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일) 열린 가나와의 평가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제 곧 월드컵이 개막하는데 아직까지도 이런 경기력이라는 건 극히 실망스럽다. 벨기에와 러시아, 알제리의 경기력이 가나와 견주어 봤을 때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우려된다. 아마 어제 텔레비전 앞에 앉아 홍명보호의 월드컵 개막 전 마지막 평가전을 지켜본 이들은 분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0-4 패배라는 결과를 떠나 선수들의 투지와 의지 또한 보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라는 게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지만 이런 패배에서는 어떤 희망도 볼 수 없고 어떻게 위안을 삼을 수도 없다.

달걀로 바위에 흠집이라도 냈던 1994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더라도 품격 있게 지자는 것이다. 냉정히 따져 벨기에와 러시아는 우리보다 한 수 위 상대다. 최근에는 알제리도 평가전을 통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번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벨기에와 러시아에는 도전자 입장이나 마찬가지다. 경기에 앞서 확률을 따지는 게 우스울지 몰라도 확률적으로는 이길 가능성보다 질 가능성이 더 높은 상대다. 벨기에와 러시아에 진다고 해도 크게 놀랄 것도 없다. 알제리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승패와 상관없이 우리가 얼마나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면서 품격을 보여주느냐는 이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나전과 같은 무기력한 참패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내 기억 속 최고의 월드컵은 1994년이었다. 성적은 2002년 월드컵이 훨씬 나을지 몰라도 더 강렬히 기억되는 건 1994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외국에서 뛰는 선수가 딱 두 명이었다. 독일 2부리그 보쿰에서 뛰던 김주성과 일본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의 노정윤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전원 국내 선수들이었고 심지어 이운재는 경희대학교 학생이었다. 해외파와 국내파로 나눠 편을 가르는 게 아니라 그만큼 세계 무대와는 차이가 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거다. 속된 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이 국제 무대에 나가 벌벌 떠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다. 한국 선수 모두의 몸값을 합쳐도 세계적인 스타 한 명 몸값의 이자나 나올 만한 수준이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쟁쟁한 팀들과 격돌한다는 건 달걀로 바위치기나 다름 없었다.

당시 같은 조였던 스페인 선수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지금도 입이 벌어진다. 훌리오 살리나스를 비롯해 알베르트 페레르, 혼 안도니 고이코에체아, 호셉 과르디올라, 호세 마리 바케로, 틱시 베게리스테인, 세르히, 미구엘 앙헬 나달 등은 전부 바르셀로나 소속이었다. 페르난도 이에로와 라파엘 알코르타, 루이스 엔리케는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지금이야 명문팀의 추세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독일의 위르겐 클린스만(AS모나코)을 비롯해 스테판 에펜베르그(피오렌티나), 보도 일그너(쾰른), 안드레아스 브레메(카이저슬라우테른), 토마스 헤슬러, 로다 마테우스(바이에른 뮌헨), 루디 펠러(마르세유) 등도 유럽 최고의 팀에서 뛰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 홍명보호 선수들과 가나, 벨기에, 러시아 선수들의 스펙을 비교해도 훨씬 더 수준 차이가 나던 시절이었다. 아니,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의지조차 실종된 홍명보호의 가나전

이때의 결과는 다들 알 것이다. 한국은 스페인과 2-2로 비겼고 독일을 상대로는 비록 2-3으로 패하기는 했지만 명승부를 선보였다. 해외 언론에서는 폭염 속에서도 끊임 없이 독일을 몰아치는 한국을 보고는 이런 평가를 하기도 했다. “5분만 더 경기 시간이 남아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 선수들은 가까스로 승리를 챙긴 뒤 혀를 내둘렀다. 죽어라 뛰는 한국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나는 머리 크고 지켜본 2002년 월드컵보다 어린 시절 이때의 추억이 더 강렬하다. 0-2로 뒤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끊임 없이 추격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즐비한 스페인에 기어코 2-2 동점을 만들던 모습, 그리고 다리가 무거워 독일 선수들은 뛰지도 못하는데 악에 받쳐 뛰던 모습 말이다. 이때 한국이 독일한테 졌다고 해서 손가락질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은 지더라도 품격 있게 졌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또 결국에는 해외파가 어쩌느니, 국내파가 어쩌느니 갑론을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척박한 환경에서도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한 상대를 만나 물러서지 않았던 선배들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의 해외파는 당연히 우니나라에서 실력으로 인정 받는 선수들이니 더 큰 무대로 나간 거다. 가나와의 경기를 살펴보면 가나 선수들이 우리와 비교해 유럽 무대에서 훨씬 더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명망 있는 선수들이 많긴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유럽 무대에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또한 만만치 않게 보유하고 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 나선 선수들과 이번 홍명보호의 선수들을 비교해 봤을 때 지금의 선수들이 훨씬 더 축구 본고장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 A매치 기간이 되면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한 군데에 모여 경기에 나선 뒤 유럽 각지로 다시 흩어지는 게 이제 우리의 축구 수준이다. 그저 죽어라 뛰는 것밖에 몰랐던 때와는 환경이 너무도 좋아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을 가면 좋고 8강을 가면 더 좋을 것이다.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비판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의 눈이 월드컵 4강 진출 이후로 높아졌다고 해도 그만큼 우리 팬들의 수준도 성숙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당장의 성적으로 비난하겠지만 지더라도 후회 없이 싸워 품격 있게 지면 박수를 보낼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 면에서 가나전 참패는 그 어떤 말로도 위안을 삼을 수 없는 최악의 경기였다. 최선을 다했는데 실력이 부족해 졌거나, 실력도 발휘했는데 운이 없어서 졌거나, 정말 잘했는데 심판의 오심 때문에 졌다면 상관없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독일에 지고 스페인을 이기지 못했다고 누가 비난했나. 하지만 가나전에 나선 홍명보호는 이기려는 의지도, 그렇다고 지더라도 끝까지 싸워보자는 투지도 없었다. 이런 경기에서 운 좋게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태극전사여, 지더라도 품격 있게 지자

본선에서 져도 좋다. 하지만 선배들이 보여준 그 품격 있는 패배에 먹칠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온 힘을 그라운드에서 모두 쏟아 부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 그라운드에 서 있을 힘도 없을 정도라면 설령 그 경기에서 패한다고한들 그 누구도 홍명보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은 과거보다 훨씬 더 좋아졌는데 왜 선수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지 가나전 패배를 통해 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누군가는 세상이 변했는데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지금 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바라는 모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현란한 발재간이 아니라 빼앗기면 어떻게든 따라가 태클이라도 한 번 하고 상대가 슈팅을 날리면 몸으로라도 막아내고 경기가 끝난 뒤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말이다. 태극전사여, 지더라도 품격 있게 지자. 이기는 건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