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유나이티드라는 팀은 참 신기하다. 라돈치치가 팀을 떠나고 곧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모두가 예견하던 그때 데얀이 골 폭풍을 일으키며 팀을 이끌더니 그런 데얀이 떠나자 이번에는 유병수가 등장했다. 그런 유병수가 떠나면서 또 한 번 위기를 맞은 인천은 한교원이라는 걸출한 선수의 등장으로 또 한 번 위기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한교원도 결국 전북으로 떠난 뒤 인천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자 이번에는 리그 3년차 무명의 한 사나이가 혜성처럼 나타나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바로 진성욱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년간 벤치는커녕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던 진성욱은 올 시즌 위기의 인천을 구해낸 구세주가 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인천의 걸출한 공격수 계보를 잇게 된 바로 이 남자 진성욱을 직접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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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새로운 에이스로 급부상한 진성욱을 직접 만났다. 그라운드에서의 저돌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는 수줍음 많고 조용한 청년이었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요새 가장 ‘핫’한 선수 아니신가. 인기를 좀 실감하고 있나.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이름을 연호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 달라진 위상을 느낀다. 공을 잡을 때마다 환호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기분이 좋다.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요새 컨디션은 어떤가.

좋다. 가끔 발목을 한 번씩 다치지만 큰 부상은 아닌 수준이다. 다른 큰 문제는 없다. 2년 동안 경기에 나서고 싶어도 나서지 못했는데 이 정도 가벼운 부상을 안고 뛰는 것 자체로도 그저 행복하다. 팀이 비록 그룹A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감독님도 그룹A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룹B에서는 꼭 1위를 하자고 하셨고 선수들 모두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다.

현재 인천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해보기로 하고 일단 당신의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당신은 인천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인 대건고 출신이다. 인천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경남 마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친 뒤 계속 마산에서 축구를 하려고 하다가 좋은 기회를 잡아 대건고로 진학하게 됐다. 당시 인천이 문학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할 땐데 홈 경기가 있을 때마다 볼보이를 하며 경기를 지켜봤다. 그럴 때마다 형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기에서 뛰고 싶다.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늘 했다. 특히 유병수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당신은 대건고 졸업 후 남들 다 가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인천에 입단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로 곧장 향한 이유가 있나.

어차피 대학교에 진학해도 최종적인 목표는 프로 진출이지 않은가.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와 경험해 보고 싶었다. 몇몇 대학에서 나한테 직접 제의한 게 아니라 부모님께 입학 제의를 해온 걸로 아는데 어디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지금도 어느 학교에서 나를 원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다. 나는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빨리 프로 무대에서 부딪혀보고 싶었다.

하지만 인천 입단 후 2년간은 암흑 그 자체였다.

사실 조금 후회를 하기도 했다. 동료들은 다 대학에 가서 경기에 나서는데 그 모습을 보면 ‘쟤네들은 경기에도 나가고 재미있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 입단한 뒤 프로의 벽을 실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프로에 오면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일을 내가 조금 먼저 겪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일단 코치님 말씀을 잘 새겨듣고 형들 하는 거 보고 배우려는 자세로 임했다.

나는 인천축구전용구장에 가면 늘 2층 한 켠에서 경기를 지켜본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항상 내 옆쪽 어딘가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012년에 딱 두 경기에 교체 투입된 게 전부였고 2013년에는 단 한 경기에도 나가지 못했다. 엔트리에도 들지 못해 경기장 관중석 2층 구석에서 부러운 눈으로 형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나한테도 한 번만 기회를 주지’라는 생각에 솔직히 말하면 감독님 원망도 조금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감독님이 가장 좋다.

