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일이다. 혼자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국가대표 축구경기부터 아마추어 리그까지 나름대로 골고루 관심을 갖고 칼럼을 쓰려 노력하지만 이쯤되면 ‘GG’다. 오늘 하루 엄청난 경기들이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쏟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이야기를 하자니 U-16 청소년들이 섭섭해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이 친구들 이야기만 하기에는 중요한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경기를 빼놓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여자축구도 메달 사냥을 위해 나서고 승격을 노리는 K리그 챌린지 팀들의 경기도 같은 시간대에 무려 5군데에서 펼쳐진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풀가동해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만큼 많은 경기가 동시간대에 열릴 예정이다. 더 혼란스러운 건 이 모든 경기가 다 재미와 중요성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다. 오늘 동시간대에 열리는 모든 경기를 안내할테니 선택은 바로 당신들의 몫이다. 물론 나도 아직 어떤 경기에 더 집중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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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최근 U-16 청소년 대표팀에서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4강에 올려 놓았다. (사진=아시아축구연맹)

오후 6시 AFC U-16 챔피언십 준결승, 대한민국 VS 시리아
SBS Sports 17:50 생중계

이승우가 8강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하프라인부터 상대 수비수들을 달고 돌파하며 골을 넣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한국 축구사에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대단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을 격파한 뒤 오늘 시리아와 아시아 무대 결승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 조별리그에서 3연승을 기록하며 깔끔하게 8강에 오른 한국은 8강에서 일본까지 2-0으로 제압하고 이미 대회 4위까지 주어지는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출전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승우는 8강전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린 8강전이나 4강전을 하러 이 곳에 온 게 아니다. 반드시 우승을 하겠다.” 이 경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또한 이승우뿐 아니라 장결희(바르셀로나)와 김정민(신천중)도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선수로 이번 대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당연히 봐야 하는 경기다. 이 경기를 통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이 4강에서 시리아를 꺾고 북한이 호주를 제압할 경우 결승에서 남북 맞대결이 성사될 수도 있다. 이미 U-17 월드컵 출전권을 얻었지만 여기에서 멈춰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6시다. 직장인들이라면 퇴근 시간과 딱 겹친다. 그렇다고 회사 근처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한잔 하며 이 경기를 다 보고 퇴근한다면 남은 중요한 경기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한국의 메시’ 이승우가 활약하는 이 경기를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후딱 집으로 가 다른 중요한 경기를 지켜볼 것인가. 만에 하나 이 경기를 포기했다가 이승우가 또 다시 60m 드리블 돌파로 대단한 골을 기록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 선수들의 경기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일전이다.

어머 이건 꼭 봐야 돼 : 이승우가 나온다. 나는 한 선수에게 이렇게 집중된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승우는 역시나 물건이다. 또한 청소년 대표팀 경기는 그 특유의 패기가 있어 성인 대표팀 경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도 이 경기는 패스 : 상대가 조금 시시하긴 하다. 일본전이었더라면 더 많은 기대를 끌었을 텐데 시리아가 조금 덜 흥미로운 상대인 건 사실이다. 또한 이미 U-17 청소년월드컵 본선 진출도 확정지었다.

오후 7시 반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FC서울 VS 웨스턴시드니
SBS Sports 17:50 생중계

