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5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스틸러스와 울산현대의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경기는 K리그 최고 더비인 ‘동해안더비’다운 명승부였다. 네 골이나 퍼부으며 포항을 잡은 울산에는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안방에서 패배를 당한 포항은 상당히 쓰라린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나 팀이 3-2 추격골을 뽑아낸 뒤 곧바로 김신욱의 평범한 슈팅을 막지 못해 팀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포항 신화용에게는 최악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더군다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경기에서 이런 실수를 범했으니 심리적인 타격은 또 오죽할까. 하지만 나는 신화용의 실력을 이 한 장면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또한 지금까지 포항에서 신화용이 일궈낸 대단한 업적도 반드시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수는 뼈아프지만 신화용은 그래도 신화용이다.

기사 이미지

신화용은 무려 12년 동안 한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바로 그가 나고 자란 포항이 그의 12년째 둥지다. (사진=포항스틸러스)

‘진정한 포항맨’ 신화용의 힘겨운 신인 시절

신화용은 포항에서 나고 자란 선수다. 포철동초등학교를 나와 포철중과 포철공고를 거쳐 청주대에 진학한 뒤 2004년 마침내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했다. 많은 선수들이 포항에서 학교를 나와 스틸러스에 입단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타지역에서 축구를 위해 포항 지역으로 전학을 온 케이스다. 그런 면에서 포항이 고향인 신화용의 존재는 무척이나 특별하다. 하지만 입단 당시 포항에는 워낙 큰 산이 있었다. 바로 김병지였다. 김병지가 2004년 K리그 39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신화용은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200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병지가 36경기에서 골문을 지키는 동안 신화용은 벤치만을 지켰다. 더군다나 신화용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김병지뿐이 아니었다. 정성룡도 한 팀에서 김병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성룡은 연령병 대표팀을 두루 거친 최고의 기대주였다. ‘전설’ 김병지와 ‘유망주’ 정성룡 사이에서 신화용은 힘겨운 경쟁을 펼쳐야 했다.

2006년 시즌을 앞두고 김병지가 서울로 떠났다. 당연히 정성룡이 큰 무리 없이 주전을 꿰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6년 시즌 홈 개막전에서 파리아스 감독의 선택은 신화용이었다. 무려 2년 동안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던 선수를 과감히 기용한 것이었다. 신화용은 이날 전북을 상대로 펄펄 날았다. 전반 20분 전북 염기훈의 슈팅을 막아낸 그는 후반 들어 계속되는 전북의 파상공세에 몸을 던졌다. 이날 포항은 신화용의 활약에 힘입어 3-1 승리를 거뒀다. 김병지가 떠난 2006년 정성룡이 26경기에 나서는 동안 신화용도 13경기에 출장하며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7년에는 오히려 신화용이 정성룡을 밀어내고 주전 골키퍼로 도약한 것이다. 신화용은 2007년 FA컵 16강 고양국민은행과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에 나서 두 차례 선방을 선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경남전에서도 김근철의 킥을 막아내며 승부차기 끝에 팀의 극적인 준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일등공신이 됐다. 연령별 대표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선수가 올림픽 대표팀 주전 골키퍼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포항에는 광주상무를 전역한 ‘베테랑’ 권정혁도 있었으니 이 경쟁에서 이겨낸 신화용의 가치는 대단했다. 또한 신화용은 182cm의 신장으로 골키퍼 중에서는 단신에 속하는 악조건과도 싸워야 했다. 2008년 정성룡이 성남으로 떠나고 신화용의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포항은 또 다시 골키퍼를 영입했다. 바로 프로 8년차 베테랑 김지혁이었다. 신화용 혼자 골문을 지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포항은 2001년 프로 무대에 데뷔해 2003년에는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김지혁을 울산에서 영입하며 또 다시 신화용과 경쟁시켰다. 신화용은 김지혁 입단 뒤 2008년 9경기에 나선 게 전부일 정도로 경쟁에서 크게 밀렸다. 김지혁을 앞세워 포항이 2008년 FA컵 우승을 달성하는 동안 신화용은 벤치를 지켜야 했다. 김병지, 정성룡과 경쟁하며 출장 기회를 늘려가던 신화용은 이들이 팀을 떠나자 또 다시 쟁쟁한 김지혁과 주전을 놓고 싸우는 일이 벌어졌고 신화용은 주전 골키퍼가 아니라 승부차기 전문 골키퍼로 벤치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이 더 잦았다. 하지만 신화용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완벽하게 준비하면 기회는 나에게 온다. 경쟁은 신경 쓰지 않는다.”

