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했던 2013년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2013년도 이제 닷새 밖에 남지 않았다. 올 시즌 한국 축구, 특히 K리그에서는 누가 어떤 일을 벌였을까. 우리를 1년 동안 울리고 웃긴 K리그의 주인공들에게 딱 맞는 노래를 선정해 봤다.

“이천수가 부릅니다 <곤드레 만드레>”

이천수가 또 다시 술을 마신 뒤 사고를 쳤다. 이미 항명 파동을 일으키는 등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질러 임의탈퇴까지 당했던 이천수는 이번에는 진짜로 마음을 고쳐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또 한 번 팬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이천수는 지난 10월 인천의 한 술집에서 음주 폭행시비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언론과 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말았다. 그를 향한 동정론은 배신감으로 변했고 그를 향한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워졌다. 결국 인천 구단은 이천수에게 잔여 시즌 경기 출전 정지, 벌금 2천만 원, 사회 봉사 명령 100시간, 자필 반성문 작성 등의 징계를 내렸고 이천수는 이후 아프리카 케냐로 봉사 활동을 떠나는 등 자숙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천수의 18번이 박현빈의 <곤드레 만드레>에서 진원의 <고칠게>로 바뀌는 날은 언제일까.

“황선홍 감독이 부릅니다.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현역 시절 황선홍은 최고의 공격수였지만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도 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은 이런 속설을 올해 들어 완전히 깼다. 부산을 거쳐 2011년 포항 감독으로 취임한 그는 부임 첫해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끌더니 지난해에는 FA컵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올 시즌 시작을 앞두고 포항의 전망은 어두웠다. 모기업의 지원이 부족해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시즌을 치르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황선홍 감독은 보란 듯이 해냈다. 올 시즌 FA컵 우승으로 FA컵 2연패를 달성하더니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울산을 극적으로 누르고 기적 같은 2관왕을 이룬 것이다. 지도자 생활 6년 만에 K리그 역사상 최초의 더블을 달성한 황선홍 감독은 이제 지도자로서도 레전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설이 되고 있다. 황선홍 감독의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후속곡으로는 포항 선수들이 피처링 한 <내가 제일 잘 나가>가 있다.

“정성룡이 부릅니다. <덩크슛>”

국가대표 부동의 수문장이었던 수원 정성룡에게는 정말 안녕하지 못한 한해였다. 올 시즌 내내 경기력 논란을 일으켰던 정성룡은 지난 11월 K리그 클래식 포항과의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상대의 쉬운 슈팅을 막아내려다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몸을 날렸지만 이 공은 이미 골 라인을 통과한 뒤였다. 또한 이후 펼쳐진 러시아와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서도 비교적 어렵지 않은 상대의 크로스를 막지 못해 또 다시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정성룡은 머리를 짧게 깎는 등 다시 자신감을 찾기 위해 의지를 다졌지만 결국 대표팀 골문을 울산 김승규에게 내주는 등 여전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성룡이 부르는 <덩크슛>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축구선수가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안익수 감독이 부릅니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성남일화는 올 시즌 중반 팀 해체와 인수, 연고이전 등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안익수 감독은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경기력이다.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선수들은 하나로 뭉쳤고 결국 성남은 그룹B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성남시 역시 이 팀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결국 극적으로 인수 후 재창단을 확정지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안익수 감독은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남은 이후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안익수 감독을 경질하고 박종환 감독을 선임하는 등 팬들의 의지와는 반대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흔들리는 팀을 잘 정비한 안익수 감독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안익수 감독이 부른다. “좋은 이별이란 거, 결국 세상엔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때 차라리 다 울어둘 걸. 그때 이미 나라는 건 네겐 끝이었다는 건 나만 몰랐었던 이야기.”

“데얀이 부릅니다. <헤어진 다음날>”

FC서울을 넘어 K리그 클래식의 대표 공격수로 등극한 데얀이 결국 어제(26일) 중국 장쑤 세인티로 이적했다. 데얀이 그동안 K리그에 남긴 기록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2011년 24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른 데얀은 지난 해에도 31골을 기록, 한 시즌 개인 최다골의 역사를 쓰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올 시즌 막판까지 울산 김신욱과의 득점왕 경쟁에서 밀려있던 데얀은 무서운 몰아치기를 선보이며 결국 19골을 뽑아내 3년 연속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데얀이 바로 어제 우리와 이별했다. K리그와 헤어진 다음날인 오늘, 데얀은 어떤 심정일까.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는지 궁금하다. 어제 아침에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게 달라져 있다. 데얀이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게 느껴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 부릅니다. <12월 32일>”

올 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는 상주 상무의 독주에 이은 승격이 단연 화제였다. 특히 상주는 이근호를 비롯해 이상협, 하태균, 이호 등 쟁쟁한 선수들을 앞세워 다른 팀들의 추격을 완벽히 뿌리쳤다. 사상 첫 승격이라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 상주 박항서 감독은 이제 내년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김형일과 김재성 등 일부 선수들이 전역했지만 여전히 이근호를 비롯한 훌륭한 자원이 즐비해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평가다. 선수들은 매일 저녁 수양록을 쓴 뒤 달력에 X표시를 하며 전역하는 2014년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박항서 감독은 이 선수들과 오래 함께 하기를 바랄 것이다. 아마도 박항서 감독은 오늘 저녁에도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내게 1월 1일은 없다고. 내 달력은 끝이 아니라고.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네가 올 때까지 나에겐 아직 12월이라고.”