지난 시즌 아쉽게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 등극에 실패했던 FC서울이 다시 한 번 아시아 최고 클럽이 되기 위한 일전을 치른다. FC서울은 오늘 저녁 7시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호주 웨스턴시드니와 결승 진출을 놓고 준결승 1차전을 치른다. 홈에서 무척이나 강한 면모를 보이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디펜딩 챔피언’ 광저우 헝다를 8강에서 제압한 웨스턴시드니도 만만한 팀이 아니다. 조별리그에서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현대를 떨어트리고 16강에서는 J리그 우승팀 산프레체 히로시마마저 제압한 웨스턴시드니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팀이다. 특히나 원정 2차전에서의 부담감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안방에서 열리는 1차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따내야 한다. ‘숙적’ 광저우 헝다가 탈락한 상황에서 FC서울은 이번만큼은 꼭 아시아 정상을 밟겠다는 각오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2년 연속 결승 진출을 노리는 서울은 최근 대표팀에 차출돼 좋은 활약을 펼친 김주영과 차두리가 건재하다는 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여기에 서울은 광저우와 다르게 ‘깨끗한 축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광저우가 웨스턴시드니를 맞아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디스’였다. 페어플레이를 통해 오로지 실력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호주 축구계 역시 웨스턴시드니에 거는 기대가 만만치 않다. 한 번은 우연으로 강한 상대를 이길 수도 있지만 웨스턴시드니는 울산과 산프레체 히로시마, 광저우 헝다까지 연달아 격파하고 올라온 팀이다. 또한 이 경기는 잠시 발을 맞추는 대표팀 경기보다 훨씬 더 조직력을 갖추고 펼치는 클럽팀간의 경기다. 경기 내용면에서는 대표팀 경기 이상의 재미를 선사할 수도 있다.

어머 이건 꼭 봐야 돼 : 이제는 축구의 흐름도 대표팀 경기에서 클럽팀 경기로 많이 넘어가고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여느 A매치와 비교해서도 전혀 뒤처지는 대회가 아니다. 이 경기는 K리그가 다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 올 전초전이 될 것이다. 현장에서 응원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경기다.

그래도 이 경기는 패스 : 준결승 1차전도 중요하지만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펼치는 터라 승부가 가려지는 건 다가올 호주 원정 2차전이다. 이 경기를 패스하더라도 2차전만 지켜보면 충분할 수도 있다. 또한 상대가 광저우가 아닌 점도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대목이다.

오후 8시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한민국 VS 사우디아라비아
네이트, KBS2 19:40 생중계

대한민국과 시리아의 AFC U-16 챔피언십 4강전을 생중계로 지켜본 축구팬이라면 FC서울과 웨스턴시드니의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와 이 경기를 놓고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8시에 킥오프되는 이 경기는 30분 차이로 FC서울-웨스턴시드니 경기와 맞물린다. 리모콘을 이용해 두 경기를 동시에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가는 결국 두 경기 모두의 골 장면을 다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경기도 포기할 수는 없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1년에 한 번씩 우리를 찾아오지만 아시안게임은 4년에 한 번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그냥 놓치는 건 축구팬으로서의 예의도 아니다. 또한 한국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단 한 번도 남자 축구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없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비록 1차전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는 3-0으로 이기긴 했어도 다소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물고 말았다. 과거 ‘중동의 강호’로 인식되던 이번 상대 사우디아라비아는 쇠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터라 말레이시아 못지 않은 밀집수비를 선보일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김신욱과 김승규(이상 울산) 김승대(포항), 윤일록(서울) 등 K리그에서도 펄펄 날고 있는 선수들을 비롯해 김진수(호펜하임)와 박주호(마인츠) 등 유럽파까지 차출해 어떤 경기를 선보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손흥민(레버쿠젠)과 이명주(알 아인)이 빠지긴 했어도 이 정도 멤버라면 이번 대회에 나선 팀들 중 최상급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경기에서 라오스를 3-0으로 격파한 사우디와의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한국은 일찌감치 조별예선 통과를 확정지을 수 있다.

어머 이건 꼭 봐야 돼 : 안방에서 ‘군드로이드’까지 걸고 싸우는 경기인데 꼭 지켜봐야 하고 꼭 이겨야 하는 경기다. 병역 혜택을 놓고 싸우는 처절한 군 미필자들의 사투만큼 흥미로운 게 또 있을까.

