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4일)은 아마 한국 축구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축구의 숙원 사업이었던 서울 연고의 두 번째 프로 구단 창단과 관련해 기자회견이 열리기 때문이다. 인구 천만이 사는 대한민국 수도에 지금껏 프로팀이 단 하나 뿐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아쉬웠었다. 그런데 이랜드 그룹이 오늘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로축구단 창단 발표와 함께 ‘프로축구단 창단 의향서’를 프로축구연맹에 공식적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오늘은 K리그의 승강제 구축에 버금가는 새로는 역사가 쓰이는 의미 있는 날이다. 오늘 기자회견에 맞춰 이랜드 그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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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창단 초기부터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수원블루윙즈)

창단 1~2년 안에 흥행은 승부가 난다

나는 이랜드 그룹이 그저 그런 투자를 하는 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K리그 전체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이랜드 그룹 스스로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랜드 그룹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쓰면서 내년 시즌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K리그 챌린지에 오래 남아 있어서는 후발 주자로서 아무런 매력이 없다. 가장 중요한 기간이 창단 후 1~2년이다. 이 안에 구단 이미지와 인지도는 사실상 결정이 된다. 한 번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이후에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구단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만약 이랜드 그룹이 오랜 시간 K리그 챌린지에 머문다면 이미 FC서울이라는 인기 구단이 있는 서울에서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출범 후 공격적인 투자만이 살 길이다. 마지막 기업 구단인 수원블루윙즈만 봐도 그렇다. 당시 모기업 삼성은 1995년 팀을 창단하기 1년 전부터 김호 감독을 미리 스카우트하고 사무국까지 다 갖췄다. 그리고 첫 시즌 선수단 인건비로만 무려 50억 원을 투자했다. 1996년 당시 50억 원이라는 금액은 다른 구단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돈이었다. 루마니아 출신 바데아를 영입하는 데만 약 7억 원이 들었고 고종수와 이기형 등 올림픽 대표팀을 통해 이미 인기를 얻은 어린 선수들에게도 계약금을 1억 원씩 안겨줬다. 첨단 장비를 갖춘 물리치료실과 훈련장 등 시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수원은 창단 첫해 후기리그에서 단 1경기만 패하는 놀라운 경기력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많은 시·도민구단이 창단됐지만 수원 만큼의 강렬함을 준 구단은 없었다. 당시 수원은 창단 첫해부터 공격적인 투자로 관중 몰이에 성공했고 세련된 이미지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수원 경기를 보면 하품 나오는 졸전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수원은 여전히 국내 최고의 인기 구단이다. 한 번 형성된 이미지와 인기는 그 팀의 먼 미래까지도 꾸준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랜드 그룹 역시 그래야 한다. 이미 FC서울이 선점하고 있는 서울 시장을 공략하려면 혜성처럼 등장해 판을 뒤흔들어 놓아야 한다. 뭔가 다른 팀, 더 투자하는 팀, 세련된 팀이라는 이미지를 초기에 심어놓을 필요가 있다. 구단의 미래를 길게 내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창단 1~2년 안에 흥행의 승부가 난다고 생각한다.

이랜드 그룹의 막강한 경쟁 상대들

더군다나 이랜드 그룹의 경쟁 상대는 많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이랜드 그룹은 FC서울과 흥행을 놓고 벌이는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랜드 그룹이 유리한 측면은 별로 없다. 이미 FC서울은 꽤 오랜 기간 터를 닦고 노련하게 마케팅을 해와 인기 구단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이랜드 그룹의 또 다른 약점은 바로 홈 경기장이다. 이랜드 그룹이 홈으로 쓸 잠실종합운동장은 FC서울의 안방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비해 많이 낙후돼 있다. 최근 보수를 마쳤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시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훨씬 좋다. 일반적인 팬들에게 잠실종합운동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중 어디에서 경기를 보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대답은 100% 뻔하다. 다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꼽을 것이다. 이랜드 그룹이 잠실종합운동장에 가변석을 설치한다고 해도 경기장 시설로 FC서울을 이길 수는 없다. 결국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면 화려한 선수단을 앞세워 FC서울을 능가하는 경기력을 갖춰야 한다.

