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틸러스와 세레소 오사카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첫 경기가 열린 지난 25일 포항스틸야드. 경기가 시작 되기 전 한 재일교포 3세 출신인 일본 국적의 남자가 포항 서포터스를 찾아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세레소 오사카 서포터스 앞에서 상대팀 수장이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만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이틀간 벌어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클래식 구단이 3승 1무를 거뒀다는 반가운 결과보다는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먼저 전하고 싶다. 과연 그들은 왜 상대에게 이렇게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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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은 1999년 세레소 소속으로 J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이는 세레소 선수로도, 한국인으로도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사진=J리그 공식 홈페이지)

세레소의 유일한 득점왕 황선홍

1992년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독일로 향했던 황선홍은 1년 뒤 다시 K리그 무대에 돌아왔다. 드래프트에서 완산 푸마의 지명을 받았지만 이흥실 등 무려 8명의 선수와 맞바꾸는 사상초유의 1:8 트레이드로 포항에 입단한 그는 6년간 K리그 무대를 누볐지만 명성에 맞는 활약을 선보이지는 못했다. 나서는 경기에서는 꽤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부상도 있었고 무엇보다 잦은 대표팀 차출로 리그에 전념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6년 동안 포항에서 52경기에 나서 26골을 기록한 황선홍은 1998년 8월 J리그로 향했다. 세레소 오사카가 그의 새로운 둥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세레소는 그리 강한 팀이 아니었다. 1995년부터 J리그 무대에 뛰어 들었지만 하위권을 전전하던 약체였다. 언제 다시 강등 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팀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J리그는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주축 선수였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가 나고야 그램퍼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불가리아를 4강에 올려 놓으며 골든슈와 발롱도르를 석권한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역시 J리그에서 활약 중이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득점왕과 골든슈를 동시에 수상했던 살바토레 스킬라치도 J리그 무대를 밝고 있던 시절이었고 일본을 대표하는 공격수이자 1998년 J리그 득점왕인 나카야마 마사시의 파괴력도 여전했다. 말 그대로 당시 J리그는 공격수들의 천국이었다. 황선홍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였지만 소속팀이 약체인 세레소였기 때문에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1999년 황선홍의 발끝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개막 이후 곧바로 득점포를 가동하기 시작하더니 5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는 등 기록적인 득점 레이스를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에 만년 하위권이었던 세레소의 성적도 치솟았다. 시즌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며 우승 경쟁을 펼쳤다. 결국 25경기에서 24골을 뽑아내며 경기당 한 골에 달하는 기록을 세운 황선홍은 1999년 한국인 최초로 J리그 득점왕 자리에 올랐고 세레소 역시 역대 최고인 5위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득점 랭킹 2위 바론과는 무려 7골 차이였다. 이후 지금까지 숱한 한국 선수들이 J리그 무대를 두드렸지만 득점왕에 오른 선수는 없다. 그만큼 1999년 황선홍의 플레이는 현재에도 무척이나 높게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세레소 역시 이후 다시 하위권을 맴돌다 강등까지 당하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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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포항 유니폼을 입고 입단식을 치르는 오카야마의 모습. (사진=포항스틸러스)

‘포항의 응원단장’ 오카야마

또 한 명의 남자가 있다. 바로 오카야마 카즈나리(한국명 강일성)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그는 변변치 않은 경력의 축구선수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J2리그에서 보낸 오카야마는 여러 차례 J2리그 팀을 승격시킨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능력은 거기까지였다. 승격된 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J2리그 임대 생활을 전전한 그저 그런 수비수였다. 2001년에는 주전으로 J1리그 세레소에서 28경기를 뛰었지만 결국 팀의 강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카야마는 늘 유쾌했다. 2003년 가와사키 프론타레 시절부터 서포터의 북을 직접 치기도 하고 장내 아나운서의 마이크를 빼앗아 응원을 유도하기도 했다. 경기에서 승리할 때면 서포터스의 메가폰을 잡았다. 가와사키가 승리하는 날이면 팬들은 오카야마가 메가폰을 잡는 순간을 기다렸다. 일종의 팬서비스였다. 팬들은 이걸 ‘오카야마 극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결국 2009년 그는 베갈타 센다이에서 방출되며 갈 곳을 잃었다. 더 이상 이 나이 많고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수비수를 눈여겨 보는 구단은 없었다. 오카야마는 소속팀이 없어 자신이 경영하는 브라질 음식점에서 일을 하며 새 팀을 찾았다. 자칫하면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였다. 그런데 K리그 포항이 수비수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곧장 한국으로 향했다.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5월부터 무려 두 달 동안이나 연습생 신분으로 포항에서 테스트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본인 스스로 말한 것처럼 1%도 안 됐던 가능성을 실현시켰다. 아시아 쿼터로 포항이 오카야마를 선발하기도 한 것이었다. 이렇게 주로 일본 무대에서 2부리그를 전전했던 무명의 수비수는 포항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오카야마는 포항에서도 백업 수비수였다. 2009년 8월 피스컵코리아 준결승 2차전에서 공격수로 깜짝 교체 출전해 극적인 골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늘 김형일과 황재원, 김광석 등의 백업 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파이팅 넘쳤다. 3명의 선수가 모두 교체된 상황에서 벤치로 돌아가 쉴 법도 하지만 혼자 몸 푸는 구역까지 나와 동료들을 응원하고 연장전에 들어가면 바로 뛰어 들어와 동료 선수들의 다리를 풀어주기도 했다.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풀 죽은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랐다. 2009년 포항이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에도 오카야마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포항의 우승이 확정되자 동료들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고 가장 기뻐했던 선수였다. 그가 포항에서 보여준 활약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유쾌한 오카야마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두 남자를 향한 상대팀 팬들의 예우