2년간 철저한 무명으로 경기에도 제대로 나서지 못했는데 그러면서 가장 서러웠던 건 무엇인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1군 형들과 함께 운동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1군과 2군이 따로 훈련을 해 1군 형들과 부딪힐 기회가 자주 없었다. 또 운동 환경 차이도 상당하다. 1군은 천연잔디에서 훈련하지만 2군은 인조잔디에서 주로 훈련한다. 갑자기 1군에 불려가 훈련을 해도 잔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서러웠던 건 따로 있다. 밥 먹을 때마다 1군 형들이 다 먹으면 그때 가서 2군이 먹는다. 맛있는 반찬은 이미 다 떨어진 다음에 2군끼리 밥을 먹을 때면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런. 먹을 걸로 차별하는 게 제일 치사한데 너무했다. 그런 ‘반찬 굴욕’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2군에는 어린 선수들만 있는 게 아니라 나이 많은 형들도 많다. 그 형들도 다 똑같이 경기에 나가고 싶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어한다. 다들 열정과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땀 흘리는데 매번 내가 힘들어하면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우리는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너는 어리니까 아직 기회가 많다”면서 힘을 실어줬다. 아직 어리니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고 믿고 버텼다. 팬들도 큰 힘이 됐다. 2012년 시즌 막판 역시나 관중석 2층에서 쓸쓸히 경기를 보고 있는데 서포터스석에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나를 비롯해 2군 선수들 이름이 쫙 걸려 있고 “경기에 뛰지 못해도 우리가 응원한다”는 글귀가 써 있었다.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아, 나도 누군가의 응원을 받고 있구나’하는 마음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항상 인천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지난 시즌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던 당신은 올 시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내가 보기에는 한교원이 이적하면 그 대안으로 내놓기 위해 일부러 아껴 놓았던 카드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당신이 이렇게 한 순간 주목받게 된 비결이 뭔가.

앞서 말한 것처럼 2군에만 있으면 1군과 훈련할 기회가 거의 없다. 감독님 눈에 들기에도 어렵다. 또한 2군 코치님이 감독님께 “(진)성욱이가 요새 몸이 좋다”고 해도 감독님이 직접 눈으로 보시는 것과 전해 듣는 건 다르지 않나. 그런데 1군과 2군이 다 함께 훈련할 때가 있다. 바로 동계훈련 때다. 우리는 올 시즌을 앞두고 괌으로 1군과 2군이 다같이 동계훈련을 갔는데 이때가 아니면 감독님께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죽기살기로 했다. 어리니까 팔팔하지 않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에만 매달렸다.

동계훈련하면서 일부러 김봉길 감독 눈치를 살살 본 건가.

솔직히 말하면 눈치 엄청 봤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건가’하는 마음에 감독님 근처에서 알짱거렸는데 곁눈질로 보면 나를 별로 보는 거 같지 않더라. 워낙 선수가 많지 않은가. 그래도 언젠가는 감독님이 한 번은 나를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기회가 오면 보여줄 자신은 있었나.

자신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2군에만 머물러 있어서 해보자는 마음도 약했고 자신도 별로 없었는데 동계훈련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 2년 동안 2012년에 받았던 딱 두 번의 기회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 걸 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다시 기회가 온다면 절대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올 시즌 목표는 무조건 1군 경기에 나서는 거였다.

올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교체로 출장한 당신은 마침내 8월 2일 울산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렸다. 그 당시 순간을 기억하나.

또렷이 기억한다. (구)본상이 형의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했는데 경기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여기에 골까지 넣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 데뷔골을 넣고 골 세리머니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직접 경기장에 오셨던 날이었는데 부모님 앞에서 데뷔골을 넣었다는 게 믿기지 않고 마냥 신기했다. 부모님께서도 경기가 끝난 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해주셨다. 나에게 있어서는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데뷔골을 넣은 날 숙소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더라.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골 장면을 수십 번이나 돌려봤다.

이후 당신은 무려 네 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부담감은 없었나.

데뷔골을 넣었을 때는 마냥 좋았는데 그 다음 전남전에서도 또 골이 들어가니까 슬슬 부담이 된 게 사실이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게 별로 없었는데 기대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후 경남전과 서울전까지 네 경기 연속골이 들어가니 부담감도 금방 적응이 되더라. ‘경기장에서 열심히만 하면 다 알아서 되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나마 편해졌다. 물론 네 경기 연속골을 넣었던 서울전에서 1-5로 대패를 당해 연속골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1년 사이 많이 발전했다. 관중석에서 선배들 경기 지켜보던 게 불과 1년 전인데 이제는 연속골 부담감까지 즐길 줄 아는 선수가 됐다.

