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이 개막했다. 개막 전부터 각 방송사들은 월드컵 때 자신의 채널을 봐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중계진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홍보에 열을 올렸고 저마다 축구 중계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다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이 돈 잔치에 방송사들도 저마다 숟가락을 얹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연 이 지상파 여러 채널 중 MBC도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과연 MBC는 그동안 축구를 위해 무엇을 했나. ‘월드컵은 MBC’라고 자기들 스스로 외치면서 전혀 부끄러움이 없나. 나는 MBC가 전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4년 동안 K리그 생중계 한 번, MBC의 무관심

그동안 MBC는 축구를 철저히 무시해 왔다. 지난 2011년부터 2014년 현재까지 무려 4년 동안 생중계한 K리그 경기는 딱 한 경기에 불과하다. 그것도 2011년의 일이다. 최근 3년 동안 MBC는 단 한 번도 지상파를 통해 K리그를 중계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새벽 2시 5분에 한 경기를 녹화 중계한 게 전부다. 4년 동안 생중계 1회, 모두가 잠든 심야 시간 녹화 중계 1회가 MBC의 성적표다. 반면 KBS는 지상파를 통해 최근 4년 동안 K리그 12경기를 생중계했고 SBS 역시 7회나 K리그 생중계를 했다. 수치로 보면 MBC가 그동안 얼마나 한국 축구를 소홀히 대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지금껏 전혀 국내리그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심지어 스포츠뉴스를 통한 짤막한 소식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수치뿐 아니라 MBC의 행태는 더욱 화가 난다. MBC의 자회사인 MBC 스포츠플러스는 지난 2010년 경기 이틀 전에 예정된 중계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였다. 당시 FC서울과 대전시티즌의 K리그는 서울의 K리그 1위 확정 여부가 달린 아주 중요한 리그 마지막 경기였다. MBC 스포츠플러스가 이 경기를 중계를 한다고 해 타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이 다른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를 중계하기로 했지만 결국 MBC 스포츠플러스는 경기 이틀 전 갑작스럽게 중계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핸드볼 국가대표 평가전을 중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축구는 소중하고 핸드볼은 소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미리 약속된 경기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K리그는 리그 마지막 경기 중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MBC 스포츠플러스가 이 경기를 중계한다고 해 다른 경기장에 중계차를 보낸 타 스포츠 케이블을 다시 서울-대전전으로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FC서울의 리그 1위를 확정짓는 이 순간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장난(?)에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또한 지상파 MBC는 지난 2010년 K리그 중계권 구입을 거부한 뒤 무단으로 중계 방송과 스포츠뉴스 등을 통해 K리그 장면을 사용해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계권 협상에도 응하지 않아 놓고 이런 식으로 지역 MBC 등을 통해 ‘도둑 방송’을 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시 KBS와 SBS는 각각 15억 원을 내고 K리그 중계권을 사들였었다.

FA컵 한해 농사도 망쳐버린 MBC

뿐만 아니다. MBC의 만행(?)은 지난 해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MBC는 포항과 전북의 FA컵 결승전을 중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경기가 연장에 들어가자 MBC는 곧바로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을 마치겠다”는 말만 남기고 중계를 끊어버렸다. 그러면서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남은 경기는 이어서 볼 수 있다”고 했지만 MBC 스포츠플러스에서는 프로농구 4쿼터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결국 농구 중계가 끝난 뒤 연장 후반이 돼서야 다시 중계가 이어졌지만 승부의 중요한 변수는 이미 지나간 뒤였다. 황선홍 포항 감독이 연장 전반 퇴장당하는 장면은 아예 중계되지 않았고 포항의 우승이 확정된 뒤 시상식 장면을 보여주지도 않은 채 급하게 방송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MBC 스포츠플러스는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를 재방송했다.

참고로 이날 경기는 원래 오후 2시에 시작하기로 돼 있었지만 MBC가 방송 스케줄이 맞춰 경기 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해 축구 경기가 열리기에는 다소 이른 오후 1시 반에 킥오프됐다. 팬들은 MBC의 요구 때문에 30분이나 일찍 경기장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MBC는 자신들의 요구로 30분이나 일찍 경기를 시작했지만 채 다 중계하지도 않고 중간에 중계를 끊어버렸다. 반면 이 경기가 있기 일주일 전 MBC는 두산과 넥센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5차전을 오후 6시부터 무려 4시간 53분 동안 중단 없이 중계했고 8시 뉴스데스크가 세 시간이나 밀려 밤 11시쯤 시작했던 바 있다. 축구와 야구의 편가르기를 조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MBC가 그동안 얼마나 축구 중계에 무관심을 넘어 싸늘했는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비바! K리그>와 <풋볼 매거진 골!> 그런데 MBC는?

