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산현대 클럽하우스에만 가면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된다. K리그 구단의 다른 최첨단 클럽하우스도 많이 가 봤지만 울산만큼 신기한 곳도 없다. 이곳에는 울산현대 성인 선수들 외에도 현대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 남자축구부 선수들, 그리고 현대청운고등학교 여자축구부 선수들까지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식당에 칸막이 하나가 쳐 있지만 이들은 클럽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하며 성인 선수들을 보고 꿈을 키운다. 울산 소속 선수를 인터뷰하러 이곳에 가면 어린 친구들이 해당 울산 선수에게 다가와 이렇게 먼저 장난을 걸기도 한다. “형, 인터뷰하는 거예요? 버벅거리지 말고 잘해요.” 유소년 선수들부터 성인 선수들이 함께 하는 이 클럽하우스는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이 모든 게 다 현대의 작품이라는 것도 놀랍다.

이랜드 그룹이 서울 연고 프로축구단 창단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축구에 대한 투자에 관심이 치솟고 있다. 이랜드 그룹의 선택에도 큰 지지를 보내지만 나는 그 전에 한국 축구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올려 놓은 현대에 대해 한 번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현대가 한국 축구에 전폭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아직도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들이 맨땅에서 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을 것이고 월드컵이라는 세계인의 축제에 주인공으로 참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한국 축구는 현대가 만들었고 지금도 현대가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현대가 한국 축구를 위해 지대하게 기여한 바를 살펴보려고 한다. 참고로 이 칼럼은 현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내가 소유한 1997년식 현대 ‘구아방’ 자동차 말고 나는 현대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가장 큰 업적은 역시 2002 월드컵 유치

현대의 가장 혁혁한 공은 역시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다. 당시 국가 차원에서 이 일을 추진했지만 현대와 정몽준 회장이 이뤄낸 업적은 엄청났다.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겸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현대를 앞세워 적극적인 유치전에 나섰다. 월드컵 개최지 결정 투표권이 있는 21명의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소재지 중 현대종합상사 지사가 없던 스코틀랜드와 이탈리아, 독일, 아르헨티나 등에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현대종합상사 해외 지사를 따로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종합상사 해외 지사원들의 맹활약은 지금으로 따지면 스토커(?) 수준 이상이었다. FIFA 집행위원 소재국에 주재하는 상사원들에게 집행위원 전담맨을 지정해 그들의 취미생활은 물론 가족사까지 파악해 이 정보를 대한축구협회에 직접 전달했던 것이다. 이 정보는 집행위원의 마음을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협회의 허락 하에 직접 협회 명함을 만들어 집행위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이미 유치전에 일찌감치 뛰어든 일본은 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상사 등을 앞세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정몽준 회장이 FIFA 부회장 자격으로 직접 FIFA 집행위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몽준 회장은 1년 동안 지구를 무려 12바퀴나 돌았다. 1995년 월드컵 유치붐 조성을 위해 브라질을 국내로 초정했을 당시 초청비용은 약 1백 20만 달러였는데 당시 브라질 대표팀의 초청 비용은 원래 30만 달러 안팎이었지만 협회는 브라질을 유치 경쟁 라이벌인 일본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급했다. 이 돈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을까. 물론 정몽준 회장 사비였다. 1995년 정몽준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에 낸 사비는 무려 43억 7천만 원이었다. 이는 당시 협회 결산액 57억 원 중 무려 76.6%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당시 대한체육회 가맹 39개 경기 단체 회장 출연금 중 정몽준 회장에 이어 2위로 많은 돈을 낸 레슬링협회 이건희 회장의 출연금이 12억 7천만 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결국 뒤늦게 월드컵 유치전에 뛰어 들었던 한국은 정몽준 회장과 현대의 맹활약 덕분에 극적으로 월드컵 공동 개최를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다. 만약 당시 현대와 정몽준 회장의 활약이 없어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지 못했다면 지금도 우리는 이런 최신식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축구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양잔디를 심지 못해 누런 잔디에 페인트칠을 하며 경기를 했던 게 바로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월드컵 유치 후 4강이라는 신화는 물론 이후 월드컵 수익금을 통해 전국의 유소년들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월드컵 효과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 개최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잘한 일이었고 그 중심에는 현대가 있었다. 과거 칼럼에서 한 차례 밝혔듯 정몽준 회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뒤 비좁은 협회 사무실에서는 이 큰 대회를 준비할 수 없다고 밝히며 축구회관 건립 비용 170억 원 중 자비로 65억 원을 충당하기도 했다.

