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월드컵 광풍이 불어야 한다. 바로 내일(13일) 2014 브라질월드컵이 개막하기 때문이다. 4년에 한 번 오는 이 전세계의 축제는 늘 우리를 흥분시켰다. 이맘때면 길거리 응원을 준비하고 텔레비전에서는 월드컵 응원가가 흘러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당장 내일 월드컵이 개막하는데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텔레비전 상단에 ‘월드컵 D-1’이라는 자막이 없다면 내일 월드컵이 개막한다는 걸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오늘은 이번 브라질월드컵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7가지 이유에 대해 꼽아봤다.

1. 홍명보호의 경기력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홍명보호의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내에서 치러진 출정식을 겸한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했고 미국으로 날아가 치른 마지막 평가전에서는 가나에 0-4로 참패했다. 이제 더 이상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는 무대는 없다. 가나전 이후 홍명보호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이제 당장 월드컵 본선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큰 걱정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날아다니며 역대 최고의 월드컵을 만든다고 해도 한국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국내에서의 흥행은 어렵다. 홍명보호가 평가전에서 승승장구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아마 지금쯤 훨씬 더 뜨거운 분위기 속에 월드컵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에게 “대표팀 경기력이 왜 그 따위냐”며 따질 정도였다.

2. 홍명보호의 여러 논란

이제 본 무대에 나서는 홍명보호의 사기를 위해 긴 언급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홍명보호 출범 후 끊이질 않는 논란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성용 SNS 논란을 비롯해 박주영과 윤석영 차출 논란, 박주호와 이명주의 엔트리 제외 논란, 기성용의 왼손 경례, 홍명보 감독이 스스로 깬 원칙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논란이 많았다. 홍명보 감독의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렇게 논란이 많아지면서 이번 대표팀이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호의 성적을 예의 주시하는 옹호론자와 비판론자들은 아마 월드컵이 막을 내린 뒤에도 격렬하게 싸울 것이다. 이런 월드컵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대표팀 선수들과 전국민이 하나가 돼 좋은 성적을 거두자는 과거 월드컵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는 게 이번 월드컵 아닐까.

3. 세월호 참사

지난 4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 두 달이 지나도 이 일은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아마 이런 참사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월드컵으로 도배했을 것이고 광고계 역시 월드컵과 관련한 각종 광고를 쏟아냈을 것이다. 기업들도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마케팅에 열을 올렸을 테고 가요계 역시 각종 응원가를 공개하며 숟가락을 얹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이렇게 웃고 떠들고 즐기는 월드컵에 대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붉은악마 측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의 길거리 응원을 취소했고 언론에서도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는데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잠겨 있는데 축제랍시고 월드컵을 즐길 만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4. 박지성의 불참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을 꾸리면서 박지성의 합류를 위해 노력했다. 박지성은 경기에 나서지 않고 벤치에 앉아 후배 선수들을 독려하기만 해도 아마 대표팀에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현역 은퇴를 선언한 뒤 이제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현 대표팀에는 손흥민을 비롯해 기성용과 박주영, 이청용 등 스타 선수들이 꽤 있지만 박지성 만큼의 인지도와 파급력을 자랑하지는 못한다. 박지성은 훈련장에서 물 마시는 모습만으로도 기사를 쏟아낼 수 있는 흥행 보증 수표였고 많은 이들은 박지성이 월드컵에 한 번 더 나서 큰 형의 역할을 해주길 바랐지만 결국 이는 성사되지 못했다. 만약 박지성이 월드컵에 선수로 참가했다면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박지성의 무릎이 온전해 월드컵에 현역으로 나선 뒤 브라질 현지에서 곧바로 신혼여행을 즐겼다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말이다.

5. 불명확한 목표

누군가는 이번 홍명보호의 목표를 8강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16강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나전이 끝난 뒤 일부에서는 1승도 어렵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전국민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홍명보호의 성적이 각각 다르다. 하지만 과거 월드컵은 그렇지 않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전국민의 목표는 1승과 16강이었고 이후에는 원정 1승과 16강 진출이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16강 진출을 이뤄낸 뒤 우리는 스스로 목표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16강에 이미 진출해 봤으니 이번에는 8강을 노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이번에는 1승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과거처럼 모두가 하나가 돼 “제발 1승만”을 외치던 때와는 다르다. 대표팀이 멋진 경기력으로 16강에 올라도 만족하지 못할 이들도 많다. 이번 월드컵은 전국민이 하나가 되지도 못했고 목표 역시 불명확하다.

6. 시들해진 내셔널리즘

월드컵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모두들 관심을 가졌다. 축구에 깊이 자리 잡은 내셔널리즘 덕분이었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없다가도 월드컵이 되면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국가대표 경기를 통한 축구붐 조성은 현실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이다. 축구팬들의 추세가 국가대표 경기에서 국내·외 클럽축구로 많이 넘어갔고 이제는 내셔널리즘이 아니어도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태극기만 봐도 눈물을 왈칵 쏟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애국심으로 축구를 접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걸 이번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어느 정도 느끼게 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보다 오히려 해외 유명 스타들의 활약을 더 관심있게 지켜보려는 이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건 단순히 축구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화 및 여가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애국심 마케팅으로는 한계가 있다.

7. 난감한 경기 시간

2006년 독일월드컵이나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는 월드컵을 보기가 참 편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주로 밤에 경기가 펼쳐졌고 새벽 경기 역시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참 난감하다. 러시아전은 16일 아침 7시에 열리고 알제리전은 23일 새벽 4시, 벨기에전은 27일 새벽 5시에 열린다. 길거리 응원은커녕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보기에도 참 난감한 시간대다. 더군다나 이 세 경기 모두 평일에 걸쳐 있어 직장인이나 학생 등은 하루를 여기에 모두 쏟기에도 어렵다. 길거리 응원 후 아침 출근 시간이 겹쳐 교통 대란이 일어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끔찍하다. 과거처럼 술을 마시며 길거리 응원을 한 뒤 분위기 좋을 때 헌팅을 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우리 동네 치킨집 아저씨의 탄식 소리도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월드컵 특수는 쉽지 않을 것이다.

참 여러 모로 여건이 좋지 않은 월드컵이다. 하지만 이걸 극복하는 건 오로지 하나다. 바로 홍명보호가 훌륭한 경기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이야 월드컵 분위기가 시들한 것 같지만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멋진 경기력을 선보이면 금방 또 월드컵 분위기가 달아오를 것이다. 홍명보호가 이런 악재를 모두 이겨내고 성적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