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현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상당하다. 울산은 어제(26일) 열린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성남과의 경기에서 4-3으로 극적인 재역전승을 거둔 뒤 상위 스플릿인 그룹A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이 명승부는 온갖 음모론에 휩싸여있다. 울산과 함께 상위 스플릿 경쟁을 펼치던 전남이 이전 라운드에서 오심 끝에 서울에 패했고 울산은 지난 라운드 상주와의 경기에서 석연찮은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승리까지 따낸 상황부터가 논란의 시작이었다. 이 두 차례 판정 때문에 순위가 엇갈렸고 울산은 이번 성남전에서 또 다시 애매한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등의 경기 끝에 승리를 따내고 극적으로 그룹A행 막차를 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극적인 승부에 감동하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애매한 판정, 그러면서 싹트는 음모론

울산이 K리그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기 때문에 판정에 이득을 봤다는 주장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승부조작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건이자 크나큰 문제다. 심판들이 울산 밀어주기를 위해 일부러 편파판정을 하고 승부에 영향을 끼쳤다면 이게 바로 승부조작이다. 나 역시 울산이 최근 두 경기를 통해 심판 판정의 덕을 본 건 인정하지만 이걸 울산의 K리그 스폰서 커넥션으로 연결 지어 논란을 만드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김현회가 K리그 편들기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협회나 연맹의 잘못까지도 옹호할 추호의 마음도 없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승부조작 의혹이 있었을 당시 대다수 팬들이 “그런 건 없다. 다 언론의 농간이다”라고 할 때도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충분히 승부조작의 여지가 있다”고 했었고 정몽준 명예회장이 선거에 축구인을 이용할 때도 나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무턱대고 축구계 편을 들 생각은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심판 판정이 애매했던 건 사실이다. 32라운드 전남-서울전에서 오프사이드로 선언된 스테보의 플레이는 명백한 오심이었고 연맹에서도 이를 인정했다. 울산-상주전과 성남-울산전에서 얻은 울산의 페널티킥 장면은 명백한 오심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페널티킥 판정을 내리기에는 다소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전남은 결국 승점을 날려 승점 45점으로 리그 7위를 기록하게 됐고 울산은 이런 의혹을 등에 업고 승점 47점으로 리그 6위에 올라섰다. 만약 이걸 판정을 번복해 전남-서울전 2-2 무승부, 울산-상주전 1-1 무승부, 성남-울산전 3-3 무승부로 되돌린다면 전남은 승점 46점이 되고 울산은 승점 44점에 머물러 그룹A 진출의 희비가 엇갈렸을 것이다. 전남으로서는 심판의 몇 차례 애매한 판정 때문에 그룹B로 내려가는 억울한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이번 라운드 인천을 상대로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3-3 무승부를 만들고 실낱 같은 희망을 안은 채 환호하던 전남 선수들의 투혼도 결국 빛이 바랬다.

하지만 이걸 음모론으로까지 해석하는 건 무리다. 원래 음모론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돼 있다. 그러면서 음모론에 맞지 않는 증거는 스스로 머릿속에서 편집을 해버린다. 울산의 K리그 스폰서 커넥션을 주장하는 이들은 성남-울산전에서 울산이 얻어낸 애매한 페널티킥 장면만을 언급하는데 이것만 놓고 보면 스폰서 커넥션도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이전 1-1 상황에서 성남 김동희가 얻어낸 페널티킥 장면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이 장면 역시 페널티킥을 불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만한 장면이었지만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만약 2-3 상황에서 얻어낸 울산 박동혁의 페널티킥이 오심이라면 김동희의 페널티킥 역시 비슷한 수준에서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인데도 말이다. 정말 심판이 울산의 K리그 스폰서 커넥션과 연관돼 있어 울산의 그룹A 진출을 도우려 했다면 인천-전남전 결과도 모르는 상황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울산이, 그것도 1-2로 뒤지게 될 순간에 페널티킥을 선언할 수 있었겠나.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김동희의 페널티킥 장면을 머릿속에서 스스로 편집했겠지만 이 장면 또한 성남이 애매하게 득을 본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음모론? 심판 자질이 부족할 뿐

나는 그렇다고 심판의 판정까지 옹호할 마음은 없다. 울산의 최근 두 경기 페널티킥 판정은 물론 특히 전남-서울전 스테보 득점의 오프사이드 판정은 최악이었다. 이렇게 경기 외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승패가 갈리고 더 나아가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스플릿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이건 음모론을 내세워 K리그 전체를 부정해서 될 일이 아니고 그저 해당 심판을 비판하면 될 일이다. 팬들은 심판을 시원하게 욕하고 피해를 본 구단에서는 정식으로 연맹에 이의를 제기하고 연맹은 이에 따라 심판에게 징계를 가하고 더 나아가 심판 자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있지도 않은 K리그 스폰서 커넥션이라는 음모론을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음모론으로 K리그가 돌아가는 전체를 부정해 버리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휘둘리기 좋아하는 이들은 어느 순간 K리그는 스폰서을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오심을 저지르는 곳으로 인식해 버리기 쉽다.