그래도 이 경기는 패스 : 비록 대회 초반이긴 하지만 아시안게임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월드컵과 올림픽에 비해 아시안게임이 다소 시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오후 8시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대한민국 VS 인도
MBC SPORTS+ 20:00 생중계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 대표팀은 지난 14일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축구 A조 1차전에서 태국을 5-0으로 꺾고 기분 좋은 첫 승을 신고했다. 이날 정설빈은 1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쳤다. 태국과의 1차전에서 승리한 대표팀은 2차전 인도와의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조별예선 통과를 일찌감치 확정지을 수 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인도 정도야 쉽게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인도는 그렇게 방심할 만한 팀이 아니다. 1차전에서 ‘우윳빛 커튼 나풀거리는’ 몰디브를 상대로 무려 15골이나 기록하며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공격력에 자신 있는 인도는 한국을 상대로 수비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치열한 난타전을 기대하는 팬들이 있다면 바로 이 경기를 강력 추천한다.

어머 이건 꼭 봐야 돼 : 아기자기함으로만 따진다면 남자축구도 여자축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원한 골 잔치도 기대해 본다. 남자축구는 아시아 어떤 팀을 만나도 5-0 대승을 거두기 어렵지 않은가.

그래도 이 경기는 패스 : 역시 축구의 재미는 우락부락한 남정네들이 투박하게 뛰어다니는 것이다. 이 경기 정도는 하이라이트로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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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티즌은 무서운 경기력으로 이제 K리그 클래식 승격에 성큼 다가서 있다. (사진=대전시티즌)

오후 7시 반 K리그 챌린지 27라운드 대전시티즌 VS 광주FC
대전CMB, 네이버, 다음, 아프리카TV 19:30 생중계

주목도에서는 가장 떨어질 수도 있는 경기지만 가장 집중력 높은 경기가 될 것이다. 대전시티즌이 다시 1부리그인 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가는 걸 확정짓기 위해서는 이제 자력으로 딱 5경기만 더 이기면 된다. 특히 이번 광주전을 시작으로 안방 3연전을 치를 예정인데 대전은 현재 홈에서 12승 2무를 기록하며 14경기 연속 무패 중이다. 아드리아노는 최근 세 경기 연속골을 넣었고 김찬희도 두 경기 연속골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공격력도 무시무시하다. 또한 안방에서는 세 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도 이어지는 중이다. 대전의 최근 기세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하지만 장원석과 정석민이 경고누적으로 결장하고 임창우가 대표팀에 차출돼 수비 공백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대전이 승격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지, 아니면 수비 공백으로 홈 무패 행진이 중단될지 흥미로운 경기가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오늘 다른 K리그 챌린지 경기도 일제히 열린다. 충주와 안양, 강원과 대구, 수원FC와 안산, 부천과 고양이 나란히 격돌할 예정이다. 특히 최근 3연승과 6경기 연속 무패(5승 1무)를 달리고 있는 안산과 최근 4경기 연속 무패(2승 2무)를 달리면서 2경기에서 5골을 터트린 수원FC의 경기 또한 무척 흥미로운 대결이다. 또한 2위 싸움 중인 FC안양도 충주와의 경기에서 반전을 기회를 노리고 광주FC와 대구FC의 경기 역시 2위 자리 사수를 위한 중요한 일전이다. 다소 일반팬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져 있을지 몰라도 1부리그 승격과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팀들의 경기야말로 가장 치열한 승부가 되지 않을까.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는 K리그 챌린지도 강력 추천하는 경기다.

어머 이건 꼭 봐야 돼 : 축구를 진정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동네 아저씨들의 조기축구도 재미있게 본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축구를 진정 즐길 준비가 돼 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이 경기다.

그래도 이 경기는 패스 : 누가 나오는지 잘 모르는 경기여서 지켜보기 산만할 수도 있다.

보통 A매치 데이 때는 리그 경기가 중단되고 모든 관심이 A매치에 쏠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특수한 상황이다. A매치로 인정받는 경기가 없어 다양한 경기가 한 번에 쏟아지게 됐다. 아시안게임부터 AFC 챔피언스리그와 청소년 축구, 그리고 K리그 챌린지 경기까지 마치 뷔페에 온 것처럼 다양한 음식이 준비돼 있다. 오늘 저녁, 당신은 어떤 경기를 지켜볼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건 오늘 저녁은 당신에게 최고의 축구 경기를 선사할 것이다.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바쁘기도 하지만 참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