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는 1990년대 말 이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앳된 얼굴의 고종수와 이동국이 K리그에 막 입성해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을 농락하던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지동원이나 윤석영 등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프로에 발을 딛었지만 강렬함은 1990년대 고졸 스타에 비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2014년 우리가 기다리던 그 선수가 마침내 등장했다. 바로 K리그 챌린지 대전시티즌의 서명원이다. 단 세 경기만을 치른 현재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는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그가 보여준 활약은 과거 고종수와 이동국의 등장 만큼이나 쇼킹하다. 서명원이 진짜 물건인 8가지 이유에 대해 꼽아보려 한다.

1. 만 18세의 나이

서명원은 데뷔 후 두 번째 경기였던 지난달 30일 고양전에서 완벽한 컨트롤로 골을 기록하더니 다음 라운드 강원과의 경기에서는 수비수를 세 명이나 두고도 터닝슛으로 골을 뽑아낸 뒤 환상적인 패스로 도움까지 올렸다. 플레이만 본다면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레전드 대우를 받을 베테랑 같지만 그는 1995년 4월 19일에 태어났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황보관의 캐논슛은커녕 1994년 미국월드컵 서정원의 동점골도 아버지의 몸속에 있어 직접 보지 못했던 햇병아리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됐고 만으로는 아직도 18세다. 18세의 선수가 날고 기는 이들이 모인 성인 무대에서 이리도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갓 스무살이 됐을 때 대학에 가 이제 당당하게 술집을 드나들 수 있다는 기쁨에 주어진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서명원은 이 어린 나이에 프로 무대에 등장했다. 아마 여러분들의 스무살을 떠올려 봐도 서명원이 얼마나 놀라운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한 고교 졸업생은 참으로 오랜 만이다.

2. K리그 챌린지의 주인공이 됐다

K리그 챌린지는 소외 받는 리그다. K리그 클래식도 제대로 텔레비전 중계가 되지 않고 언론에 잘 회자되지 않는 마당에 K리그 챌린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별로 없다. K리그 챌린지가 주목을 받는 방법은 그라운드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거나 서포터스가 사고를 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아마 그러면 우리의 일부 언론은 ‘폭력으로 얼룩진 그들만의 리그’라는 제목으로 K리그 챌린지를 대서특필할 것이다. 그만큼 K리그 챌린지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란 어렵다. 더군다나 여기에서 플레이 자체로 이목을 끄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서명원은 오로지 이 무대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고 있다. 서명원이 등장하면서 K리그 챌린지의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K리그 클래식 빅클럽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는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많은 상황에서 유망주들이 K리그 챌린지 무대를 ‘씹어 먹고’ 있다는 건 우리에게 대단한 메시지다. 서명원의 등장으로 K리그 챌린지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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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생인 서명원은 혜성처럼 등장해 데뷔 세 경기만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대전시티즌)

3. 오랜 만에 등장한 대전의 스타

과거 대전은 비록 풍족한 팀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스타가 참 많았다. 이관우가 그랬고 김은중이 그랬다. 최은성을 빼놓으면 섭하고 골수팬들에게는 공오균 같은 선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전은 스타와는 거리가 먼 팀이 되고 말았다. 나도 K리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근래 들어 대전 선수 중 얼굴을 기억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서명원이 등장했다. 대전으로서는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서명원이 대전의 오랜 스타로 남았으면 좋겠지만 미래의 일은 모르는 거다. 이관우와 김은중처럼 더 큰 무대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전에도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빅스타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아마 대전 구단의 홍보팀 직원들은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4. 연고 지역 출신

K리그 무대에서 연고 지역 선수가 해당 연고 팀에서 뛴다는 건 쉽지 않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는 워낙 여러 구단에서 입질이 많기 때문이다. 유소년 시스템을 잘 갖춘 포항이나 전남 등이 해당 연고 지역 학교 선수들을 프로에 받는 경우는 꽤 되지만 이들이 다 연고 지역 출신은 아니다. 대다수가 타지에서 실력을 인정 받아 유망주들이 대거 몰린 포항과 전남 지역 고등학교로 스카우트 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명원은 충남 당진 출신이다. 대전이 사실상 연고지로 함께 포함하고 있는 지역이다. 어린 시절부터 경기장을 찾아 대전을 응원하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아이가 바로 그 팀에서 뛰게 됐다는 건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또한 서명원은 드래프트를 통해 타의로 대전에 입단한 게 아니라 본의의 의사가 반영된 자유 계약이었다. 그는 스스로 대전을 택한 뒤 이렇게 말했었다. “이곳에 온 건 훌륭한 선택이다.” 서명원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대천해수욕장에서 ‘마 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며 내 돈을 빼앗아간 중학생보다도 이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 같다.

