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엉터리인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

이승우(바르셀로나 후베닐A) 열풍이 거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 어린 선수가 A매치 최연소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깰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판근이 1983년 세운 17세 242일이라는 국내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과 비교해 이승우가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해 조명하면서 최근 들어 역대 국내 A매치 최연소 출장 선수들에 대한 자료가 여러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와 국내 여러 언론이 제공한 이 자료는 순 엉터리다. 이승우가 31년 묵은 기록을 깨고 성인 무대에 하루 빨리 선보일 날을 기대하지만 그런 와중에 잘못된 기록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한 흥미위주의 가십이 아니라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엉터리 기록을 수정하기 위해 며칠에 걸쳐 되찾아 낸 진짜 한국 축구 역대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을 소개하려 한다.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은 오류다

김판근이 A매치 역대 최연소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1966년 3월 5일생인 김판근은 만 17세 242일 만인 1983년 11월 1일 역사적인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한국은 LA올림픽 아시아 1차 예선 태국전에 김판근을 내보냈고 이 기록은 여전히 국내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이 보도한 것과 다르게 당시 김판근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아니라 고려대학교 1학년 신분이었다. 1982년 이미 고등학교 무대에서 신연호와 함께 최고 선수 평가를 받던 김판근은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이 열린 1983년 금호고를 졸업하고 엄청난 스카우트 열기 속에 고려대학교를 선택해 대학생 신분으로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한 바 있다. 따라서 그가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대한축구협회와 여러 언론의 기록은 이 다음부터가 정말 엉터리다. 이들이 제공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자료에서는 A매치 최연소 출장 2위가 김봉수(만18세 7일)이고 3위는 고종수(18세 80일)로 퍼져나갔다. 4위가 손흥민(만18세 175일), 5위가 최순호(만18세 249일)란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승희가 당시 만18세 77일의 나이로 A매치에 나섰다는 점이 전혀 반영되기 않있기 때문이다.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을 정정하거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아마 한국 축구가 이어지는 한 평생 모두가 믿고 후세에 남길 기록이다. 시계를 1983년으로 돌려보면 거기에 진짜 답이 있다.

새롭게 부임한 박종환 감독, 그리고 LA올림픽 예선

1983년 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팀은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에서 기적과도 같은 4강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넉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청소년 대표팀과 다르게 성인 대표팀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조윤옥 성인 대표팀 감독은 중남미 원정에서 1무 5패라는 최악의 성적에 머물렀고 결국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말았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에 나섰던 장정과 유병옥도 당시 성인 대표팀에 차출돼 중남미 원정을 치렀고 이들은 각각 만19세 86일과 만19세 150일로 지금도 역대 A매치 최연소 출전 17위와 19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데뷔전은 1983년 7월 29일 LA 4개국 친선대회 3·4위전 과테말라와의 경기였다. 당시 장정은 이 A매치 데뷔전에서 골까지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대표팀의 성적 부진으로 조윤옥 감독이 물러나게 됐고 협회는 ‘4강 신화의 주역’ 박종환 감독을 성인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이이우 코치가 박종환 감독을 보좌하게 됐다. 당시 88올림픽을 준비하며 ‘4강 주역’을 이끌고 따로 훈련하던 박종환 감독은 이 어린 선수들을 바탕으로 기존 성인 선수들을 융합해 성인 대표팀을 꾸려 나가기로 했다.

