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FC가 대어를 낚았다. 바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만 100경기에 가까운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 청소년 대표 출신 시시 곤잘레스를 영입한 것이다. 그것도 자금력이 좋은 K리그 클래식 수원블루윙즈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K리그 챌린지 수원FC가 이런 명망 있는 선수를 영입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은 어떻게 수원FC가 시시를 영입할 수 있었는지, 왜 시시가 K리그 클래식도 아닌 K리그 챌린지를 선택하게 됐는지 많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직접 관계자들을 취재해 그 비화를 입수했다. 지금부터 수원FC와 시시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스페인 최고 유망주였던 시시의 좌절

시시는 스페인 축구의 유망주였다. 시시는 발렌시아 유소년팀 출신으로 스페인 16세 이하 대표부터 17세, 19세, 21세 이하 대표팀을 두루 거친 선수였다. 2003년에는 17세의 나이로 발렌시아 B팀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그해 핀란드에서 열린 FIFA U-17 청소년 월드컵에서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 다비드 실바(맨체스터 시티), 하비 가르시아(제니트) 등과 함께 스페인 대표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당시 시시는 스페인 대표팀의 7번을 달고 팀의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작은 키에도 종횡무진 상대 진영을 드리블로 누비는 시시는 이때부터 전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끌며 미래가 보장된 선수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시시는 한국과의 조별예선 경기에서도 풀타임 활약하며 스페인의 3-2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의 성공은 쉽지 않았다. 발렌시아 1군에서 자리를 잡는데 실패한 시시는 에르쿨레스와 바야돌리드 임대를 거쳐 결국 2008년 레크레아티보로 이적해야 했다. 이후 레크레아티보에서 나름대로의 활약을 선보인 시시는 다시 바아돌리드로 팀을 옮겨 프리메라리가 무대에서 꾸준한 플레이를 선보였고 이후 팀이 강등된 뒤에도 맹활약하다 2012년 오사수나로 이적해 또 다시 프리메라리가에 입성했다. 하지만 시시에게는 또 한 번의 좌절이 찾아왔다. 오사수나에서 두 번이나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시시는 오사수나에서 두 시즌 동안 20경기에 나서는 데 그치고 말았다. 특히 한 차례 부상에서 가까스로 회복하고 복귀했지만 2013년 10월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6분 만에 또 다시 부상을 당해 상승세가 한 번 더 꺾이고 말았다.

결국 시시는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재활을 하며 오사수나의 강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몸 상태를 회복한 뒤에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오사수나는 강등 이후 재정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한때 스페인 최고 유망주로 꼽히며 많은 기대를 받았던 그는 파브레가스와 실바 등 친구들이 유럽 무대를 호령하는 사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시는 프리메라리가에서만 90경기에 나섰고 1부리그와 2부리그를 합치면 총 282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는 등 절대 실패한 선수는 아니었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이었지만 시시를 실패한 선수라고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 166cm의 작은 키에도 빠른 스피드와 패싱 능력, 드리블 능력까지 갖춘 그는 어느 팀에서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미드필드 전역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많은 팀들이 탐을 내고 있었다.

브라질 선수 두 명이나 놓친 수원FC의 선택

비슷한 시기 수원FC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다. 올 시즌 9득점 2도움을 기록 중인 브라질 출신 공격수 자파와 192cm의 큰 키로 안정감 있는 수비를 선보이고 있는 몬테네그로 출신 수비수 블라단에 이어 중원에서 공수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줄 만한 외국인 선수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때 자파와 블라단의 국내 에이전트가 한 선수를 추천했다. “이 선수 한 번 봐보세요. 부상으로 기대 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능력은 탁월한 선숩니다.” 바로 시시였다. 하지만 수원FC 조덕제 감독은 시시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일단 브라질에 점찍어 놓은 선수가 따로 있었고 워낙 시시가 이름값이 있는 선수라 본인 스스로 2부리그행을 선택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몸값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시시는 그렇게 수원FC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듯했다.

수원FC는 워낙 좋게 평가하고 있던 브라질 선수에게 접근했다. 이 선수라면 수원FC를 한 단계 더 수준 높은 팀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 1부리그에서만 4년 동안 뛰었던 이 선수는 단호했다. “2부리그에서는 공을 차고 싶지 않습니다.” 그에게 있어 한국의 2부리그행은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다. 완전이적이 아닌 임대영입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자 수원FC는 좋은 평가를 내렸던 또 다른 브라질 선수를 만났다. 이 선수는 지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선수였다. 수원FC행을 제안 받은 이 선수는 이전 브라질 선수와는 달리 호의적이었다. 수원FC가 2부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 소속돼 있다고 하더라도 조건만 맞으면 갈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워낙 지역 내에서 유명 인사인 탓에 계약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의 연봉을 주주들이 주는 형태였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한 푼이라도 더 수원FC측에 받아내려고 했고 갑자기 이적료와 연봉이 치솟았다.

