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벌어진 수원FC와 부산아이파크의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후반 6분 모두가 깜짝 놀란 장면이 연출됐다. 수원FC 임하람이 부산 홍동현에게 뒤에서 태클을 가했고 이동준 주심은 곧바로 임하람의 퇴장을 명령했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이 논란이 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임하람은 정확히 공을 보고 태클을 가했고 다소 과한 동작이었다고 판단해도 경고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의견을 제기해 본다. 곧장 레드 카드를 꺼낼 만한 장면은 아니었다고 보지만 이동준 주심은 단호하게 임하람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벤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론 판정은 주심이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주심의 입장에서 정당한 판정이었다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결론적으로는 수원FC가 한 명의 퇴장 공백 속에서도 더 거센 공격을 퍼부으며 부산에 1-0으로 승리했다. 이후 부산 홍동현도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했으니 10대 10의 싸움이라 공평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하람의 퇴장 이후 수원FC가 더 집중하며 이 퇴장이 승부의 분수령이 됐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임하람에게 경고 정도가 내려지고 경기가 속개됐더라면 승패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와중에 심판의 판정 하나로 경기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건 두 팀 모두에 엄청난 변수다. 그만큼 심판은 이 경기에 대해 털 끝 만큼도 오해의 소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만약 수원FC가 1차전에서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임하람의 퇴장 장면은 두고 두고 논란이 될 수도 있었다.

PO 2차전, 음모론 없는 경기 펼쳐지길

최근 경남FC 안종복 대표이사가 심판을 매수했다는 혐의로 두 명의 K리그 전현직 심판이 구속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나머지 심판들은 여전히 신뢰하고 싶다. 지금도 그 누구보다 정확한 판정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심판들이 많다는 걸 잘 안다. 한두 명의 비리로 인해 심판계 전체가 불신에 빠지면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승강 플레이오프는 오심이나 애매한 판정 하나만 범해도 의심의 눈초리가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부산은 현 대한축구협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팀이다. 정몽규 구단주가 심판 판정에 입김을 행사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오심이 일어나면 오해의 소지는 다분해진다. 2차전 경기 도중 애매한 상황에서 부산의 페널티킥이라도 선언했다가는 거대한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근 심판이 두 명이나 구속되며 불신이 쌓여 가는데 이런 음모론은 단순한 음모론일 뿐이어도 타격이 크다.

속된 말로 심판의 ‘장난’도 없어야 하고 의도하지 않은 논란의 판정도 없어야 한다. 또한 경기력 외적인 부분이 심판 판정에 영향을 받는 일 또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당연히 외압 없는 공정한 경기가 펼쳐지겠지만 사상 최초의 기업 구단 강등과 현 축구협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팀의 강등이라는 엄청난 부담감 때문에 심판 스스로가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1차전 경기에서 임하람이 다이렉트 퇴장 당하는 모습을 보며 ‘혹시?’라고 생각했던 내 걱정이 기우였길 바란다. 부산이 최선을 다해 2차전에서 승부를 뒤집었는데도 애매한 판정 하나 때문에 그들의 대역전극이 음모론에 휩싸이는 것 또한 참으로 비극적인 일일 것이다. 심판의 애매한 판정 하나로 인해 어느 쪽이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내일 2차전에서 조금이라도 애매한 장면이 나오면 K리그 전체의 심판 수준까지 거론하며 물고 뜯을 것이다.