1988년 올림픽을 바라보던 박종환 감독에게 4년 먼저 열리는 1984년 LA올림픽 본선 진출을 맡긴 것이다. 쉽게 말해 ‘박종환의 아이들’로 세대교체를 단행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로써 국가대표팀 화랑은 자동적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고 협회는 박종환 감독을 선임하고 이틀 만에 선수 선발, 사흘 만에 태릉선수촌 입촌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당시에는 올림픽에도 출전 나이 제한이 없는 터라 원하는 선수를 모두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협회에서는 LA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나설 선수들의 명단을 꾸려 놓은 상태였다. 1984 LA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이 채 석 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수 구성이 파격적이었다. 4년 뒤를 바라보고 ‘88올림픽팀’에서 박종환 감독과 함께 하던 김종부와 신연호(이상 고려대), 유병옥(한양대), 장정(아주대), 김종건(서울시청), 이문영(동북고), 김삼수(동아대) 등 10대 후반에 불과한 선수들을 파격적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한 것이다. 이들은 박종환 감독과 함께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룬 주역들이었다. 반면 기존 선수 중 성인 대표팀에 잔류한 이는 최인영(서울시청)과 박경훈(한양대), 정용환(고려대), 이태호(대우), 최순호(광운대), 변병주(연세대) 등뿐이었다. 대표팀의 평균 나이는 20.5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엄청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박종환 감독의 독단적인, 혹은 강도 높은 훈련과 통제 방식이 불만이었던 기존 성인 대표팀 선수들이 집단으로 선수촌을 이탈해 버렸기 때문이다. 기존 성인 대표팀 선수 중 강도 높은 훈련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정용환을 제외한 최순호와 변병주, 이태호, 박경훈, 최인영 등 다섯 명은 1983년 9월 6일 오전 9시 태릉선수촌을 나와 오후에 대한축구협회로 가 대표팀 사퇴서를 제출해 버렸다. 또한 이들은 “박종환 감독이 지나치게 청소년 대표팀 출신 선수들을 편애한다”고 했고 박종환 감독은 이태호가 슈퍼리그 대우와 유공의 경기에 나서기 위해 자신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태릉선수촌을 떠났다며 대표 선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해 논란은 더욱 커졌다. 결국 협회가 설득해 같은 날 밤 10시 30분 이들은 태릉선수촌으로 복귀했지만 문제는 이미 덮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협회는 이후 상벌위원회를 통해 이들 다섯 명에게 3년간 자격정지처분이라는 초유의 강경 조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박종환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발탁한 이유는?

박종환 감독도 강하게 나갔다. 아예 이들을 배제하고 청소년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선수들로 빈자리를 채워버린 것이다. 박종환 감독은 김풍주(대우)를 비롯해 김판근(고려대)과 김흥권(전남대), 이태형(한양대), 이승희(강릉농공고) 등 다섯 명을 추가로 성인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이로써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에 나섰던 선수 중 무려 11명이 불과 석 달 만에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는 초고속 승진(?)이 이뤄졌다. 가뜩이나 어렸던 성인 대표팀은 이들의 합류로 평균 연령이 19.7세에 불과한 팀이 됐다. 이들은 팀을 구성하고 한 달 만에 효창구장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남미 3개국을 초청해 풀리그 친선전을 펼치기도 했지만 이 세 팀은 일시적으로 구성된 팀이어서 FIFA의 공식적인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 성인 무대에서 경험 한 번 해보지 못한 선수들이었지만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네 번이나 아시아 예선 탈락을 경험한 한국은 박종환 감독과 어린 선수들을 앞세워 2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전진했다. 당대 최고의 영웅 박종환 감독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LA올림픽 아시아 예선이 펼쳐지는 격전지 태국으로 날아갔다.

드디어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일전이 시작됐다. 1983년 11월 1일 태국 방콕 수파찰라사이경기장은 한국 축구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의 향연이었다. 이날 경기에 나선 1966년 3월 5일생 김판근은 만17세 242일이라는 역대 최연소 A매치 출장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는 지금까지도 31년째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또한 이날 김종부도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65년 1월 13일생인 김종부는 역대 A매치 최연소 출장 2위 기록(만17세 364일)을 세웠다. 이날 A매치에 데뷔한 선수는 이뿐 아니다. 이승희(만18세 77일, 역대 A매치 최연소 출전 3위)와 이문영(만18세 181일, 역대 6위), 이태형(만19세 62일, 역대 16위), 신연호(만19세 178일, 역대 20위) 등도 같은 날 모두 역사적인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한국 축구 역사에 새겨질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이 무더기로 이뤄진 특별한 날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김판근의 기록만 협회와 여러 언론의 집계에 반영됐을 뿐 다른 선수들의 기록은 모두 쏙 빠져 버렸다. 이날 한국은 태국에 1-2로 패했지만 신연호는 이날 데뷔전에서 데뷔골까지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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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최근 U-16 청소년 대표팀에서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치며 벌써부터 성인 대표팀 발탁까지 언급되고 있다. (사진=아시아축구연맹)

