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위해 정부가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어제(2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축구 혁신 방안을 논의하는 ‘한국 축구 혁신 특별전담팀’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 혁신 특별전담팀은 정부와 대한축구협회 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연맹, 국민생활체육전국축구연합회, 스포츠개발원 등 유관 기관 및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홍역을 앓고 있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전했다. 대한축구협회를 뜯어 고치고 발전시키는 게 내부적으로 사실상 희박한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이같은 특별전담팀을 구성했다는 건 이례적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나는 정부의 ‘한국 축구 혁신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매일 축구계 내부에서 지지고 볶고 싸워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걸 우리는 지금껏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반복된 말이지만 이번 기회에 모든 걸 새롭게 엎고 “오히려 월드컵 참패가 약이 됐다”는 소리 좀 정말로 들어봤으면 좋겠다.

정부의 혁신안 중 돋보이는 두 가지 안건

문체부에서 이야기한 혁신안 중 가장 돋보이는 건 두 가지다. 무엇보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인단 제도 신설을 위해 선거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나는 지난해 1월 이와 같은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협회장 선거가 단 24명 만의 대의원 투표로 이뤄지는 건 부정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적은 인원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고 지방축구협회 개혁안 같은 공약은 내세울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명예직인 지역축구협회장과 협회 산하 연맹 회장 등만이 투표권을 가질 게 아니라 선수와 지도자, 심판, 팬, 구단 등의 의견도 협회장 선거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덧붙였었다. 24명 만의 선거인단으로 치르는 투표는 결국 부정의 가능성이 높고 정치적인 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칼럼을 통해 이런 지적을 한 것도 벌써 1년 반 전 이야기다.

<당시 칼럼 보러가기 : '24명 만의 선택' 변화가 필요한 협회장 선거>

그런데 드디어 이 선거 방식 개선이 이뤄질 모양이다. 당연히 협회 내부에서는 기득권 세력의 힘이 무서워 이런 개혁을 할 수가 없다. 현재 협회 수뇌부는 이런 기존 선거 방식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인데 이들이 뭐가 아쉽다고 선거 개혁안을 구상할 수 있겠나. 당연히 외부에서 나서야 했고 정부가 마침내 나섰다. 우상일 문체부 체육국장은 “선거인단 제도 개혁으로 그동안 혼탁했던 선거제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확실한 개혁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존 24명 만의 대의원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벗어나 훨씬 더 다양한 축구계의 인물이 회장 선출에 참여하는 쪽으로의 개혁이 예상된다.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이 다행이다. 협회 내부에서는 그 누구도 용기를 내 시행할 수 없었던 제도는 그보다 윗선인 정부가 아니면 할 수가 없다. 나는 정부의 용단에 큰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협회 내부에서의 자생적인 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혁안 중 또 돋보이는 건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생활체육전국축구연합회가 통합 수순을 밟기로 했고 여기에 정부가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엘리트 체육을 관할하는 대한축구협회와 생활 체육, 흔히 말하는 조기축구회나 클럽 동호회 등은 지금까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두 단체가 운영됐고 이는 축구 저변 확대와 효율적인 축구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었다. 흔히 축구 선진국에서는 생활체육 팀 중 실력을 인정받고 발전해 나가 그게 명문 프로팀의 효시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지금껏 그러지 못했다. 전문 선수를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과 취미로 축구를 즐기는 생활 체육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단체 모두 상대 단체와의 통합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개혁안과 마찬가지로 과거 이에 대한 칼럼도 쓴 적이 있다. 생활 체육을 자연스레 엘리트 체육과 연결 지으면 우리도 프로축구 7부리그까지 갖출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두 단체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서로 통합해 보다 크고 경쟁력 갖춘 시장을 만들려는 의지가 없었다.

<당시 칼럼 보러가기 : K리그를 7부까지 구성하는 아주 쉬운 방법>

정부의 혁신안,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나 같은 일개 칼럼니스트가 주장하는 바를 협회가 귀 기울여 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부가 나섰으니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한다. 정부는 “이 두 단체를 통합해 ‘1종목 1단체’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껏 서로 해오지 않던 일을 마침내 정부가 하기로 한 것이다. 이게 제대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1년 반 전 내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는 뼈대가 튼튼한 프로축구 하부리그를 구성할 수 있고 그만큼 한국 축구의 저변은 늘어날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생활체육전국축구연합회 모두 할 수 없던 일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게 다소 씁쓸하기는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정부가 참 옳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축구협회가 집계할 수도 없이 난립했던 생활 체육팀과 축구 동호회 등 2종 클럽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리그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일은 없다. 나는 이게 월드컵 8강 진출보다 한국 축구를 위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일단 정부가 칼은 빼 들었으니 반드시 실천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비롯해 K리그와 여자축구 활성화, 동호인 축구클럽 활성화 등을 고민할 예정이다.