결국 수원FC는 좋게 평가하던 두 명의 브라질 선수를 모두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조덕제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지켜보기 위해 대학교 경기장을 찾은 곳에서 또 한 번 인연이 시작됐다. 시시를 처음 소개했던 자파와 블라단의 국내 에이전트를 만난 것이었다. “감독님, 그때 말한 스페인 선수 능력이 괜찮아요. 일단 한 번 봐보세요.” 조덕제 감독은 잊고 있던 그를 다시 떠올렸다. 시시였다. 두 차례나 점찍어 놓았던 브라질 선수와의 계약에 실패한 조덕제 감독은 워낙 유명해 일단 영입 리스트에서 배제했던 시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코치들과 직접 시시가 뛴 풀경기 영상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눴다. 작지만 열심히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도 한국 나이로 서른 살이 돼 축구에도 눈을 뜰 시기가 됐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계약은 구단에서 직접 하는 상황이라 조덕제 감독은 곧바로 구단에 시시와 계약을 하고 싶다고 알렸다. ‘어차피 두 번이나 계약에 실패했는데 세 번이면 어떠랴’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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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와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는 시시. (사진=수원FC)

시시가 수원FC를 선택한 이유

그런데 며칠 뒤 시시 측에서 연락이 왔다. 정말 의외의 대답이었다. “시시가 수원FC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스페인 최고 유망주였던 이의 K리그 챌린지행이라는 놀라운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스페인 현지에서 다비드 실바 등 유명 선수들과 같은 에이전트사에 속한 시시는 해외 진출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국가의 에이전트와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인 에이전트가 수원FC로의 이적을 제안한 것이었고 시시는 곧바로 수원FC 경기 영상을 구했다. 사실 그의 눈에는 수원FC의 상대적으로 적은 관중이나 열악한 환경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게 있었다. 바로 공격적인 경기력이었다. 한참 동안 수원FC 경기 영상을 지켜본 시시는 결단을 내렸다. “이 팀으로 가고 싶습니다.” 선수층이 열악해 다섯 명의 수비를 세우고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둬 무려 7명이나 수비에 가담하던 오사수나에서 처진 공격수로 가끔 역습이나 하던 축구에 아쉬움이 많던 시시는 공격적인 축구에 목말라있었다. 그 와중에 비록 수비는 허술하지만 공격 의지가 보이는 수원FC의 축구에 매료된 것이다.

“이런 공격적인 팀이라면 제가 장점을 더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팀이 1부리그 팀인지 2부리그 팀인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랜 만에 신나게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스페인 최고 유망주였던 시시는 서른 살의 나이에 K리그 챌린지 수원FC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시시의 연봉은 K리그 챌린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시가 2012년 오사수나로 갈 당시에는 바이아웃 금액이 600만 유로(한화 약 76억 원)에 달했어요.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이적료 없이 팀을 옮길 수 있게 됐고 여기에 연봉도 스페인 2부리그에 비해 큰 차이가 없어요. 기존 K리그 챌린지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연봉과 비교해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시면 돼요. 경력과 가진 능력에 비한다면 알짜배기 영입인 셈이죠.” 시시는 그렇게 지난 22일 오후 4시 반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짐을 풀고 하루 뒤인 어제(23일) 시시는 계약서에 사인을 한 뒤 구단의 배려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었다. 오늘(24일) 메디컬 테스트로 치러야 했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시는 어제 곧바로 팀 훈련장에 등장했다. “당장 몸을 만들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시시는 입국 하루 만에 훈련에 합류해 동료들과 발을 맞췄다. 비록 가벼운 훈련이었지만 조덕제 감독은 그에게서 기대를 감출 수가 없었다. “확실히 가진 능력과 센스가 있어요. 6월에 시즌을 마치고 와 아직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피로도까지 감안한다면 아마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을 겁니다. 게다가 큰 키에 동작이 느린 선수는 공백 기간이 있으면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작은 선수는 몸이 불어나고 그렇지는 않거든요. 빠른 시일 내에 시시를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시시는 비자 등 제반 절차가 마무리되는 다음달 1일 부천과 홈경기부터 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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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와 시시는 이제 한 배를 타게 됐다. (사진=수원FC)

시시의 아름다운 도전을 응원한다

수원FC와 시시는 하마터면 한 배를 타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미리 점찍어둔 선수들이 자존심을 부리며 제안을 거절한 사이 시시는 대우와 조건을 떠나 오로지 수원FC의 경기를 지켜보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한국의 2부리그행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지 몰라도 시시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즐겁게 자신의 축구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중요했다. 이렇게 서른 살의 나이에도 꿈을 위해 과감히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게 된 시시가 부디 K리그 챌린지를 넘어 K리그 클래식까지 정복하고 우뚝 서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또한 대어를 영입하면서 K리그 챌린지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수원FC 역시 좋은 성적을 내길 기원한다. 시시와 수원FC가 성공하면 그만큼 K리그 챌린지에도 새로운 도전의 바람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시하지 않은 수원FC와 시시의 멋진 인연이 오래 오래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