그러게 말이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게 변했다. 특히 (구)본상이 형과 (김)도혁이 형이 “연속골 넣으라”고 부담을 많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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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은 뒤 기뻐하는 진성욱의 모습. (사진=인천유나이티드)

특히 당신은 개인기가 참 좋다. 우리나라에 이런 선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최전방에서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런 스타일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원래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측면 수비수였다. 그런데 공격이 너무 하고 싶었고 오버래핑을 자주했다.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고 들어봤나. 그게 바로 나였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하고 미니 게임을 하면서 개인기 연습을 많이 했고 드리블하는 걸 즐겼다. 그러다 공격하는 게 너무 좋아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포지션을 공격수로 바꿨다. 그랬더니 축구가 훨씬 더 재밌는 거다. 수비하면 상대 공격수한테 당하는 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상대 수비를 제치면서 쾌감을 느꼈다.

그러면 수비수 몇 명까지 제칠 수 있나. 게임에서처럼 당신이 서너 명 제치는 모습은 자주 봤다.

에이, 아니다. K리그 클래식에 잘하는 수비수들이 많아서 그렇게 게임처럼 상대를 제치는 걸 자주할 수는 없다. 과찬이다.

겸손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당신은 대부분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됐다. 이거 당신 체력에 큰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늦게까지 장가 못간 남자들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풀타임을 소화하면 선수들은 아마 다 힘들 거다. 나는 지금까지 풀타임을 딱 두 번 소화했는데 첫 경기에서는 힘들었지만 두 번째 경기는 처음보다 조금 더 수월했다. 경기에 꾸준히 나서면 자신감이 생기고 기량도 느는 것처럼 풀타임도 자주 소화할수록 익숙해질 것 같다. 훈련할 때면 체력적으로 조금 뒤쳐질 때도 있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경기에만 집중하게 돼 지치는 걸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면 교체 투입에 대한 불만도 조금은 있을 것 같다.

큰 불만은 없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아예 전력외 선수였다. 그저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감독님도 내 장기를 잘 살려주시면서 전술적으로 내가 후반에만 힘을 모아서 쓸 수 있도록 하시는데 지금까지 그 전략이 잘 맞아 들어갔다. 전략적으로 내가 활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조커로 기용해 주시는 감독님의 뜻을 존중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1군이다. 2군 시절 1군 선수들이 맛있는 반찬을 다 먹어치울 때 서러움을 느꼈는데 이제 똑같이 복수할 기회를 잡았다.

뭐 그런 걸로 복수할 마음은 없었지만 내가 2군이었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1군과 2군 모두 반찬이 똑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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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욱은 올 시즌 주로 교체로 투입돼 6골이나 기록하며 무명 설움을 한 번에 털어냈다. (사진=인천유나이티드)

인천이 그룹B로 내려갔다. 하지만 승점을 많이 벌어 놓은 상태라 강등 위험은 피한 상황이다. 그룹B에서 남은 5경기에 대한 동기부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잔류 전쟁과 우승 경쟁 모두 피해간 상황에서 어떤 동기를 가지고 뛸 생각인가. 승리 수당인가.

승리 수당이 일정 부분 목표인 것도 맞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 자체가 가장 재미있다. 축구는 우승과 잔류 여부를 떠나 매번 할 때마다 이기기 위한 싸움이다. 이 자체로도 나는 충분히 남은 시즌 경기를 즐길 마음이 돼 있다.

승리 수당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다. 이제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격수로 급성장했는데 연봉은 많이 올랐나.

아직은 별로 안 올랐다. 올 시즌 막 주목받고 있어 지난 시즌에 비하면 연봉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대학으로 간 친구들이 “잘 됐으니 맛있는 것 좀 쏘라”고 하는데 사실 나도 아직은 벌이가 시원치 않지만 대학에 간 친구들은 아직 벌이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쏘는 수밖에 더 있나. 얼마 전 사귄 여자친구와 데이트 할 돈도 빠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프로에 와 돈을 벌고 있으니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사긴 한다.

연속골에 여자친구까지…. 당신은 올해가 되는 해인 거 같다. 되는 일도 없고 솔로인 나로서는 당신이 부럽다. 여자친구 사귀는 법 좀 알려 달라. 당신이 나보다 11살이나 어리지만 나에게는 스승이다.

석 달 전에 건대에서 후배와 만났는데 길거리에서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여성이 있어 용기를 냈다. “마음에 드는 데 연락처 좀 달라”고 해 연락처를 얻어냈고 지금도 잘 만나고 있다.

당신은 굉장히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성격인 것 같은데 그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나.

그때는 마음에 들어서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당신도 자신 있게 해보라. 안 되도 그만 아닌가.