나는 이번 개혁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개선된 선거 방식을 적용했어도 이번 협회장 선거에서는 정몽규 현 회장이 당선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지만 누가 당선되고 여부를 떠나서 일단 협회가 보다 투명한 방식으로 수장을 뽑고 뿌리를 튼튼히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후 월드컵에서의 성과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믿는다. 더 옳은 건 협회가 내부적으로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지만 그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는 정부가 과감히 개혁을 칼을 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대해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정부가 해당 축구협회 행정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행동에 문제 삼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얼핏 보면 정부가 협회장 선거에 개입하고 단체를 강제로 통합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문체부 측에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해당 협회나 기관이 주도하는 것이지 정부가 이끌어 간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부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일을 추진했어도 축구에 개입했다는 오해를 받기에도 충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FIFA가 경계하는 정부의 개입, 우리는 어떨까?

2006년 FIFA는 이란의 국제 무대 활동을 중지시킨 적이 있다. “이란의 축구가 정부로부터 간섭받고 있기 때문에 이란 축구협회의 모든 국제 활동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이란 정부는 모하메드 다드간 이란축구협회장을 축출하고 이란계 미국인 압신 고트비 대표팀 코치의 비자발급을 거부하는 등 정부가 정치를 앞세워 축구에 부정적으로 개입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란은 이후 한 동안 FIFA 징계로 A매치에 나서지 못했었다. 쿠웨이트 또한 2007년 정부가 개입해 축구협회장 선거를 치렀고 이에 대해 AFC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묵살해 결국 FIFA의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쿠웨이트 정부가 협회장에 ‘낙하산 인사’를 기용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2006년에는 그리스 정부가 그리스축구협회 업무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 보수당은 정권을 잡은 뒤 정부가 협회 업무에 개입하는 법안을 발표했고 FIFA가 이에 대해 A매치는 물론 클럽팀의 국제 경기 출전까지 금지하는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하자 2년이나 끌던 법안을 일주일 만에 수정해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

심지어 2010년에는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축구 대표팀을 해산해 버려 FIFA로부터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대표팀을 즉각 해산한다. 2년간 국제대회 출전을 금하고 재정비 시간을 갖도록 한다”고 했고 여기에 정부에서 직접 지목한 인사들을 축구협회 집행부에 앉혀 논란을 증폭시켰다. 그러자 FIFA는 자국 대표팀과 클럽팀의 국제대회 출전 금지는 물론 나이지리아 심판의 국제대회 출장 금지와 자국 대표단의 국제회의 및 행사 참석 금지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나이지리아는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도 정부가 협회 간부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등 운영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FIFA로부터 자격정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FIFA는 정부의 축구 개입에 대해 엄중히 대하고 당연히 FIFA로부터 이런 징계를 당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팀은 물론 각급 연령별 대표팀도 국제 무대에 설 수 없고 K리그 구단의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금지, 심판의 활동 금지 등의 규제도 따른다. FIFA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FIFA는 그 어떤 정부보다도 위에서 군림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우리의 사안은 다르다. 나는 이게 FIFA의 규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중징계 당한 나라와 우리는 그 상황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급한 위 나라들은 정부가 누군가를 지목해 협회 수장에 앉히거나 축출하는 등의 사례다. 정부가 축구에 대해 부당한 간섭을 행사해 압력을 가했고 결국 FIFA의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특정 인사를 끌어 내리거나 임명하려는 부당한 정치 개입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부당한 방식을 더 투명하게 바꾸기 위한 조치를 내리는 것이다.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 축구 발전에 대해 고민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고 아마 FIFA도 충분히 이런 우리 정부의 의지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는다. 또한 대한축구협회는 FIFA 소속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대한체육회 소속 산하 단체이기도 하다. 대한체육회 소속 산하 단체가 불투명하게 운영된다면 정부는 당연히 그걸 바로 잡을 권한이 있다. 정부가 판을 깔아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길잡이가 돼주면서 해당 협회나 기관이 일을 주도하는 형식으로 간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월드컵 8강보다 더 중요한 정부의 ‘한국 축구 혁신안’

나는 이번 개혁안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25일) K리그 올스타전이라는 중요한 이벤트가 열리지만 그 행사를 제쳐두고 이 주제로 칼럼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번 개혁한으로 잘만 하면 한국 축구가 혁신적으로 바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정부가 주도하는 이번 혁신안이 그저 개선 없이 협회의 꼭두각시 노릇만 한다면 그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게 바로 FIFA가 경계하는 정치의 축구 개입이기 때문이다. 해당 축구협회가 올바로 가지 못하는데 정부가 그걸 관망하는 수준을 넘어 함께 동조해 버리면 그게 바로 FIFA의 중징계감이다. 그래서 더 이번 개혁안이 민감하지만 중요하다. 문체부에서는 이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각 단체가 자체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했던 사안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부 차원에서 나서게 됐다.” 참으로 부끄럽고 씁쓸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왕 정부가 나서게 된 거 오해의 소지 없이 혁신적으로 일을 추진했으면 한다. 이번 개혁안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협회 수뇌부를 견제하며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더불어 프로축구가 7부리그까지 구성되는 진짜 첫 걸음이 되길 바란다. 이게 월드컵 8강 진출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