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군대에서 제대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2년 넘게 이 날만을 기다려오며 달력에 X표시를 해왔는데 막상 정든 부대를 떠나려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기는 무슨…. 뒤돌 안 돌아보고 위병소를 뛰쳐 나왔다. 아마 오늘(26일) 이런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K리그 챌린지 안산 경찰청 소속이던 정조국을 비롯해 오범석, 양상민, 문기한, 이호 등이 오늘 만기 전역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12월 경찰청에 입대한 이들은 21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이제 민간인 신분이 돼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화생방 훈련을 하며 콜록거리는 이들을 보며 “나도 저땐 저랬어”를 외칠 수 있게 됐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도 많은데 이렇게 성실히 21개월 간의 군 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선수단 절반 빠져나간 상무와 경찰청

떠난 선수들은 떠난 선수들이지만 안산 경찰청에는 큰 문제가 생겼다. 오늘 무려 16명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이제 남은 선수가 16명뿐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말 입대해 10월 초 팀에 합류할 예정인 세 명을 더 포함해도 선수단은 19명뿐이다. 심지어 유현과 송유걸이 전역하게 되면서 골키퍼는 전태현 홀로 남았다. 남은 10경기 동안 안산 경찰청은 이 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소화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플레이오프에라도 들면 경기수는 더 늘어난다. 명색이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는 팀인데 한 명 남은 골키퍼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필드 플레이어가 골문을 지켜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징계를 당한 선수가 속출할 경우 벤치 멤버 7명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안산 경찰청은 지난 시즌에도 9월 말에 14명이 전역을 하면서 추가로 합류한 선수를 포함해 18명으로 시즌을 마쳤다. 프로리그에 속한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9월이나 10월이 되면 전역하는 선수가 속출하면서 팀이 허술하게 운영되는 문제를 떠나 나는 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시즌 도중 안산 경찰청 유니폼을 입고 뛰던 선수가 K리그 챌린지에서 순위 경쟁을 하던 원소속팀으로 복귀해 하루 아침에 적이 되는 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K리그 클래식의 상주상무 역시 마찬가지다. 이상호와 하태균은 제대하자마자 원소속팀 수원으로 복귀해 이제 상주상무 골문을 조준할 예정이다. 김동찬과 이승현은 활동복과 활동화를 벗고 곧장 전북 유니폼으로 환복했다. 이들은 시즌 도중 이렇게 상주상무의 아군에서 적군이 됐다. 이적이 빈번한 프로무대라지만 이렇게 시즌 도중 하루아침에 팀을 옮겨 아무렇지 않게 경기를 치르는 현상을 흥미롭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태균과 김동찬이 각각 수원과 전북 유니폼을 입고 올 시즌 상주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모습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되기에는 참 찝찝한 일이다.

문제는 군 복무 기간과 군 입대 시기 때문이다. 국군체육부대에서는 축구단뿐 아니라 모든 체육요원 입단 시기가 정해져 있다. 군국체육부대는 서류 심사와 면접, 실기 심사 등을 거쳐 운영 중인 스포츠 종목 체육요원을 한꺼번에 선발하고 12월 말에 일괄적으로 입대 시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군 복무 기간이 24개월이던 시절이라면 이 선수들은 2년 뒤 12월에 제대하지만 군 복무 기간이 21개월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12월 입대자가 1년 9개월 뒤 제대하게 되면서 한창 축구 시즌 중인 9월에 팀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는 몇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문제지만 아무도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저 우리나라의 특수성이라는 이유를 들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시즌 도중 하루아침에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고 어제까지 같은 팀 동료였던 이들은 상대로 만나는 일이 벌어져도 그저 “군대에 있다가 왔으니까”라며 이해한다. 상무나 경찰청 선수단이 시즌 도중 절반이나 빠져 나가도 그러려니 한다.

군 입대, 3월로 늦출 필요가 있다

조금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나는 이들의 군 입대가 3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21개월의 복무 기간과 시즌 종료 기간이 맞아 떨어진다. 2012년 3월에 입대한 선수는 2014년 11월에 전역한다. 3월부터 시작해 11월이나 12월에 막을 내리는 K리그 일정과 딱 겹친다. 아무리 상무와 경찰청이 프로리그 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파행으로 운영되는 것까지 연맹에서 눈감아줄 수는 없다. 적어도 상무와 경찰청 선수들이 온전하게 시즌을 마치고 원소속팀으로 돌아가야 그나마 프로리그와 비슷한 구색이라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지금처럼 시즌 도중 전역자가 우르르 팀을 빠져 나가 절반뿐인 선수로 남은 시즌을 버티고 하루아침에 이들을 상대로 맞이하는 상식 밖의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가 치러지는 11월말 즈음 상무와 경찰청 선수들의 이탈이 승격과 강등이라는 중요한 승부의 변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3월에 입대해 11월에 전역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국군체육부대의 방침을 쉽게 바꿀 수는 없다. 12월에 선수들이 일괄적으로 입대를 하는데 축구만 따로 3월에 선수를 선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2월에 선수를 미리 선발해 선수단에 합류시킨 뒤 공식적인 군 입대는 시즌 시작에 맞춰 3월에 진행하는 건 어떨까. 그동안은 함께 훈련만 진행하는 신분으로 지내는 거다. 선수들에게는 군 생활이 3개월 더 늘어나는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군대에서도 축구를 지속하며 리그에도 참가할 수 있다는 혜택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12월에 입대할 경우 곧바로 상무의 동계 전지훈련에 참가하게 돼 국군체육부대를 떠나 제주도 등에서 훈련에만 매진하며 소위 말해 ‘꿀을 빠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12월 입대자는 이 ‘꿀’을 21개월의 군 복무 기간 동안 두 번이나 빤다. 내 주장은 3월 입대 11월 제대로 이런 ‘꿀 빠는’ 기간을 한 번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입대 시기를 늦춰 시즌 개막과 함께 온전히 두 시즌을 군인 신분으로 보내게 하자는 것이다.

시즌이 아직 한참 남았다. 더군다나 프로리그의 하이라이트는 순위 싸움이 치열한 시즌 막판이다. 여기에 K리그는 이제 승강제까지 도입해 시즌 막판의 흥미를 더욱 배가 시키고 있다. 하지만 시즌이 진행 중인 9월에 선수단의 절반이 와르르 빠져 나가는 팀이 두 개나 있다는 점은 리그의 뼈아픈 단점이다. 여기에 어제까지 상주와 경찰청 신분이었던 선수가 아직 시즌 도중인데 하루아침에 유니폼을 바꿔 입고 경기에 나서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문제다. 이런 단점은 군대에 가는 선수들의 입대 시기를 3월로 늦추면 해결될 수 있다. 안산 경찰청이 골키퍼 부족으로 필드 플레이어가 골문을 지키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보고 싶지는 않다. 협회와 연맹이 K리그가 보다 프로리그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국군체육부대와 긴밀히 협의했으면 한다. 아울러 어젯밤 냉동 파티를 벌이고 오늘 제대하는 정조국을 비롯해 오범석, 양상민, 문기한, 이호 등에게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한다. 내년부터 지긋지긋한 예비군 훈련을 받으며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겠지만 오늘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군대에서 요새는 고참이 괴롭히면 엄마한테 이르라고 휴대폰도 지급한다던데 군 입대 시기 좀 조정해 주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