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라는 애칭이 붙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놓고 K리그 클래식 수원블루윙즈 구단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수원 구단은 1년에 경기장 임대료와 상업 광고 사용료 7억 5천만 원을 내고 경기장을 빌려 쓰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광고독점권을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다. 여기에 경기장 입장 수익의 10%를 재단에 내는 것까지 포함하면 구단이 재단에 지불하는 돈은 1년에 10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수원 구단의 의지와 무관하게 재단이 독자적인 마케팅을 벌이면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미 지난 상반기에 수원 구단과 사전 협의 없이 수원 홈 서포터석 2층 및 양 전광판 하단에 광고를 영입해 수익을 창출한 재단은 최근에는 전광판 아래에 LED 광고판 설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광고판을 통해 또 다른 수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수원 구단과 아무런 협의 없이 진행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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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이 독단적으로 경기장 내 LED 광고판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사진=수원블루윙즈)

관리 재단의 몰상식한 무임승차

이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경기장을 사용하는 수원 구단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재단은 이미 수원 구단이 유치했던 스폰서와 동종업계 기업의 광고를 내걸었고 이에 대해 수원 구단은 “기존 스폰서의 이탈 조짐마저 보이며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수원이 아디다스로부터 돈을 받고 광고판을 내걸었는데 재단이 뜬금없이 바로 옆 광고판에 나이키 광고를 내건 꼴이다. 그러면 당연히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광고 효과를 노리던 아디다스는 수원에 대한 지원을 끊을 수밖에 없다. 수원 구단이 갤럭시 스마트폰 광고를 내걸었는데 재단이 아이폰 광고를 내걸며 훼방을 놓은 것과 다를 게 없다. 또한 수원 구단이 재단에 내는 경기장 사용료는 다른 K리그 구단에 비해 더 비싸다. 그런데 심지어 재단은 수원 구단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하려는 걸 막기도 했다.

재단은 다른 구단에 비해 수원 구단에 더 많은 비용을 받아 챙기면서도 수원 홈 경기에서 발생하는 광고 수익까지 더 가져가기 위해 아주 치졸한 방법을 쓰고 있다. 만약 수원블루윙즈의 홈 경기가 이곳에서 열리지 않았더라면 재단이 독자적인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까. 누가 사람의 발길도 없는 이 곳에 돈을 내고 광고를 걸려고 할까. 하지만 수원은 이런 식으로 10년 넘게 ‘슈퍼갑’인 재단의 훼방에 놀아나야 했다. 10년 넘게 재단의 횡포에 시달린 수원은 최근 2016시즌 연간 회원권 판매도 잠정 중단하고 홈 경기장 변경까지 검토하고 있다. 임대료는 임대료대로 챙기고 여기에 구단의 광고 수익권까지 넘보는 재단의 비상식적인 횡포에 반기를 든 것이다. 재단이 상식을 차려 원만히 이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지만 정말 양쪽 사이가 틀어져 수원블루윙즈가 홈 구장을 수원종합운동장으로 옮기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 지금부터 수원블루윙즈가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떠났을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상해보려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

수원 구단이 ‘빅버드’를 떠난다면?

수원블루윙즈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들썩이던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주말에도 썰렁해졌다. 보통 1~2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던 홈 경기가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경기 날이면 북적이던 월드컵 갈비는 물론 신통치킨, 심해 꼼장어 등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경기가 열리기만 하면 주류와 음료수, 과자 등을 팔아 대박을 치던 수원월드컵경기장 바로 길 건너 편의점 ‘GAG STORY’에도 가끔 담배를 사러 오는 동네 백수들의 발길이 전부다. 가뜩이나 수원에서 외곽에 자리 잡은 이 곳은 홈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찾아오는 수만 명의 관중으로 그나마 상권이 유지됐지만 이 엄청난 인파는 이미 수원종합운동장으로 다 떠났다. 주말이면 함성 소리로 가득 찼던 수원월드컵경기장 주변은 적막하기까지 하다. 주말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로 꽉꽉 들어찼던 버스는 이 곳에 내리는 이가 없어 정차하지 않고 몇 대나 그냥 정류장을 통과해 버렸다.

수원월드컵경기장 내부에 들어서니 이게 정말 축구장이 맞았나 싶은 생각부터 든다. 경기장을 채웠던 광고판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원블루윙즈 홈 경기가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지면서 그 동안 구단을 지원했던 스폰서들이 모두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발을 뺀 것이다. 덕분에 재단은 날로 먹던 광고 수익이 사라졌고 여기에 1년에 10억 원씩 구단에 받던 돈도 더 이상은 입금이 되질 않는다. 1년 관리 및 유지 비용이 50억 원에 이르는데 그나마 이 적자를 수원 구단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존 받던 재단으로서는 1년에 10억 원씩을 새로 충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1년에 어떤 바보가 제대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면서 이 재단에 10억 원씩을 가져다 바치겠는가.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흉물처럼 남은 채 방치되고 있었다. 경기장 주변에는 불량 청소년들이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술병과 담배 꽁초, 그리고 천하장사 소시지 껍데기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그 옆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몇 명이 지나갈 뿐이다.