“울산 팬들이 부릅니다. <죽어도 못 보내>”

비록 울산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포항에 우승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시즌을 보냈다. 이근호를 비롯해 이호와 에스티벤, 곽태휘, 고슬기, 이재성 등이 팀을 떠나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시즌 막판까지 선두를 내달리며 멋진 경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울산 팬들은 우승을 놓친 슬픔보다 ‘철퇴왕’ 김호곤 감독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슬플 것이다. 다 잡았던 우승을 마지막 경기에서 놓치고 만 김호곤 감독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우승을 놓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자진 사퇴를 하고 말았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철퇴를 휘두르며 2012년 아시아를 정복했던 그때의 기억은 팬들의 기억 속에 고이 남아있을 것이다. 울산 팬들은 가장 신나게 부를 수 있는 <잘가세요> 대신 <죽어도 못 보내>를 부르며 김호곤 감독을 잡고 싶지 않을까.

“박경훈 감독이 부릅니다. <가질 수 없는 너>”

시즌이 끝나고도 K리그에는 이야깃거리가 쏟아졌다. 특히 도르트문트의 영입 제안도 거절했던 류승우가 K리그 클래식 제주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건 신선한 뉴스였다. 하지만 이는 잠시였다. 류승우는 레버쿠젠의 임대 제안을 받아들여 제주 계약 사흘 만에 독일로 떠났다. 이를 두고 류승우가 K리그 구단에 입단하지 않으면 5년간 복귀를 제안하는 ‘K리그 5년룰’을 편법으로 피해갔다는 논란까지 일어났다. 박경훈 감독 역시 “류승우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류승우는 제주만의 보물이 아닌 한국 축구의 자산”이라면서 그를 독일로 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내년 시즌 즉시전력감으로 쓸 선수를 내준 박경훈 감독은 오늘도 노래방에 가 금영에서는 ‘3890’, 태진에서는 ‘2730’을 누른 뒤 <가질 수 없는 너>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 류승우를 향한 박경훈 감독의 마음이다.

“AFC에서 부릅니다. <내꺼 중에 최고>”

아시아축구연맹(AFC)은 K리그가 참 친근할 것이다. 무려 5년 연속 K리그 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건 어느 한 팀이 단골손님이 된 게 아니라 5년 동안 매번 다른 팀이 결승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2009년 포항을 시작으로 2010년 성남, 2011년 전북, 2012년 울산에 이어 올 시즌에는 서울이 결승에 오르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AFC가 대회를 개편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비록 올해 결승전에서 서울이 중국 광저우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5년 연속 결승 진출 자체로도 K리그가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잘 설명해 준다. 이런 K리그가 내꺼 중에, 아니 아시아 중에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대전, 대구, 강원이 부릅니다. <미안해요>”

결국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세 팀은 대전과 대구, 강원으로 결정됐다. 대전과 대구는 나란히 14위와 13위를 기록하며 자동 강등됐고 시즌 막판 상승세를 타며 극적 잔류를 노렸던 12위 대전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K리그 챌린지 우승팀인 상주와 1승 1패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강등되고 말았다. 비록 이들을 내년 시즌에는 K리그 클래식에서 볼 수 없게 됐지만 빠른 시일 내에 다시 K리그 클래식 무대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이 세 팀 선수들은 강등이 확정된 뒤 팬들 앞에 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금은 <미안해요>를 외치지만 언젠간 <나 이런 사람이야>를 소리 높여 외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김진규가 부릅니다. <사랑의 배터리>”

김진규는 서울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다. 김진규는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35경기에 나섰고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무려 40경기가 넘는 강행군을 소화하며 서울 수비를 책임졌다. 시즌 내내 대부분의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한 그는 시즌이 끝나고도 쉬지 않았다. 무려 10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기부 활동을 해온 김진규는 올 시즌이 끝난 뒤에도 고향인 영덕군내 불우이웃 돕기에 1천만 원을 기탁했고 자신과 연고가 없는 포항의 한 요양원에도 5백만 원의 성금을 선뜻 내놓아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게 시즌 도중은 물론 시즌이 끝나고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를 위해 팬들은 <사랑의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지 않을까.

올 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온 몸을 날리며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모든 K리그 선수와 지도자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장을 찾은 수 많은 팬들, 뒤에서 묵묵하게 구단 운영을 도와준 프런트, 언제나 현장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한 언론인 등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 해 동안 모두들 참 고생 많았다.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바로 K리그의 <챔피언>이다.