이건 그저 심판의 자질이 부족한 거다. 골을 지독히 넣지 못해 승부조작을 의심 받았던 선수가 알고 보니 그냥 원래 그런 실력이어서 골을 넣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K리그가 스폰서를 밀어주기 위해 일부러 오판을 저질렀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옆그물로 쳐박힌 슈팅도 골로 인정된 적이 있는데 만약에 여기에도 음모론을 제기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몇 가지 의혹을 편집해 2~3분짜리 영상 하나 만들어 SNS에 뿌리면 이 음모론은 어느덧 사실로 둔갑해 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음모론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입증할 만한 자료가 딱히 없다. 왜? 음모론이라는 거 자체가 음모를 추측해 그 의혹을 부풀리기 때문에 이 추측에 반박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심판의 자질이 부족해 오심과 애매한 판정을 저지른 건 명백한 사실이다. 까려면 이걸 놓고 까야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K리그가 심판을 앞세워 스폰서를 밀어주네 마네”라고 증명되지도 않은 사실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게 아니라 심판 판정 자체를 놓고 그 심판의 자질을 논해야 한다.

이건 비단 K리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밤이면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들기 전 페이스북으로 재미있는 영상이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데 여기에는 정말 음모론과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 투성이다. 친동생이 장기 적출을 당했고 이게 조선족 소행인데 경찰에서 사회 혼란을 우려해 쉬쉬하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특정 문자메시지를 클릭하면 수십만 원이 빠져나가니 절대 클릭하지 말라는 글도 수두룩하다. 얼마 전 나돈 ‘찌라시’에서는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김정은이 축출되고 권력 실세 3인방이 정권을 잡아 우리와 상의하기 위해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맞춰 내려온 것이라는 그럴 듯한 이야기도 전해졌지만 며칠 뒤 김정은은 보란 듯이(?) 지팡이를 짚고 북한 텔레비전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출처도 불분명하고 듣기에는 혹한 이야기들은 이 사회를 더 큰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음모론자들에게는 해가 뜨는 것도 음모고 지는 것도 음모며 세상만물이 모두 음모로 보인다.”

울산의 스폰서 커넥션? 음모론은 위험하다

이번 울산의 그룹A 진출에 대해 아무 것도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타겟은 저질 심판과 이런 심판을 배정한 이들을 향해야지 정체도 불분명한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K리그가 돌아간다고 겨냥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K리그 스폰서 커넥션이 사실이라는 팩트를 제보해준다면 그땐 내가 내 직업을 걸고 싸울 것이라는 약속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듣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는 이 음모론에 동의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심판의 문제 있는 판정에 대해 비판하고 그 와중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승부를 뒤집으려 했던 전남의 투혼에 박수를 보내면 된다. 최근 울산이 저조한 경기력과 조민국 감독의 실망스러운 지도력, 심판 판정에 득을 본 상황들 때문에 다소 비호감 구단으로 전락했고 여기에 음모론까지 제기하면 칼럼의 인기나 관심은 올라갈 수 있을지 몰라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있지도 않은 커넥션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선동하지 말고 논란의 심판 판정 그 본질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한국 축구와 K리그의 발전을 위한 일 아닐까.

현대오일뱅크는 K리그에 있어 참 고마운 존재다. 현대오일뱅크는 아무도 스폰서를 맡지 않으려 할 때 K리그에 손을 내밀었고 지금도 든든하게 K리그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엉뚱한 음모론에 휘말려 현대오일뱅크가 K리그 메인스폰서에서 물러난다면 이보다 더한 손해는 없다. 현대오일뱅크로서는 K리그에 줄만큼 다 주고 욕만 잔뜩 먹는 분위기가 반가울 리 없다. 그래도 있지도 않은 음모론을 앞세워 메인스폰서를 비난할 텐가. 스폰서도 구하지 못해 쩔쩔 매던 시절을 벌써 잊은 건가.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선보인 전남에 박수를 보내면서 심판 자질에 대해 건전하게 비판하는 자세 아닐까. K리그뿐 아니라 이 사회 모든 음모론은 위험하다. 물론 이런 심판의 연이은 판정 논란 자체가 개선되어야 하고 이런 음모론 자체가 아예 나오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지만 이런 음모론은 사안의 본질 자체를 희석시킬 뿐이다. 언제까지 음모론을 믿을 텐가. 음모론을 통해 이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