룩진 함량 미달의 심판 이들이 포함돼 있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이번에 구속된 네 명 중 두 명은 검찰의 수사가 있기 전인 지난 10월 말까지도 버젓이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했다. 당연히 이들을 걸러내지 못한 심판위원회에도 책임이 있다. 이들이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2년 동안 이런 헛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는데 이걸 단순히 몇몇 심판의 개인적인 비리로 봐야할까.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하고 교육하고 걸러 내야할 연맹과 심판위원회에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안종복 대표이사가 경남에 유리한 판정을 대가로 심판들에게 돈을 준 혐의는 입증됐다. 그렇다면 경남과 잔류 경쟁을 하다 K리그 챌린지로 떨어진 대전이나 대구 등의 피해는 누가 보상할 건가.

구속된 심판들은 음주운전이나 도박을 하다 구속된 게 아니다. K리그 경기 도중 유리한 판정을 대가로 뒷돈을 받아 구속된 거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심판 개개인의 잘못인가. 하지만 석고대죄를 하고 누군가 책임을 져 자리에서 물러나도 모자랄 판국에 연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단 두 번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게 전부다. 지난 2011년 승부조작 사건 때보다도 훨씬 더 소극적이다. 여전히 심판 몇몇의 개인적인 비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또한 여기에 연맹은 문제 일으킨 심판을 처벌하는 기관일뿐 그들을 관리 감독하던 기관이 아니라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연맹은 최근 사과문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검찰 수사 결과 혐의가 확인되는 해당 심판과 해당 구단에 대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연맹 상벌위원회를 열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 해당 심판과 해당 구단에 대한 단호한 조치도 당연하지만 왜 자신들은 이 사건에서 조치만 취하면 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나. 연맹에서도 누군가는 책임을 떠안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겠나. 승부조작 사건 때처럼 가담자들만 처벌하고 정작 관리 감독에 실패한 자신들은 쏙 빠져 나가서는 안 된다. 연맹은 지금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은 죄를 지은 심판과 구단만을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