나도 얼마 전 당신과 같은 방법으로 헌팅을 해 연락처를 받았는데 한 시간 뒤 전화를 해봤더니 없는 번호라고 하더라. 또 한 번은 연락처를 받고 저장했는데 일부러 다른 번호를 알려줬는지 ‘카톡’을 보니 애 둘 있는 아주머니 사진이 뜨기도 했다.

저런….

당신이 그렇게 용기 있게 대시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막 K리그에서 주목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 아닐까. “나 인천유나이티드 ‘에이스’ 진성욱이야” 뭐 이런 거 말이다.

여자친구한테는 내가 K리그 선수라고 말도 안 했다. 사귀고 나서도 그냥 운동하는 것만 알았지 프로선수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어떻게 운동하는지는 간판만 내세우는 것 같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K리그 선수라는 걸 여자친구가 알게 된 것도 여자친구가 내 트위터를 찾아 ‘인천유나이티드 소속’이라는 걸 보게 된 후였다. 지금처럼 주목받을 때 만난 게 아니라 여자친구를 만나고 그때부터 연속골도 넣으면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자친구가 행운을 가져다 준 것 같다. 지난 주에도 응원하러 왔다.

여자친구 친구들도 미인인가. 다음에 같이 한 번 보자. 내가 ‘밥 오빠’나 ‘술 오빠’하겠다.

어리다. 여자친구도 22살이다.

아쉽다. 나하고는 거의 띠동갑이다. 접겠다.

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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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욱이 조금만 빨리 빛을 봤더라면 아마도 아시안게임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인천유나이티드)

당신은 믿기지 않지만 아직 22살이다. 심지어 손흥민보다도 한 살이 어리다. 외모로는 분명히 내 또래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어릴 때는 동안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삭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얼굴에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다. 나도 ‘흥민이형’이 나보다 형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 포함될 수 있는 연령대였다. 포함되지 못한 아쉬움은 없나.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주변에서도 “네가 조금만 빨리 터졌으면 충분히 아시안게임에 갈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한다. 조금만 더 빨리 골이 터졌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아시안게임에 다녀온 (문)상윤이 형이 요새 금메달 땄다고 생색내는 거 보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주 인터뷰했던 대전시티즌 임창우는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 중 문상윤을 ‘못생김 원톱’으로 꼽았다.

나도 인정한다. (문)상윤이 형은 우리 팀에서도 원톱이다. 어딜 가나 얼굴로는 원톱으로 제몫 이상을 훌륭히 해내는 선수다. 우리팀에서 (김)용환이가 (문)상윤이 형을 위협하고 있지만 (문)상윤이 형을 넘을 수는 없다. (문)상윤이 형은 못생김으로는 발롱도르감이다.

역시 문상윤은 동료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선수인 것 같다. 이제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을 하겠다. 지금껏 인천의 많은 선수가 그래왔던 것처럼 당신이 주가를 올린 뒤 인천을 떠날 것이라는 게 인천 팬들의 가장 큰 걱정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난 이제 프로 무대에서 몇 경기 뛰지도 않은 선수다. 이제 주목 받은 지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다. 막 시작했고 이제 배워가는 단계다. 아직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일단은 인천에서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계약기간도 올해가 끝나도 아직 2년이나 더 남아있다.

진성욱(23세. 전북)이라는 텔레비전 중계 자막을 훗날 보게 되는 건 아닌가.

나는 최강희 감독님 전화번호도 모른다. 일단은 나에게 기회를 주고 응원을 보내주는 인천에 집중할 생각이다.

알겠다. 풋볼매니저(FM)를 하다보면 당신이 K리그 최고 선수가 돼 유럽으로 이적한다. FM을 해본 적이 있나.

아직 없다. 하지만 당신 말을 들으니 한 번 해보고 싶긴 하다. 인천 감독으로 부임해 나를 잘 키워보겠다.

만약 게임상에서 전북의 이적 제의를 받으면 어떻게 하겠나.

일단은 에이전트를 해외로 보내 해외 여러 구단에 영입 제의를 먼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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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선수를 늘 다른 팀으로 보내야 했던 인천 팬들은 최근 들어 진성욱도 팀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잘 피해간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인천만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생활하는데 있어서 선·후배 관계도 좋고 경기장에서도 이런 좋은 관계가 그대로 플레이로 드러나는 것 같다. 강압적인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선배들도 후배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장난도 유쾌하게 받아준다.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 있게 플레이하는 것도 다 선배들이 그만큼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건 전북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이 팀에만 있어서 전북 소식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천이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은 뭐가 있을까.