제대로 된 기록 집계, 후대에 남길 의무 있다

이 이후의 상황에 대해 참고로 언급하자면 LA올림픽 1차예선에서 태국과 중국, 홍콩을 상대로 3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오른 한국은 이듬해 최순호와 이태호, 박경훈, 변병주 등에 대한 선수 자격 박탈 징계를 철회하고 이들을 다시 대표팀으로 불러 들였다. 이들 없이는 대표팀을 꾸릴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변병주와 이태호는 반성의 뜻을 담은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하지만 한국은 기존 성인 대표팀 선수들이 재합류했음에도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뉴질랜드 등을 상대로 한 최종예선에서 2승 1무을 거둔 뒤 마지막 사우디전에서 두 골을 먼저 넣고도 4-5로 패하며 결국 조2위 내려 앉고 말았다. 이후 B조 2위인 이라크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결국 0-1로 패배한 한국은 LA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의 LA올림픽 본선 진출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도전을 통해 한국은 A매치 최연소 출장과 A매치 최연소 득점 등 의도하지 않은 기록을 양산해 냈다. 우리네 축구의 씁쓸하지만 그래도 새겨야 할 역사의 한 대목이다.

기록은 후대에 길이 남는다. 단순한 수치의 나열이 아니라 이 기록이 제대로 집계돼야 후대가 한국 축구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왜 1983년 이제 막 청소년 티를 벗은 어린 선수들이 성인 대표팀의 무게감을 짊어졌어야 했는지는 기록을 통해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록은 순 엉터리였다. 김판근이 A매치에 데뷔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가 아니라 대학교 1학년 때다. 이승희가 고종수와 손흥민보다 더 일찍 A매치에 나섰다는 것도 잘 모른다. 이승우의 A매치 최연소 데뷔를 기대하며 잘못된 역사를 집계하고 전달하는 현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 1983년 11월, 한국 축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많은 축구인들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이 마련되길 바란다. 이런 역사를 제대로 보존해야 앞으로 한국 축구를 짊어질 이승우 같은 선수들의 기록도 후대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축구인의 의무 아닐까. 마지막으로 며칠간 수 없이 많은 기록을 뒤져 나름대로 정리한 역대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을 공개한다.

◆ 역대 A매치 최연소 출장 기록

1. 김판근(17세 242일) 1966년 03월 05일생 / 1983년 11월 01일 태국전
2. 김봉수(18세 7일) 1970년 12월 04일생 / 1988년 12월 11일 이란전
3. 이승희(18세 77일) 1965년 08월 17일생 / 1983년 11월 01일 태국전
4. 고종수(18세 80일) 1978년 10월 30일생 / 1997년 01월 18일 노르웨이전
5. 손흥민(18세 175일) 1992년 07월 08일생 / 2010년 12얼 30일 시리아전
6. 이문영(18세 181일) 1965년 05월 05일생 / 1983년 11월 01일 태국전
7. 최순호(18세 249일) 1962년 01월 10일생 / 1980년 09월 16일 말레이시아전
8. 이천수(18세 270일) 1981년 07월 09일생 / 2000년 04월 05일 라오스전
9. 김종부(18세 293일) 1965년 01월 13일생 / 1983년 11월 01일 태국전
10. 박병철(18세 301일) 1954년 11월 25일생 / 1973년 09월 22일 크메르전
11. 차범근(18세 353일) 1953년 05월 22일생 / 1972년 05월 07일 이라크전
12. 구자철(18세 355일) 1989년 02월 27일생 / 2008년 02월 17일 중국전
13. 이동국(19세 16일) 1979년 04월 29일생 / 1998년 05월 16일 자메이카전
14. 최태욱(19세 26일) 1981년 03월 13일생 / 2000년 04월 07일 몽골전
15. 김풍주(19세 36일) 1964년 10월 01일생 / 1983년 11월 05일 홍콩전
16. 이태형(19세 62일) 1964년 09월 01일생 / 1983년 11월 01일 태국전
17. 장 정 (19세 86일) 1964년 05월 05일생 / 1983년 07월 29일 과테말라전
18. 노정윤(19세 122일) 1971년 03월 28일생 / 1990년 07월 27일 일본전
19. 유병옥(19세 150일) 1964년 03월 02일 / 1983년 07월 29일 과테말라전
20. 신연호(19세 178일) 1964년 05월 08일 / 1983년 11월 01일 태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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