포항 축구의 황금기를 일궈낸 신화용

그런데 2009년 시즌이 시작되고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부진한 김지혁을 대신해 신화용이 시즌 초반부터 또 다시 주전 골키퍼로 도약한 것이다. 포항은 신화용을 앞세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신화용은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정대세와 주닝요, 나카무라 켄고 등의 슈팅을 연달아 막아내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화용의 미칠 듯한 선방쇼가 시작됐다. 분요드코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원정 1차전에서는 김형일이 퇴장당하며 수적으로 열세에 몰려 1-3 패배를 당했지만 수차례 선방을 펼치며 더 큰 패배를 막아 내기도 했고 이후 안방에서 열린 2차전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팀의 극적인 4강행을 확정지었다. 4강 움 살랄전에서도 펄펄 날았고 알 이티하드와의 결승전에서는 전반에만 두 차례의 결정적인 상대 슈팅을 몸을 던져 막아내며 감격적인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09년 포항의 홈 24경기 연속 무패(14승 9무)도 그가 일궈낸 성적이다. 신화용은 대활약을 바탕으로 2009년 K리그 시즌 베스트11에 오르는 영광을 안기도 했고 클럽월드컵 출전을 위해 예정돼 있던 결혼식 날짜를 미룰 정도로 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이때부터는 신화용의 전성시대였다. 김지혁까지 상무에 입대하게 돼 더 이상의 경쟁자도 없었다. 레모스 감독 경질 등으로 시끄러웠던 2010년에도 꿋꿋이 골문을 지킨 신화용은 2011년에는 29경기에 출장해 29실점하며 안정감을 과시하더니 2012년에는 김형일까지 상무에 입대해 수비진에 적지 않은 공백이 생겼음에도 32경기 출장 33실점이라는 꾸준한 성적으로 팀을 이끌었다. 투자가 주춤했던 이 시기에 포항이 2012년 리그 3위와 FA컵 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신화용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2012 시즌이 끝난 뒤 FA로 풀린 이런 신화용에게 거액을 제시하는 K리그 구단이 있었고 J리그 모 구단은 신화용 연봉의 두 배에 가까운 유혹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신화용은 자신을 키워준 포항에 남기로 했다. 포항 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당시 신화용을 두고 “반드시 잡아야 하는 선수”라고 애정을 듬뿍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신화용은 2013년에는 더욱 펄펄 날았다.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는 무려 상대의 유효 슈팅 11개를 모두 막아내며 라운드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에 다가 아니었다. FA컵 16강 성남과의 승부차기에서 이승렬의 킥을 막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끈 신화용은 FA컵 결승 전북과의 경기 승부차기에서도 레오나르도와 케빈의 슛을 완벽히 막아내며 팀의 FA컵 2연패를 일궈냈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그는 “레오나르도는 프리킥도 그렇고 킥 방향이 비슷하다”면서 선방의 비결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운재 이후 FA컵 결승전에서 MVP에 뽑힌 건 신화용이 5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FA컵 2연패뿐 아니라 이해 포항의 극적인 K리그 클래식 우승에도 일조했다. 특히 그는 울산과의 운명적인 마지막 라운드에서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고 든든히 골문을 지켰고 33경기에 나서 31실점에 머물며 0점대 방어율을 선보였다. 이중 무려 13경기가 무실점 경기였다. 모기업 포스코가 경영 악화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시즌이 끝난 뒤 신화용과는 재계약을 맺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2014년 포항 소속으로 200경기 출장을 기록한 신화용은 직접 200경기 기념 머플러를 제작해 팬들에게 선물할 정도로 그의 팀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전통의 명가’ 포항에서 200경기 출장 기록은 8번째이고 골키퍼로는 최초의 대기록이다. 또한 그는 2014년 FA컵 32강 FC안양과의 경기에서는 동료들이 승부차기에서 세 명이나 실축을 했지만 혼자 안양 키커 7명 중 3명의 슈팅을 막아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기사 이미지

신화용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골문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사진=포항스틸러스)

신화용은 고개를 떨굴 이유가 없다

신화용은 이렇게 포항을 든든히 책임지는 수문장이지만 늘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다. 작은 키 때문에 많은 이들은 그가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고 대표팀에서도 이운재와 정성룡, 김승규, 김진현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워낙 탄탄해 그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여기에 어제는 슈틸리케 감독이 보는 앞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아마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신화용은 ‘원클럽맨’으로 포항에서 신화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 했고 그가 지금껏 보여준 선방쇼는 어제의 실수를 덮기에도 충분할 만큼 대단했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찬란한 포항 축구 역사 상당 부분도 없었을 것이다. 팀을 위해 J리그의 거액 제안을 뿌리치고 팬들에게 직접 기념 머플러를 제작해 나눠줄 정도로 그가 포항에 헌신한 바도 남다르다. 그런 그에게 한 순간의 실수로 손가락질을 할 포항 팬은 없다. 팀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항 골문을 지키는 신화용은 한 순간의 실수로 경력에 흠집이 날만큼 미약한 존재가 아니다. 아무쪼록 어제의 실수는 그가 K리그에서 252경기에 나서는 동안 저지를 수 있는 몇 번 안 되는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또한 슈틸리케 감독 앞에서 큰 실수를 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단 한 순간의 모습만을 판단해 대표팀을 결정짓는 어리석은 감독이 아니다. 김진현도 대표팀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실점을 허용한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김진현은 현재 대표팀 부동의 수문장으로 활약 중이다. 정성룡 역시 K리그에서 어이없는 골을 내줬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그래도 정성룡을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만약 신화용이 대표팀에 또 다시 뽑히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이지 이번 실수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절대 이번 실수 하나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가 도약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기회는 많고 이 정도 실수는 대표팀 승선을 위한 평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2007년 준플레이오프 당시 정성룡에게 밀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던 신화용은 훗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그때 내가 잘돼 거액의 제의를 받고 다른 팀에 갔다면 안주했거나 망가졌을 수도 있다. 나는 아픔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씩 성장하는 게 나에게는 지금껏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껏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경쟁자들에 비해 부족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포항에서만 무려 12년을 살아남은 베테랑이니 그가 이런 실수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신화용은 여전한 포항의 신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