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일이지만 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식을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성화 최종 점화자가 밝혀지던 순간 때문이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왕년의 복싱스타’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순간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가 성화를 들어 올리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고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복서가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전세계 스포츠인의 축제를 위해 용기를 내 등장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나는 어린 시절 이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고 아마도 경기장을 찾은 8만여 관중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가 성화 최종 점화자로 등장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 못했었다. 미국은 참 이런 스토리를 잘 만드는 나라다.

2002년 송혜교와 2014년 이영애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조추첨 행사가 펼쳐질 때 나는 확정된 조추첨자를 보고 불만이 가득했다. 당시 펠레와 요한 크루이프, 미셸 플라티니 등 축구계의 살아있는 전설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카메룬 8강 돌풍의 주역 로저 밀러와 중국 여자 축구 간판 스타인 쑨원, 한국과 일본의 상징과도 같은 홍명보와 이하라 등이 조추첨자로 참석한 이 행사에 뜬금 없는 인물이 한 명 포함됐기 때문이다. 바로 탤런트 송혜교였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배우지만 송혜교가 과연 이 자리에 어울릴 만한 인물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더 아쉬운 건 내로라하는 세계 축구 영웅들이 모인 이 자리에 정작 어깨를 나란히 할 차범근은 아예 초대받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송혜교 대신 차범근이 올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참 있는 스토리도 살리지 못한다. 있는 스포츠스타도 활용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연예인으로 채운다.

지난 주말 2014 인천아시안게임이 개막했다. 하지만 기대를 안고 지켜본 개막식은 최악이었다. 이건 아시안게임 개막식이라기보다는 그저 한류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다. 엑소가 등장해 포문을 열었고 이어 장동건과 김수현, 현빈 등이 등장하더니 JYJ를 거쳐 싸이가 ‘말춤’을 추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이라는 자막이 없었으면 그저 대규모 한류 콘서트가 열리는 걸로 착각했을 정도다. 물론 이런 큰 무대에서 축하 공연을 빼놓을 수 없다.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에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공연을 준비한다. 하지만 우리도 보다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있는데 너무 ‘한류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이선희도 나오고 조용필도 나오면 안 되나. 이제 제발 어디 가서 “두 유 노우 캥남 스타일?”은 그만 좀 하자. 이번 아시안게임 개막식은 ‘한류 강박증’이 중증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이 ‘한류 강박증’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최종 성화 점화자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무하마드 알리와 같은 감동이나 허를 찌르는 반전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종 성화 점화자가 등장하면 ‘그렇지. 저 사람이라면 성화대에 불을 붙을 자격이 있지’라고 감탄사가 터질 만한 인물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통 최종 성화 점화자는 마지막까지 극비가 유지돼 극적인 효과를 배가하며 개막식의 백미를 장식한다. 나는 개막식 며칠 전부터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최종 성화 점화자가 등장하자 2002년 한일월드컵 조추첨자 공개 때보다 더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배우 이영애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도 드라마 <대장금>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지만 그녀가 아시아 스포츠 축제에 성화 점화자로 등장하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개막식을 총지휘한 임권택 감독과 장진 감독은 결국 이 무대를 인천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인천 한류대축제로 만들어 버렸다.

박지성과 박찬호가 함께 등장했다면?

성화 최종 점화자가 등장하기 전 우리의 스포츠 영웅들이 잠깐씩 먼저 등장했었다. 이승엽과 박인비, 이규혁, 박찬숙, 이형택 등이 성화를 옮겼다. 그런데 이렇게 옮겨진 성화가 이영애의 손에 들려 성화대로 향하는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스포츠 영웅들은 들러리였어?’ 내 눈에는 그저 이영애에게 성화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의 스포츠 영우들이 배달부 역할을 하는 걸로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이날 등장한 스포츠 영웅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자신의 스포츠 분야에서 박수와 존경을 받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저 한 연예인의 성화 점화를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았다. 진심으로 화가 난다. 앞서 박세리와 이봉주, 임춘애 등도 태극기 기수단으로 잠깐 등장했지만 한류 연예인들 사이에서 그저 이들은 잠깐 ‘카메오 출연’한 단역 신분이었다.