이랜드 그룹의 경쟁자는 FC서울뿐 아니다. 함께 잠실을 써야 할 프로야구 구단도 두 개나 있다. 두산과 LG는 이미 잠실운동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한참 늦은 후발 주자가 그것도 K리그 클래식이 아닌 K리그 챌린지에서, 현저히 적은 언론 노출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여기에 서울에는 FC서울과 프로야구의 두산, LG 말고도 여가를 즐길 게 너무 많고 특히 강남은 여가 생활과 유흥의 천국이다. 심지어 논현동은 새벽부터 아침 10시까지도 술을 마실 수 있다.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서 상당한 기간을 머물러 있으면서 여러 구단과 차별화된 게 없는 그저 그런 구단이 되면 이랜드 그룹은 오히려 축구단을 창단하지 않은 것보다도 더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 수도 있다. 이왕 할 거면 시작부터 K리그 뉴스 전체를 도배할 정도로 공격적이어야 한다.

연고 이전 후 처음에는 서울시민들로부터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FC서울이 ‘대세 구단’이 된 기점은 언제부터일까. 지속적이고 꾸준한 구단 프런트의 홍보 활동도 분명히 있었지만 나는 FC서울의 인식을 바꾼 첫 선택이 바로 박주영의 영입이었다고 생각한다. 2004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FC서울은 이듬해 청소년 무대에서 일약 스타로 도약한 ‘축구 천재’ 박주영을 영입한 뒤 연일 경기장을 관중으로 가득 채웠다. 만약 이때 박주영을 영입하지 않았다면 아마 FC서울이 서울 시민의 사랑을 받는 구단으로 성장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단 운영에 내실을 기하고 유소년을 육성하고 여기저기 홍보 전단지를 붙이고 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역시 구단이 흥행하려면 공격적인 투자와 스타가 있어야 한다. FC서울의 박주영 영입은 이런 측면에서 ‘신의 한수’였다.

이랜드 그룹의 축구단 창단에 기대를 거는 이유

그런 면에서 나는 이랜드 그룹의 공격적인 투자와 마케팅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랜드 그룹은 250여개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지난해 총매출이 10조에 달했다. 이 돈을 다 축구단에 쓰는 건 아니지만 이미 ‘총알’은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K리그의 광저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이랜드 그룹의 강점은 먹고 자고 입고 쓰는 모든 걸 계열사에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즌권 등과 연계해 엄청난 마케팅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쇼핑몰부터 리조트, 패밀리 레스토랑, 스포츠 의류 등 이랜드 그룹 산하의 엄청난 계열사가 협력한다면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놀라운 구단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다 이랜드 그룹이 단순히 축구단을 소소하게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큰 마음을 먹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이랜드 그룹의 마케팅 능력은 이미 여러 군데에서 검증이 됐다. 1993년 이랜드 그룹은 독일 스포츠 브랜드 푸마와 라이선스를 체결했다. 당시 100억 원이던 푸마 매출은 이랜드 그룹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자 2007년 무려 2천억 원을 넘길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매장수도 160여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푸마는 이랜드 그룹과의 독점 라이선스 기간이 끝나자 자신감을 얻고 푸마코리아를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하고 독자적인 법인을 꾸렸지만 결국 또 다시 매출이 급감하고 말았다. 이후 이랜드 그룹 측은 미국 기업인 뉴발란스와 손을 잡고 뉴발란스의 한국, 중국 매출 7천억 원을 포함해 글로벌 스포츠 사업 부문에서 소매기준으로 1조 3천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랜드 그룹은 마케팅 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이미 여러 차례 성공 사례가 있고 그만큼의 노하우도 갖추고 있다. 이랜드 그룹은 축구단 창단을 위해 벌써 7개국 10개 리그를 직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 그룹은 축구단 운영에 있어서도 이렇게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뉴발란스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이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 중인 입장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등의 파급력까지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축구단 하나만 잘 운영하면 그 어떤 분야보다 훨씬 더 큰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몇 년 동안 K리그 챌린지 무대를 경험하며 자리를 잡는 수준이 아니라 시작과 동시에 아시아 축구 판도를 흔들만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미 K리그 무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강원과 광주, 대구, 대전 등과 경쟁하려면 투자는 그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야 한다. 더군다나 이랜드 그룹이 창단하는 팀에 처음부터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응원할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두 번 친구들과 치킨을 사들고 가서 가볍게 즐기다가 이 팀에 매료되면 그때부터 진정한 팬이 된다. 한 번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역시 스타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력이다.

서울이라는 큰 시장이 주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이랜드 그룹은 이 엄청난 시장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강남 지역에 사실상 무혈입성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강남이라는 매력적인 시장만 손에 넣어서는 안 된다. 이 큰 시장을 선점한 기업으로서 그에 걸맞는 투자를 하는 게 마땅하다. 서울을 품은 팀은 한국 축구를 위해서 응당 그래야 한다. 또한 이랜드 그룹 스스로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시장을 통해 투자 이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저 그런 투자로는 서울에서 비전이 없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