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한 외국인 선수가 퇴출당했다. 이유는 경기 전 애국가 제창을 하는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동작을 멈추고 태극기를 바라보지 않고 몸을 풀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논란 이후 자신의 SNS에 대중을 조롱하는 듯한 포즈를 취해 또 다시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팀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경기 전 애국가가 연주되기로 한 이상 그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은 건 물론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와중에 오로지 이 외국인 선수의 행동에 대해서만 질타할 뿐 과연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가를 연주하는 게 타당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자칫하면 애국가를 거부하고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빨갱이’로 낙인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과감하게 이런 풍토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가 제창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문제를 제기해 건전한 토론을 이끌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가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프로 스포츠에도 내셔널리즘을 들이대야 할까?

이렇게 주장하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나는 대한민국을 몹시 사랑한다.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 반공 웅변 대회와 반공 글짓기 대회 단골 수상자였고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새벽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 애국가가 울리면 텔레비전 앞에서 혼자 가슴에 손을 얹고 있기도 했다. 그때는 철저한 국가관 교육을 받아 누가 보지 않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군대는 현역으로 다녀왔으며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도 한 번 빠진 적이 없다. 다 보는 칼럼에서 욕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원한다면 김정은 욕도 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과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가 제창을 반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거부하려는 게 아니라 과연 애국가가 왜 프로 스포츠 경기장에서 울려 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국가 대항전도 아닌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져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에서 내셔널리즘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스포츠는 내셔널리즘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국가 대항전에 국한된 이야기다. 서울과 수원이 싸우는데 국가관이 개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프로 스포츠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국적과 상관없이 다양한 국가의 선수들이 한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다. 일본인 마스다가 울산을 위해서 뛰고 여러 한국선수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하고 있다.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중국 허난 젠예에는 한국인 송태림이 뛰고 있고 반대로 그 상대팀 수원에는 중국인 리웨이펑이 뛰던 모습은 참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당시 수원 팬들은 리웨이펑을 응원했고 허난 팬들은 송태림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렇듯 프로 스포츠에서는 국가의 경계에 모호할 수밖에 없다.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 스포츠는 내가 응원하는 팀과 상대팀과의 스포츠 경기일 뿐 국가적인 차원의 맞대결이 아니다.

꼭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자를 틀지 말자고 주장하면 이걸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가는 이들이 있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이념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프로 스포츠의 두 팀이 격돌하는데 여기 굳이 왜 나라를 사랑한다는 노래를 함께 불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경기장에서 애국가 부르는 게 그리 큰 불편도 아닌데 왜 이런 걸로 일일이 피곤하게 논쟁을 만드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국가 간의 대결도 아닌 상황에서 오히려 국가를 트는 게 당위성이 더 떨어진다. 그저 1980년대 프로 스포츠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애국가를 틀었고 그게 익숙해져 있으니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토론의 여지는 충분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단체로 모여 첫 의식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게 애국심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애국할 사람은 조용히 애국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애국가 크게 불러 놓고도 애국 안 한다. 애국가를 통해 애국심을 검증하려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고 더군다나 프로 스포츠에서는 그 당위성이 더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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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개막 당시 미국은 9.11 테러 당시 찢어진 성조기를 들고 입장해 국가주의를 자극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진=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찢어진 성조기 앞세운 미국의 올림픽 개막식

지역 연고와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국가의 개입이 온당한 일일까. 누군가는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있으니 프로 스포츠도 있는 거다. 국가에 대해 그 정도 예의도 갖추지 못하나.” 나 역시 국가가 있으니 프로 스포츠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국가가 있으니 영화관도 있는 거고 놀이공원도 있는 거고 콘서트장도 있는 거다. 같은 논리라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애국가부터 불러야하고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탈 때나 엑소 콘서트장에서 그들이 ‘으르렁’을 부르기 전에도 일단 다 같이 큰 소리로 애국가부터 불러야 한다. 국가가 있어 다 가능한 시설들인데 왜 그 정도 예의도 갖추지 못하는 건가. 이제 극장에서 영화가 시장되기 전 ‘대한늬우스’하던 시절도 지났는데 왜 아직 프로 스포츠에서만 이런 쓸데 없이 애국심을 강요하는 행사가 이어지는 것일까. 1980년대부터 늘 해왔던 거라 익숙할 뿐이지 잠깐만 생각해 봐도 이거 참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무의미한 의식이다.