포항과 세레소의 경기가 펼쳐진 지난 25일 포항스틸야드에 오카야마가 등장했다. 그가 포항을 떠난지 무려 4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수의 자격이 아닌 세레소 서포터스 가이드 자격이었다. 일본 여행사 ‘니시테츠 여행’이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 관광 상품에 포항과 세레소에서 모두 뛴 경험이 있는 오카야마가 동행하는 패키지를 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틸야드에 도착하자마자 포항 구단 사무실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 4년 전 행복한 추억을 선사한 친정팀에 대한 예의였다. 포항 관계자 역시 잊지 않고 인사를 하러 온 오카야마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팬을 아끼는 오카야마는 포항 서포터스석으로 향했다. 늘 경기가 끝나면 확성기를 들고 ‘오카야마 극장’을 열었던 그가 인사를 하러 오자 서포터스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카야마는 경기 시작 전까지 포항 서포터스석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다가 세레소 서포터스석으로 돌아갔다.

이때 경기장에서는 양 팀 선수 및 감독 소개 멘트가 흘러 나왔다. 늘 축구장에서 그러는 것처럼 적절한 도발이 시작됐다. 장내 아나운서가 세레소 선수들을 소개하자 포항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고 포항 선수들이 소개될 때는 세레소 팬들의 야유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끝날 때쯤 홈과 원정 팬 구분 없이 경기장 4면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포항스틸러스의 감독 황선홍입니다”라는 소개와 함께 황선홍 감독 사진이 전광판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세레소의 짧은 전성기와 함께 세레소 출신으로는 유일한 J리그 득점왕인 황선홍에 대한 세레소 팬들의 예우였다. 홈팀 감독이 원정 팬에게도 박수를 받는 특이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만큼 세레소 팬들에게 황선홍 감독은 특별한 존재였고 1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세레소의 황선홍은 잊을 수 없는 위대한 선수였다.

경기가 1-1로 마무리 된 뒤 황선홍 감독이 중계방송 인터뷰에 응하자 세레소 팬들이 누군가를 연호했다. 놀랍게도 ‘적장’ 황선홍의 이름이었다. 세레소 팬들이 외치는 “황!선!홍!”이라는 울림은 스틸야드를 뒤덮었다. 황선홍 감독은 인터뷰를 마치고 포항 서포터스석 앞으로 가 인사를 한 뒤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하프라인을 넘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세레소 서포터스석 앞으로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세레소 팬들은 15년 전 황선홍을 위해 불렀던 응원가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상대팀 감독이기 이전에 과거 자신들을 위해 뛰었던 영웅에 대한 예의와 감사의 표시였다. 황선홍 감독은 과거 자신을 응원했던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세레소 골키퍼 김진현은 반대로 포항 팬들 앞으로 달려와 인사를 전했다.

관중이 모두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포항 선수단 버스 앞에 포항 팬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4년 전 오카야마를 위해 만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누군가 등장했다. 바로 그 노래의 주인공 오카야마였다. 4년 전처럼 그는 팬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자신의 응원가를 함께 부르며 추억에 잠겼다. 비록 상대팀 가이드 자격이었지만 포항 팬들에게 ‘괴짜 응원단장’ 오카야마는 여전히 특별한 존재였다. 오카야마가 입은 푸른색 유니폼을 들추니 놀랍게도 4년 전 그가 입었던 포항 유니폼이 슬쩍 보였다. 그 역시 포항을 잊지 않고 있었다. 포항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포옹을 나누며 고마움을 전한 오카야마는 특유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다시 세레소 팬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기 위해 원정 서포터스를 태운 버스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아름다웠던 스틸야드의 밤

누군가 보기에는 그저 숱한 경기 중 한 경기였을 수도 있다. 전북과 울산, 서울 등 다른 K리그 클래식 팀들이 나란히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는 동안 유일하게 포항만 무승부를 거뒀으니 아쉬운 경기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결과만 놓고 따지기에는 참 이야기가 많은 경기였다. ‘옛 영웅’ 황선홍과 재회한 세레소, 다시 돌아온 ‘괴짜 응원단장’ 오카야마를 연호한 포항은 축구라는 게 그저 ‘내 편과 네 편’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직접 보여줬다. 이렇게 지난 25일 밤 스틸야드는 과거를 추억하는 두 남자의 등장과 그들을 예우하는 두 팀 팬이 만나 더욱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