K리그 향한 ‘현대家’의 지원과 투자

현대가 한국 축구를 위해 한 일을 논할 때 정몽준 회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최근 민감한 부분이 있어 정몽준 회장에 대한 소개는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정몽준 회장뿐 아니다. 현대는 눈에 보이는 대표팀 경기 및 월드컵 유치에만 신경을 쓴 게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한국 축구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해왔다. 가장 먼저 소개해야 할 팀이 바로 울산현대다.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가 출범했지만 프로팀은 할렐루야와 유공뿐이었고 실업팀 중 포항제철과 대우, 국민은행 등이 참가한 기형적인 형태의 리그에 이듬해 프로팀 현대호랑이가 등장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주도로 창단된 현대호랑이는 1969년 창단해 1983년 코리언리그 2부에서 우승한 아마추어 현대팀도 함께 운영하며 1,2군 개념을 도입했다. 이 팀은 1990년 울산에 정착했고 1998년부터 현대중공업으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 울산현대는 포항스틸러스와 함께 지금도 K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통한다.

‘전통의 명가’ 울산현대뿐 아니라 ‘신흥 강호’ 전북현대 또한 현대가 이룩한 한국 축구사 한 페이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다. 사실 처음부터 현대가 야심차게 계열사내 두 번째 구단 창단을 노린 건 아니었다. 원래 완산 푸마로 시작한 이 팀은 이후 제우 엑스터, 전북 버팔로로 이름을 바꿨지만 심각한 재정 문제를 겪으며 프로축구계에서 문제아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4년 가까스로 리그에 참가했지만 결국 전북 버팔로는 점차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시즌 막판 인수자가 나올 때까지 프로축구연맹에 의해 위탁 운영되는 상황까지 맞이하고 말았다. 연맹은 내심 조선맥주를 비롯해 미원과 우성건설, 기아자동차 등 전북에 연고를 둔 기업이 전북 버팔로를 인수하길 바랐다. 하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인수 희망자는 나오지 않았고 이 팀은 공중분해 직전에 놓이고 말았다. 결국 그러자 협회를 이끌고 있던 현대가 나섰다. 이미 울산 연고의 축구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대로 한 팀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였던 현양의 주도로 전북 프로축구팀이 다시 창단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기본 자금 10억을 낸 현양보다는 홍보 스폰서 형식으로 20억 원을 낸 현대자동차가 사실은 실질적인 운영 주체였다. 연고지는 현대자동차 전북 공장 완공을 계기로 전북으로 정해졌고 이렇게 전북현대의 시초인 전북다이노스가 창단할 수 있었다. 연맹에서는 전북 버팔로를 전북다이노스, 그리고 지금의 전북현대 역사와 따로 떼어 놓고 보지만 현대가 쓰러져 가는 한 팀을 살려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새한자동차 실업축구단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창단됐다가 이후 대우로얄즈를 가슴에 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팀 역시 모기업의 부도로 문제가 생기자 2000년 현대산업개발이 이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 팀이 바로 지금의 부산아이파크다. 이 당시에도 ‘전통의 명가’ 대우가 무너진다는 소식이 들리자 협회를 이끄는 현대에서 전격적으로 인수를 결정한 바 있다. 여기에 대전시티즌 역시 한 동안 현대산업개발에서 지원을 하기도 했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축구계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휘청였다. 당시 한일은행을 비롯해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 금융 축구팀 역시 연속적으로 해체돼 큰 충격을 안겼다. 프로축구도 흔들리는데 실업축구는 손도 쓰지 못하고 팀의 해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실업 리그를 운영하기에도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때 파격적으로 창단을 선언한 팀이 바로 울산현대미포조선이었다. 전년도 기업은행을 3관왕으로 이끌었음에도 팀 해체 후 갈 곳이 없어진 조동현 감독은 미포조선 사령탑에 부임한 뒤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팀을 창단한 현대미포조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명감을 갖고 이 팀을 국내 정상에 올려 놓겠습니다.”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금융팀의 연이은 해체로 사면초가에 몰렸던 실업축구는 울산현대미포조선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울산현대미포조선은 김대의 등을 영입하며 창단 9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했고 지금도 내셔널리그에서는 여전한 강호로 남아 있다.

