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훈훈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 어린 팬을 위해 정성스러운 사인이 담긴 엽서를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짧게 전해진 이 소식을 접한 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슈틸리케 감독이 어떻게 이런 감동적인 일을 하게 됐는지 취재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한 어린 아이를 위한 슈틸리케 감독의 감동적인 선물에 관한 뒷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벤트가이’ 최수종도 울고 갈 대단한 남자다.

한 어린이가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낸 편지

지난 4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평소 잘 보지 않던 한국 텔레비전을 켰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SBS를 통해 방송됐기 때문이다. 제목은 였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흔들리던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에게 전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선수들이 바라보는 슈틸리케 감독의 성격부터 팬들 한 명 한 명의 바람이 전파를 탔다. 슈틸리케 감독은 통역을 대동하고 이 프로그램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중간 중간 “저건 무슨 뜻이냐”라며 통역에게 묻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을 향한 기대와 바람을 잘 아는 듯했다. 그는 엿을 날릴 정도로 불신이 가득한 한국 축구를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도중 슈틸리케 감독이 한 장면에서 유독 집중했다. 그리고는 통역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알고 봤더니 축구팬인 한 어린이가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낸 편지의 내레이션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통역의 말을 듣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한국 축구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들어봤지만 이런 어린 아이가 전하는 진심은 또 달랐기 때문이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님께.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는 축구광 이동현이에요. 네덜란드어가 아니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통역관이 통역해 주실 거예요. 저는 요즘 우리나라 축구 실력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 축구 감독님이 슈틸리케 감독님이셨어요. 예전 우리나라 감독 중에서도 홍명보, 히딩크 등 뛰어난 감독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 4강을 제외하고는 뛰어난 성적이 별로 없었어요.”

편지는 더 이어졌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님께서 오신 뒤로부터 차원이 달라졌어요. 저는 슈틸리케 감독님이 오시고 우리나라 축구가 좋아지는 것을 보고 슈틸리케 감독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저의 롤모델도 슈틸리케 감독님으로 바꾸었어요. 다음에 우리나라 평가전이 있을 때 슈틸리케 감독님 잘하시라고 꼭 응원할게요. 그리고 제가 커서 슈틸리케 감독님처럼 뛰어난 감독이 된다면 슈틸리케 감독님의 뒤를 이어서 우리나라의 축구를 발전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꼭 뵙고 싶고 사인을 받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이동현 올림.” 글씨는 삐뚤빼뚤했지만 무려 두 장에 걸쳐 진심을 담은 편지였다. 그리고 이동현 군은 편지 맨 밑에는 슈틸리케 감독과 자신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 넣기까지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칫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는 한 어린 아이의 편지를 마음 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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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군이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낸 편지. (사진=해당 방송 화면 캡쳐)

이 어린이에게 날아든 슈틸리케 감독의 답장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곧장 대한축구협회 홍보실에 물었다. “혹시 협회에 제 얼굴이 담긴 사인용 엽서가 있습니까?” 하지만 협회에는 슈틸리케 감독 얼굴이 담긴 엽서를 따로 제작하지는 않았다. “그런 엽서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슈틸리케 감독은 “알았다”는 말만 남겼다. 협회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의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대표팀이 소집되는 날 협회 홍보실 직원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 엽서에 자신의 사인과 짧은 글을 써 직원에게 건넸기 때문이다. “이 사인을 그때 그 어린 아이에게 꼭 좀 전해주세요.” 알고 봤더니 협회에는 아직 자신의 얼굴이 담긴 엽서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슈틸리케 감독이 코트디부아르 감독 시절 기념 엽서를 직접 찾아 정성스럽게 사인을 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 어린 아이의 이름은 물론 친절한 메시지까지 담겨있었다. 협회 직원은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어린 아이의 부탁에 정성스럽게 응한 슈틸리케 감독의 행동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이 전해달라는 엽서의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SBS측에 문의했지만 답변이 지지부진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특성상 이미 슈틸리케 감독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제작진은 다른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간 후였다. 워낙 일이 바쁜 탓에 이 제작진과 연락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제작진에 이 어린 아이의 연락처를 물었지만 답이 오는 데도 한참 걸렸다. 그렇게 협회는 가까스로 이 어린 아이의 부모님 연락처를 알아냈다. 이 어린 아이는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민백초등학교 5학년인 이동현 군이었다. 하지만 협회 홍보실에서도 해외 출장이 잦았고 대표팀 경기도 준비해야 해 곧바로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최근 겨우겨우 이동현 군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이동현군 어머니 되시죠?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이동현군을 위해 사인을 한 엽서를 준비하셨어요. 주소를 좀 알려주세요.” 협회 직원의 연락에 이동현 군의 어머니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 정말이요? 세상에 믿을 수가 없네요.”

협회 홍보실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사인과 메시지가 담긴 소중한 엽서를 택배로 이동현 군에게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동현 군의 어머니로부터 감사의 인사가 날아 들었다. “우리 아들이 너무 좋아해요. 사실 매일 매일 슈틸리케 감독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아이가 상처를 받진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고 사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직접 사인 엽서를 보내주시다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요.” 슈틸리케 감독과 이동현 군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 협회 홍보실 이재철 대리는 이 과정을 다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님을 옆에서 보면 감동적일 때가 많아요. 어린 아이의 부탁도 무시하지 않고 세심하게 생각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감동을 받았어요.” 이동현 군은 지금도 슈틸리케 감독의 사인과 메시지가 담긴 이 엽서를 가장 소중히 간직하며 보물 1호로 삼고 있다. 아마 이 어린 아이가 훗날 어른이 돼도 지금의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약속한 것처럼 훌륭한 축구감독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산다고 해도 말이다.

대표팀 감독 한 번 잘 뽑았다

나는 슈틸리케 감독을 참 잘 뽑았다고 생각한다. 선수 선발과 기용 등에서도 늘 발품을 팔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건 물론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 어린 팬의 간절한 부탁도 허투루 듣지 않고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을 참 잘 뽑았다는 확신은 더 굳어졌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가 단순히 좋은 선수들을 뽑아 기용하는 걸로 끝이 아니다. 한국 축구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하는 자리다. 그런 면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행동 하나 하나는 참 감동적이다. 한 어린 팬의 작은 소원도 이뤄주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 축구의 큰 꿈도 맡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 아니다. 바쁘신데 이런 소소한 감동을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우리나라가 참 대표팀 감독 하나는 잘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