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상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상주상무와 FC서울의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7라운드 경기. 이 맞대결에서 개막 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상주는 무려 7경기 만에 하태균과 이근호의 골을 묶어 서울을 상대로 짜릿한 2-1 승리를 따냈다. 감격적인 승리에 선수들이 부둥켜 안고 기뻐하는 순간 박항서 감독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승리의 기쁨과 함께 박살난 휴대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참 애매했다. 경기 도중 양준아의 퇴장 판정에 항의하다 화가난 박항서 감독이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집어 던졌고 이 휴대폰은 그대로 박살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나는 경기가 끝난 뒤 상주의 첫승 감동이나 첫승을 거두기 위해 그들이 어떤 전술을 썼는지보다 사실 박항서 감독의 휴대폰이 더 궁금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나 분풀이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던지려다가도 아직 내 휴대폰 약정 기간이 2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깨닫고 화를 삭였던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나처럼 휴대폰 약정에 끌려 다니는 이들에게 박항서 감독의 행동은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반대로 한순간의 화를 참기 못하고 휴대폰을 집어 던진 뒤의 후폭풍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철저히 조사했다. 박항서 감독 휴대폰에 관한 진실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오늘은 축구 칼럼이 아닐 수도 있다.

박항서 감독은 서울전이 끝난 뒤 상주 코치진과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첫승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터라 기쁨에 겨운 파티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서진 휴대폰에 대한 걱정도 앞섰다. 아무리 전원을 켜보려 해도 이미 박살난 휴대폰은 마치 헤어진 뒤 줄기차게 연락해도 받지 않는 나의 그녀 전화처럼 응답이 없었다. 산산이 깨진 액정 화면은 마치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 같았다. 박항서 감독은 승리 축하 파티를 하면서도 휴대폰이 없어 무척이나 불편했다. 다른 코치들이 첫승 축하 전화를 줄기차게 받는 동안에도 박항서 감독은 홀로 소주를 들이켰다. ‘그때 욱하는 마음을 조금만 참을걸.’ 박항서 감독은 술에 잔뜩 취해 잠에 들었다.

나는 박항서 감독의 소식을 접하고는 곧장 근처 휴대폰 대리점을 찾았다. 과거 치킨집과 전어횟집 등에 이어 국내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축구 칼럼을 쓰기 위해 휴대폰 대리점을 찾은 인물이지 않을까. 그리곤 물었다. “휴대폰이 고장 났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수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자 대리점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휴대폰 파손 보험에 가입하셨다면 최소한의 자기 부담금만 내시고 수리 받을 수 있지만 파손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셨으면 100% 자기가 수리비를 부담하셔야 합니다.” “만약 본인이 직접 화가 나서 휴대폰을 던졌어도 파손 보험에만 가입해 있으면 되나요?” 내 궁금증에 대리점 직원이 말을 이었다. “에이, 그런 상황이면 당연히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지만 그냥 대부분 고객님들이 그런 상황이어도 그냥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하고 혜택을 받죠.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잘 알겠습니다.” 나는 이 말을 남기고 대리점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이런 말이 자꾸 맴돌았다. ‘누군가 화가 나서 휴대폰 집어 던지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수만 명이 지켜봤어요. 도저히 실수로 휴대폰을 떨어뜨려 고장 났다고 하지 못하는 사례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박항서 감독을 위해 입가에 맴도는 이 말을 꾹 참았다.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졌으니 박항서 감독은 휴대폰 파손 보험에 가입했어도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많은 팬들이 과연 박항서 감독 휴대폰 약정이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래서 직접 조사해 봤다. 다행히도(?) 이 휴대폰은 이미 약정이 끝난 상황이었다. 상주 구단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감독님이 가지고 계신 ‘갤럭시 노트2’ 휴대폰은 구단에서 업무용으로 지급한 전화입니다. 이미 약정은 다 끝난 상황입니다.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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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 내가 휴대폰 대리점에서 직접 물어본 결과 아쉽게도 박항서 감독은 휴대폰 수리를 위해 거액이 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박항서 감독은 구단에서 지급한 이 휴대폰 외에 따로 개인 전화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경기 다음 날인 어제(10일) 아침 잠에서 깬 박항서 감독은 쓰린 속을 부여 잡았다. 속이 쓰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지난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장난 휴대폰 때문이기도 했다. 업무상 연락할 곳은 많은데 기억 나는 전화번호도 없었다. 휴대폰 파손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결국 박항서 감독은 아침 일찍 쓰린 속을 부여 잡고 곧장 휴대폰 수리점을 찾았다. “일단 전화기를 좀 살려주세요.” 박항서 감독의 눈빛은 지난 밤 양준아의 퇴장 판정 이후 최명용 주심을 노려볼 때보다도 훨씬 더 비장했다. 잠시 휴대폰을 살펴본 수리점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 상태라면 수리 기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상당히 들 겁니다. 그냥 이 참에 바꾸시죠.”

지난 밤 화끈하게 휴대폰을 집어던질 걸 후회한 박항서 감독은 수리점 직원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일단 전원이라도 들어오게 고쳐주세요. 전화가 안 되니 너무 답답하네요. 그 전화기에 저장된 전화번호만이라도 살려주세요.” 결국 박항서 감독은 급한대로 전원만 수리한 채 가정 문제 때문에 고향으로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새 전화기 사러 올게요.” 한 순간 욱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잘못치고는 그 결과는 너무 가혹했다. 박항서 감독은 액정 화면이 다 깨진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수신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전화를 받고 있다. 아마 이런 불편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시즌 첫 승을 거뒀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이미 휴대폰 약정 기간이 다 끝났다는 점과 박항서 감독의 ‘그 폰’이 서울전에서는 ‘부폰’이 됐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휴대폰과 첫 승을 맞바꿀 정도로 박항서 감독이 간절했다는 점과 내 눈물에서 피눈물 나면 최명용 심판 눈에서도 피눈물 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한 순간 욱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함부로 집어 던지지 말라는 점이다. 또한 웬만하면 휴대폰 파손 보험쯤은 가입해 두는 게 어떨까. 박항서 감독 휴대폰의 ‘카톡’은 오늘도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