현대의 유소년과 여자축구에 대한 투자

울산현대와 울산현대미포조선 팀을 운영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은 이외에도 여러 산하 유소년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 울산대학교 남자축구부를 비롯해 현대청운중학교, 현대청운고등학교, 울산과학대 여자축구부 등도 현대중공업그룹 산하에서 육성되는 중이다. 남자 축구와 여자 축구를 모두 아우르는 투자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울산현대 성인 선수들과 같은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운다. 여기에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는 FIFA 부회장 및 대한축구협회장 출신이고 같은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 권오갑 사장은 내셔널리그 회장과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K리그가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손을 내민 것도 바로 현대오일뱅크였다.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부터 K리그 메인 스폰서를 자처했고 이후 K리그 챌린지 또한 메인 스폰서로 후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한국 축구와 K리그에 실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전북현대의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 또한 영생고등학교와 금산중학교 선수들을 후원하고 여기에 WK리그 인천현대제철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같은 계열사인 현대위아는 K리그 클래식 경남FC의 스폰서로 참여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올해 열리는 브라질월드컵까지 4내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 공식 후원사 자격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현대산업개발그룹은 부산아이파크를 운영하는 것 외에도 개성고등학교와 신라중학교 축구부까지도 후원하고 있다. 또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이자 부산아이파크 구단주는 현재 대한축구협회장을 역임하는 중이다. 물론 현대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였던 이들은 이후 전부 독립된 기업 집단이 됐고 사업적 연관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범현대가’가 한국 축구에 차지하는 비중은 이렇게 막강하다. 현대가 한국 축구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이뿐 아니라 과거 칼럼에서 언급했던 ‘현대중공업 부서별 축구대회’, 속칭 ‘현대스리가’는 선수단만 4천여 명에 이르고 연중 승강제를 갖춘 리그까지 치를 정도로 현대의 축구 사랑은 대단하다.

현대가 이렇게 축구에 큰 관심을 가지고 투자한 건 여러 측면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故정주영 명예회장의 자손들이 하나씩 계열사를 물려 받아 독립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지금도 ‘범현대가’가 하나의 조직으로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구단을 운영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 같이 쓰는 독립된 회사가 됐기 때문에 축구계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정치적인 이유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몽준 회장이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선 건 축구에 대한 애정을 의심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정치색을 일절 배제하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만큼 축구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이고 정몽준 회장의 정치적인 의도가 여기에 꼭 맞아 떨어졌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여기에 축구만큼 세계적인 스포츠도 없으니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축구에 대한 투자는 꾸준히 이어졌다. 또한 수 없이 많은 ‘범현대가’ 근로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스포츠로 축구만한 것도 없다.

‘현대家’가 만약 축구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현대가 무조건 잘한 것만은 아니다. 정몽준 회장 재임 시절부터 일부 현장 지도자들과 대립하면서 갈등이 생겨났고 축구계 화합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초·중·고와 대학교를 비롯해 여자축구와 K리그, 그리고 대표팀까지 현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현대가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현대가 축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낙후된 환경에서 열악한 K리그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월드컵도 아마 이땅에서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현대뿐 아니라 여러 기업들이 축구라는 종목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더 많은 투자했으면 한다. 현대는 한국 축구의 ‘메시아’ 같은 존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