다소 다른 사안일 수도 있지만 수원FC의 전신인 수원시청이 2007년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선수 5명이 퇴장 당해 몰수패를 당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었다. 후기리그 1위 자격으로 챔피언결정전에 나선 수원시청은 전기리그 1위 팀인 울산현대미포조선을 상대했는데 사실 이날 경기는 ‘이겨야 하는 팀’이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이전부터 내셔널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면 K리그로 승격하겠다고 공언한 울산현대미포조선과 내셔널리그에서 우승을 해도 그대로 내셔널리그에 남겠다던 수원시청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승강제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홍역을 앓던 시점에서 대부분의 축구인들은 그냥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우승하고 K리그로 가야 논란이 없는 깔끔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우승을 거둬도 K리그에 갈 생각이 없던 수원시청이 우승을 차지하는 건 아주 맛있게 차려 놓은 잔칫상을 발로 차 엎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전부터 수원시청 선수들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졌어야 했던’ 2007년 수원시청의 악몽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전반 9분 만에 수원시청 박희완의 패스를 받은 오정석이 낮고 빠른 오른발 슈팅으로 먼저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수원시청이 울산현대미포조선에 1-0으로 앞서면서 수원시청 선수단만 빼고 모두 다 걱정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런데 수원시청 선수단 입장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때부터 애매한 판정이 이어졌다. 김성호 주심이 수원시청의 첫 골 이후 가벼운 몸싸움에도 수원시청의 파울을 선언했고 골키퍼와의 결정적인 1대1 상황에서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리는 등 찜찜한 상황이 계속 연출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전반 34분 일이 터지고 말았다. 수원시청 이준영이 울산미포 김영후에게 파울을 범했다며 김성호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 내내 찜찜한 판정을 참고 있던 수원시청 선수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주장 박희완이 주심의 가슴을 밀쳐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거친 욕설과 함께 강하게 주심에게 항의한 수원시청의 홍정민과 이수길, 양종후도 곧바로 퇴장 명령을 받은 것이다. 페널티킥 선언으로 항의하다가 한꺼번에 네 명의 선수가 퇴장 당하는 초유의 사태였다. 결국 수원시청 김창겸 감독까지도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 모은 뒤 경기 감독관에게 강하게 항의하다가 퇴장 당했다. 이때부터 수원시청은 골키퍼를 포함해 단 7명의 선수가 경기에 나서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후반 2분 만에 정재운이 스로인 상황에서 공을 경기장 밖으로 던져 버려 퇴장을 당했다. 이로써 5번째 퇴장 선수가 발생해 경기는 수원시청의 몰수패로 막을 내렸다. 이에 대해 김창겸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경기가 열리기 전날 저녁 선수들과의 미팅에서 판정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정도 손해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고 일기에 심판의 판정에 절대 복종하겠다고 쓰는 등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 계속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경기를 치르느냐.”

결국 잔치가 되어야 할 챔피언결정전은 이렇게 얼룩지고 말았다. 이날 주심이 의도적으로 울산현대미포조선을 밀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이미 경기 전부터 누가 봐도 이겨야 할 팀과 져야 할 팀은 말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었다. 물론 수원시청 선수들의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는 건 좋지만 심판을 밀치며 욕설까지 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영원한 숙제였던 승강제 도입을 위해 ‘져 줬어야 할’ 수원시청 입장에서는 심판의 애매하고 찜찜한 판정 하나 하나에 점점 의심의 눈초리가 커졌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내일(5일) 열릴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조그마한 오해의 소지 또한 없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이라도 경기 전부터 심판 판정의 불리함을 가슴에 새기고 경기에 임한다면 음모론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내일 경기의 승패가 어떻게 나건 상관은 없지만 양 팀 선수들 모두 경기가 끝난 뒤 정정당당한 승부였다고 인정할 수 있는 판정이 내려져야 한다.

운명의 PO 2차전, 논란의 판정 없어야

오얏나무 밑에선 갓끈도 고치 매지 말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을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딱 지금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제 올 시즌 K리그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한 경기가 남았고 이 한 경기를 통해 두 팀의 운명이 크게 엇갈릴 것이다. 이 한 경기로 인해 어느 한 팀은 1년 농사를 멋지게 마무리 지을 것이고 또 다른 한 팀은 또 다시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 쪽 중 어디라도 이의를 제기할 만한 판정 시비는 없어야 한다. 그나마 1차전에서 수원FC가 승리했기에 망정이지 임하람의 퇴장 장면은 그런 논란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2차전에서는 아예 판정 논란에 싹을 자를만한 깔끔한 판정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판정이 매끄러우면 팬들은 이 경기 주심이 누구였는지 이름조차 기억하질 못한다. 팬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심판이 가장 훌륭한 심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일로 다가온 운명의 한 판이 역사에 기록될 때 부디 심판의 이름까지 언급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 이런 걱정은 분명히 기우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