5. 이타적인 선수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선수들은 대부분이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워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너무나도 과도한 욕심으로 질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제 불과 세 경기를 소화한 서명원의 플레이를 모은 ‘스페셜 영상’이 벌써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 역시 화려한 개인기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서명원은 충분히 동료를 이용할 줄 아는 선수다. 강원과의 3라운드에서 반델레이의 골을 도울 때도 서명원은 욕심을 내지 않고 패스를 통해 수비를 허물어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단 이 장면뿐 아니라 세 경기에서 보여준 플레이는 앞으로도 그가 단순히 화려한 개인기만을 갖춘 선수가 아니라 상대 수비의 견제가 집중됐을 때 동료들을 위해 기회를 내주는 역할도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이런 이타적인 선수는 동료는 물론 지도자와 팬들로부터도 미움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6. 김은중의 가르침

김은중이 11년 만에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 자체로도 대전 팬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대전의 어린 선수 입장에서는 단순히 팀의 레전드가 돌아온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전은 물론 K리그 전체에서도 큰 존경을 받는 엄청난 선배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이동국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포항에 입단했을 때 ‘대선배’ 황선홍과 한 방을 쓰며 몸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음식은 뭘 먹는지까지도 세심하게 관찰했다고 한다. 서명원 역시 김은중이라는 플레잉코치로부터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해 또래들과의 경기가 아닌 대선배들과 함께 뛰게 된 선수에게는 이보다 더한 가르침이 있을까. 서명원에게 있어 같은 유니폼을 입은 김은중은 그의 먼 미래까지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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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 포츠머스에서 유학한 서명원은 이후 유럽의 유소년 선수 규정으로 인해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서명원은 다시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대전시티즌)

7. 훌륭한 인성
나는 평소에 운동선수가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모든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큰 선수가 되려면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만 잘하면 그 무대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어도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춰야 사회적으로도 더 훌륭한 인물이 돼 축구선수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서명원을 잘 아는 이들은 겸손하면서도 성실한 그에게 극찬을 보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서명원은 늘 겸손하다. K리그에서 깜짝 주목을 받았던 선수 중 일부는 동료들과 지도자들에게 안하무인식의 행동을 해 구단에서 인터뷰 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서명원은 주변의 극찬에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 역시 이제 막 세 경기를 치른 그를 칭찬하는 칼럼을 쓰며 적지 않게 고민했지만 그의 ‘멘탈’을 믿기 때문에 오늘 칼럼 주제로 그를 다루기로 마음 먹었다.

8. FM도 알아봤다

컴퓨터로 축구를 배운 이들에게 서명원은 이미 친숙한 이름이다. 풋볼매니저(FM)에서 이미 2009년부터 엄청난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FM에서 리즈유나이티드로 202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할 때 결승전에서 서명원이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모니터를 부둥켜 안고 운 적이 있다. 그런 서명원이 FM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고 실제로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선수의 미래는 모르는 거다. 우리는 지금까지 숱한 유망주들의 등장을 지켜봐 왔지만 이중 상당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에 머물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서명원 역시 성장세가 멈춰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일단 출발 자체가 참 좋다. 비록 K리그 챌린지라는 한 단계 낮은 무대지만 서명원이 데뷔 후 보여준 강렬함은 현재 한국 축구를 이끄는 선수들과 비교해 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박주영과 이천수는 당시 고졸 신인이 아니라 대학교에서 건너 온 선수였고 이청용과 기성용도 프로 1년차 때는 이런 임팩트를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앞으로 이 성장세가 더욱 두드러져 그가 대전은 물론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일을 해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