프로 스포츠 경기 전 국가 연주를 찬성하는 이들은 미국의 예를 자주 든다. 프로농구(NBA)와 프로미식축구(NFL), 프로야구(MLB) 등에서 경기를 하기 전 늘 국가를 연주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미국을 보면서 “쟤들은 하는데 왜 우리는 하면 안 되느냐”고 한다. 사실 한국 프로 스포츠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짧은 역사 때문에 유난히 애국심을 강조하는 미국은 프로 스포츠도 애국심으로 철저히 포장하는데 우리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미국 스타일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다고 해 우리가 꼭 그들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실 미국의 이런 스포츠를 수단으로 한 내셔널리즘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한다. 내셔널리즘을 통해 선수들의 집중력과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만 이런 스포츠를 수단 삼아 대중의 내셔널리즘을 다잡는 행위는 별로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은 9.11 테러 당시 찢어진 성조기를 들고 경건하게(?) 등장했다. 그리고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모습을 보여주고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합창했다. 철저한 ‘미국주의’의 표현이었다.

이게 좋아 보이는가. 아무리 우리가 여러 분야에서 배워야 할 미국이라도 이렇게 철저하게 스포츠를 수단 삼아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행동이 나는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우리는 군사 독재시대를 거치며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지 않고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단으로 여긴 이들의 의도까지 그대로 우리 프로 스포츠에 녹아들었다. 프로 스포츠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모인 관중이 일단 애국가를 목청 높여 부르는 행동 자체가 결국에는 국가주의의 잘못된 발전 형태다. 이렇게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선수들의 경기력을 위해서도 경기 전 애국가 제창은 별로다. 실제로 과거 파리아스 감독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수들이 몸을 풀고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으면 경기가 곧바로 시작해야 하는데 한국은 애국가 연주 로 선수들의 몸이 식어 버린다.” 참고로 브라질에서는 프로축구 개막전 때만 국가 연주를 할 뿐 이후 경기에서는 국가 연주를 하지 않는다.

애국가, 국가 대항전에만 틀어도 충분하다

K리그 클래식은 최근 들어 경기 전 애국가를 제창하지 않는 게 추세가 됐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애국가를 고집했던 성남도 이제는 애국가를 더 이상 틀지 않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경기 시작 전 어수선한 분위기가 애국가 제창과 함께 정돈된다고 하지만 이건 우리가 3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나와야 뭔가 시작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K리그는 ‘앤썸’을 발표했고 경기 전 이 노래와 함께 선수들이 입장해 분위기를 달군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효과가 생겨나고 있다. 이제 이 노래를 들으면 경기 전 애국가를 들을 때 이상으로 설레고 긴장되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역시 주제가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꼭 그 역할을 애국가가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국내 프로 스포츠 중 상당수에서는 여전히 애국가 제창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애국가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애국가 만큼 웅장한 국가도 없는 것 같다. 국가 대항전을 앞두고 울려 퍼지는 장엄한 애국가는 코끝이 찡해질 만큼 감격적이고 선수들의 투쟁심을 고취 시킨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가 간 대항전을 치를 때의 일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애국심을 강요하기 위해 불필요한 애국가를 트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현충일이나 3·1절, 광복절 등 국경일에 열리는 경기에 한해서만 애국가를 트는 건 어떨까. 그런 날이라면 꼭 스포츠 경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국 어디에서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애국가가 참 잘 어울릴 테니 말이다. 프로 스포츠 경기장에서 매번 습관적으로 나오는 애국가보다 오히려 그런 특별한 날에만 울려 퍼지는 애국가가 우리 마음에 더 불을 지피지 않을까. 하지만 그 이상의 애국가 남용(?)은 오히려 이 자랑스러운 애국가가 군사 독재시절의 잔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애국가를 강요하면서 애국가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은 것일까.

이 칼럼을 통해 건전한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내 의견이 정답도 아닐뿐더러 내가 바꾸자고 해 바뀔 만큼 내 칼럼이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프로 스포츠의 애국가 제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찬성하는 이들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프로 스포츠 경기장뿐 아니라 극장이나 길거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가던 하던 행동을 멈추고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한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언제, 어느 때 애국가 연주를 하느냐의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는데 나는 그 기준을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라고 정하고 싶다. 그렇다면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가 아닌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의 애국가 제창은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던 그 시절의 강요된 애국심이 이제는 프로 스포츠에서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부디 이 논의가 애국가를 좋아하고 말고, 애국심이 있고 없고의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길 바라면서 많은 이들이 건전한 의견을 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