나는 축구 칼럼니스트이다보니 축구적인 관점으로 일을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차범근이나 박지성이 최종 점화자로 등장했어도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지도나 무게감은 물론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스포츠 스타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박찬호와 함께 손을 잡고 등장했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 둘의 만남이 회자가 될 수도 있었다. 아마도 이 장면이 이뤄졌다면 이는 두고 두고 스포츠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김연아나 장미란, 김수녕 등이 등장해도 좋았을 것이다. 또한 나는 심권호가 이 멋진 역할을 했어도 인상 깊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그저 레슬링 좀 하던 선수 출신 방송인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도 심권호는 축구계에서 메시와 호날두를 합친 것 이상의 업적을 세운 전설이다.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사상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기록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 슬램을 체급을 변경해 두 번 달성한 대단한 선수다. 최종 점화자로 이영애보다 심권호가 낫지 않았을까.

꼭 엄청난 업적을 세운 스포츠 스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개최 도시인 인천에서 5대째 거주 중인 초등학생 태권도 선수가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것도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에는 장애인 양궁선수였던 안토니오 레볼로가 화살로 성화에 점화를 해 화제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고향이 인천인 선수라면 대단한 업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최종 성화 점화자로서 많은 이들의 수긍을 얻었을 것이다. 인천 논현동에 살면서 여자 애들이 “오빠는 어디 살아요?라고 물으면 서울 논현동인 것처럼 “응. 오빤 논현동 살아”라고 하는 내 친구 김동혁이 그나마도 이영애보다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더 어울리는 인물 아닐까. 그런데도 2002년 한일월드컵 조추첨식에서도 여자 연예인을 내세워 아쉬움을 남겼던 우리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류에 기대 아시아 스포츠인의 축제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우리의 마인드가 딱 이 정도인 것 같다.

‘한류 강박증,’ 이쯤 되면 중증이다

이영애와 함께 등장한 두 어린이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게 멋진 스토리텔링이 되려면 이영애와 이 둘의 관계에 무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마도 이날 현장에서 처음 만난 이들일 것이다. ‘한류 스타’ 혼자로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의 당위성이 부족하니 전혀 연관도 없는 어린이 둘을 끼워 넣은 거라고는 볼 수밖에 없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이 유망주 두 명과 이영애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데 이들이 손을 맞잡고 성화대에 불을 붙이나. 스토리텔링은 전혀 없는 졸작이었다. 우리는 대회 취지와 의미는 상관없이 그저 예쁜 여자 연예인이 등장해야 우리 체면이 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성화 최종 점화자로 예쁜 여자 연예인보다는 지팡이를 짚은 한국 스포츠계의 전설이 등장하는 게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박지성이 등장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았다면 영화인들도 상당히 불쾌하지 않았을까. 이게 떡볶이집 오픈했는데 개업식에서 짜장면 돌리는 것과 다를 건 또 뭔가.

이 지긋지긋한 ‘한류 강박증’ 좀 치료할 곳이 어디 없을까. 한국이 내세울 게 가수와 배우밖에 없나. 더 황당한 건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도 어김없이 ‘한류 강박증’이 도질 것이라는 점이다. 폐막식에서는 씨앤블루와 씨스타, 빅뱅이 나와서 한류의 우수성을 아시아 전역에 또 떨쳐 보일 예정이란다. 이거 우리 ‘한류 열풍’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나. 이렇게 ‘한류 열풍’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틈만 나면 ‘한류’로 때우려고 하는데 말이다. 뭐 축하 공연이야 연예인들이 나와서 하는 게 일반적인 거다. 하지만 다양한 계층과 함께 하는 중견 가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젊고 발랄한 이들로만 공연을 채우는 것도 문제고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이영애의 성화 점화였다. 엘튼 존이건 마이클 잭슨이 살아서 돌아오건 그들은 이런 곳에서 자신의 재능으로 축하 무대를 열지 성화 점화를 하지는 않는다. ‘한류 강박증’은 결국 스포츠인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무대에서 이들을 밀어내고 ‘한류 연예인’이 주연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개·폐회식은 그 나라 스포츠 역사를 잘 포장해 다른 나라에 알려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당시 데이비드 베컴은 모터 보트를 타고 등장해 모두를 열광시켰다. 영국에만 그런 스포츠스타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체육인들이 참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그저 들러리로 쓰면서 결국 스포츠와는 전혀 무관한 여자 연예인을 개막식 하이라이트에 배치했다. 이 연예인들의 잔치를 보면서 ‘주객전도’라는 말을 이때 써야하는 거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나마 이번에 ‘캥남 스타일’로 거하게 흔들어 댔으니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말춤’을 안 봐도 된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한류 강박증’ 좀 치료할 곳이 어디 없을까. 손을 벌벌 떨면서도 성화대에 불을 붙이던 무하마드 알리를 보면서 느꼈던 그 감동, 이 땅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꿈만 같은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