단순히 국내 축구만이 아니다. MBC 스포츠플러스는 지난 시즌 유럽 축구 그 어떤 리그의 중계권도 구입하지 않았다. KBS N스포츠와 SBS 스포츠가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프리메라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중계하는 동안 MBC 스포츠플러스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만 틀었다. 아예 유럽 축구 중계권을 사지 않고 모든 걸 야구에 ‘올인’했다. 심지어 “24시간 야구만 보자”는 콘셉트로 하루 종일 야구만 튼 적도 있다. 그동안 MBC에 축구는 없었다. MBC는 K리그뿐 아니라 유럽 축구 등 전세계 모든 축구에 대해 관심조차 주질 않았다. 그들은 늘 “우리는 24시간 야구만 튼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막상 월드컵이 개막하니 “월드컵은 MBC"란다. 지상파 황금 시간대에 축구 전술 프로그램까지 방영하면서 ‘축구 전문방송 코스프레’ 중이다.

KBS와 SBS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만족스러울 만큼 풍족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꾸준히 축구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KBS는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1년도 빼놓지 않고 K리그 전문 프로그램인 <비바! K리그>를 방송했다. 단순히 하이라이트 수준이 아니라 경기장을 찾아가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전술을 분석하는 최초이자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매 시즌 K리그 개막전 등 주요 경기를 가장 많이 중계한 것도 KBS다. ‘신흥 강자’ SBS는 K리그를 비롯해 다양한 유럽 축구 경기를 중계하며 많은 볼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풋볼 매거진 골!>이라는 K리그와 유럽 축구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은 <비바! K리그>의 아성을 넘볼 정도로 성장했다.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제작진의 정성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MBC는 그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SBS의 스타 캐스터로 성장한 배성재 캐스터를 살펴보자. 센스 넘치는 중계 솜씨는 하루 아침에 길러진 게 아니다. 배성재 캐스터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자회사인 SBS 스포츠를 통해 매주 유럽 축구 경기를 중계했다. 지금 와서 그가 여러 캐스터 중 독보적인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이런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KBS의 서기철, 전인석, 최승돈, 이재후 캐스터 등은 엄청난 경험과 연륜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중계진이다. 이번 월드컵 중계진 선발에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축구 중계 연륜을 놓고 본다면 KBS 캐스터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런데 MBC는 지금껏 축구에 관심조차 없었으니 당연히 주목받는 캐스터도 없다. 중계를 해본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프리랜서 김성주 캐스터를 이번 월드컵 때 잠시 기용하고 있다. MBC는 자사 캐스터를 월드컵 중계 간판에 내세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동안 인력을 키우지도 못했다.

4년에 한 번 오는 ‘월드컵 각설이’가 또 왔네

결국 4년 동안 KBS와 SBS가 축구에 공들인 걸 한방에 만회하려는 MBC는 잔머리를 굴렸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지도를 키워 월드컵 중계에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송종국과 안정환, 그리고 김성주를 <아빠! 어디가?>에 투입한 뒤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고 이걸 월드컵 중계에 활용하고 있다. 타 방송사들은 캐스터를 육성하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꾸준히 방송하고 K리그도 이따금씩 중계해 왔는데 MBC는 4년 동안 축구에 관심 한 번 주지 않다가 예능 프로그램 인지도 하나로 숟가락을 얹었다. 축구 중계진들이 축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다가 월드컵을 앞두고 예능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해 홍보하는 게 그래도 정상적인 일인데 MBC는 오히려 반대였다. 축구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 본 적이 없으니 예능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다가가 그들을 축구에 대입시키는 중이다. 꼼수라면 꼼수다.

나는 안정환을 가장 좋아한다. 선수 시절에도 그의 플레이에 열광했고 그의 숨겨진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에도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해설위원이 된 뒤 쏟아내는 냉철한 분석과 유머도 좋다. 송종국도 좋고 스포츠 중계에 있어서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김성주도 좋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들은 좋은 중계 능력을 지녔고 주어진 환경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MBC만큼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동안 축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아니 차가울 만큼 축구를 대했으면서 월드컵이 다가오니 마치 자신들이 최고의 축구 방송인 것처럼 대하는 태도가 불만이다. “월드컵은 MBC”라는 달콤한 말에 속지 말자. 4년에 한 번 오는 ‘월드컵 각설이’가 또 온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