그런데 몇 달 간 방치되며 수익 한 푼 내지 못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이 오랜 만에 북적이기 시작했다. 재단이 마침내 수익을 낸 것이다. 하지만 이건 딱 하루짜리 행사였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입구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이런 글귀가 써 있었다. ‘가왕 조용필 콘서트’ 인기가수의 콘서트가 바로 이곳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경기장을 살펴보니 공연 무대가 그라운드 한 구석에 설치되고 있었다. “뚝딱 뚝딱.” 작업용 신발을 신은 인부들이 잔디를 마구 밟으며 망치질을 했고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잔디 일부분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이날 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오랜 만에 3만여 명이 모여 가왕의 무대를 즐겼지만 이뿐이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수원월드컵경기장이 또 다시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됐기 때문이다. 정작 정기적으로 열려야 할 축구 경기가 열리질 않으니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그 가치를 잃고 있었다.

수원 구단이 ‘빅버드’를 떠난다면2?

또 다시 몇 달 간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된 수원월드컵경기장이 명절을 앞두고 한 번 더 북적이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조용필의 콘서트 때의 차분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이날은 어린 학생들이 아침 일찍부터 경기장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건 푸른색의 수원 유니폼이 아니었다. 저마다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생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보지 못한 글귀가 써져 있는 거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랬다. ‘EXO 내품에’, ‘방탄소년단 짱’, ‘호야꼬야’ 알고 봤더니 이날은 명절을 앞두고 특집 프로그램으로 제작되는 ‘아이돌 육상선수권대회’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기로 한 것이었다. 이유야 어쨌건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오랜 만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백 명의 아이돌이 머물고 지나간 경기장 잔디는 여기 저기 움푹 파여 있었고 또 다시 수원월드컵경기장은 하루 동안의 축제를 마치고 적막감에 빠져 들었다.

재단은 결국 머리를 싸맸다. 이미 경기장에 입주해 있던 팔달구청과 웨딩홀이 떠난 임대 수입이 부족해진 마당에 어떤 방식으로건 경기장을 활용하고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공 차자’는 배너를 내걸었다. 워낙 수익이 나지 않고 활용도가 떨어지다보니 수원시 조기축구회에 임대료를 받고 경기장을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2시간 대여에 수천 만원에 이르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조기축구회는 없었다. 한두 팀이 그래도 무리를 해서라도 이 곳에서 경기를 하고 싶어 방문하기도 했지만 움푹 파여 있고 말라 죽어버린 잔디를 보고는 경악했다. 이들은 임대료도 저렴하고 잔디 상태도 좋은 수원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으로 향했고 결국 수원월드컵경기장은 또 다시 주인을 찾는데 실패했다. 결국 재단은 이따금씩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도청 공무원 체육대회를 열고 종교 단체의 집회 등에 대관료를 받는 등의 수익 활동을 하는 게 전부였다. 경기도 소방공무원 선발 체력 테스트나 덴소컵 따위가 가끔 열릴 뿐이었다.

적자는 더더욱 심해져 갔다. 1년에 10억 원씩 꼬박꼬박 연체도 없이 내던 ‘돈줄’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 들어올 이들은 없었다. 여기에 수원블루윙즈를 따라 경기장에 내걸렸던 스폰서들의 광고는 모두 수원종합운동장으로 향했고 매주 북적이던 인파가 떠나고 동네 상권 자체가 죽자 지역민들 역시 극심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수원블루윙즈 홈 경기 이후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로 넘쳐나던 아주대 앞 번화가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이제 상권은 수원종합운동장 주변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더군다나 수원종합운동장은 수원FC와 번갈아 가면서 사용해 수원월드컵경기장보다 더 관중으로 북적이는 날이 잦았고 잔디 상태 역시 그저 돈만 받아 챙기고 나몰라라 하던 수원월드컵경기장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금방 망가지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는 거미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미 물이 고여 있는 화장실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원조차 넣질 않는다. 이 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축구도 없기 때문이다.

관리재단, ‘슈퍼갑’ 횡포 멈춰라

상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은 K리그를 상징하는 곳인데 수원 구단이 이 곳을 떠나는 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재단의 지금과 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수원 구단이 차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수원종합운동장의 시야가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비해 좋지 않은 편이기는 하지만 수원종합운동장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잔디 관리 상태는 물론 트랙도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대구 스타디움과 같은 푸른색 몬도 트랙으로 교체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수원종합운동장은 또한 관람석을 교체하고 조명탑과 전기 및 음향 시설을 바꿔 2007년에는 FIFA U-17 월드컵이 열었고 피스컵을 개최하기도 할 만큼 훌륭한 시설을 자랑한다. 수원 구단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만에 하나 그들이 옛 홈 구장인 수원종합운동장으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전혀 불편할 건 없다.

재단은 잘 생각해야 한다. 주인 없는 경기장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아무런 활용도 하지 못하고 여기에 적자만 늘어간다면 여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K리그 경기가 아니면 가끔 열리는 콘서트나 이벤트만으로 경기장을 운영할 수 없다는 건 아마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1년에 10억 원씩 받아 먹으면서 제대로 잔디 관리도 하지 못하는 그런 자세로는 그 누구도 재단 편을 들지 않는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재단은 언제까지 그렇게 수원블루윙즈를 상대로 ‘슈퍼갑’ 행세를 할 건가. 더군다나 수원월드컵경기장은 다가올 2017 U-20 청소년 월드컵을 개최할 곳이다. 이런 경기장을 안방으로 쓰는 프로팀이 없다면 이런 국제적인 망신이 또 있겠는가.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재단은 정녕 수원블루윙즈가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떠나 광고판을 다 비워주면 이걸 알아서 채워 넣을 자신은 있나. 수원블루윙즈가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없었다면 그 황량한 곳에 광고를 내걸 바보 같은 광고주가 있었겠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말라. 재단은 집 주인이라고 해 전세 사는 이에게 가구 배치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