다 좋은데 평소 이동거리가 좀 긴 편이다. 아침에 숙소에서 훈련장으로 가 훈련한 뒤 식당에서 유소년 선수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쉰다. 그리고 점심은 숙소에서 차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문학월드컵경기장 내 식당에서 먹는다. 숙소에서 쉬고 훈련장으로 이동해 훈련하고 저녁에는 다시 문학으로 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야한다. 클럽하우스가 갖춰져 식사와 훈련, 휴식 모두 한 군데에서 하면 좋을 텐데 아직 그런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이동거리가 길다. 그게 좀 불편하다.

전북은 클럽하우….

가본 적 없어서 잘 모른다.

골 세리머니가 밋밋하다면서 팬들이 아쉬워한다. 이보나 남준재처럼 뭔가 인상적인 골 세리머니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세리머니를 원래 잘하는 편이 아니라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당신 말을 듣고 보니 팬들이 섭섭해 할 것 같기도 하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은 늘 있는데 원래 부끄럼을 잘 타 표현하지 못했다. 팬들이 원한다면 아이디어를 한 번 내보겠다.

인천 팬들이 최근 의견 충돌로 두 군데로 나뉘어 응원을 하고 있다. 선수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

물론이다. 선수들도 다 알고 있다.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니고 서로의 입장과 의견이 있겠지만 다시 하나로 뭉쳐 같이 목소리를 내면 더 좋을 것 같다. 확실히 두 군데로 나뉘어져 응원하니 선수들이 힘을 덜 받는다. 예전과는 다르다. 원래 우리 팬들이 목소리가 우렁차지 않나. 다시 이 팬들이 한 목소리를 내 쩌렁쩌렁 경기장을 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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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네 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진성욱은 영플레이어상 후보로도 손꼽히고 있다. (사진=인천유나이티드)

당신은 23세 이하, 국내외 프로 3년차 이내, 해당 시즌 K리그 전체 경기 중 50% 이상 출전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영플레이어상’ 자격을 갖췄다. 이 상에 대한 욕심도 있나.

욕심이 나는 건 사실이지만 너무 거기에 집중하면 내 페이스를 잃을 것 같아 잘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던 대로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렇다면 영플레이어상 경쟁 상대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포항 김승대 선수 아닐까. 김승대 선수가 나보다 먼저 네 경기 연속골을 넣고 이후 나도 네 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뒤 한 번 그 기록을 깨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마도 나보다는 김승대 선수가 더 수상에 근접한 것 같다. 팀도 그룹A에 있고 대표팀 경력도 있지 않나.

그래도 의식은 좀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김승대’라고 쳐봤다. 어떤 선수인지 궁금하긴 하더라. 골 넣는 장면이나 기사도 좀 찾아봤다.

나도 그 마음 잘 안다. 나도 칼럼 쓰는 사람들 이름 한 번씩 다 검색해 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동국과 김신욱이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국가대표팀 공격수 부재에 대한 걱정이 많다. 당신도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대표팀에 대한 욕심은 없나.

아직 거기까지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년 전만 하더라도 관중석 2층에서 1군 선수들 경기를 지켜보던 선수였는데 배울 것도 많고 대표팀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로도 믿기지 않는다. 나에게는 전혀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인데 상상만 해도 흥분이 되긴 한다. 뭐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인천 1군에서 기회를 잡은 것처럼 대표팀에서도 기회가 오지 않겠나.

마지막 질문이다. 이제 올 시즌 다섯 경기가 남았다. 남은 다섯 경기를 어떻게 치르고 싶나. 목표를 말해 달라.

비록 그룹A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난 올해 후반기부터 그나마 이름을 알린 선수라 온전히 한 시즌을 제대로 소화한 적이 없어 아직도 적응해야 할 부분이 많다. 경기를 통해 많이 배우고 싶다. 올 시즌 여섯 골을 넣었는데 남은 다섯 경기에서 네 골을 넣어 열 골을 한 번 채워보고 싶다. 또한 먼 미래에는 많은 팬들에게 성실하고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