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울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우리는 지금 너무도 끔찍하고 슬픈 일을 겪는 중이다. 아직 꽃피우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바다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진다. 아마 아무리 수려한 글 솜씨를 가진 이들도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빠진 지금의 이 심정을 글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나는 서명원 인터뷰를 위해 대전 클럽하우스에 갔었는데 코치진과 선수들 모두 텔레비전 앞에 앉아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음이 너무나도 무겁다. 대한민국 국민 중 이런 마음을 갖지 않은 이가 없겠지만 지난 주말 한국 축구 역시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의 기적적인 생환을 위해 마음을 함께 모았다.

세월호 침몰, 한국 축구도 함께 울고 있다

떠들썩하던 K리그 경기장은 지난 주말 침묵에 빠졌다. 모든 국민이 슬퍼하는 이 시점에서 아무리 축구가 좋다고 해도 웃고 떠들며 응원하는 걸 원하는 이는 없었다. 프로축구연맹은 각 구단에 팬들의 조직적인 응원을 자제하도록 유도했고 팬들 역시 한 마음을 모아 경기장에서도 세월호 실종자들의 생환을 위해 조용히 경기를 지켜봤다. 승점 3점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에서 선수들은 최대한 득점에 대한 기쁨을 억누르며 예의를 갖췄고 각 구단 역시 팬들을 위해 미리 준비돼 있던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또한 안산경찰청은 고양 Hi FC와의 K리그 챌린지 경기를 연기하기도 했다. 오는 6월 월드컵과 9월 아시안게임 때문에 올 시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연고지 내 단원고 학생들의 피해가 큰 상황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수원과 울산의 경기가 열린 울산 문수경기장에는 애도의 뜻을 담은 양팀 서포터스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울산 서포터스는 ‘세월호 침몰사고 탑승자들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도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수원 서포터스 역시 ‘부디 포기하기 말아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한 수원 정대세는 기쁨을 최대한 자제하며 묵묵히 팀 동료들과 포옹을 했다. 비록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무대까지 밟았지만 그 역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우리와 똑같은 마음이었다. 두 번째 골을 기록한 산토스도 마찬가지였고 울산 선수들 역시 한 마음이었다. 경기는 치열한 승부 끝에 2-2로 끝이 났지만 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차분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같은 날 전남과 전북의 경기가 열린 광양축구전용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진도와 인근한 광양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 전 선수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웅장한 음악과 팬들의 조직적인 응원 없이 그라운드에 들어서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전남 구단 측은 “연고지 내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승객들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전반 30분 첫 골을 기록한 이동국은 귀중한 득점을 올린 뒤에도 전혀 기쁜 내색이 없었다. 동료들과 손을 맞잡는 것으로 세리머니를 대신했다. 후반 37분 추가골을 넣은 한교원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이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그들은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한 명의 국민으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세월호 침몰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먼저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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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FC 선수들이 강원FC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함께 모여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사진=대구FC)

치열했지만 차분했던 지난 주말 K리그

다음 날인 20일 열린 경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승리의 부적과도 같은 붉은색 넥타이를 포기하고 애도의 마음을 담아 검정색 넥타이를 착용한 채 벤치를 지켰다. 지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호주 원정 도중 세월호 대참사의 비보를 전해 들은 최용수 감독은 경기 전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나. 다 어른들의 잘못이다. 그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상대팀 포항 황선홍 감독 역시 경기 전 선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슬픈 날이다. 아무리 득점 후 기쁨에 겨워도 차디찬 바닷속에서 고통 받고 있을 분들을 위해 세리머니는 하지 말자.” 이날 경기장을 채운 13,554명의 관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빅매치를 지켜보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했다.

이날 후반 포항 김승대는 극적인 결승골을 뽑아냈다. 무려 8년 만에 서울 원정 징크스를 털어내는 귀중한 골이었다. 하지만 김승대는 득점 후 바로 앞에 모인 포항 원정 팬들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으로 세리머니를 대신했다. 뒤 따라온 동료들 역시 김승대와 진하게 포옹하는 게 세리머니의 전부였다. 경기장 주변에는 FC서울 서포터스가 내건 ‘세월호 희생자들을 마음깊이 추모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현수막과 포항 서포터스가 내건 ‘기적은 그대들을 위한 당연함이다’라는 현수막만이 말 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성남 팬들은 제주와의 원정 경기 응원을 떠나 이런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기적처럼 태어났으니 기적처럼 돌아오라.’ 이렇게 지난 주말 K리그 클래식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기적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구단과 선수, 팬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경남FC는 “홈경기에 준비한 이벤트는 팬들과의 약속이지만 일단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이 먼저”라면서 ‘과학의 달’을 맞아 3주 전부터 준비한 팬들의 과학 체험 행사를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K리그 챌린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구FC 조나탄은 후반 34분 강원FC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이자 이 경기의 결승골을 뽑아냈다. 본인에게도 K리그에서의 의미있는 첫골이었다. 하지만 조나탄은 득점 후 곧바로 무릎을 꿇고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 세우며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더니 동료들에게 “이리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대구 선수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한 마음 한뜻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지난 주말 K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축제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슬프고 아픈 우리의 오늘이 그대로 K리그 경기장에 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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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김보경은 지난 주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아 오른팔에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했다.

“기적처럼 태어났으니 기적처럼 돌아오라”

K리그만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 역시 한 마음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김보경(카디프시티)은 지난 19일 스토크시티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그런데 그의 오른팔에는 검은색 완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애도의 뜻이었다. 경기 중계에 나선 현지 텔레비전 중계진도 김보경의 오른팔을 클로우즈업하며 주목했다. 분데스리가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레버쿠젠) 또한 지난 20일 뉘른베르크와의 경기에서 검은색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이날 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에 대해 독일 언론은 “손흥민이 조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선박사고 희생자들에게 승리를 바쳤다. 그는 검은색 완장을 차고 나왔다.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활약하는 우리 축구선수들 역시 한마음으로 이 끔찍한 대참사에 슬퍼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길 바라는 마음을 오른쪽 팔에 새겼다.

어제(21일)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을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 울산 조민국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경기다. 부담은 크지만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90분을 즐기면서 극복하길 바란다. 또한 세월호 대참사로 침체에 빠진 국민에게 작은 기쁨을 드리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승리인 것 같다.” 조민국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주장 김치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큰 사고가 났는데 이런 시기일수록 한국 특유의 정신력으로 극복하길 바란다. 우리도 강한 정신력으로 경기에 임해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적인 사고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애도를 표하고 실종자들의 극적인 생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국 축구계 역시 그들만의 방법으로 같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다. 사고 후 점점 시간이 흐르며 실종자들의 기적적인 생환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축구에서 여러 번의 기적을 경험했는데 축구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적이 진도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실종자들의 극적인 생환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지난 주말 K리그 경기장에 나부꼈던 어느 현수막 문구처럼 기적적으로 태어났으니 그들이 기적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